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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학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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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학 2:1-9)

학개서는 네 개의 메시지로 구성되어있는데 이것은 날짜별로 구분됩니다. 학개서를 보면 날짜가 네 번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학 1:1). 
“칠월 곧 그 달 이십일일에” (학 2:1).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학 2:10). 
“그 달 이십사일에” (학 2:20). 

다리오 왕 2년 6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약 석 달 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네 개의 메시지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에서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주로 야단치는 내용입니다. 성전이 황무한데 너희는 판벽한 집을 짓고 사는 것이 가하냐고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야단치십니다. 하지만 두 번째 메시지는 격려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B.C. 538년 고레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2년 뒤인 B.C. 536년 성전 지대를 놓았습니다. 성전 지대가 놓이자 사마리아인들이 집요하고 간교하게 방해하여 16년 동안이나 성전건축이 중단되었습니다. 백성들 마음속에는 절망감만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에스겔 36장 28~30절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질의 궁핍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약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선지자도 보내지 않으시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포로 되었다가 해방되어 돌아온 그때 하나님께서 학개, 스가랴,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단순히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2등으로 사랑하고 1등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크게 화가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1등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 12:30). 

우리 성도들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면 그때부터 축복이 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나가는데도 축복을 받지 못하시는 분은 하나님을 2등, 3등으로 두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1등으로 사랑하면 그때부터 말할 수 없는 축복이 오게 된다는 것이 학개와 스가랴의 기본적인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인들의 간교한 방해에 부딪혀 낙심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격려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학 2:9). 

지금은 물질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는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명한 해가 솟는 것처럼 점점 좋아질 존재입니다. 제가 예언 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시면 점점 영광스런 축복이 더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학개 선지자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Ⅰ. 성전건축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책망하는 의미가 있다 

바벨론에서 포로 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예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새로 지으려는 스룹바벨 성전이 보잘것없이 보였습니다.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스 3:12). 

성전 지대를 놓고 보니까 예전 솔로몬 성전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여서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이런 태도를 책망하였습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더 크게 될 것이니 성전이 작다고 멸시하거나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슥 4:10). 

노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가 많았기 때문에 영향력이 컸습니다. 청장년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주고 모범이 되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 가운데 있던 노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얽매여서 과거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현재나 미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노인들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청장년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정적인 태도를 책망하고 고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조금도 부정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나는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빠져 봤자 얼마나 나빠질 것이며 나빠져서 죽는다고 해도 죽으면 더 좋은 곳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망할 수도 없고 실패할 수도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부정적인 태도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부정적인 태도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는 성전을 짓는데 돈이 없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재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전을 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8). 

너희가 성전을 짓겠다고 순종만 하면 돈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건축헌금을 하라고 해서 하지 마시고 건축헌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보십시오. 그러면 그 생각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고 물질의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제가 제 친구 목사의 예를 가끔 말씀드리는데 그 친구는 낡은 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까 고속도로 중간에서 고장도 나고 위험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성도 한 사람이 차를 사줘서 차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니까 교회 성도 중 남편이 택시 운전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고를 쳐서 감옥에 들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그런 상황에서도 교회를 건축하는데 헌금도 내고 싶고 목사님 차도 바꿔 드리고 싶다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산에 살던 이 사람을 창원으로 이사 가게 하셔서 보신탕집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공단이 많이 지어져서 근로자들이 몰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벌게 되었는지 돈을 세지도 못할 만큼 매일 돈이 쌓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목사님 차도 사드리고 건축헌금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돈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면 돈이 들어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져가시면 있는 돈도 다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없어 성전을 짓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태도는 버리시고 성전건축을 하고 교회에 보탬이 되기 위해 축복해달라고 기도하시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부어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솔로몬과 같은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왕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슥 4:7).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슥 4:9). 

스룹바벨이나 솔로몬이나 모두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들이고 결국 성전을 짓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셔서 하시면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고 지도력 약하다고 부정적인 태도를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 유다 백성의 노인들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비해 새로 짓는 성전의 영광이 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영광이 성전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7). 

성전에 만국의 보배가 이르러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국의 보배는 영어로 ‘the desired of all nations’입니다. 모든 나라, 열방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존재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은 나중에 헤롯 왕이 개축해서 헤롯 성전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복음서를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그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꾼들 다 내쫓으시고 그곳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영광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영광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영광인 것입니다. 


