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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볼로에게서 배우라 (행 18: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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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에게서 배우라 (행 18:23-28) 
 
성경에는 우리가 따르고 배워야 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행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삶에 비춰보고 또 우리가 나가야 될 길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에서 대할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아볼로’라고 하는 믿음의 사람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는 ‘아볼로’라는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신앙의 삶에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일까요?

오늘 읽은 본문은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출발하는 가운데 삽입된 내용입니다. 사도바울은 2차 전도여행까지 여러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또 여러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3차 전도여행은 2차 전도여행 기간 동안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들, 또는 방문했던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면서 그 교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이런 목회 적 차원에서의 선교 여행이 3차 전도여행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중에 중간 기착지인 에베소에 잠깐 들렸다가 거기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놓고 혼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선교 보고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에베소에는 사도바울이 없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만 남아서 에베소에서 사역을 이루고 있었을 때 일어났던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내용을 여러분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는 아볼로라고 하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어딘가요? 여러분이 이집트 여행을 하시면 카이로를 방문하십니다. 이집트의 수도이지요? 카이로는 아프리카에서 바로 난 나일강이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지중해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이 알렉산드리아는 삼각주입니다. 나일강의 끝 부분이 지중해하고 닿는 그 끝부분이 해변가 쪽에 있는 도시가 알렉산드리아이고 지금도 알렉산드리아라고 불리워집니다. 카이로하고는 몇 키로 떨어져 있지 않지요? 이곳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주전 331년에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집트를 되찾은 것을 기념해서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도시가 바로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로마가 전 세계를 지배할 때, 여러 나라 또 여러 도시를 건설했는데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바로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이 도시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주로 살았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이집트 사람들, 두 번째는 로마 사람도 많이 살았고요, 세 번째는 옛날부터 있었던 페르시아 사람들,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네 번째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전체 인구 약 100 여만 명 가까이 되는 거대한 도시의 인구의 3분의 1이 유대인이었을 정도로 알렉산드리아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로마와 쌍벽을 이루는 당대 최고의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언변, 즉 수사학이나 논리학, 철학, 이런 것들이 아주 강했고, 그리고 이곳에는 책 70만권을 보유하고 있던 거대한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도시가 학문적으로 발달했으면 도서관에 장서가 70만권이 있었을까요? 지금 같은 이런 책이 아니고 두루마리로 된 책이었는데 그게 70만권 가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팔로스 라고 하는 해변 가에 있는 거대한 등대는 세계 7대 불가사이 중에 하나지요. 지금은 그것이 무너져서 바닷물 속에 들어가 있는데요. 어쨌든 이 알렉산드리아는 당대 최고의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곳에 유대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곳에서 유대교를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헬라사람들, 그리스사람들, 이런 이방 나라 사람들에게 유대교의 복음을 전하려고 유대교, 히브리 성경을 헬라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70명의 장로 신학자들이 모여서 히브리어를 헬라말로 번역한 쎕투아진트, 70인 역이라고 하는 성경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이곳 알렉산드리아는 구약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았고, 유대교가 굉장히 영향력을 행사했던 도시였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는 도시였기 때문에 당연히 로마사람들의 신앙과 철학 문화가 함께 유대교 신앙하고 어우러져 있었던 곳입니다. 

아볼로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란 철저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아볼로라는 사람은 성경에 아주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언변이 아주 뛰어나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기독교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 합니다. 이곳 알렉산드리아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된 것은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 마가가 이곳에 가서 복음을 증언해서 이곳에 기독교인이 생기게 되었고 아볼로라는 사람이 바로 마가가 증언한 복음을 들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구약성경에 능통한 학자이면서 언변이 뛰어난 대단한 학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 신앙을 경험한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고 복음이 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이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에베소로 내려왔습니다. 에베소는 이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목회를 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알렉산드리아로 내려와 회당에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서 아마 이 부부가 아볼로에게 당신이 기독교 복음을 알고 있으니까 또 당신이 위대한 유대교의 학자고 성경에 능통한 박사니 당신이 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유대인에게 복음을 증언하면, 많은 유대인들이 돌아올 것이다. 아마 이런 권고를 받고 아볼로가 설교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가만히 아볼로의 설교를 들으니까 다 좋고 완벽한데 한 가지가 빠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세례까지만 알지 예수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이 누구고 도 성령을 세례를 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생각하기에 이 사람 아볼로가 성경의 50%만 알고, 중요한 성령과 성령 세례가 무엇인가를 모르는구나. 그러니까 예수님까지만 알고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보내신 성령은 누구고 또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이 사람을 데려다가 자기 집에서 성령이 무엇이고 성령세례가 무엇인가? 교회가 뭔가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대학자가 이 부부의 가르침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니 당신들은 여기 있고 나는 당신들이 목회하다가 온 저 고린도지역 아가야 지역이지요. 지금의 그리스의 남부, 아테네와 고린도가 있는 나는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아볼로가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 받고 성령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올바른 믿음을 갖고 난 다음에 이제는 아가야 지방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령을 받고 나니까 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은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아볼로가 은혜가 충만하여 가는 곳곳 교회마다 유익이 되었더라. 고 했습니다. 성령 받고 능력 받고 사람이 변하게 되자 가는 곳곳마다 교회에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는 언변이 뛰어난 학자였기 때문에 그가 유대인들하고 앉아서 논쟁을 하게 되면, 모든 유대인들이 다 돌아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예수를 믿는 백성이 되었더라.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아볼로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대충 알렉산드리아는 어떤 곳이라는 것을 제가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아볼로가 갖고 있는 세 가지 배경, 학문적인 배경과 신앙적인 배경, 그리고 그의 기독교 적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그는 학문적으로 수사학이나 철학이나 논리학, 이런 것들을 배운 당대의 학자였던 사람입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조금 교만한 점이 없지 않지요! 이 사람들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학문을 섭렵한 당대의 지식인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 사람은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당대 최고의 학문과 함께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아주 철저한 신앙교육과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훈련을 받고 공부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똑똑한 구약성경을 공부한 사람은 구약성경 속에 나타난 메시야 하나님,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구약성경을 통해 메시야를 예언했지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구약을 공부하면서 성경에 능통했다는 말이 그 말 아닙니까? 거기에 메시야가 누구고, 어디에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들 공부하던 중에,

