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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이 임한 사람, 성령이 떠난 사람 (삼상 16: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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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임한 사람, 성령이 떠난 사람 (삼상 16:13-23)

[인터넷에 올라온 ‘아내의 빈자리’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아내가 어이없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지 4년, 지금도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기만 합니다. 스스로 밥 한끼 해결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남편을 두고 떠난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마는, 난 나대로 아이에게 엄마 몫까지 해주지 못하는 게 늘 가슴 아프기만 합니다. 

언젠가 출장으로 인해 아이에게 아침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출근 준비만 부랴 부랴 하다가 새벽부터 집을 나섰던 적이 있지요. 전날 지어먹은 밥이 밥솥에 조금은 남아 있기에 계란찜을 얼른 데워놓고 아직 잠이 덜 깬 아이에게 대강 설명하고 출장지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있나요? 그저 걱정이 되어 몇 번이나 전화로 아이의 아침을 챙기느라 제대로 일도 못 본 것 같습니다. 

출장을 다녀온 바로 그날 저녁 8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에게 간단한 인사를 한 뒤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아이의 저녁 걱정은 뒤로 한 채 방으로 들어와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습니다. 

그 순간, ‘푹’ 소리를 내며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만한 라면 가락이 침대와 이불에 퍼지는게 아니겠습니까? 펄펄 끓는 컵라면이 이불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무작정 불러내 옷걸이를 집어들고 아이의 장딴지와 엉덩이를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이불은 누가 빨라고 장난을 쳐, 장난을!’ 

다른 때 같으면 그런 말은 안했을 텐데 흥분해 있었던 탓으로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섞인 몇마디가 나의 매든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들의 얘기로는 밥솥에 있던 밥은 아침에 다 먹었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고, 저녁 때가 되어도 아빠가 일찍 오시질 않아 마침 싱크대 서랍에 있던 컵라면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선 안된다는 아빠의 말이 생각나서 보일러 온도를 목욕으로 누른 후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붓고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출장 다녀온 아빠에게 드리려고 라면이 식을까봐 침대 이불속에 넣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런 얘길 진작 안 했냐고 물었더니 제 딴엔 출장 다녀온 아빠가 반가운 나머지 깜빡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전 수돗물을 틀어놓고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와서는 우는 아이를 달래 약을 발라 주고 잠을 재웠습니다. 

라면에 더러워진 침대보와 이불을 치우고 아이 방을 열어보니 얼마나 아팠으면 잠자리 속에서도 흐느끼지 뭡니까? 정말이지 아내가 떠나고 난 자리는 너무 크기만 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는 그저 오랫동안 문에 머리를 박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가 가정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갈등과 절망으로 한 가장을 몰고 갔던 것처럼 성령의 떠나심으로 그 인생이 패배의 내리막길을 걸어간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사울입니다. 

14절“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울은 이스라엘 최초의 왕으로 촉망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왕으로 제비뽑아 선택될 때 큰 키와 번듯한 외모로 인기가 있었는가 하면, 또한 짐보따리 뒤에 숨을 정도로 겸손하고 순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이후에 그는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는가 하면, 두 번이나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먼저는 출전준비 때 사무엘이 약속한 날자에 오지 않자 흩어져 가는 백성들을 볼 수가 없어서 다급한 나머지 스스로 제사를 집례하여 하나님의 눈밖에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말렉에 승리한 후에 모든 생명있는 것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각 왕과 살진 짐승을 살려 감추어 두었다가 발각되었습니다. 그는 회개하기는커녕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삼상15:26“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하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부어주셨던 성령을 거두어가셨습니다. 성령이 떠나간 사울은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떠나가실 때 온 결과는 무엇입니까?

1.악령이 그를 찾아와 번뇌케 하셨습니다.

눅11:24-26절에 예수님께서 ‘빈집의 위험’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떤 귀신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머물다가 답답하여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디로 가보아도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가 다시 예전의 집으로 돌아와 보니 청소가 깨끗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귀신은 다른 일곱 귀신을 데리고 이 사람을 찾아오니 그의 괴로움이 얼마나 더 크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빈집은 위험합니다. 성령이 떠나면 악령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 컵에 물이 차있으면 이 컵에는 공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물을 쏟아버리면 공기가 들어가 그 공간을 차지합니다. 결코 진공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떠난 자리는 악령이 밀고 들어옵니다. 그러기에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3: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유익을 주지만 악령이 임하면 본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해가됩니다. 악령이 사울을 번뇌케 했습니다. 사울의 번뇌는 일종의 정신적 질환입니다. 그는 성급해하고 불안하고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신 사람에게는 평안함이 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2.사울은 질투의 영에 사로잡혔습니다. 

