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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기독교 핵심은 맥추절이다 (레 23: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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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핵심은 맥추절이다 (레 23:15-22)


맥추절을 안 지키는 교회가 점점 늘어 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타당한 것같이 들립니다. 

1. 농경사회의 유물을 도시화된 지금에 지키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
2. 구약의 유산을 신약시대까지 지킬 것은 없다.
3. 맥추절은 보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 데 내가 보리 농사를 하지 않으므로 나와 상관없다.

그러나 맥추절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없어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을 안 지키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알아보면서 진정한 성경적인 맥추절을 찾아 회복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7가지 절기를 공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도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23장이 절기장입니다. 레위기 23장을 우리는 절기장이라고 말합니다.

1.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2. 무교절은 그리스도와의 친교로 무교병을 먹는 절기입니다.
3.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4. 맥추절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임무교대입니다.
5. 나팔절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음입니다.
6. 속죄일은 그리스도인들의 죄사함입니다.
7. 초막절은 그리스도인들의 추수입니다.

이같이 레위기 23장의 7절기는 모두 그리스도의 생애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였음이라”(요5;46)
모세가 말한 것은 모두 주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모세가 말한 절기도 모두 예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와 맥추절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서기관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최고 성경 학자들입니다. 지금도 나는 서기관들을 만나면 성경 구절 아무 말씀을 주어도 즉석에서 30가지 이상의 해석을 달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유능한 서기관 3명만 산속에 가두면 성경을 베껴 가지고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 서기관이 예수님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모든 계명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막12;28)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 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나이다.”(막 10;29-31)

기독교의 가장 큰 계명,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1. 하나님 사랑
2. 이웃 사랑
3. 자기 사랑

맥추절은 바로 이 세 가지 사랑을 훈련하고 익히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1. 성회를 공포하라(21)

맥추절에 하여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회를 공포하고 하나님앞에 모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첫 번 할 일입니다.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날에 너희는 너희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 23;21)

맥추절에 우선 하여야 할 일은 모두가 한 곳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히브리어로 아바드입니다. 그런데 아바다는 섬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배입니다. 예배 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창조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구약은 성막에서 짐승피로 제사드리고, 신약은 교회에서 예수 피로 예배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모여서 18절에 번제를 드립니다. 19절에 속죄제를 드립니다. 번제는 알고 지은 죄를 사함받는 제사입니다. 속죄제는 모르고 지은 죄를 사함받는 제사입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모두 사함받는 제사를 드리는 성회를 갖게 됩니다.

맥추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보리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18절에 소제를 드린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소제는 동물 제사가 아니라 곡식 제사입니다. 첫 곡식 보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에는 정성된 예물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예물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분에게는 무엇인가 주고 주고 또 주고 싶어 합니다.

처음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자는 나머지 모든 열매들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첫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는 나머지 모든 자녀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청계천에서 옷 장사를 하는 권사님 한 분은 가게 문을 열고 첫 손님이 사가는 옷값은 몽땅 하나님께 첫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첫 손님이 와서 비싼 옷을 만지작거리면 가슴이 두근두근 하다가 싼 옷을 사면 은근히 즐거워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태도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알고 회개하였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첫 손님이 싼 옷을 사려고 하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갈 때 큰 축복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택시 운전기사는 택시를 끌고 나가서 첫 손님이 내는 물질이 첫 예물로 정하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이발사는 문을 열고 첫 손님이 내는 이발료는 언제나 첫 예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어느 사람은 매년 1월에 받는 월급은 봉투째 하나님께 첫 예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

옛날 어느 마을에 소가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농사짓는 집에서는 그 집에서 소를 배당하는 날 부지런히 논을 갈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믿음이 독실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를 배정받은 날이 하필이면 주일이었습니다. 그는 소 주인을 찾아가서 다른 집에 먼저 소를 빌려주고 그 집과 소 빌리는 날을 바꾸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하였습니다. 이제 선택을 하여야 했습니다.

