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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이면 (행 18: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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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이면 (행 18:18-23) 
 
만약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는데요, 어떤 경우에는 저 남자가, 저 여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상대방의 마음과 뜻을 잘 몰라서 실수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행동하면 살면서 별로 충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상대방의 뜻을 잘 모르니까 실수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수도 없이 많은 인생의 결정을 합니다. 또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선택과 결정이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좋아하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계획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간의 선택과 인간의 뜻,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말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과는 정 반대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보통 갈등이 생기고 충돌이 생기고 파열음이 생기고 싸움이 생기는 것,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는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뜻들이 앞장서게 될 때 이런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충돌이 없습니다. 아름답고 선하고 좋은 결과만이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자녀들이 부모님이 원하고 바라는 뜻이 뭔가를 정확하게 알면, 자녀들의 삶이 아름답지요!

얼마 전에 TV를 잠깐 보니까 ROTC 여자 대학생들이 훈련받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남자들도 받기 힘든 훈련인데 여자들이 받고 있어서 인터뷰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 물으니까, 그 ROTC 여대생이 하는 말이 제가 여기서 포기하는 것은 부모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더라고요. 부모님이 원하는 뜻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으니까, 훈련을 잘 받고 수료해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여자 군인이 되는 것! 이것이 부모님이 원하는 뜻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자녀들이 이 세상에 나가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자기가 원하는 편한 삶만을 사는 것! 이런 것을 부모님이 원하지는 않지요. 부모님은 강하고 능력 있고 또 부모를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것, 이것은 부모님들의 뜻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우리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이런 것들을 찾아서 분명히 인식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전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자기 개인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개입하실 방법이 없으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인간의 삶은 어디로 갑니까? 부모님의 뜻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는 자녀의 삶이 올바로 되나요? 그렇지 않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하고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아름다워질 수가 없습니다. 고난의 연속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자꾸만 육체가 아프고 사업이 안 되고 삶의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갈등 관계가 유발되고 그리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든 문제에 아픔이 온다고 하면, 우리는 한 번 우리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내가 사는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에 내 인간적인 생각과 욕망과 내 뜻에 따라 살아온 것이 아닌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인간의 뜻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가져 오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사도바울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저희들이 보게 됩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설명해 드립니다. 

사도바울이 1년 6개월 동안의 고린도 사역을 이제 마감하고 이제 고국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그동안에 있던 2차 전도여행을 보고하려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사도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은 로마의 재판을 받으러 가서 그곳에서 연금 가택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증언했던, 그래서 로마여행과 1,2,3차 여행, 이것을 합해서 약 30여년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사도바울의 두 번째 전도여행을 마감하고 그곳에서 보고를 하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1년 6개월 동안 사도바울은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제 1년 6개월을 마치고 고린도에 있는 목회했던 그 교회 교인에게 고린도교회를 맡기고 사도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데리고 이제 에베소에 도착합니다.

에베소에는 왜 도착하게 되었냐 하면, 사도바울이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만약에 예루살렘까지 가려면 한 번에 배가 가지 않았고 철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중간 귀착지인 에베소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거나 아니면 그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동행을 하게 됩니다. 

이제 에베소에 도착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전에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천막 만드는 직업을 계속해서 하면서 복음을 증언하게 하고, 사도바울은 회당에서 복음을 증언합니다.

