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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자 (요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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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자 (요 3:1-8)

옆 사람과 인사합니다. “오늘 참 예뻐 보입니다.” 
“오늘 참 멋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이 있는지요? 
아마도 착한 사람이라 할 만한 좋은 사람, 다른 말로 말하면 양심적인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소망이 있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이라 하지만 아직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사람이라도 다 영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바라기는 좋은 사람과 영적인 사람을 구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 예수를 안 믿어서 그렇지 참 좋은 사람이야” 할 만한 사람이 여러분 주변에 많이 있잖아요? 그러나 그렇게 좋은 사람도 영의 사람이 아닌 사람이 많습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만 사람들을 평가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보는 기준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은 實力있고 能力있고 사회적인 신망이 있고 세상에서 저명한 사람을 알아줍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럴지라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니고데모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의원입니다. 직업이나 출신이나 학식 면에서 남에게 전혀 꿀리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육의 사람으로 보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좀 부족하고 덤벙대고 학식도 부족하고 직업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붙잡힌바 되어 쓰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어부출신입니다. 덤벙대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를 불러 위대한 사도로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보세요. 오늘 본문의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고 밤중에 몰래 찾아옵니다. 체면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진정한 선생이라는 것을 시인합니다. 

예수님이 보통 선생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신 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쉽게 말하면 니고데모는 정답을 맞힌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니고데모의 답을 인정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답은 맞았는데 그 답을 유출하게 된 방식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왜죠?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행하시는 기적, 그것을 보고 내린 결론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말씀의 결론은 “너는 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를 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알아야 하나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은 정말로 엄청난 변화를 체험합니다. 그 결과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 받기 전에도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크리스천이 아니었습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었을 뿐입니다. 무늬만 크리스천이었던 것입니다. 인생관이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이 세상 사람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거듭난 이후 저들의 삶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거듭남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받기를 축원합니다.   

1. 거듭남이 무엇인가요? 

3절 말씀을 다 같이 읽습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렇다면 거듭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 모태로부터 태어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우리 영혼이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 죽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두 번 태어나야 합니다. 그 방법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태로부터 한번만 태어나는 것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교인은 두 번 태어나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한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번만 죽는다./ 아멘?  

유명한 세계적인 전도자 <오스본>목사님은 ‘한 사람이 거듭났다거나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때에는 새로운 영적 생명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듭난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1:12-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씨”가 들어 왔습니다. 그 하나님의 씨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 곧 영정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씨를 받아 생명을 받았고 그 씨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기에 하나님께로서 난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왜 거듭나야 하나요? 

5절을 보세요.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도 여러분!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닭이 달걀로 한 번 태어나서는 안 됩니다. 보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살아 움직이는 닭이 되려면 다시 껍질을 깨고 두 번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 계란 속에 생명의 씨가 있어야 합니다. 그 씨가 없다면 절대로 두 번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일종의 무정란입니다. 

그러나 씨가 있으면 두 번 태어납니다. 그 씨가 성령입니다. 그 씨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씨로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거듭남은 인간의 노력이나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과 성령으로 되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려면 서울 대학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이 완비되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나라는 성령의 나라이기에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결코 그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마치 비자를 받지 않고는 미국에 들어 갈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늘나라의 비자는 이를테면 ‘성령’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물’로 씻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 심령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겉으로 보면 별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엄청난 변화가 있습니다. 
  

3. 어떻게 거듭나나요?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만 기울이면 됩니다. 
여인이 해산할 때 태어날 아기가 뱃속에서 자꾸 발악을 하면 엄마의 생명까지 위험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는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들으면 됩니다. 들을 때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열리면서 ‘아~그렇구나' 하고 깨닫고 됩니다. 그리고는 믿어집니다. 그래서 입으로 아멘을 한다든지 고개를 끄덕끄덕 해지면 이미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면서도 집안 생각, 곗돈 생각, 세상 걱정, 자식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어거스틴'이라는 분을 아시나요? 

그 사람은 유명한 신학자요, 철학자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수사학과 웅변술에도 아주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그가 어디를 가든지 여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보니까 자연히 사생활이 문란해졌습니다.

그러던 그가 30살 때에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하고 나서 거듭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주후 386년 8월 말경의 어느 날 밀라노의 한 정원에 있었습니다. 그때에 갑자기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성경을 읽어라 성경을 읽어라' 그 즉시 그는 성경을 펴서 열었습니다. 

