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온가족 한마음 (엡 4:1-6)

첨부 1


온가족 한마음

에베소서 4 : 1 - 6

: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오늘, ‘2012 한가족예배 한마음놀이’로 야외에서 모입니다.

저는 제가 매우 조심스럽고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예배당에서 드리지 않고 야외에서 모인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물론 제가 어릴 때에는 야외예배가 있었습니다. 매년, 주일날, 어린이로부터 장년까지 전 교인이 산이나 들로 나가서 ‘참 아름다워’를 찬양하며 드리던 야외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인이 많아지면서 많은 성도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야외예배가 점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예배의 장소가 예배당으로 점점 축소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야외예배가 조심스러운 것은 성도들이 만의 하나라도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예배를 놀이로 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놀이로 예배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같은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은 현대교회의 위기감 때문입니다. 현대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의 하나 됨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교파와 지역을 뛰어넘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하나인 교회가 교파와 지역의 벽에 가로 막혔습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매우 안타깝게 여겨야 할 것 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하나의 교회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시간에 따라서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부 예배 성도와 2부 예배, 3부 예배, 4부 예배 성도 사이에 교제가 없습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과 장년의 예배가 분리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시간에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앉는 장소에 따라서 서로 교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군중으로써의 교회는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교회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경각심조차 없이 시간을 흐르면서 ‘하나의 교회’라는 말이 오히려 어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를 세상에서 허약하게 하나의 이유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하나 됨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매우 위험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나 부득이하여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나 모두 ‘하나의 교회’라는 경각심을 가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I. 하나의 교회 

오늘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인 이유를 그 근원과 방법과 결과로써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근원적 이유에서 하나입니다.

1. 같은 하나님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1)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온 세상을 만드시고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2) 같은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한 분이십니다. 구원의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3) 같은 성령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한 분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오직 한 분 창조주이시자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하나님이십니다. 

쿠라는 중국의 YMCA의 책임자가 있었습니다. 쿠는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중국 대표자들의 자문위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무려 8백 마일이나 되는 일본군의 점령지를 걸어서 탈출했습니다. 그는 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세상에는 인종과 피부색과 언어, 풍습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세계 방방곡곡에서 표면에 나타나지 않지만 서로의 관점의 차이 때문에 갈등과 충돌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만물이 하나로 연합할 수 있다.”

하나 됨을 점검하는 첫걸음은 어떤 분을 믿고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한 분 하나님, 한 분 예수님, 한 분 성령님이시나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한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같은 형제자매들입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은 그 근원이 하나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2. 같은 방법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근원에서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방법도 하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 같은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깨닫게 하고 믿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신앙의 내용이자 신앙의 방법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하나입니다.

2) 같은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3) 같은 세례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같은 믿음의 내용이 하나 됨의 내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고백하는 세례는 하나 됨의 외적인 요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으로 그리스도로, 성령님을 도우시는 분으로 고백하는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의 교회를 이룹니다. 세례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례를 통하여 진실하게 고백하는 그 믿음이 바로 구원의 조건입니다. 어디에서 어떤 형식으로 세례를 받았더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교회입니다.  

하나의 근원, 하나의 방법으로 하나의 결과가 생겼습니다.


3. 같은 결론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1) 같은 몸이 되었습니다.

: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비유입니다. 몸에 여러 지체가 있어도 한 머리에 붙어있는 지체는 한 몸인 것처럼 교회에 여러 사람이 있어도 한 몸입니다. 교파가 달라도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들은 에수님의 몸입니다. 예배의 형식이 조금 달라도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교회입니다.

2) 같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같은 목적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끝임 없이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필요만을 생각함으로 교회는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같은 배를 탄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3) 같은 소망을 가졌습니다.

: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교회는 멀리 저 천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를 세상 속에 이루어가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한 믿음, 한 세례라는 같은 방법으로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같은 몸, 같은 부르심, 같은 소망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감히 어찌 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의 교회라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의 영생교회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한 어버이에게서 태어나면 당연히 한 가족입니다. 하지만 당연한 그것이 그렇게 쉽게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 됨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II. 지키는 행동 

하나임에도 그 하나 됨을 지키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여야 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말은 ‘힘쓰라’는 말입니다. ‘힘쓰다[spoudavzw/스푸다조]’는 ‘서두르다’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서둘러서 빨리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노력하다, 애쓰다, 부지런히 하다’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노력하다’ 보다 강한 표현으로서 어떤 목적을 향한 진지하고 열심 있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1. 힘써야 합니다.