세 번째, 마가를 통해 전달된 기독교 복음 예수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것이지요! 세상의 학문적으로도 뛰어났고 구약성경을 철저하게 연구했고 구약에 나타난 메시야 사상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메시야에 관한 복음을 들어서 예수님을 믿게 되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완벽했습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25절) 

이 기독교 복음을 접하고 난 다음에 에베소 지역 회당에서 복음을 증언하는데 너무너무 복음을 잘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부족함, 세례요한의 세례만 알지, 성령이 이곳 땅에 임한 성령 세례에 관한 내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이 사람을 데려다가 가르칩니다. 

그러면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구약성경에 보면, 세례 받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뭐라고 베풀었냐 하면, 너희가 죄를 지었느냐? 회개하라 그런데 내 뒤에 오시는 분,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도 위대한 분이시기 때문에 나는 그의 신을 풀을 수도 없을 정도로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 분이 오시면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리라.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아볼로는 세례요한의 세례까지만 알았지, 그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시고 난 다음에 승천하시고 보내주신 성령이 주시는 성령세례에 관해서는 이 사람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강단에 올라가 설교는 하지만, 예수님에게까지만 증거를 하지, 예수님 이후에 보내주신 성령의 능력과 사역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활동하신, 그래서 하나님은 세 위를 가지고 계신 한 분이라는 그런 사실이 성경에 여러 차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 이전에는 성부 하나님의 시대였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시는 동안에는 성자 예수님의 시대였고,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 보내주신 성령은 그 이후로부터 보혜사 성령의 시대, 그러니까 지금은 성령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볼로가 알고 있는 것은 예수님까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아볼로는 반드시 세례요한의 그것을 뛰어 넘어서 성령세례, 성령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알고 난 다음에 설교를 했어야 했습니다.

교회 안에 많은 교인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교인들이 예수님까지만 압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된 것, 여기까지는 압니다. 기독교인이어요. 구원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 이 성령을 경험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하는 반쪽 교인들이 현재 교회 안에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내가 너희들에게 보내드린 성령을 너희들이 받으리라. 그 성령이 너희에게 오게 되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회개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그가 너희들에게 가르치리라. 그리고 성령이 임하게 되면, 너희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지금은 성령시대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교회 안에 이 성령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성령이 뭔지 성령님이 누군지, 이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 믿는 것으로만 족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아볼로와 같은 사람이지요.

왜 성령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령은 이미 여러분과 제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성령님의 능력과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우리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성령님 이십니다. 이 성령님을 경험해야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 구원이 뭔지, 회개가 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지금 우리는 성령을 받았고 성령님을 모시고 있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성령세례를 또 받아야 되느냐? 라는 것이지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것과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세례를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고백했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이것을 성령님이 내주하신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시는 이 성령님은 인격으로 존재하십니다. 이 말은 성령님은 지.정.의를 가지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21명의 우리 교우들이 중국 단기선교를 갑니다. 다른 나라보다도 중국 단기선교는 쉽지가 않습니다. 음식도 그렇고 잠자리도 그렇고 다니는 길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중국선교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늘 중국선교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세계 선교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하고 헌금도 하고 후원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서 “이번에 중국선교 가면 어떠냐? 중국선교가 의미 있다고 하는데” 중국에 13억 인구 가운데 1억 5천만 명 가량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하지요? “중국 한 번 가면 어떻겠느냐?” 라고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자꾸만 이야기 하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러분이 그 성령이 하시는 소리를 듣고 난 다음에 “아, 안돼, 바쁘고, 중국 선교가 그렇게 어렵다는데, 돈도 없고. 나중에 시간 있으면 중국 선교 가지!” 이렇게 여러분이 성령이 하시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그걸 자꾸만 억제하고 무시한다고 하면, 여러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야기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도전했고, 여러분에게 어떤 권면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억누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교회에서 성경공부 등 훈련 프로그램이 많은데 제자훈련 한 번 받아보면 어떻겠느냐? 네가 말씀에 입각한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성령이 내 안에서 제자 훈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 난 다음에 판단하기를, 제자훈련을 받으려면 1년 동안 묶여야 하는데, 또 외워야 하고 공부 많이 해야 하는데 바빠서 제자훈련 못해. 

