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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적시에 북을 치십시오 (민 14: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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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시에 북을 치십시오 (민 14:39-45)

< 현재의 시간에 충성하십시오 > 

옛말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고서야 좀더 준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만 그때는 후회에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불행이 현실이 되기 전에 겸허하게 미래를 준비하십시오. 가끔 보면 사고가 난 후에 뒷북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후에 뒷북을 치면 얼마나 불행한 모습입니까? 

요새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인맥도 좋습니다. 그런데 진짜 좋은 인맥은 이미 성공한 사람보다 앞으로 성공할 사람을 통해 형성됩니다. 이미 성공한 사람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에 몰려드는 사람이 귀찮지만 앞으로 성공할 사람은 현재는 외롭습니다. 그때 그의 지지자가 되어주면 복된 인맥을 얻습니다. 

대학 때 같이 선교회 활동을 하던 한 후배는 사법고시를 몇 번 떨어졌습니다. 결국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한물 간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왜 저런 곳으로 갔나?”고 하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금은 아주 유력한 정치인이 되어 고시 패스한 친구들보다 훨씬 잘 나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힘들 때는 외면하다가 지금은 그에게 줄을 대려고 뒷북을 치지만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이미 성공한 사람을 찾아서 아부하지 말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찾아서 함께 해주어야 좋은 인맥을 얻습니다. 뒷북치는 인생 치고 인간관계를 잘해서 성공하는 인생은 별로 없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원하면 적시에 북을 치십시오. 

어떤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교회가 작을 때 서러움도 많이 받고 마음고생도 심했습니다. 어느 날, 한 힘 있는 교인이 열심히 봉사하다가 목사님이 전도사를 부당한 이유로 떠나게 했다고 성토하며 여러 성도들과 함께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너무 힘들었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반면에 교회를 떠난 그 힘 있는 교인은 얼마 후에 사업이 망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밑바닥 체험을 하며 이민교회를 계속 다녔습니다. 그리고 점차 신앙이 성숙해지고 리더십의 원리를 이해하면서 옛날에 그 목사님 교회를 떠난 것이 자신의 경솔함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마침 그 목사님이 미국에 부흥회를 왔습니다. 세월도 10여년 흐른 상태에서 옛날 향수도 되살리고 싶고 목사님과의 관계도 복원하고 싶어서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부흥회 후에 줄을 서서 목사님과 잠깐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러나 둘이 오래 만에 만나서 얘기한 시간은 딱 1초에 불과했습니다. 이미 교회를 떠난 상태에서 10여년 만에 한 사람은 한국 최고의 목사가 되어 나타났고 한 사람은 초라한 불법 체류자가 되어 만났지만 더 이상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같이 나눌 얘기도 없고 공감대도 없었습니다. 결국 둘의 옛 관계는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충성할 때 충성해야 복된 관계가 형성됩니다. 뒷북치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대개 뒷북치는 인생은 양지만 좋아하고 음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음지에서 인내로 심길 줄 모르면 결코 좋은 인맥을 얻지 못하고 남들은 다 앞선 존재가 될 때 본인은 제자리에 있거나 후퇴합니다. 그러므로 시련 중에 인내하고 항상 현재의 시간에서 충성하고 순종하십시오. 그래야 좋은 인맥이 형성되고 좋은 날이 펼쳐집니다. 

< 뒷북치는 이스라엘 백성 > 

본문은 뒷북치는 삶을 불행을 잘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을 때 10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여호수아와 갈렙 2명만이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더 진짜로 믿고 밤새도록 슬피 울고 모두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민 14:1-2). 심지어는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의 기세에 눌려 모세와 아론이 기가 죽어 엎드려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옷을 찢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으로 우리를 들이실 것입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민 14:6-9).” 그러자 백성들은 갈렙까지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리라.” 

그 진노의 음성을 듣고 모세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그냥 죽이시면 하나님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능력이 없어서 그랬다고 여길 것입니다. 주의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이 백성을 사해주소서!”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말대로 백성을 사하겠지만 믿지 않는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하나도 가나안 땅을 보지 못하게 하겠다. 이제 광야로 들어가라. 너희는 광야에서 죽고 너희 자녀들은 40년을 광야에서 헤맬 것이다(민 14:20-34).” 

그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늦게 슬퍼하고 후회하며 광야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며 말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겠습니다(40절).” 그들이 이사야처럼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고백했지만 그 고백은 진정한 헌신의 고백이 아닌 그저 벌을 모면하려는 계산적인 고백이었습니다. 

그처럼 뒷북치는 고백을 듣고 모세가 책망했습니다. 본문 41-42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치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하나님이 이미 외면했는데 그때 뒷북치며 인간적인 열심을 가지고 나가면 전쟁에서 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에게 시급한 것은 전쟁 수행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었지만 그들은 뒷북을 치면서 자기들 맘대로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와 모세는 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44절). 싸우라 할 때는 싸우지 않고 싸우지 말라고 할 때는 싸우는 청개구리 같은 모습을 보십시오. 결국 어떻게 됩니까? 아말렉과 산지의 가나안 족속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합니다. 