그런데 고린도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 사도바울이 복음을 처음 증언했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환영을 했고 그리고 더 머물면서 복음을 전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 사도바울도 그곳에 남아서 복음을 더 전하는 것을 원했지만, 사도바울은 그곳을 떠나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더 머물러 달라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작별인사를 하면서 뭐라고 이야기 하냐 하면, 만약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이곳에 다시 오리라. 그래서 그때 여러분들이 요청하는 데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남겨놓고 혼자 가이사랴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곳에 있는 예수님의 11제자가 목회하는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해 2차 전도여행보고를 하고 그리고 자기를 파송한 안디옥교회로 내려가서 거기서 보고하고 몇 개월 쉬었다가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사도바울이 그곳에 있는 유대 사람들에게 한 말, 당신들이 내가 여기 더 머물러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지만, 지금 내가 머무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지금은 내가 갔다가 나중에 하나님이 이곳에 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때 이곳에 다시 와서 여러분에게 복음을 증언하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면서 자기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 앞서서 사도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까지 동행을 하고 그곳에서 목회를 하도록 부탁을 하는 이 장면을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 동안에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잠깐 보았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로마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이나 다른 예수님의 제자들이 로마에서 복음을 증언하기 전에 이미 예수님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와서 베드로 사도나 여러 사도를 통해 복음의 능력을, 성령의 능력을 경험했던 로마사람들이 자기네 고국 로마로 돌아가 신앙생활을 하게 되자 거기에 기독교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그렇게 해서 복음을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람들은 로마에 있는 동안에 이미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6장 19절에서 뭐라고 이 두 부부를 언급 하냐 하면, 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로마에 있는 동안에 자기네 집에서 아마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 처소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그렇게 잘 하다가 글라우디아 황제 칙령에 따라 추방당해 고린도에 오게 되었고 여기서 바울을 만났고 1년 6개월을 함께 동역하다가 이제 에베소에 오게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3차 전도여행 중에 다시 에베소에 올 때까지 성경은 약 5년 가까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이 에베소를 담당했고 여기서 목회를 했던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는 이곳에서 5년간 목회를 하다가 사도바울이 이곳에 오게 되고, 이제 그 칙령이 끝나서 다시 로마로 돌아가게 됩니다. 로마로 돌아가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다시 에베소에 오게 됩니다.

우리는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약 20여년 넘게 사도바울과 관계를 맺으면서 동역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보게 되는데요. 성경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이름이 일곱 번 등장합니다. 그런데 매번 등장할 때마다 사도바울은 이 부부를 칭찬하고 격려해 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칭찬을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사도바울에게 이 부부는 도대체 어떤 존재였는가!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이 두 부부는 헌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부부였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헌신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헌신은 희생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희생하지 않았다는 말은 헌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생! 말 그대로 자기의 삶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에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그 희생 제사는 인간이 범죄한 것을 인간이 죽어 마땅한데 그런데 그 대신 양이나 염소나 제물이 대신 죽을 때 그것을 희생제물이라고 했습니다. 희생은 헌신과 똑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1년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사역을 하면서 무엇을 깨달았냐 하면, 주를 향한 열정과 믿음의 생활을 통해서 이 사람들이 희생과 헌신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 부부를 만났을 때, 고린도에는 교회라는 건물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이 부부를 만났을 때, 어디에서 사람들이 만나서 예배를 드렸을까요? 그것이 다른 게 아니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자기들의 집을 교회로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내어 주고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다는 것, 쉬운 일인가요?

교회가 이루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립니다. 예배드리고 음식을 먹게 되고 기도회를 하게 되고 성경을 읽게 되고 얼마나 그 집이 복잡해지게 되겠습니까? 개인 생활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자기네 집을 교회로 제공하게 됩니다. 그것은 희생이 있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천막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은 생계수단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천막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서 천막 짓는 일을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부부가 이런 희생과 헌신으로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 감동이 됐습니다.

로마서 16:3에서 이 부부를 또다시 이렇게 언급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노라.” 

어느 단체라도 성장하고 발전하고 진보하기 위해서는 희생하는 몇 몇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발전과 에베소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바로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능곡교회에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여러분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헌신된 일꾼이 될 때, 하나님의 나라는 더 아름답게 확장될 줄로 믿습니다. 

집을 교회로 개방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가정이 마치 하나님의 교회처럼 사람들이 여러분의 집을 방문해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음식을 나누고 성도간의 교제가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축복 받은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년이 다 가도록 교인 한 번 집에 오지 않고 교인들과 함께 예배드린 적이 없고 교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눈 적도 없고, 교인들과 함께 기도회를 가져본 적도 없다. 그러면, 그 집은 식구들끼리 먹고 자는 공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육 간에 쉼을 나누라고 주기도 하셨지만,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그런 하나님의 집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아름다운 행동은 바로 이렇게 집을 개방하여 하나님의 예배의 장소로 바칠 수 있었던 아름다운 믿음. 사도바울은 거기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함께 주님의 일을 할 줄 아는 아름다운 부부였습니다.

