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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창 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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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창 3:6-11)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 3: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어느 교회에 장로님 한 분이 늘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일에 대한 불평입니다. 좀 어려울 때마다, 좀 힘들 때마다 '그 할아버지 할머니는 왜 그 선악과를 따먹어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고생을 시키나.  선악과를 안 따먹으면 지금까지 우리가 쫓겨나지 않고 그 에덴 동산에 살았을텐데.. 그러면 농사도 하지 않고, 병들지도 않고 편하게 잘 살 수 있었을텐데  .' 늘 이렇게 원망을 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댁에서 이 장로님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음식을 잘 차려놓고 식사 기도를 하고 막 식사를 하려는데 밖에서 손님이 찾는다고  목사님이 나가시면서 하는 말씀이, "자 우리 기도도 다 했으니깐 식사를 먼저 하십시오.  

그런데 여기 가운데 뚜껑 닫아 놓은 건 그대로 두세요. 제가 나갔다 와서 열어 보이겠습니다. 그 동안 다른 것만 잡수십시오."  식사하는데 이 장로님이  궁금해 못 견디겠거든요. '저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얼마나 귀한게 들었으면 목사님이 우리가 다 먹어버릴까봐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을까?'  도저히 못참겠어서 살짝 열어 보는데 그 속에 새 한 마리가 "푸르륵" 하고 날아올랐습니다.  

목사님 들어오시기 전에 잡아서 다시 집어넣으려고 이리 저리 쫓아 다니는데 잡을 수가 없어요. 맛있는 식사는 뒷전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쫓아다니는데 목사님이 들어 왔습니다.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니 여기 음식이 이렇게 많은데 하필이면 그것을 열어 보았습니까?" "장로님도 아담과 별반 다르지 않군요!"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거기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말씀하십니다.

1. 하나님은 거기에 계십니다.(8) 
  
거기가 어디입니까?  하늘나라? 에덴 동산? 거기는 바로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에덴 동산이었습니다.  에덴 동산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사는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만난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사는 에덴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고 죄를 지은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같아지고 싶어 지나친 욕심에 눈이 어두어가던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정욕과 탐욕과 명예욕에 눈이 어두어져 분별력이 흐려져 어리석은 행동을 한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수치스러움을 발견하고 어쩔줄 몰라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죄를 짓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바로 그자리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함께 계셨습니다.  
  
문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거기 계심을 알고 있었다면 불순종할 수 잇었을까요? 유혹을 받을 때 흔들렸을까요?  선뜻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에 손을 댈 수 잇었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계심을 확신하였다면 달콤한 말로 속삭이는 뱀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충실하게 지켰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깨뜨리려고 뱀의 형상으로 다가온 사단을 멀리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직장에, 여러분의 사업장에,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여러분이 가족과 함께 지내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여러분이 부부싸움하는 거기에,  여러분이 짜증을 내며 욕설을 뱉는 그 자리에, 여러분이 온갖 유혹을 받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가만히 내려다보십니다. 
  
'주님, 유혹을 제힘으로 이기기에 너무 벅찹니다. 도와 주십시오.' 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주님, 혼란스러운데 어떻게 할까요? 지혜를 주십시오.' 하고 우리가 먼저  묻기를 기다리십니다.   문제를 만들어 놓고 우리 힘으로 도무지 수습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게 되어 쩔쩔 매는 상황에서라도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정직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거기 계심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끝까지 거기 계신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거기 계신 하나님께 정직하게 문제를 들고 가지 않았습니다. 도우심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탁월한 지혜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많은 제자가 모여들었고 스승의 눈에 띄기를 바라며 정말 열심으로 배워갔습니다. 그런데 스승은 이상하게 그 제자들 중에 가장 바보스러운 한 청년을 유달리 사랑하였습니다. 그 제자에게는 유능하거나 자기들보다 뛰어난 그 어떤 부분도 찾아볼 수 없는데도 그렇게 사랑해 주는 스승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모두 모여 항의를 하며 그 청년보다 우리가 못난 것이 무엇이기에 그만 유달리 사랑하시는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스승은 조용히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문제를 하나 내겠다. 그 문제를 맞추면 그 이유를 설명해주겠다."
그리고는 한 문제를 냈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으로 가서 새를 한 마리 잡아오너라. 그리고 해지기 전에 돌아오너라."
  
모든 제자들은 문제가 너무 쉽다고 생각하고 각자 새를 잡을 도구를 들고 산으로 숲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는 해가 지기도 전에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새를 한 마리씩 잡아 하나 둘 스승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해가 완전히 졌는데도 바보 제자는 돌아 오지 않자 다른 제자들 사이에서는 기쁨의 술렁거림이 일었습니다.  "이제야 우리가 스승의 사랑을 독차지하겠군!"  "그 바보는 날이 새도 못 잡을 거야. 이제야 스승님이 우리의 능력을 인정해 주시겠군!"
  