< 인생의 적시타를 날리는 길 > 

본문의 패배는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이 겪은 최초의 패배인데 그 패배가 미친 파급효과는 컸습니다. 그 패배로 가나안 주변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깔보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패배의식으로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했습니다. 그처럼 적시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가 무서워 나중에 뒷북치며 헌신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치욕과 멸시를 당합니다. 그처럼 뒷북치는 불행한 인생이 되지 않고 적시타를 날리는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잘못했을 때 회개하십시오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가끔 죄를 짓고 잘못된 행동도 합니다. 그때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때 필요한 것은 후회나 변명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잘못을 후회하고 그 잘못을 만회하겠다고 하나님의 뜻과 다른 행동을 하다가 오히려 더 심판을 받습니다. 

회개와 후회는 다릅니다. 후회하는 사람은 잘못으로 생겨난 형벌을 두려워하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나 같은 인간에게 어떻게 밝은 미래가 있겠는가? 내가 한 짓이 있는데 어떻게 자식이 잘 되겠는가? 남을 억울하게 했는데 왜 내게 억울한 일이 없겠는가?” 

반면에 회개하는 사람은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복원에 힘쓰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이제 그 죄를 힘써 멀리하겠습니다.” 후회는 ‘죄로 인한 결과’를 두려워하면서 원망과 불평과 자책으로 절망적 불안에 빠지게 하지만 회개는 ‘죄 짓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복원에 힘쓰기 때문에 오히려 죄로 인한 먹구름을 사라지게 합니다. 

다윗이 간음죄를 저지르고 처음에는 죄지은 것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다 죄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죄의 사슬이 끊어지지 않고 살인죄까지 저질렀습니다. 죄의 결과로 생기는 심판과 남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타를 두려워하며 후회하지 말고 죄 자체를 두려워하며 회개해야 복된 새날이 펼쳐집니다. 결국 후회는 근심을 증폭시키지만 회개는 근심을 사라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적인 근심을 하지 말고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근심해야 합니다. 

 이제 “일이 잘못되면 어떡하나? 누가 없으면 어떡하나?” 하고 근심하지 마십시오. 살다 보면 먼저 떠날 사람은 먼저 떠나고 나중 떠날 사람은 나중에 떠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설 때 어떻게 설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회개의 고백을 앞세우십시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저를 용서하시고 항상 말씀대로 살게 하소서!” 그런 고백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그의 미래는 누구보다 밝게 펼쳐질 것입니다. 


2. 지금 헌신하십시오 

살다 보면 헌신의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축복의 때입니다. 그 축복의 때를 놓치고 뒷북치지 마십시오. 헌신할 때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바로 “예! 알겠습니다.”라고 즉시 순종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고 즉시 실천하는 것과 “내일 하겠습니다.”라고 실천을 미루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의 감동을 따라 현재의 시간에서 헌신하십시오. 

헌신이 없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매인 느낌이 싫다고 해서 헌신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헌신이 있으면 인생승진이 이뤄지지만 헌신이 없으면 인생승진이 미뤄집니다. 또한 헌신이 없으면 복된 인맥도 얻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유를 좋아하지만 진정한 영혼의 자유는 자기 뜻대로 무엇을 할 때 주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거룩한 일에 매일 때 주어집니다. 

새가 새장에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풀어주면 스스로 자연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개 야생에서 죽습니다. 그것은 자유를 준 것이 아닙니다. 가끔 보면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려주었는데 “왜 나를 살렸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살려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갈 힘을 주는 것’입니다. 진짜 자유는 ‘무엇으로부터 자유(freedom from)’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자유(freedom for)’입니다. 자유를 누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풀려났지만 스스로 살아나가지 못하면 자유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진정한 자유인을 꿈꾸십시오. 자유란 단순히 몸이 자유로운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유인이 되지 못하면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도피하거나 해방되거나 풀려나는 것만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풀려난 후에 바른 길에 들어설 줄 알고 좋은 일에 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일에 매이지 않고는 결코 진정한 자유인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헌신이 중요합니다. 

어떤 청년은 결혼을 속박으로 여깁니다. 그런 미숙한 인격과 생각을 가지고 결혼하면 삶이 힘들어집니다. 요새는 속박이 싫다고 결혼안하고 그냥 살고 심지어는 자식에게 매이기 싫다고 자식도 낳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처럼 매임이 없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처럼 착각은 없습니다. 

자식을 낳지 않으면 의미 있는 삶의 기회도 그만큼 줄어들고 나이가 들면 대개 후회합니다. 그처럼 나중에 후회하게 만드는 것은 진짜 자유가 아닙니다. 결국 헌신에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이제는 매임 자체를 즐기십시오. 교회에도 시간과 마음을 들여 조금 더 매이려고 하십시오. 육신이 거룩한 것에 매일 때 영혼은 진정한 자유를 얻습니다. 매이지 않아야 자유를 얻는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바른 길에 매이고, 법과 질서와 진리에 매일 때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요새는 법이 점차 많아집니다. 왜 많은 법으로 사람을 속박합니까? 그러나 바른 길을 가는 사람에게 법은 아무리 많고 엄격해도 속박이 되지 않습니다. 교통이 혼잡한 곳에서는 신호등이 있어야 차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듯이 법이 있어야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처럼 기본적인 자유는 법 테두리에서 주어지고 차원 높은 자유는 거룩한 것에 매일 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헌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헌신을 새롭게 다짐하십시오. 그때부터 복된 교회생활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이 펼쳐질 것입니다. 


