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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 달] 복된 가정 (시 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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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가정 (시 128:1-6)
 

여러분 예수 믿으세요?
왜 믿으세요? 예수를 믿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세요?
누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금세에 복을 받고 금세와 내세에 구원을 얻기 위해서라고요. 한 마디로 정리하면 ‘구원과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구원도 복이니 더 간단히 정리하면 복 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복이란 우리들의 수고와 노력과 능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함입니다. 우리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감당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라는 시편 127편의 말씀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 없이 살면 우리는 복 없는 사람이 되어 정말 지질이 복 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복 받는 길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하면 주시고 두드리면 열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막내 손녀 국희가 16개월 반입니다. 무엇을 달라고 할 때마다 두 손을 내밉니다. 지 엄마 아빠가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무엇을 달라고 두 손을 내 미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 국희가 저에게 무엇을 달라고 두 손을 내밀면 꼼짝을 못합니다. 그것이 국희에게 위험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면 무조건 줍니다.

누구나 저에게 두 손을 내밀면 줄까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 국희가 두 손을 내밀면 줄까요? 반드시 줄까요? 그리고 주면서 행복해 할까요? 당연합니다. 국희는 내 피붙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 두 손을 내밀면 하나님은 주실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피붙이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기도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아주 중요하고도 유효한 도구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기도의 간증들이 있습니다. 아주 정확한 기도의 간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들이 아시리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파’는 아닙니다.

저는 요즘 매일 페이스 북에 글 하나씩을 올리는 일을 거의 빠지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매일 글을 올리다보니 제법 매일 제 글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생겨나서 나름 책임감을 느끼고 가능한한 새벽이나 아침에 글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익산에 집회를 갔다가 새벽기도회 가기 전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글을 하나 올리고 교회를 갔었습니다. 어떤 분이 댓글을 올렸습니다. 저에게 쓴 소리를 하시겠다며 ‘도대체 기도는 언제 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가려고 새벽 3시 반에 알람을 해놓고 깨어서 글을 쓴 것이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 분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보통의 목사들만큼 기도하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새벽기도는 몰라도(사실은 새벽기도도 기도 보다는 새벽에 성경 읽고 설교하는 재미로 열심히 다녔습니다.) 철야기도는 목회를 하면서도 거의 하지 않았고, 산 기도는 남에게 억지로 끌려 간 적은 있어도 제 발로 가서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누구 못지 않게 많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물론 기도도 꼭 필요할 때 아주 임팩트 있게 하여 거의 100% 응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산 기도와 철야기도와 새벽기도는 좀. 아니 많이 약하지만 거의 제 의식과 무의식의 주파수가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어서 하루 종일 하나님과 중얼거리며 삽니다. 저는 그것이 제 식의 기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 일도 중얼거리고 작은 세세한 일도 하나님께 그냥 중얼거립니다. 그게 제 나름의 기도가 되어 그 기도의 응답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보고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그렇게 정확한 말은 아닙니다. 그냥 제 변명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도 외에 하나님께 복을 받는 또 다른 방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속에 나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길을 걸으며 그 삶이 기도가 되어 복되고 형통 할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국희가 두 손을 내 밀면 무엇이든지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말씀드린대로 국희가 제 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국희가 지금 16개월 반 밖에 안 된 어린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희가 스무 살이 되어서도 말은 듣지 않고,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그냥 두 손만 내민다면 그래도 받을까요? 네 그래도 받습니다. 왜요? 제 손녀니까요. 그러나 우리 국희가 두 손도 내 밀지만 제 말을 잘 듣고 그래서 제가 더 예뻐하고 기특하게 생각하면 두 손만 내미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좋고 많은 것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등한히 하고 그저 하나님께 두 손만 내미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나이가 조금 들면, 마태복음 7장 7절의 ‘구하라, 두드리라, 찾으라.’는 수준을 넘어 오늘 본문의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함’의 수준으로 발전하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출생지는 부산이고, 제 성장지는 서울입니다. 그러나 누가 고향을 물으면 저는 늘 이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북은 제 고향이라기 보다는 우리 부모님 고향입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이북이지만 이북이 늘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 못지않게 통일을 바라고, 평화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평화 통일을 위하여 매달려 많은 기도를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평화통일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사람도 아닙니다. 제 기도는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탈북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자립하는 것을 도와 주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공장을 세우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통일 된 후 북한 주민들이 우리 남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도 살아남을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계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의 이와 같은 식의 기도를 기도로 인정해 주시고 계신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다 불가능하다고 하였던 탈북자 공장이 성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물론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순종하며 사는 것이 가장 강력한 기도가 되어 하는 일마다 복되고 형통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시는가?