이런 수군거림을 뚫고 바보 제자가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의 손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스승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새를 잡았느냐?" "아닙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새를 잡으라 하셔서 산으로 들로 숲으로 해가 지는 어둠 속으로 다녔으나 하나님이 안 계신 곳, 안 보는 곳이 없으므로 그냥 왔습니다." 제자들은 그제서야 왜 이 제자가 유달리 사랑을 받는지 이유를 알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거기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까?  거기 계신 하나님을 의뢰하십니까?  거기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거기 계신 하나님과 가족처럼 대화하며 사랑을 풍성케하며 사십니까?  날마다 거기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도우심을 구하며 인도를 받습니까?  하나님은 항상 거기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머무는 그 자리에서 여러분을 말없이 바라보고 계십니다. 여러분 날마다 거기계시는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9) 
  
하나님은 거기 계시며 다 보고 계시다가 아담과 하와가 계속 잘못된 길로 나아가자 기다리다 못해 다가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장승처럼 묵묵히 서서 보고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충분히 기다려도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길로 나아가면 다가와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벙어리처럼 아무 말씀도 못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중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생각도 안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말씀을 통하여 다루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그들을 향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얼마나 자주 말씀하시며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납니까?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얼마나 진지하게 회개하며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얼마나 감격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얼마나 여러분의 인생을 수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중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옛날에 성경속에 나오는 특별한 인물들에게나 간혹 있는 일이지 현대에 하나님이 다가오셔서 말씀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설마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개인적인 문제까지 간섭하시며 말씀하실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이나 아브라함이나 사무엘이나 바울같은 특별한 이들에게만 말씀하시지 않고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다가와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현대인에게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을 성경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영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통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통해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말씀하시기도 하고 성경을 읽으며 묵상할 때에 말슴하시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말씀하시기도 하며, 생활중에 말씀하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말슴하십니다.  들을려고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심령이 찌렁 찌렁 울리도록 크게 말씀하십니다. 의심이 떠나가도록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고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자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즉각적이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귀를 막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각각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갑니다.  자기 생각에는 좋아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고 하나님과 거리가 먼 신앙을 가지고 자기 목청만 높입니다.  자기만 잘 믿는 줄 알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그렇게 믿어서는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하나님께 칭찬 받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기록된 말슴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 숨었는지 몰라 위치를 묻습니까?  죄를 짓고 제 자리를 벗어난 아담에게 너의 영적인 위치가 지금 어디냐?고 깨우치시는 음성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벗어나 도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담으로 하여금 자신의 참 모습을 깨닫도록 부드럽게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리 나와서 나와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자는 말씀입니다.

이정도 되면 얼른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불순종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어떻게하면 좋습니까? 하고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꾸만 엉뚱한 소리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숨었나이다."  이걸 보고 사자성어로 뭐라고 합니까?  동문서답.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내가 먹지 말라고 명한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묻습니까? 아닙니다. 아담이 직접 고백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하자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지적하십니다. '너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지?' 하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 자꾸 엉뚱한 소리하지 마라 내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네 입으로 고백하여야 치유될 수 있다. 더 이상 도망다닐 생각말고 자복하라고 부드럽게 권면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쯤되면 할 말이 뭐가 있습니까?  그러나 아담은 정직하게 문제를 바라보고 인정하며 엎드려야 하는데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함께 사는 여자가 주므로 먹었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먹기는 먹었지만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와가 더 잘못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여자가 불량품이라 죄를 지었다.' 는 겁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 쉽게 해결될 것을 변명하고 핑계하고 원망하니까 더 꼬이는 겁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하나님앞에 솔직히 인정하면 불쌍히 여김을 받고 용서받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변명하려고만 하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왜? 회개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꼬이고 있습니까? 정직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발뺌을 합니다.  교회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서로 탓을 합니다.   남의 잘못을 들추어내며 자기의 잘못을 축소하려고 합니다.  그런 자세를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긍휼을 맛볼 수 없습니다.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따라합시다. [전적으로 내 탓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용서의 길을 열어주시고 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진리의 길을 보여주시고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일 날 하루 쯤 예배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을까? 하고는 교회를 빼 먹고 등산을 갔답니다. 산에서 그만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발을 잘못디뎌 절벽으로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다가는 어찌어찌하여 나뭇가지를 붙잡고 구사일생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휴하는 안도의 한숨도 잠시 날은 어둡고 손에 힘은 빠져가고 꼼짝없이 죽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아! 오늘 교회 빼먹고 등산와서 이런 벌을 받나보다 생각하고 울며 간절히 회개하고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위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김집사야!"  깜짝 놀라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다."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  
"그럼,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손을 놓아라."  
"예?" "네가 나를 믿는다면 그 손을 놓아라."  

그러자 이 사람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거기 하나님말고 다른 사람없어요?" 

우리는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담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옳고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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