Ⅱ. 성전건축을 위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긍정적인 태도가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 본문에서 학개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세 가지 긍정적인 태도를 요구합니다. 
 
첫째,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4).

여기서 스스로 굳세게 하라는 메시지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누구에게 말씀하시느냐? 행정적 지도자인 총독 스룹바벨과 영적인 지도자 대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강한 분을 모시면 강해집니다. 깡패들도 그러지 않습니까? 내가 모시는 분이 누군 줄 아느냐면서 자기가 모시는 두목이 강하면 어깨에 힘주고 다닙니다. 자기가 모시는 분이 강하면 자신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시는 분은 몇 년 하다가 임기가 끝나면 물러날 정치 지도자도 아니고 또 사업을 하다가 불경기가 되면 망할지도 모르는 재벌도 아닙니다. 우리가 모시는 분은 영생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어떤 일도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모시는 분이 위대하므로 우리도 목에 힘주고 다녀도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라는 메시지는 구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약에도 있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 6:10). 

약한 마음은 먹지 마십시오. 병이 오면 병원에도 가고 기도로 고치십시오. 사업에 어려움이 오면 이제는 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망하는 사업은 접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스스로 강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바쁘게 일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학 2:4). 

스스로 굳세게 하여도 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스스로 굳세게 하여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일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돈을 번다고 부자가 됩니까?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아도 일한 것보다 더 축복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날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주일 내내 일하시는 분들은 결국 병에 걸리게 되고 죽어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안식일 하루는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바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부지런히 기도도 해야 되고 밥도 해야 되고 일도 해야 되고 교회에서 봉사도 해야 되기 때문에 게으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 5:17). 

하나님께서도 일하시고 예수님께서도 일하시므로 성도들도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을 해야 하냐며 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왜 할 일이 없습니까? 기도가 얼마나 큰일인 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또 사업을 부지런히 해서 교회에서 헌금하는 것이 얼마나 큰일입니까? 설거지하는 것, 전도하는 것, 청소하는 것 모두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강하게 하여 복음 증거를 위해서 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두려워하지 말라고 요구하십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학 2:5). 

반대자나 권력자 혹은 일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딱 한 분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정말 많습니다. 병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예측하지 못하는 사고와 재난에 대한 두려움, 사업, 자녀들의 미래 등 여러 가지 두려움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하나님 한 분인 줄로 믿습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보면 로렌스 경의 기념비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아주 두려워하며 살았기 때문에 어떤 류의 사람도 거의 두려워하지 않았다.” 로렌스 경이 누군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다른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Ⅲ. 성전건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느냐?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공급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신을 공급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의 공급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학 2:5). 

주의 일은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신으로는 됩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6). 

우리에게 성령께서 함께 계시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평강을 공급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성신도 주시고 평안도 주시고 또 성전건축에 필요한 은, 금, 재물도 모두 주실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강하게 하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신약시대에 성전건축을 명령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명령받은 성전은 영적인 성전입니다. 예배당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 교회의 확장, 전도와 선교를 명령받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 너희는 이 세상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전도와 선교를 통해 영적인 성전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물리적인 예배당은 엄격한 의미에서 성전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전건축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예배당 건축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떤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목회를 처음 할 때는 교회 자체에 투자하는 일보다 밖으로 선교하고 전도하는 일에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예산의 50%를 전부 선교와 전도에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면서 교회가 부흥되었는데 사람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니까 땅을 사서 예배당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땅값이 너무 올라 지을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전도나 선교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당 건축을 위해 예산을 비축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목회와 미국에서의 목회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속도가 빠른 사람이 부흥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모두 빠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속도전으로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속도가 빠른 것보다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땅이 좁기 때문에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속도가 빠른 교회가 아니라 공간을 차지한 교회가 부흥합니다. 
 
우리는 선교하고 전도하라는 엄위한 사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선교와 전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선교와 전도의 센터가 되는 예배당 건축하는 일도 중요한 일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세대에 하나님께서 예배당 건축의 귀한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부정적인 태도는 버리고 모두 긍정적인 태도로 이 사명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약한 태도는 버리고 스스로 강하게 하시고 게으른 태도는 버리고 스스로 부지런하게 일하시며 두려워하는 태도는 버리고 담대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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