뒤로 미루지 말고 서둘러 힘써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런 일은 힘써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경영자는 경영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노동자는 일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실천하며 전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힘써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천국 시민으로써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힘써야 할 것에 힘쓴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힘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가 두 번째 주목하여야 할 말은 지키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지키라[threvw/테레오]’는 눈을 떼지 않고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과는 다릅니다. 군인이 요새나 진지를 지키는 것과도 다릅니다.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돌보며 보호하는 것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눈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2. 지키는 것을 힘써야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쓰이고 지켜보게 되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중요합니다. 더욱이 다른 것에 비하여 먼저 서둘러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면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힘써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힘써 지켜야 할 그것이 무엇입니까?

: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가 세 번째로 관심을 가져야 할 말은 ‘하나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 되게 하신 것[eJnovth"/헤노테스]’은 만장일치입니다. 연합을 이루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키는 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가 되었으니 그것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3.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것을 힘써야 합니다.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로 ‘우리가 힘써서 하나가 되게 하자’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이 하나 되기를 힘쓰고, 사회가 하나 되기를 힘쓰고, 민족이 하나 되기를 힘쓰자는 것입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성령님께서 하나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하나 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끼리 하나가 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 되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는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하나가 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힘써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가 되었다는 것에 눈을 떼지 않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여야만 합니까?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 됨을 깨뜨리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은 이솝우화가 있습니다.

얼룩 소, 검은 소, 그리고 붉은 소는 언제나 함께 다녔습니다. 사자는 그 소들을 잡아먹고 싶어서 매일같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 마리의 소는 같이 다니면서 사자가 덤벼들면 셋이 함께 대항했기 때문에 잡아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얼룩소가 풀밭에 따로 떨어져서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사자는 그 얼룩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친근한 목소리로 “붉은 소가 세 마리의 소중에서 자기가 가장 힘이 세다고 뽐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얼룩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사자가 붉은 소와 검은 소를 찾아가서 “얼룩소가 자기가 제일 기운이 세다고 자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두 마리의 소는 얼룩소가 건방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 특히 붉은 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얼룩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얼룩소도 붉은 소가 자기가 제일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화가 나서 있는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검은 소가 그들이 싸우지 말라고 말렸지만 두 마리의 소는 뿔이 빠지도록 싸웠습니다. 그 날부터 세 마리의 소는 화가 나서 같이 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자는 이때다 하면서 그 소들을 차례로 찾아가서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을 깨뜨리려는 세상의 도전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써 지켜야 합니다. 힘써 지키지 않으면 하나 됨을 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얻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은혜로 시작한 것이 공로를 주장하는 것으로 흐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믿음에서 떨어져 믿음 없는 사람처럼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을 떼지 않고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하나가 되었습니다. 삶의 모양이 다르고 신앙의 형식이 달라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하나입니다. 이것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힘써 지켜야 하는 것을 힘써 지키지 않으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하나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여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분열과 다툼으로 몰아가려는 훼방이 있습니다. 

에릭 프롬은 말하기를 ‘인간 심리와 행동의 모든 의식적 무의식적 원천에는 분리를 극복하려는, 합일(合一)에 이르려고 하는 동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갈라진 둘이서 하나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합니다. 모임을 만들고 단체를 만들고 조직을 만듭니다. 그런데 인간의 깊은 곳에는 또 하나, 하나 됨을 깨뜨리려는 힘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나 되기를 원하면서도 시기하고 분쟁하고 다투고 전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이중성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느끼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또는 깨뜨리려는 악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알고 힘써 지켜야 합니다. 우선 우리가 이미 하나라는 것을 기억함으로써 하나 됨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 됨에 관심을 가지고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온유와 겸손과 오래 참음과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어떤 거지가 큰 부자인 랍비의 집 대문 기둥에 등을 비벼 긁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목격한 부자 랍비는 그를 불쌍히 여겨 데려다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이튿날, 이 이야기를 들은 거지 부부가 어제의 그 거지처럼 부자 랍비의 집 대문 기둥에 등을 비비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보게 된 랍비는 그들을 잡아들여서 실컷 매를 때리고 쫓아내었습니다. 거지 부부가 쫓겨나면서 불공평하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이에 랍비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어제의 거지는 혼자이니 기둥에 비벼서 긁을 수밖에 없었지만 너희는 둘이니 서로 긁어줄 수 있지 않느냐?”

거지부부의 죄는 서로 돕지 않은 죄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매우 조심스럽고 위험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영생교회 모든 성도들이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려는 것입니다. 부득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분들도 이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이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비록 편리와 효과를 위하여 몇 부 예배를 드리고, 각부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교회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의 교회를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하나 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킴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하나 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