사울은 블레셋의 골리앗을 무찌르고 국민적 스타가 된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개선하는 사울과 다윗을 향하여 예루살렘 여인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실상 훌륭한 장군이 발굴되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블레셋이 더 이상 침노하지 못할 것이요 국방은 그만큼 더 든든해질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악령은 사울의 마음속에 저급한 질투심을 불어넣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수금을 켜는 다윗을 향하여 , 식사자리에 앉은 다윗을 향하여 두 번씩이나 창을 던져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번번이 다윗을 보호해주셨습니다. 심지어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 사위 삼겠다고 선포하고 결혼지참금을 걱정하는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 100명의 양피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다윗을 사위 삼고자 함이 아니라 전쟁터에 나가서 적에 의해 죽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는 전쟁 중에도 다윗이 어디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리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농산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어린양)의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가인은 질투하고 분노했습니다. 결국 아벨을 들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 질문하시는 하나님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하면서 저항했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질투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궁중악사인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나름대로 훌륭한 재능과 인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궁중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챠르트’란 소년이 나타나면서 그의 삶이 뒤집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챠르트는 어리지만 음악적인 재능은 천부적이었습니다. 연주가 끝나면 때로 장난치며 웃는 어린소년에 불과했지만 그가 악기를 잡는 순간부터 놀라운 음악이 연주되었습니
다.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모챠르트에 대해 열등감을 가졌고, 질투와 분노의 감정이 끌어 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 어린소년에게 저런 놀라운 재능을 주시고 왜 내게는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질투의 노예가 되는 순간 재능마저 상실해버리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자살하는 비운의 악사가 되고 맙니다. 


3.사울은 대적 앞에 두려워하였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실 때 훈련되지 않은 백성을 이끌고도 대적을 맞아 승리를 차지하였던 사울은 성령이 떠나시니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골리앗 앞에 두려워 감히 나서지도 못했습니다. 인생의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던 사울은 나중에 무당을 찾아가 자신의 미래를 묻기도 했습니다. 길보아산에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어리석은 종말을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다윗을 보십시오

이새의 아들 8형제중 막내인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가 방문했을 때 들에서 양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7명의 아들이 지나갔지만 하나님의 선택된 자는 없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불려왔고 사무엘에 의해 기름부음을 입습니다. 

13절“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니라” 

성령충만한 다윗은 

1.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대적 앞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소년 다윗은 거대한 장신인 골리앗 앞에서도 떨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시23: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2. 강하여 졌습니다.

역대상18:6,13“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삼하5:10“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은 점점더 강하여졌고 어디로 가든지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적을 그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다윗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칼과 창에 있지아니하고 여호와께 있음을 ...

3.찬양의 삶을 살았습니다.

시편의 많은 부분은 다윗의 찬양시입니다. 성령충만한 다윗은 아침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찬양으로 영광을 돌립니다. 성령충만한 다윗의 찬양으로 사울을 번뇌케하던 악령들은 떠나갔습니다. 

23절“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4. 화해와 용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동굴에서 잠자는 사울을 만났고, 한번은 경비병 없이 혼자 동굴에서 용변을 보는 사울을 만났지만 생명을 손대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자는 아무도 건드릴수 없기 때문입니다. 

5. 성전건축에 대한 열망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셔놓을 성전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손에 피가 묻어있음을 지적하시며 거절하셨습니다. 다윗의 아들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건축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목재를 준비했습니다. 심지어는 다윗자신의 사재도 다 털었습니다.

6. 성령에 대한 뜨거운 고백을 남겼습니다. 

시51:11“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긴장이 풀어졌던 다윗이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밧세바를 데려다가 동침하였습니다. 그녀는 우리야의 장군의 아내였습니다. 숨기고 싶었지만 뜻대로 안되니 결국 무죄한 우리야를 적진 깊숙이 보내서 전사하게 하였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지적앞에 다윗은 허물어집니다. 그리고 회개의 눈물로 침상을 적십니다. 그때 다윗은 ‘나를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말라’(시51:11)고 울부짖었습니다. 성령이 떠난 사울의 비참함을 보았기에 성령만은 거두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구약의 성령과 신약의 성령은 그 목적이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성령이 왕이나 예언자 제사장 그리고 사사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어떤 특별한 직무를 위하여 부어집니다. 그리고 사명이 끝나면 거두워집니다. 인간이 범죄하면 성령은 떠나가십니다. 

민수기11:25“여호와께서 구름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삿6:34“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삿11:29“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삿14:6“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삿14:19“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삿15:14“...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위의 밧줄이 불탄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신약의 성령은 임재하여 머무르십니다. 

요한14: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한14:17“그는 진리의 영이라....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은 오늘도 믿는자 속에 거하시며 그를 도우십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8:26)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우리속에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머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오늘 우리가 할수있는 가장 위대한 발견은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속에 임재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성령을 소멸치 마십시오(살전5:16).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빗나간 길로 갈 때 그분은 내안에서 탄식하십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그분을 높여주십시오. 찬양을 올리십시오. 그분의 도움을 겸손하게 구하십시오. 이제 성령의 충만을 구하십시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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