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무리를 잘하라! (창 19:30-38)

첨부 1


마무리를 잘하라! (창 19:30-38) 
 
 
❚마무리의 중요성

어느 여자 집사님이 저한테 “목사님, 우리 남편 참 이상해요. 집에서 세네 시간 프로야구 경기 다 보고 나서 밤에 또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한 시간 동안 봐요.”하고 이르시더군요. 그런데 제가 그 말을 들으며 좀 찔리더군요. 저도 그러거든요. 물론 그렇게 야구를 오랫동안 볼 시간은 없지만 가끔은 쉬는 날 하루 종일 경기를 보고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기분 좋아서 밤에 또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봅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스포츠는 인생이다!” 예, 스포츠 경기를 보다보면 마치 인생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잘 나갈 때도 있고 승리에 도취할 때도 있는가하면, 너무 꼬이고 참패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때는 형편없이 지고 있다가도 기적적으로 역전을 시킬 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우리 인생을 보는 것 같아 이런 말이 생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포츠를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든 스포츠 경기에 있어서 마무리가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체조경기를 보면 멋지게 연기를 한 다음 마지막 착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축구도 89분 내내 이기고 있다가 마지막 1분을 남기고 역전을 당하기도 합니다. 특히 야구경기에서 마무리 투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다 이겨놓은 경기를 9회 말에 마무리 투수가 나와 마무리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블론 세이브’(Blown Save)라고 부르는데 마무리 투수가 블론 세이브를 하면 선발투수의 승리도 날아가고 자신과 팀도 패배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마무리 하나 제대로 하냐 못하냐에 따라 경기 전체가 승리한 게임이 될 수도, 패배한 게임이 될 수도 있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마무리 하나 잘 하냐 못 하냐에 따라 인생 전체가 성공한 인생이 될 수도, 실패한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세 주간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롯이라는 인물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그저 아브라함의 조카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정도로만 알고 있던 롯이라는 인물을 통해 <죄악된 세상 속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어떻게 하면 실패하는지 깊이 있게 통찰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롯의 인생에 있어 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롯이 인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을 성공한 인생이 될 수도, 실패한 인생이 될 수도 있겠지요.

❚롯의 마무리 실패

자,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롯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인생의 마무리를 잘 못해서 철저하게 실패합니다. 롯뿐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와 자손들이 다 실패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린이주일인데 롯과 그의 가족들은 세 가지 면에서 실패한 가정이 됩니다.

첫째, 롯의 가족 중에서 ‘사위’들이 실패했습니다. 지난번 설교에도 말씀드렸지만 롯에게 두 사위,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딸과 약혼한 예비 사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창세기 19장 14절을 보세요. 롯이 천사들의 경고를 듣고 두 예비 사위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는데 두 사위들은 “장인어른, 그거 농담이지요?” 농담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장인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농담으로 여깁니다. 나중에 이삭의 두 쌍둥이 아들 중 에서도 이런 실수를 범합니다. 창세기 25장 34절에 보면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는 말이 나옵니다. 에서가 하나님의 약속인 장자의 명분을 가벼이 여겨 겨우 팥죽 한 그릇에 그 명분을 팔아넘긴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거나 하나님의 약속이나 경고를 우습게 여기면 반드시 그 인생은 실패하고 맙니다.

둘째, 롯의 가족 중에서 ‘아내’가 실패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지요.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 그곳을 빠져나가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맙니다. 지금도 사해 바닷가에 가면 “소돔 고모라가 멸망해 사해 바다 밑에 잠겨있다, 커다란 바위기둥이 하나 서있는데 이것이 롯의 아내가 변한 소금기둥이다”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사해에는 암염(巖鹽)이라고 부르는 바위처럼 굳은 소금 기둥들이 많은데 롯의 아내가 바로 뒤를 돌아보다가 이런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롯의 아내가 왜 뒤를 돌아보았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답을 알고 계신데요. 왜 돌아봤을까요? 두고 온 소돔과 고모라가 어떻게 멸망당하는가 보고 싶기도 했겠지만 두고 온 집, 두고 온 재산, 이런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에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세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죄와 단절하려면 깨끗이 씻어야지요. 얼마 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폭 두목이 자기는 깨끗하게 손 씻었다고 하더니 결국 뒤에서 몰래 범죄행위를 계속하다가 붙잡혔습니다. 죄에 대한 미련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의 발목을 잡아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것은 결코 죄에 대한 미련을 갖지 말라는 뜻이며 또한 하나님을 따르느라 포기한 것들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처럼 우리가 세사의 귀한 것, 좋은 것들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면 주님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은혜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롯’ 자신과 ‘두 딸’이 실패합니다. ①우선 롯의 아내뿐 아니라 롯 자신도 상당히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한밤중에 천사가 소돔이 멸망한다고 알려주었는데 15절에 보면 동이 트도록 롯이 지체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천사가 빨리 떠나라고 재촉을 하는데도 롯은 계속해서 지체합니다. 결국 천사가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 성 밖으로 인도해내게 됩니다. 롯이 왜 지체했을까요? 왜 소돔이 유황불로 멸망한다는 것을 알고서도 신속히 떠나지 않고 머뭇머뭇한 것일까요? 아내와 마차가지로 미련, 롯 또한 재산이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기가 아쉬웠던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소돔에 이민 와 멸시천대 받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모은 재산인데” 하는 미련이 남은 것입니다.

