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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부모를 공경하게 하십시오 (잠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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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공경하게 하십시오 (잠 17:6)


1. 부모와 자식 사이

한자에서어버이를 지칭할 때 父親, 母親이라 합니다. 여기의 親(어버이 친)자는 어버이의 마음이 담긴 뜻글자입니다. 옛날에 오일장이 서지 않았습니까? 장이 서면 아들은 그 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장터에 팔러 갑니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는 여러 농사일들과 집안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생각은 장에 간 아들에게 있습니다. 오늘 갖고 간 물건을 팔았는지, 올해는 넘기지 말고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등등, 마침내 저녁이 되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도 아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저녁을 다 지어놓고 기다리다 못해 동구 밖까지 나가봅니다. 언덕에 올라보니 장터에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들은 보일 듯 말 듯합니다. 마침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멀리 장터를 향해 봅니다. 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 이라 합니다.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보고(見)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여기에 버금가는 한자가 '효도 효'(孝)'입니다. 아들은 갖고 간 것을 늦게까지 다 팔고서 고등어 몇 마리와 어머니께 드릴 몇 가지 물건을 사들고 오는데 동구 밖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머니, 다리 아프실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업어 드리겠습니다. 저의 지게 위에 타십시오.” 지게 위에 어머니를 태워오는 모습이 한자의 효도할 때의 효(孝)자입니다. 즉 노인(老)을 업고 오는 아들(子)의 모습입니다. 옛 한자이지만, 여기에 우리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잘 알고 있는 자식의 효가 무엇인지 잘 설명해줍니다. 

2.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아서 부인들은 좀 섭섭해하실른지 모르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가부장제 사회, 남성중심사회였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하나님 어버이라고 불렀겠지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한 것은 하나님은 부모님과 같은 분, 바꾸어 말씀드리면, 부모님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경외해야할 대상은 하나님과 부모님 뿐입니다. 
레위기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부모님이 경외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부모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은 곧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불경은 하나님께 대한 불경입니다. 

3.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

그러면,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할 것입니까? 잠언 말씀을 통해 알아봅시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이 말씀에 노인-아비-손자- 이렇게 3대가 나옵니다. 
성경에서는 신앙에 있어서는 늘 3대 신앙가정을 언급합니다.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것이 대표적인 3대 신앙입니다. 물론 야곱의 12아들이 신앙의 대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3대까지만 언급합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디모데의 신앙을 언급할 때, 디모데의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그의 어머니 유니게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했습니다. 3대 신앙입니다. 우리교회에서도 3대가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 가정은 대부분 핵가족이어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담스럽지 않다면, 한 달에 한 번쯤은 3대가 함께 모여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왜 좋은지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다.” 
어르신들은 손자 손녀를 보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손자가 어르신들에게는 면류관입니다. 손자를 볼 때마다 그 손자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시편 128: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자식의 자식은 곧 손자 손녀를 말합니다. 어르신들에게 있어서 손자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해드리는 길은 손자 손녀의 자라는 모습을 자주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가정예배를 통하여 우리 손자 손녀의 신앙이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볼 때, 어르신들의 마음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수년 전에 보건복지부와 KT가 함께 낸 신문광고 카피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제목: ‘부모님은 내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바쁜 줄 아십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술 마시며 어울릴 때도 
공부하느라 바쁘다며 집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삼시 세끼 꼬박 챙겨 먹으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바쁘다며 정신없이 끊어버렸습니다. 

첫아이 돌
고속버스로 올라오신 어머니를 바쁜 회사일 
마무리하자고 한 시간 넘게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내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바쁜 줄로 아시고 
이제는 알아서 미리 챙기시는 부모님 
시간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마음이 부족했던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 이에 반해 자기부터 먼저 챙기는 자식의 마음이 이렇게 다릅니다. 아무리 바빠도 부모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 손자들을 부모님께 보여드림으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아비는 자식의 영화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자식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참으로 힘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아비는 자식의 영화”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자식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자기 아버지가 최고라고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자식이 자랑스러워하는 부모, 자식이 존경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계명은 단순히 자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부모의 책임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함으로 잘 되고, 축복받게 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이것을 잠언서에서는 “아비는 자식의 영화”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성공한 지도자였지만, 가정에서 실패한 아버지들의 모습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이삭은 참 좋은 신앙인이었는데, 자식을 편애하여 두 아들 에서와 야곱, 형제간이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무엘은 훌륭한 지도자였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은 두 아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하는 등 백성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다윗은 훌륭한 신앙인이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지만,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칼을 뽑을 정도로 부자간의 관계가 늘 불편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위인들도 자녀교육에 몹시 힘들어했을 정도입니다. 저녀에게 공경받을 수 있는 부모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길이 있습니다. 

5. 부모를 공경하게 하는 길

먼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십시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지만, 또 말씀드립니다. 
신명기 6:6-10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 자신도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을 늘 소지하고 다니며, 집을 드나드는 문설주와 문에 기록하라고 합니다. 성경말씀이 우리 자녀들의 삶의 구석구석에 배이도록 만들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자녀의 신앙교육을 교회에 맡기지 않았습니다. 목사나 교회학교 교사들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가정의 부모에게 맡겼습니다. 물론, 교회에서도 우리의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 부모님이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기가 몹시 힘듭니다. 

시편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우리 집은 하나님이 세워주셔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인생, 하나님께서 세워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가정은 든든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고, 자녀들은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하며 존경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6. 자식은 부모의 영적 성적표

부모로서 자식이 자랑스러울 때가 언제입니까? 자식이 일류대학에 합격했을 때, 좋은 기업에 취직했을 때, 물론 이 때도 자랑스럽겠지요. 이보다 더 자랑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자식이 하나님을 잘 섬길 때입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그 아름다운 자리, 하나님을 위한 봉사의 자리, 헌신의 자리, 희생의 자리에 내 자식이 서 있을 때입니다. 주님 앞에 서 있는 그 자식을 보며, ‘내 인생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가슴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제 중간고사가 끝냈으니, 자녀들의 성적표에 관심이 있으시겠지요? 
학교 성적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녀들의 영적 성적표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지난 몇 달 동안 신앙이 얼마나 자랐을까에 관심을 가져보십시오. 아이들이 기도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매일 성경을 읽는지, 주일예배를 통해 은혜받고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그런데, 이 사실을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영적 성적표입니다. 
자식은 부모가 키운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7. 기도의 줄을 놓지 말라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연날리기와 비슷하다라고요. 연을 날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씁니까? 바람을 타고 올라가도록 이리 달려가고, 저리 달려가고,,, 그래도 올라갈듯하다가 곤두박질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달리면서 연을 띄워봅니다. 연이 하늘로 올라갑니다. 더 높이 날수 있도록 실을 풀어줍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신이 납니다. 기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높이, 높이 올라가면서 실을 자꾸 풀어주다 보면 실이 다 없어집니다. 

그리고 연이 툭 끊어지고 맙니다. 더 이상 부모의 영향력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잘 날 때가 옵니다. 자식과 부모의 연줄이 끊어져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성경을 잘 가르쳐놓았기 때문입니다. 연줄은 끊어져도 기도의 줄은 강고합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멀리 가 있어서 자주 보지 못하여도, 기도의 줄을 놓지 않고 있는 한, 우리 자녀들은 계속 높이 올라갈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계속, 계속, 높이 올라갈 것입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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