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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신 33: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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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신 33:27-29)


어제 대구에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마침 동대구역에서 차로 5분 거리여서 제자인 전도사님이 태우러 나오겠다고 해서 KTX를 타고 갔습니다.  앉았다 싶었는데 벌써 동대구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시에 결혼식을 참석하고 2시 21분에 출발하는 KTX를 기분 좋게 탔습니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쎄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부산으로 가는 하행선을 탔습니다.  시간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느낌이 좀 이상해서 승무원에게 물었습니다.   "이 열차 울산으로 가는 게 맞습니까?"  승무원이 대답하기를 "아닌데요, 이 열차는 밀양을 거쳐 부산으로 갑니다."  그래서 제가 열차 승차권을 보여주면서 분명히 시간도 맞았고, 하행선에도 이 열차뿐이었다고 했더니 하행선 열차가 6분씩 연착이 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결국 세심하지 못한 한 번의 실수로 밀양을 거쳐 부산으로 해서 울산에 왔습니다.  오후 3시에 집에 올 수 있는 것을 한 번의 실수로 오후 4시 20분에 도착을 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저는 이 일로 두 가지 사실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차를 바로 타야만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바로 갈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방송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원하는 목적을 성취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차를 바로 타야하는 것처럼 신앙도 바로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 복입니다.

이 아침에 부드러운 눈으로 옆 사람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눈인사를 좀 하시기 바랍니다.  째려보지 마시고 부드러운 눈으로 옆 사람을 한 번 보십시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도 따뜻한 인사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 시간, 다시 한 번 옆 사람을 보시면서 "잘 오셨습니다"라고 따뜻하게 인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제대로 들으십시다."

우리는 간혹 텔레비전에서 난파당하여 표류하는 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왜 표류합니까?  엔진이 고장나서 그렇습니다.  엔진만 고장 나지 않았다면 이겨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간 다시 성령으로 권능의 채움을  받으십시오.  내 속에 내재해 있는 모든 부정적인 씨앗을 거룩한 성령의 권능으로 좇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태워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생각에서 먼저 승리하셔야 합니다.  생각할 때부터 부정적이면 인생은 실패합니다.  그러나 생각할 때부터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면 인생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생각할 때부터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생각과 믿음에 기름 부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표류하는 난파선이나 떠다니는 뗏목이어서는 안됩니다.  계곡을 치고 올라가는 물고기를 보십시오.  방향 감각만 살아나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자기 삶에 대한 사명화 된 목적 의식만 뚜렷하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 어떤 풍파가 휘몰아쳐도 능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불확실한 상태에서 불완전한 사람들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내 상황이 불완전하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 현실이 불완전하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완벽한 조건을 갖추기를 기대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완벽주의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믿음으로 순종하고 나가는 이 한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신 역사가 내 생애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하나님이 내 삶의 증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면서 인생 길을 걸어가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이 개입을 하신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는 온 몸이 짜릿한 전율을 느낄 정도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생포되는 사건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에 생포되는 사건이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농부가 작은 텃밭에서 보잘 것 없는 씨를 심습니다.  그때 작은 씨를 심고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 김을 매고 그 결실을 보는 만족.  생명을 키우는 소박한 자유의 맛!  현재의 위치에서 미래에 있어야 할 그 위치로 옮겨가면서 나타내는 이 감격.  이것이 농부의 심정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올 때의 발걸음과 갈 때의 발걸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올 때의 표정과 갈 때의 표정이 달라져야 합니다.  올 때의 눈빛과 갈 때의 눈빛이 달라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올 때의 내 생각과 갈 때의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붙잡힘 바 되기를 축복합니다.  더 큰 능력을 덧입는 역사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의 백성을 위하여 축복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한 세월 속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하면서 조금만 불편해도 모세에게 불평했습니다.  원망했습니다.  시비했습니다.  심지어는 모세를 죽이겠다고 반역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놀랍도록 인내했습니다.  언제나 온유한 자세로 그들을 대해 주었습니다.