그때에 펴서 읽은 구절이 로마서 13장 12~14절이었습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 순간 그의 가슴은 확신의 빛으로 가득 찼고 나의 의심의 그림자는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내속에 깊은 은혜를 주시고 깨닫게 하심으로 내 영혼이 새롭게 해주십니다. 그때가 그가 성령으로 거듭난 시점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렇다고 이렇게 변화를 확실하게 체험하는 것만이 거듭남의 모양은 아닙니다. 

8절을 보세요.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언제 성령이 우리 속에 들오시는지 알지 못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특히 모태신앙인은 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거듭남은 주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 한곡 부릅시다. 

1.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신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중 위로 감사 측량 못 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3.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사랑의 가정 희망 주신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할렐루야! 
특별히 거듭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거듭남의 증거가 무엇인가요? 

쉽게 말하면 우리가 거듭났는지 안 되었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나요?
여러분은 거듭났나요? 그 증거가 뭘까요? 

우리가 육신적으로 엄마의 모태에서 태어났다는 증거는 여러 가지로 댈 수 있습니다. 모태에서 태어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출생증명서를 보면 알 수 있고 어릴적 사진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또 여러 증인들이 있습니다. 엄마나 할머니가 말해주어서 알게 됩니다. 탄생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우리가 살아있고 어머니를 엄마로 아버지를 아빠로 부르고 있는 것이 증거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는 뭘까요? 
이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가 거듭나고서도 거듭났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아직 거듭나지도 않았는데 거듭났다고 착각하고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남의 증거는 뭘까요? 몇 가지로 살펴봅니다. 

1) 지금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할은 믿게 하고 깨닫게 하는 역할입니다. 
고전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어색합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실 때 뭔가 이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해보세요.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구주 예수님 고맙습니다.”  

2) 빚진 자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빚진 마음이 늘 있습니다. 용서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며 빚진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용서하는 일을 쉽게 합니다. 
바울은 이 마음이 늘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빚진 자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것에 감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남도 그런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이 더운 날씨에도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하는 분들은 명심하셔야 합니다. 전도해서 교회를 부흥시키려고만 하면 전도는 안 됩니다. 그저 빚 갚는 마음과 긍휼의 마음이 있어서 그 은혜의 빚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할까?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안달이 납니다. 

저는 그것을 거룩한 부담감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거룩한 부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못하더라도 전도에 대한 부담감이라도 느껴야 합니다. 이 부담감도 없으면 거듭난 사람인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 부담감, 그 빚진 자의 마음이 여러분에게도 있나요? 
  

3) 영적인 배고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 있다면 때가 되면 배 고품이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거듭나서 살아있다면 영적인 배 고품이 있습니다. 영적인 굶주림이 있어야 살아있는 것입니다. 
안 먹으면 갈급합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으려하고 기도하려 하고 그래서 은혜를 채우려고 힘쓰고 노력합니다. 

태어난 아기를 보세요. 배가 조금만 고프면 울어 제낍니다. 뭐든지 잡히면 입으로 들어갑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장합니다. 

거듭난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거듭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굶주림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사모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서 저녁예배도 나오고 새벽예배도 나오고 합니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병들면 굶주림이 사라집니다. 먹기 싫어집니다. 입맛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심각해집니다. 
  

4) 삶의 목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거듭나면 삶의 목적이 자신에게서 하나님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죽도로 예수님을 따라 다닌 이유와 목적이 자기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한 자리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헌신하고 열심을 내기는 하였지만 저들이 그렇게 한 이유와 목적은 ‘보다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하여’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성령을 받은 후 바뀌었습니다. 
제자들의 삶의 목적은 온전히 주를 위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욕심이 없어졌습니다. 욕심이 없어졌기 때문에 저들은 서로 유무상통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늘 행복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늘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았기 때문에 저들은 언제나 천국을 누리며 느끼며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저는 여러분들도 삶의 목적이 바뀌기를 축원합니다. 
  

5) 죄에 민감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의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잘 몰랐습니다. 죄에 대하여 둔감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기가 오히려 의인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나자 저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죄들에 대하여 민감해 지기 시작하였고 그 죄를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품으면서부터 자기의 죄에 민감해지기 시작하더니 그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 죄 때문에 절망하기 시작합니다. 

로마서 7:24절에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도 죄 때문에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5절을 보세요.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죄인중에 내가 괴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의 고백입니다. 
문제는 죄에 대하여 민감해지고, 죄가 괴로워지면 그 죄를 벗어야 합니다. 

그냥 두면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십자가는 자기가 죄인 인 줄을 아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언제나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회개케 해 주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죄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깊은 회개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성령 받지 않고 예수 믿는 일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영적 생활을 육신으로 하려니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에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난 사람입니까? 그 거듭남이 삶속에 들어나고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거듭남이 기독교인에게 최고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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