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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을 살다 (히 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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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다 (히 3:12-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여러분은 조심하십시오. ‘오늘’이라고 하는 그날그날,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세상 풍경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주초에는 비가 내려 을씨년스럽더니, 언제 그랬냐 싶게 화창하고 청명한 나날입니다. 날이 화창해지니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너그럽고 부드러워졌습니다. 돋아나는 연녹색 잎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계절만큼 정직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여전히 심란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家의 소위 어른들이 보여주는 행태를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거시기’하다고 할까요? 이전투구泥田鬪狗라고 할까요? 애들 보기에도 민망하고 부끄럽습니다. “재산이 적어도 주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재산이 많아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 서로 사랑하며 채소를 먹고 사는 것이, 서로 미워하며 기름진 쇠고기를 먹고 사는 것보다 낫다”(잠15:16-17)는 잠언의 말씀이 절로 떠오릅니다.

권력 실세라 불리며 호가호위하던 분들의 이면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청탁, 독직, 금품수수…. 하도 자주 본 장면이라 사람들은 별로 놀라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하긴, 사람들의 이런 무감각 혹은 망각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어찌 그런 무도하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돈을 받고, 지위를 이용해 이권 청탁을 하고, 또 그런 사실을 부인하고…. 참 뻔뻔합니다. 

며칠 전, 화창한 오후 시간에 잠시 짬을 내 효창공원을 걸었습니다.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사랑스러웠습니다.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려오고, 새들은 바닥에서 깡총거리고, 올챙이들은 생명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활기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귀에 단가인 <사철가>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는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한들 쓸데있나

어느 덧 백발에 이르고 보니 봄조차 쓸쓸하더라는 속내를 주저하지 않고 드러내는 노래입니다. 왜 하필 이런 노래가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런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이 순환하듯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또한 순환하는 듯합니다.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은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무리수를 둬가며 안간힘을 다합니다. 하루하루 밥벌이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보며 씁쓸해 합니다. ‘세상사 쓸쓸하더라’. 왜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쓸쓸하더라도 살아야 하고, 더러워도 살아야 합니다. 답이 없어 보여도 살아야 합니다. 그게 인생이니까요. 

• 흔들리는 마음

물론 잘못된 세상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일에 대해 무관심해도 안 되고, 냉소적이어도 안 됩니다. 불의에 대한 침묵이야말로 불의가 자라는 온상입니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한탄만 하면 안 됩니다. 바로 오늘,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투덜거리는 것보다는 그런 일을 시작할 용기를 내는 것이 낫습니다. 시편은 세상에 넌더리가 난 사람들에게 권고합니다.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가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시37:1)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의 시간관념과 우리 시간관념이 다르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악한 자들이 풀처럼 시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시인은 그렇기에 노여움과 격분과 불평을 삼가라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악으로 잡아당긴다는 것입니다. 옳은 말인 줄은 알겠는데, 마음을 그렇게 다스리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자꾸만 그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음 씀도 결국 버릇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한 번 난 길을 통해 흐르듯이 마음도 그러합니다. 화를 잘 내는 것도 버릇이고, 낙심하는 것도 버릇입니다. 그런가 하면 화를 잘 참는 것도 버릇이고, 마음을 희망 쪽으로 데려가는 것도 버릇입니다.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를 던지면 물결이 가장자리에까지 미치듯이, 우리 마음도 그렇게 자주 일렁입니다. 좀 대범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제3막에서 만토바 백작이 부르는 아리아를 읊조리곤 했습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하지만 이게 어디 여자만의 문제입니까? 중심에 심지가 든든히 박히지 않은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 이럴 겁니다. 변덕스러운 세상에 지칠 때마다 저를 지켜주는 시편 구절이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하늘에 가득 차 있고, 주님의 미쁘심은 궁창에 사무쳐 있습니다. 주님의 의로우심은 우람한 산줄기와 같고, 주님의 공평하심은 깊고 깊은 심연과도 같습니다.”(시36:5-6) 

시인은 복잡다단한 현실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후련해지고, 든든해집니다. 믿음이란 삶을 조금 더 높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과 자세히 바라보는 것의 통일입니다. 신경림 선생의 시 <莊子를 빌려>는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가 발 아래 구부리고 엎드린 작고 큰 산들, 언덕과 골짜기에 바싹 달라붙은 마을들, 그리고 해안으로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내려다보니 온통 세상이 다 보이는 것 같고, 세상살이 속속들이 다 알 것도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속초에 내려가 하룻밤 묵으면서 중앙시장 바닥에서 다 늙은 함경도 아주머니들과 고향노래 안주해서 소주도 마시고 피난민들의 신세타령도 듣고 하다 보니 세상은 아무래도 산 위에서 보는 것과 같지만은 않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멀리서만 보아도 문제고, 너무 가까이서만 보아도 문제입니다. 