모세는 애굽 바로의 궁중에서 누릴 수 있는 지위와 기회를 포기하고 그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선택했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포기할 정도로 이스라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이 배은망덕한 생활을 해도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모세는 그의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모세가 못 볼 것을 보고, 못 들을 것을 들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 생활을 한지도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저들과 헤어져야 할 때가 다 된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 온 것을 느끼게 될 때에 자기 백성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더욱 사랑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에게 오직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의 백성이 어떻게 하던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내 백성만은 그 땅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제 모세는 지나간 일들을 회고하면서 그토록 사랑했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마지막 축복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스라엘아, 너희는 행복할지어다."

지금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이 말 외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마 모세의 눈에는 자기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게 될 새로운 얼굴이 떠올랐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지휘를 받으며 요단강을 건너가야만 합니다.  광야 40년의 생활 가운데 대부분은 전쟁도 없이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가 군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이르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면서 어쩌면 지금까지의 여정보다 더 힘들고 험난할지도 모를 사랑하는 백성들을 생각하면서 축복의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라."

오늘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영적인 면에서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여 축복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된 저와 여러분에게 이 말씀이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행복한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그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축복한 근거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이스라엘이 행복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모세 자신도 이들을 생각할 때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모세는 그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한없는 은총을 받은 백성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 당시 애굽 사람들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강대국의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그런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사람들에 비교하면 자신들이 보기에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말처럼 다른 민족들에 비교해 보면 자신들은 메뚜기보다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동족을 육신의 눈으로 겉모양만 본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다른 측면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여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너희들에게 땅도 없고, 누구처럼 좋은 집도 없지만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너희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요,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사실이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힘있는 사람들을 선택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있는 나라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힘없이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선택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 40년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광야 생활에서 수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반역을 했지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한결 같았습니다.  이 모습을 40년 동안 지켜보았던 모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도저히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결같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크게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우리들처럼 얻은 사람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거듭나서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 중에서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행복을 돈을 주고 살 수 있습니까?  이 행복을 권세로 누릴 수 있습니까?  이 행복을 지식으로 얻을 수 있습니까?

천금의 보화를 가지고 대궐 같은 집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가 행복한 여자입니까, 아니면 초라한 집에서, 그것도 내 집이 아니라 전세로 살면서도 남편의 사랑을 받는 여자가 행복한 여자입니까?  사실 행복은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영국에 약칭 L. S. E 대학의 로버트 우스터 박사가 몇 년 전에 세계 각국의 국민 행복 지수를 조사해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발표를 보면서 우리의 상식과는 너무나 다른 여러 가지 내용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우선 한 나라의 경제가 그 국민의 행복 지수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국가의 정치적 안정과 군사적 우위가 그 국민의 행복 지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연구 결과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은 방글라데시에 사는 국민이다."라고 합니다.  방글라데시가 어떤 나라입니까?  그 나라는 7년간 비가 오지 않아서 흉년이 들었습니다.  세계가 아주 걱정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반해서 세계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은 46위였습니다.  아시아의 경제 강대국이라는 일본은 44위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두 번째 행복한 국민은 아제르바이잔이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세 번째는 아프리카에 있는 가난한 나라 나이지리아입니다.  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강대국이 40위권 밖으로 밀려났는가?  행복의 이론은 행복의 실제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동일합니다.  재산이 많고 명예가 있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다고 해서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셋방살이를 하고 하루하루 벌어서 그 날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 중에도 행복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 집 마련하기를 소원합니다.  어쩌면 새 집을 마련하고 몇 달간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자기 집보다 더 넓은 집을 보면서 그 행복은 파랑새처럼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맞아 결혼합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르고 나면 권태라고 하는 것이 슬며시 찾아옵니다.

결혼 생활을 비유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집안에서 음식을 끓이느라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나고, 일년쯤 지나면 아기 오줌 누이느라 '쉬'하는 소리가 나고, 십년이 지나면 김빠지는 '휴'하는 소리가 난다."