간혹 보면, 아내가 열심히 교회를 나옵니다. 남편은 일년에 서너번,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나오기도 하고요. 어떤 경우는 또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남편은 열심히 나오는데 아내는 교회를 안 나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을 볼 때마다 제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마차의 두 바퀴와도 같이 아내와 남편이 함께 신앙생활을 할 때 믿음이 성장하고 오래오래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차의 바퀴가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다고 한다면 이 바퀴가 어디로 갈까요? 큰 쪽으로 돌지 않습니다. 작은 쪽으로 뱅뱅뱅 돌게 되어있습니다. 

옛날에 두레박으로 물을 길렀지요? 이 두레박은 통나무가 아니었고요, 나무를 잘라 이어서 두레박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두레박이 아무리 깊고 좋아도 나무 한 쪽이 잘라져 있거나 중간에 틈이 있으면 물을 받을 수 있는 양은 그 잘라진 쪽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운동회 날, 두 사람이 발을 묶고 반환점을 돌아오는 게임을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이 보조를 맞춰 뛰게 되면, 같이 반환점을 잘 돌아오게 되지만, 한 사람은 빨리 뛰게 되고 한 사람은 늦게 뛰면, 잘 못 뜁니다. 보조가 맞아야 되지요.

성경에 유일하게 부부의 이름이 아름답게 일곱 번이나 등장한 경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부부의 이름들이 나오지요? 그런데 좋게 나오는 부부의 이름 보다 나쁘게 나오는 부부의 이름이 많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매 번 나올 때마다 아름답게 나옵니다.

다음 주에 보겠지만, 사도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고 난 다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할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내려온 아볼로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압니다. 그런데 부부가 가만히 보니까 아볼로라는 사람이 예수님에 관한 내용을 부분적으로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이 부부가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나중에 이 아볼로가 아주 위대한 지도자가 되고 사도바울이 고린도에서 1대 목회자였는데, 그 뒤를 이어 실라, 그리고 나중에 아볼로가 고린도교회의 3대 목회자가 됩니다. 그 사람을 데려다가 가르쳐준 부부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였습니다.

남편이 헌금생활을 잘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아내는 남편을 이해 못합니다. 그러니까 집안에서 헌금 문제 때문에 싸우지요? 아내가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출석합니다. 남편이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매일 교회 가서 산다. 이런 불평을 합니다. 부부가 함께 훈련받고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되면,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요,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부부의 모습을 보고 감동이 되었지요. 우리 능곡교회에 많은 가정이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믿음의 경지를 함께 이루게 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아름답게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이 부부는 동역자 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전도여행을 다닐 때나, 아니면 한 곳에 머물러 목회할 때도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곁에는 늘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에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있었고 에베소에서는 실라가 있었고 사도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간에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 동역자가 필요할까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혼자 보내서 3년 반 동안 공생애를 하시는 동안에 예수님 혼자 솔로 미니스트리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단독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사람들을 보낼 때부터 남자와 여자로 보냈고, 남편과 아내로 보냈고, 왕과 백성으로 보냈고요, 모든 것을 관계를 통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예수님을 홀로 사역하게 하지 않으시고 12명의 제자를 보내 주셨고, 그 열 두명도 또 둘씩 팀을 이루어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늘 동역자를 만들었는데요, 바로 이 부부가 사도바울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동역자였습니다.