3. 뚜렷한 목표를 가지십시오 

성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 세상에 살 때 후회가 없도록 열심히 사랑하며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주님과 감격적인 재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후회 없이 살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사람에게 거룩한 꿈과 비전과 목표가 없는 삶처럼 불행한 삶은 없습니다. 콧대는 낮추되 푯대는 높이십시오. 도로 측량할 때 푯대를 높이 세워야 일이 이뤄집니다. 

왜 사람이 늙습니까? 대개 보면 꿈이 후회로 바뀔 때 비로소 사람은 늙습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후회보다 꿈이 많으면 젊은 것이고, 꿈보다 후회가 많으면 늙은 것입니다. 이제 후회하는 일에 너무 시간을 쓰지 말고 후회하는 시간을 새로운 꿈을 꾸는 시간으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목표를 새롭게 하고 분명히 하십시오. 어차피 과거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날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주어진 인생을 잘 계획해서 후회 없는 인생이 되도록 하십시오. 

꿈꾸는 인생이 될 수만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서 마침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출애굽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70세에 새로운 악기 연주법을 배웠고, 플라톤은 60세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철학세계를 열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갈 때까지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고 세월이 지날수록 인생 목표를 더욱 뚜렷하게 하십시오. 

성공적인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것은 분명하고 구체적인 삶의 목표입니다. 왜 요새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합니까? 구체적이고 분명하고 거룩한 삶의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거지는 자살하지 않습니까? 비록 좋은 목표는 아니지만 얻어먹으며 살겠다는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목표가 없으면 삶의 무의미와 허무가 그 영혼을 약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분명한 삶의 목표를 찾고 그 목표를 따라 사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복된 길이 펼쳐집니다. 

< 영혼 구원의 궁극적인 관심 > 

성도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지상 최대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 구원’입니다. 그 중요한 목표에서 이탈하면 어떤 성공도 그 영혼에 기쁨과 보람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불행이 틈타는 이유는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생각할 가치가 없는 것을 생각하고,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것에 관심을 두며 계산적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계산과 실리를 따라 살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 얘기가 나옵니다. 그때 그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찾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벌입니다. 그 잔치를 벌이려고 몇 마리의 양을 잡았을 것입니다. 계산이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더 나아가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까지 버립니다. 동물인 양을 위해 사람인 목자가 목숨을 버리니까 그런 얘기는 계산적으로 따지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런 비계산적인 행동에 기쁨과 행복과 축복을 얻는 길이 있습니다. 

만사를 실리적으로만 판단하며 살지 마십시오. 지금 어디에 관심을 둡니까? 덜 중요한 일에 너무 관심을 두고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고 애쓰다가 뒤늦게 가슴을 치고 후회하면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과 바꾸어도 후회할 것이 없는 궁극적인 일과 목표에 마음을 쓰고 관심을 두십시오. 

이제 무엇을 먹을까를 지나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잘 먹어야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잘 먹는 사람들이 더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뱀이나 지렁이까지 먹지만 그래도 일찍 죽을 사람은 일찍 죽습니다. 또한 무엇을 입을까도 지나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마음속의 슬픔과 공허함은 감추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영혼 구원이라는 대 목표가 없다면 인생의 보람과 의미는 없어지고 결국 바보 같은 인생을 사는 셈이 됩니다. 

가수 김도향 씨가 부른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란 노래가 있습니다. 어느 날, 시인은 문득 낙엽 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때 무의미하게 흘려버린 세월을 느끼며 텅 빈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려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살다 보면 자신이 시간을 너무 의미 없이 낭비하고 바보처럼 살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서면 됩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누군가의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 중요한 목적을 잃어버리면 인생은 결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보고 그것에 집중적인 관심을 두어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선적인 것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되 무엇보다 영혼구원에 힘쓰십시오. 너무 계산하며 살지 마십시오.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길 때 그 사람이 조만간 인생의 적시타를 날리면서 결국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마리아가 처음 처녀 잉태의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이 일로 파혼당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내게 일어난 신비한 일을 이해해줄까? 창녀 취급을 당하고 돌에 맞지는 않을까?” 그러나 마리아는 고백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그때 그녀는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에 먼저 관심을 두어 결국 메시야의 어머니가 되는 가장 복된 존재가 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을 드리면 후회 없는 삶이 펼쳐집니다. 

사람이 죽을 때는 자신이 못다 이룬 업적을 후회하기보다는 대개 바르게 살지 못한 것과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죽습니다. 그런 후회가 없도록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적시에 헌신의 북을 치십시오. 어느 때가 적시입니까? 바로 지금이 적시입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새롭게 다짐하고 실천함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찬란한 인생이 되고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 기쁘게 설 수 있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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