"신혼 때에는 부부가 밤찬으로 피자를 먹으며 즐기지만, 일년쯤 지나면 냉장고에서 아무 것이나 꺼내서 먹고, 십년 쯤 지나면 부부싸움 하느라고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고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과 영광의 대상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깃든 행복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죄사함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구원받은 사실을 알고, 영생을 얻은 사실을 알 때,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놀라운 행복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소유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원하는 기쁨과 행복은 세상적인 데 있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기쁨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참 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만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어떤 환경에서도 달라지지 않는 참되고 영원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형편없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울의 말대로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진 자요, 불행한 사람 같지만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이 행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특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구원은 미래에 받을 것이 아니라 이미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에 대한 특권은 미래에 어느 시점에서 누리게 될 어떤 특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누리고 있는 특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의 속박에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그들을 건져내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무서운 죄의 권세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사탄이 우리를 지배할 수가 없고 묶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날 때의 상황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 땅을 다니면서 장자를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사람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애굽 사람보다 의로워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어린양의 피를 보고 넘어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세상 다른 사람들보다 의로워서 구원을 받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에게는 새로운 삶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을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모든 것으로 공급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들어갔을 때 물이 없어서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솟게 하셔서 그들의 기갈을 해갈시켜 주셨습니다.  배가 고파할 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해 주셨습니다.  고기가 생각이 날 때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 주셔서 먹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을 때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이 되어 주셔서 아말렉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영적인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떡으로 양식을 삼고, 영원한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셨습니다.  우리를 해치려는 원수의 손에서도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있는 그의 백성된 우리를 절대로 해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대로 우리는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백성"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의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알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세 번째로, 이스라엘이 행복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하나님의 백성은 전투하는 백성이지만 행복한 백성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 방패가 되신다면 우리를 해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경우에 우리를 지켜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때로 병들어 눕기도 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영혼의 건강을 누리게 됩니다.  사업의 실패로 많은 물질의 손해를 볼 때도 있지만, 다른 차원으로 보면 잃은 물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혼의 부를 누리게 됩니다.  때로는 원치 않는 비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운 보호로 인하여 우리의 성품은 더욱 밝아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이깁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겨 놓은 싸움입니다.  주님이 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가진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아니 우리는 주님께서 이겨놓으신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안에서 당당하십시오.  하늘의 소망을 품고 넉넉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사십시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행복한 것은 그들이 행복해야 다른 사람이 구원받는 길이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의 믿는 것이 거짓이라면 이런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거짓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한다면 우리는 사기꾼일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믿고 행복하지 못하면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권한다면 그것 역시 비극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참된 행복을 찾았습니다.  우리의 행복 여부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에 달려 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은 공중에 나는 새와 같이 행복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활이 항상 감사와 찬송의 생활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에 대한 선택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행복을 참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주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면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영원히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참 행복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은 여러분 모두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행복을 맛보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주저하지 마시고 그 행복을 찾으십시오.  그러나 세상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찾으십시오.  세상적인 방법으로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찾으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예비하신 안식처로 나오십시오.  그래서 여러분 마음속에 평화가 강같이 흐르고, 사랑이 바다처럼 넘치고, 기쁨이 샘솟듯이 솟아 행복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들에게서 가끔 이런 말을 듣습니다.  예수 믿는 재미도 없이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삽니까?  잘 생각해 보면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재미도 없이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삽니까?  이 말은 예수 믿는 신앙 생활이 굉장히 행복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고백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행복해야 됩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해서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처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때문에 사는 재미가 있고, 예수 때문에 우리의 삶에 행복이 있노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한 모습, 예수를 믿음으로 누릴 수 있는 참된 행복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좀 보여주십시오.

우리는 언젠가 때가 되면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 앞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자녀들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유언은 무엇일까요?
아니,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갈 때 그들을 앞에 놓고 할 수 있는 한 마디는 무엇일까요?
부모된 우리가 자녀들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무엇일까요?
아마 이 한 마디의 말에 다 담겨져 있을 것입니다.
"얘들아, 행복하거라."

이 마음은 자녀된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셔야 합니다.  행복하십시오.  그러나 주님 안에서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그 행복한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좀 보여주십시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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