②뿐만 아닙니다. 그 와중에도 천사들은 분명히 롯에게 다른 데 가지 말고 산으로 도망해 목숨을 건지라고 말씀하는데도 롯은 산으로 도망하다가 재앙을 만나 죽을까 두렵다며 그 명령을 거부하고 소알이라는 성읍으로 도망합니다. 왜 롯이 굳이 천사의 명령을 거부하고 소알로 도망했을까? 저는 그 답을 창세기 13장 10절에서 발견했습니다. 

거기 보면 롯이 아브라함과 분가할 때 아브라함이 “너부터 먼저 갈 곳을 선택해라” 했을 때 눈을 들어 보니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고 살기 좋아보였다고 했습니다. 아마 롯은 그 멸망의 순간에도 자기가 옛날에 본 광경을 기억하며 “그래도 소알은 물도 넉넉하고 살기 좋으니 거기로 도망해야지” 하고 잔머리를 쓴 모양입니다. 그 긴급한 순간에도 먹고 살 일 걱정하고 편안히 살 곳을 찾느라 하나님의 명령도 순종하지 못하는 롯의 모습은 여전히 그의 삶이 육신적인 안목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정의 달, 어린이주일의 교훈

③이러한 롯의 세상적인 기준, 육신적인 안목은 부전여전(父傳女傳), 두 딸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본문 30절부터 보면 롯과 두 딸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소돔 인근의 소알이라는 땅으로 도망합니다. 그런데 롯은 이 소알에서조차 거주하기를 두려워해서 산으로 도망해 동굴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굴에 살던 롯의 두 딸이 이런 의논을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늙었고 우리는 세상의 도리를 따라 결혼을 할 수 없으니 어떻게 후손을 남길 수 있겠냐”고 말입니다. 

여기서 ‘온 세상의 도리’란 말은 당시 결혼은 안 했어도 약혼을 하면 이민 결혼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풍습을 뜻합니다. 따라서 롯의 두 딸은 아직 결혼을 안 한 처녀의 몸이지만 약혼을 한 예비신랑 두 사람이 다 롯의 경고를 무시하고 소돔을 안 떠나다가 죽었으니 청상과부가 된 셈입니다. 그러니 이런 풍습에 따라 두 딸도 다시 결혼을 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는 늙어서 다시 결혼해 자식을 낳을 수도 없으니 이제 우리 집안은 대(代)가 끊어지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대가 끊어지면 큰일 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문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옛날에 씨받이까지 등장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두 딸이 고심 끝에 내놓은 해결방법이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비몽사몽일 때 아버지와 동침하여 대를 이어가자는 것입니다. 근친상간 아닙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자손을 얻는 것도 중요하고 대를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후손을 남겨야 합니까? 아니지요? 그 결과 큰 딸이 임신하여 낳은 아들은 모압의 조상이 되고, 작은 딸이 낳은 아들은 암몬의 조상이 됩니다. 모압이 누구고 암몬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주변 민족으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앙숙으로 살다가 끝내 멸망당한 이방인들 아닙니까? 그토록 애써서 낳은 자식들이, 그렇게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대를 이은 자손들이 축복의 자손이 아니라 저주 받은 이방 민족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아브라함의 방법과 분명히 대조됩니다. 29절을 보세요.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하나님이 누구를 생각해서 롯을 구해주셨다고요?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내보내셨답니다. 물론 지난 시간 말씀 나눈 것처럼 롯이 천사들을 잘 대접해서 복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오히려 그의 삼촌인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롯을 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자식처럼 키운 조카 롯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린 아브라함, 바로 그 한 사람 때문에 조카 집안이 다 귀원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토록 믿음이 좋았지만 그 또한 100세가 되도록 자식을 못 얻어 날마다 근심하고 기도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떤 방식으로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습니까? 

하나님께 약속을 받아 낳지 않습니까? 롯과 두 딸은 수단방법 안 가리고 부끄러운 방법을 써서라도 대를 이으려 하는데 그 결과 그 자손이 저주 받은 계열이 되고, 믿음으로 자식을 얻은 아브라함의 자손은 축복의 계열, 약속의 자손이 되지 않습니까? 같은 집안이고 같은 핏줄인데 왜 이렇게 아브라함과 롯의 자손들은 그 운명이 달라집니까? 방법 때문입니다. 끝까지 믿음의 방법을 따르는 아브라함은 그 자손이 복을 받고 자신도 복의 근원이 됩니다. 끝까지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안목을 따른 롯은 그 자손이 저주의 근원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5월은 가정의 달이고, 또 오늘은 5월 첫째 주일 어린이주일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인데 제가 19금 설교를 했네요. 그런데 이런 부끄러운 내용까지 성경이 적나라하게 기록해가며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경고와 약속입니다. 가정의 달에, 그리고 어린이주일에 성경은 롯의 모습을 통해, 또 그와 정반대인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부모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가족 전체와 그 자녀들과 자손 대대손손 모두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기도를 하느냐에 따라 나뿐 아니라 온 가족이, 자손 모두가, 또 내 주변 사람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고 약속하신 것이며, 거꾸로 가족과 자녀손과 주변 사람들에게 저주를 미치게 하는 ‘저주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 강력한 약속과 경고를 여러분의 뼈에 사무치도록 잘 새기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 부모님들은 롯의 사위들처럼 이 말씀 허투루 듣지 말고 농담처럼 여기지 말고 새기고 또 새기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죄악된 세상 속에서 실패한 그리스도인으로 산 롯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 자녀 대대손손 천대에 걸쳐 복을 받는 믿음의 명문 가문을 이루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