첫째, 손이 수고하는 대로 먹는 복을 받습니다. 쉽게 말해 손대는 일마다 형통하는 복을 받습니다. 그는 하는 일마다 성공할 것입니다. 시편 1편에서도 하나님은 똑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 같아서 시절을 좇아 열매늘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손댄 일이 잘 안되고 어려울 때, 새벽에도 기도하고, 밤에도 기도하고, 산에서도 기도했는데도 손이 수고하는 대로 먹는 복을 받지 못했다면 그건 하나님께서 이제는 두 손을 내미는 것으로만 기도하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도를 행함으로 기도하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여러분들에게 요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셔야만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그 도에 행하는 자는 손이 수고한 대로 먹게 되어 만사가 복되고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여 주고 계십니다.

둘째, 가정의 복을 받습니다. 가정의 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부부 사이의 복이고 둘째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복입니다. 

첫째는 부부사이가 좋아지는 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참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포도원 농부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결실한 포도나무입니다. 주렁주렁 탐스러운 열매가 맺은 포도나무를 보는 농부의 마음이 아내를 보는 남편의 마음이 되고,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이 될 것이라는 기막힌 표현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 교인 여러분들이 이 복을 꼭 받으실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 설교를 보고 읽고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이 복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복 중의 정말 최고의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부모와 자식 사이가 좋아지는 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상에 둘린 어린 자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부모와 자식의 좋은 관계와 사이를 의미합니다. 아이들이 철없는 어린 아이였을 때를 빼놓고 자녀들이 성장하여서도 부모와 자식의 사이가 좋은 집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어서도 자녀들이 부모와 사이가 좋고, 출가하여 결혼을 하여서도 그러고, 부모가 늙고 병들어서도 사이가 좋아 자식들의 극진한 효도를 받는다면 그 이상의 축복이 어디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한 상에 둘러 앉았다는 말씀은 부모와 자식 사이만 좋은 것이 아니라 형제들 사이도 좋다는 뜻을 의미합니다. 

그게 어디 몇 십억, 몇 백억, 몇 천억 재산을 모은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수 백억, 수 천억, 심지어는 수 조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형제들끼리 불화하여 소송하고, 부모와 관계가 서먹서먹하여 따로 도는 삶을 사는 산다면 과연 그 삶이 행복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뿐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사람은 자식이 감람나무 같아지는 복을 더 하여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상에 둘린 자식이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감람나무는 아주 유용하고 쓸모 있는 나무입니다. 감람나무 열매는 약용으로도 쓰이고 식용으로도 쓰이고 그 기름은 순전하여 성전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로 사용되었습니다. 네 상에 둘린 어린 자식들이 감람나무 같겠다는 말씀은 네 자녀들이 그렇게 세상의 복이 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녀들이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손이 수고하는 대로 먹는 복,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되는 복, 부부 사이가 나이 들어 갈 수록 더 좋아져서 서로에 대한 마음이 결실한 포도나무를 보는 것과 같아지는 복, 그리고 자식들이 늙어도 부모와 사이가 좋아, 그리고 형제간에 사이가 좋아 한 상에 둘러 앉는 복, 그리고 그 자녀들이 다 잘 되어서 세상을 먹이고 치료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빛과 같은 자식이 된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오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바로 그 복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 복을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그 복을 받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자가 되어라. 그러면 오늘 내가 이야기한 이 모든 복을 너희에게 약속하고 주마.’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오늘 이 말씀의 증인입니다.

저는 손이 수고하는 대로 먹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손대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셨습니다. 정말 복되고 형통한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저희 부부 사이는 결실한 포도나무로 표현된 바로 그 사이입니다. 저희 자식들과 저희들의 관계는 정말 사이가 좋아 언제나 한 상에 둘리는 그런 사이입니다. 그리고 저희 자녀들은 정말 감람나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거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염려되는 자식이 하나도 없습니다.저는 제 아이들이 기대됩니다. 그 기대 때문에 가끔 조금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당뇨가 있기 때문에 장수에 대하여 자신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를 계산해 봅니다. 내가 몇 살까지 살아야 우리 민희, 세희, 국희 시집가는 것을 볼 수 있을까? 내가 몇 살이 되면 우리 큰 아들은 몇 살이고, 우리 둘째 아들은 몇 살이고, 우리 셋째 아들은 몇 살인데 그 때 쯤이면 우리 큰 아들은 무엇이 되어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것이고, 우리 둘째와 셋째는 또 무엇이 되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복을 주시면 제 자식들이 저보다도 더 복되고 형통한 삶을 살터인데 저는 제 자식들이 그와 같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 누리고 사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 하나는 ‘아 하나님의 은혜로’입니다. 그 찬송의 가사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사는 ‘난 알 수 없도다.’입니다. 저는 지금도 정말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삽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가 다 이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어린 아이처럼 그저 하나님께 두 손을 내미는 것에서 벗어나 정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그 모든 복을 하나도 남김없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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