• 서로 권면

잘 산다는 것은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겁니다. 인생은 오늘의 점철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뿐입니다.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오늘은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미 지나가 버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기억에 사로잡힌 채 살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내다보며 미리 불안해합니다. 우리는 행복은 늘 저편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며 오늘을 헛되이 흘려보냅니다. 

구상 선생의 시 <꽃자리>를 아시지요? “앉은 자리가/꽃자리니라//네가 시방/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그 자리가//바로/꽃자리니라.” 사실 삶이 너무 힘들면 이런 이야기가 다 한가로운 사람의 잡소리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 자리가 하나님의 은총이 유입되는 자리임을 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은 불안과 초조감에 사로잡혀 살다가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그날그날,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13)

누구나 불안합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불안의 해독제로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가정 공동체건 신앙 공동체건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신앙 공동체는 우리가 세상 물결에 휩쓸려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버팀목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 믿음대로 살기 위해 애쓰다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 속에는 든든한 줄기가 형성됩니다. 내가 넘어져도 다가와 일으켜 세워줄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든든한 일이 없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릴 때도 선뜻 다가와 짐을 대신 져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죄의 유혹에 흔들릴 때면 다가와 부드럽게 혹은 준엄하게 꾸짖어 바른 길 가도록 해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에는 다른 이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와 조금 다른 동네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원불교와 불교 그리고 가톨릭 여성 수도자들의 모임인 삼소회 멤버들이 각 종교의 성지를 방문하면서 겪은 일화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 순례단은 인도 바라나시의 티베트 불교 대학에 가서 티베트의 불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만났습니다. 

먼저 밖으로 나와 보니 많은 인파가 달라이 라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달라이 라마는 곧장 차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노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말을 건넸고, 그 노인은 달라이 라마에게 자기의 사정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그는 노인을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노인은 오열했습니다. 

가슴의 한이 다 녹아내린 듯 울음은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던 달라이 라마는 그를 다시 한 번 안아주고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노인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사랑은 그 자리에 있던 수백 명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폈던 것입니다.(조연현,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 55-57쪽)

우리는 지금 사람들의 가슴에 봄과 같은 햇살로 다가가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겨울의 삭풍처럼 다가가는 사람들입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선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사람입니까? 악을 향해 나아가도록 유인하는 사람입니까? 성도는 잠든 생명을 깨우는 ‘봄 햇살’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택선고집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본문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14)

참 사람이 되는 비결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예수를 처음 만나 첫 사랑에 빠졌던 그 마음을 꼭 붙드는 것입니다. 그분을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고백했던 대로, 그 길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하고,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돼?’ 싶어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자연스런 일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버텨내야 우리 믿음이 깊어집니다. 울면서라도 씨를 뿌리라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옛 사람들은 정성스런 삶의 비결을 택선고집擇善固執이라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아름다운 삶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흔들림 없이 그것을 꼭 붙들라는 말입니다. 퇴계 이황 선생은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했습니다. ‘거경궁리居敬窮理하고 주일무적主一無適하라’. 마음을 늘 깨어 있는 상태에 두고, 이리저리 옮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고는 내면에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약삭빠름과 믿음은 양립불가능한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손익계산을 앞세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 이들은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고, 힘겹더라도 그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굳게 붙들고 사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 인디언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인생에 대해 들려주는 말을 담은 책 말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또 다른 할아버지’, 사람들이 하나님이라 부르는 분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할아버지’는 어디에나 계시단다. 네게 도전해 오는 폭풍 속에도 계시고, 그것에 용감하게 맞서도록 해 주는 힘 속에도 계시지. 그분은 절망에 대항하는 희망의 속삭임이자, 매일 아침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 네 얼굴을 비춰주는 햇빛이기도 하단다. 그분은 네가 승리할 때 함께 계시고, 네가 패배로 괴로워할 때 너를 품어 주시지. 또한 네가 이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이 세상으로 올 때 거기 함께 계셨고, 네가 다음 여행을 위해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거기 함께 계실 것이니라.”(조셉 M. 마셜, <<그래도 계속 가라>>, 192-3쪽)

그 할아버지,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삶의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힘을 불어넣고 계십니다. 산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우리는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가슴에 평화와 생명의 씨를 심고, 이 척박한 땅을 정의가 넘치는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땀 흘릴 때 생명의 바람, 평화의 물결이 우리를 하나로 엮어줄 것입니다. 이 소망으로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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