그래서 여러분이 성령이 제자훈련을 하라는데 듣고도 무시하고 듣지 않는다고 하면, 또 다시 여러분이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헌금에 관한 것도 그렇고 봉사하는 것도 그렇고 끊임없이 성령은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서 지,정,의 전 인격을 통해 말씀하시고 권면하십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무시하고 듣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저 구석에서 쪼그리고 슬퍼하시고 상처를 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에 있지만 전혀 성령의 아무런 역할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았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냐 하면, 이 성령이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성령님이 뭐라고 이야기 할 때마다 아멘, 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도와주세요.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성령님이 요청하실 때마다 예! 예! 하겠습니다. 아멘으로 화답하게 되면, 우리 안에 인격으로 계신 성령님이 상처를 받지 않고 기뻐하셔서 끊임없이 일을 만드시고 도와주시고 격려하시고 힘으로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령충만 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부흥회 한다고 해서 은혜 받았다고 성령 충만 해 지는 것이 아니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 받아 성령 충만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평상시 아무 때나 말씀하시고 그 성령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할 때,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알고 믿는 것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 밖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하시는 세 가지 역할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 번째,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나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십니다. 

네가 죄인이야. 너는 이것이 부족하고 이게 문제고, 그리고 네가 가야할 방향은 무엇이고, 이런 것을 다 가르쳐 주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아니면, 나는 내 죄가 뭔지,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두 번째, 성령이 임하게 되면, 능력을 받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초대교회를 세운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세우셨나요? 예수님이 세우셨습니까?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세웠나요? 아닙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성령님 혼자 하셨나요? 아닙니다. 성령님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무서워 떨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자 이 사람들은 가슴을 열고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가 그리스도가 강하게 전도할 수 있었던 능력! 어디서 왔나요? 성령 받고 난 다음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 받으니까 나가서 담대하게 전도했지요. 병자들에게 손을 대고 기도만 해도 병자들이 낳았습니다. 방언을 했지요. 예언을 했습니다. 죽은 자도 살렸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 번째, 성령 받아야 성령의 아홉 가지 인격적인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온유와 절제와 충성과 자비와 양선, 이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는 다 인격으로 계시는 성령님을 경험할 때, 사랑할 수 있고 참을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기다리고 절제할 수 있습니다. 성령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요즘 현대 기독교인 가운데 80~90%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성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 하면,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27절)

은혜라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 적용 할 수 있는 거냐 하면, 은혜는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 성령 받은 사람에게 은혜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볼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성령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은혜가 무엇인지 몰랐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성령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난 다음에 오늘 본문에 보면, 은혜가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남들에게도 유익을 끼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더라고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저희 어릴 적에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광에서 인심 나는 법이다. 그러니까 네 마음을 넓게 하고 마음에 모든 것들을 채워야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한자성어 가운데 성중형외(誠中形外)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성스럽고 귀중하고 좋은 것들이 담겨 있으면 그 형태가 바깥으로 들어난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심령 속에, 영혼 속에 은혜가 넘치는 사람은 바깥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영혼 속에 은혜가 넘치는 사람은 얼굴 표정이 다릅니다. 이 사람은 입을 열면, 은혜의 말, 감격하는 말, 칭찬하는 말, 격려하는 말, 사랑하는 말, 용서하는 말이 나오지요. 왜냐하면, 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다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마음속에 은혜가 없는 사람, 심령이 메말라 있는 사람, 빡빡한 사람, 은혜가 없는 사람, 이 사람을 채우고 있는 것은 뭘까요? 은혜가 없으면, 인간적인 게, 세상적인 것이 채워지겠지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말만하면 싸우고 트집 잡고 불평하고 비난합니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과 은혜가 없는 사람은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볼로가 아가야 지방에 가서 많은 사람에게 그가 경험한 은혜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많을 때, 그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이 은혜가 있습니까? 은혜가 있는 사람만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볼로는 교회 지도자가 되지요? 사도바울이 아볼로를 이야기 할 때 뭐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노라”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볼로는 위대한 학자이면서 성령 받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는데 아볼로는 교회를 분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볼로를 이야기 할 때, 사도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했지요? 너희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언제 우리가 교회를 나눴느냐? 그리스도가 나누어졌느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정도로 아볼로는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를 봐도 아볼로는 파를 만들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서 마지막 부분에서 아볼로를 자기의 믿음의 동역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성령 받을 때, 진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 받을 때, 진짜 교회 유익이 될 수 있고요. 성령을 경험해야 진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볼로는 고린도에 가서 목회를 하면서 고린도교회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학자였던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서 말씀의 훈련을 받는 겸손한 사람이었고요.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사람이었고 그는 마음과 가슴 속에 은혜를 가지고 있던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우리 모두가 아볼로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많은 사람에게 교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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