사도바울 주변에는 동역 역할을 잘 하다가 세상이 좋아서 세상으로 가버린 도마라는 제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 주변에 있던 많은 제자들은 모두가 다 끝까지 사도바울과 함께 사역을 아름답게 감당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계에 많은 교회가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능곡교회에 많은 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저와 장로님 저와 부목사님, 저와 권사님, 저와 집사님, 저와 우리 교회학교 교사들, 함께 동역을 하고 함께 힘을 모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더 빨리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 팀이라는 단어가 있지요? 'Team' 한 팀을 이룬다. 혼자 일 할 수 없으니까 몇 몇 사람이 팀을 이루지요. 그런데 이 팀이라는 영어 단어를 이렇게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T! Together 함께라면, E! Everyone 모든 사람 각자는, A! Achive 얻을 수 있습니다. 성취할 수 있습니다. M! More 더 많이요. 이 말을 합해 보면, 이 말은 모든 사람 각자는 함께 일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운동경기가 그렇고요. 직장도 그렇고, 모든 연구도 혼자 하는 것 보다 함께 힘을 모으면 아름답게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하게 되면, 더 효과적이고요, 교회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과 뜻과 생각만 하나로 묶게 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흩어지게 되면, 발전이 없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가 진보와 보수, 무슨 종북 친미 이런 많은 이념의 갈등을 보면서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것 때문에 고통당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사도바울 주변에 있던 많은 동역자들 때문에 사도바울이 30여년 가까이 있던 전도여행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처럼 우리 믿음의 삶에도 여러분들 주변에 이런 믿음의 동역자들이 많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믿음의 동역자들이 왜 필요하냐하면, 신앙생활을 하시는 동안에 여러분들이 고통 당할 수 있는데 그때 여러분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줄 수 있는 동역자들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를 10년, 20년 다녔는데도 내가 아팠는데도 누구하나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당신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 라고 하는 기도의 후원자가 한 명도 없다고 한다면, 신앙생활 헛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내가 아플 때 누군가에게 기도를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가 나를 위해 새벽마다 기도해 줄 수 있고 또 그가 아프고 힘들 때, 내가 그를 위해 중보라도 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관계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다락방에서 다락방 순원들과 함께 그런 아름다운 기도 후원자, 동역자 관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 여러분 각자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기도의 동역자, 믿음의 동역자 함께 믿음생활 할 수 있는 동역자가 다섯 사람씩은 만드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그들의 도움으로 힘들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남겨놓고 이제 사도바울이 고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그곳에 있는 에베소 사람들의 이런 청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다시 돌아오리라. 고 말합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조금 의아했습니다. 아니, 다른 지역처럼 사도바울을 반대하는 것도 아닌데, 백성들이 더 머물면서 복음을 전해 달라고 하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그러면 남아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나을 텐데, 왜 사도바울은 나중에 하나님이 뜻이라면 다시 오겠다고 하며 떠나는 것일까?

가만히 기도해 보면,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을 자기 계획대로 하는 것 보다 더 우선시 했습니다. 

믿음생활 하면서 왜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냐 하면, 우리가 기도하면서 응답을 받지 못하냐 하면은요, 내 뜻을 내 생각을 내 계획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보다 더 우선 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원하고 계획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모르니까 끊임없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게 되는데, 하나님께 묻지 않으니까,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계획대로 하니까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방법이 없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내 뜻이나 내 생각이나 내 계획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형통해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형통이라고 하지 우리의 뜻과 우리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형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이 내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에게 형통의 길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와 하나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안전하기도 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있고, 유대인들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는 여기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천막을 치고 여기에서 교회하고 목회하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뭔가요? 하나님의 뜻은 사도바울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바울이 오랫동안 해외에 나가 전도여행을 선교여행을 하고 어떻게 그곳에서 아름다운 교회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소식을 듣고 싶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곳에 가서 세계에 흩어져 있는 많은 이방인 교회가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복음을 증언했는데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고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곳에서 목회를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계에 있는 모든 이방인 교회를 위해 기도하자고 예루살렘교회와 자기를 파송한 안디옥교회에 가서 선교보고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하나님이 동행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계획대로 하니까 자꾸만 문제가 발생하고 갈등이 생기고 실패와 좌절이, 넘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에 어려움을 겪고 고통을 당하시면 하나님께 물으셔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있으면 제거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실 때,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다시 오리라. 하고 여기를 떠납니다. 떠나서 예루살렘에 가서 상황보고를 하고 교회보고를 하고, 안디옥교회에 가서 보고를 한 다음에 몇 개월 쉬었다가 이제 다시 3차 전도여행을 하러 떠납니다. 그때 사도바울은 이곳에 다시 오게 됩니다. 몇 년 후에 오게 되지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3년 동안 목회를 합니다. 하나님은 몇 년 후에 다시 이곳에 사도바울을 보냈지요. 사도바울은 몇 년 후에 올지 안 올지 몰랐지만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교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가 자녀들과 함께 기도할 때도 부모님의 뜻을 이야기하기보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 하고 구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우리들의 자녀들이 앞으로 살면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찾는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갖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여러분이 되셔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동행하셔서 아름다운 기적을 연출해 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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