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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을 때에도 (행 27: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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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을 때에도 (행 27:20-37)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는 그의 글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 당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에 저주가 있다면 세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요, 두번째는 성경을 읽어도 요절을 외워도 성경은 많이 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요. 세번째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라도 이런 세가지 저주에 떨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사도가 오직 복음을 위하여 사는 인생길에서 만난 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복음 때문에 구속당하여 재판을 받고 있던 바울은 로마시민권자임을 이유로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항고하였습니다. 그것은 로마에 가고자함이었고 로마선교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렇게 로마로 가던 항로에서 유라굴라는 미친바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계속된 풍랑속에서 방향을 알 수 있는 해와 달과 별도 보이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는 배를 움직이고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완전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흘러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적인 말로 하자면 완전히 패닉(panic)상태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을 때"에도

1. 하나님이 믿어지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을 아무리 믿어보려 해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위험한 심령이고 버림받은 심령일 것입니다. 
그런데 25절에 보면 바울은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이 믿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저와 여러분이 이 세대를 향해서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여러분이여! 풍랑과 폭풍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안심하라!" 풍랑을 만난 이 민족과 개인에게 신앙의 메세지를 던질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이런 믿음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 생활, 인생 항해에 폭풍우를 만났을 때, 그리고 내 삶이 절망의 벼랑에 서게 될 때,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하면서 전적인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하고 의지하고 있는지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야 합니다.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와야 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야 합니다. 이것이 안 들리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저주 아래 떨어져 있다고 봐도 틀림없습니다. 
시편 53편에도 보면 어리석은 그 마음에 없다고 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아는 지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워싱턴포스트지가 재미있는 실험을 한 번 했습니다. 워싱턴D.C.의 유명 공원 바로 옆에 지하철역이 있는데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을 고용하여 지하철역 앞에서 연주하도록 했습니다. 그 역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 천 명, 수 만명이었는데요, 그 앞에서 조슈아 벨은 청바지에 야구모자를 쓰고 연주했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악기는 세계 최고의 악기(171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였습니다. 이 악기의 가격은 무려 3억 엔에 이르지요. 

한 시간에 3백만 엔을 받는 연주자가, 그 엄청난 악기로, 길에서 연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보통 바이올린 케이스를 앞에 열어놓고 연주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연주를 듣고, 돈을 넣어주지요. 하지만 그가 명곡을 차례로 연주했음에도 멈춰 서서 귀담아 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들 바쁘게 지하철을 타거나, 내릴 뿐이었습니다. 그 명연주를 1분 동안 서서 들은 사람은, 단 7명에 불과했다고 하는군요. 게다가 바이올린 케이스에 모인 돈은, 32$ 17센트뿐이었습니다. 3백만 엔을 개런티로 받는 인물이, 번 돈이 겨우 그 정도라니, 실험자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지가 실행한 이 실험은, 아무리 바로 곁에서 고상한 연주나 중요한 뉴스가 들려와도 바쁘게 살다보면, 전혀 듣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조슈아 벨이 연주하던 지하철 역 앞 광장 근처에는, 복권판매소가 있었는데요, 사람들은 복권을 사기 위해, 그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하는군요. 우리도 삶 속에서 중요한 하나님의 메시지와 음성을 미처 듣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2~24절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유라굴라 풍랑으로 인한 위기와 모든 사람이 느끼는 절망감 속에서 그들의 처절한 탄식의 와중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듣었습니다. 바울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리고 이 바다와 파도를 다스리시는 분에게 자기의 시선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 풍랑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습니다.

3.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감사할줄 모르는 자의 심령이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고 언제나 원망과 불평 뿐이라면 그것은 저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불평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할 것들이 계속 생깁니다. 

34~37절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인이러라"했습니다.

바울이 처한 상황이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는 상황 속에서도, 군사들의 현명하지 못한 판단으로 거룻배까지 끊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열 나흘 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하여 주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바울은 떡을 가져다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축사했다고 했습니다. 축사했다는 말은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있습니다. 현실을 변화시키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일이 잘 안되고 꼬이십니까? 이 때가 바로 감사할 때입니다. 찬송할 때입니다. 기뻐할 때입니다. 문제를  푸는 길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감사하며 웃으며 사는 사람에게는 신기하게도 축복의 길이 열립니다. 

신앙인의 영적 성숙도를 평가하는 가장 올바른 기준의 하나는 '감사' 입니다. 크리스챤은 건강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질병 가운데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장사가 잘되고 수입이 좋을 때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가 안되도 감사의 제목을 찾아내고, 성공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중에도, 역경 중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챤입니다. 감사는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입니다. 

해와 달고 별이 보이지 않는 인생일 떄에도, 구원의 여망이 전혀 없어졌을 때에도 하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감사할 수 있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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