예배를 그만 두고 논을 갈 것인가?
아니면 예배를 드리고 금년 농사는 포기할 것인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농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예수 믿더니 돌았나봐.”
결국 논을 갈지 못 하고 호미로 콩을 심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이 더욱 심하여졌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돌 수가 있을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뭄이 계속 되었습니다. 논의 모가 말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농부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끝내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논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습니다. 그 해 논 농사는 모두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콩농사는 풍작을 이루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고백하며 수많은 이들이 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맥추절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맥추절을 맞아 불일듯 일어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남겨두라(22)

하나님께서 맥추절에 하여야 할 일을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에 보리 추수하는 법칙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땅에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22절)
추수 때 모퉁이를 베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얼만큼 남기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미쉬나가 만들어졌습니다. 성경을 법칙으로 만든 책입니다. 그 곳에서는 10분의 1을 남겨두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첫 열매도 10분의 1을 베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객이 같이 먹고 살게 하는 아름다운 이웃 사랑의 절기였습니다.

나는 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슈퍼에 가면 채소를 사와도 10분의 1은 귀퉁이에 쌓아 둡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금방 없어질 것입니다. 아무나 가지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돈이 없는 이들이 가지고 갑니다. 서로 신뢰관계가 이어져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같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가난하였습니다. 대동법(大同法)이라는 토지 개혁법을 강행하였던 인조때 정승 김 육(金堉)이 빈부가 섞인 이상적인 마을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상적인 촌락 구조로 빈반부반(貧半富半)설을 주장하였습니다.

머슴을 둘 정도의 부농층이 10%, 
자급자족하는 중농층이 40%,
땅 한 때기 없는 품을 그날 그 날 팔아야 먹고 사는 영세층이 40%,
늙거나 병들거나 고아거나 과부거나 노농력도 없어 남이 돌보지 않으면 당장 죽는 피보호층이 10%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 사이에는 굶어 죽었다는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극심한 흉년이 와도 다같이 먹고 살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음과 같은 5가지 아름다운 풍습이 이스라엘처럼 우리 조상들에게도 있었습니다.

(1) 복곡(福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 몫으로 일정량의 곡식을 내어 이곡(利穀)을 놓습니다. 그리고 그 곡식으로 마을의 빈자, 행려병자, 노약자, 병약자들에게 베플면 그 베픈 것만큼 그 아이가 복을 받는다는고 믿고 살았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우리 조상들이었습니다.

(2) 마당쓸이

당장 먹을 양식이 떨어지면 마당 빗자루를 들고 새벽에 부잣집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그리고 청하지도 않은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고 집으로 가만히 돌아 옵니다. 주인이 일어나 누가 쓸었는 지를 조사하여 머슴으로 하여금 그 집에 며칠 먹을 양식을 보내주는 아름다운 관습이 마당쓸이입니다. 그 양식을 갚지 않아도 되는 양식이었습니다.

(3) 서덤

좀 넉넉한 집은 매일 밥을 지을 때 집안 식구수보다 3명 쯤의 밥을 더 해 두는 습관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가난한 사람이 찾아 올 것을 대비하고 사는 아름다운 습관이 서덤입니다.

(4) 산나물서리

옛날의 보리고개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픔을 참아야 했습니다. 이 때 산촌의 여인들은 산나물을 한 광주리 캐어 머리에 이고 잘 사는 집으로 들어 갑니다. 그리고 장독대로 가서 그 산나물을 내려놓고 필요한 간장 된장 고추장등의 부식을 말도 없이 퍼갔던 습관입니다. 그래도 그를 도둑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5) 내장 나누기

명절때면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돼지나 소를 공동으로 잡아 나누었습니다. 이 때 살고기는 나누어 가지지만 내장은 마을의 가난한 노인 고아들에게 나누어 주어 온 마을이 명절을 지냈습니다. 
이같은 아름다운 풍습이 우리 민족에게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밭모퉁이나 이삭을 일부러 남겨놓은 아름다운 사랑의 계절이었습니다.
이같이 맥추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사장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년중 가장 사랑을 불태우는 사랑의 절기입니다.

이같이 맥추절은 이웃 사랑을 사랑하는 절기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합니다. 다같이 잘 살자는 절기, 하나님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우리도 맥추절을 맞아 이웃 사랑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도 여러분이 드린 맥추 감사절 헌금의 10분의 1을 그늘 진 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였는 지 사회봉사부에서 보고드릴 것입니다. 보람있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대로 실천할 것입니다.

3. 노동도 하지 말지라(21)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날에 너희는 너희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 23;21)

노동도 하지 말라는 말은 노동만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지 말고 안식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안식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사랑 그리고 자기 사랑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자기 사랑입니다. 맥추절의 핵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를 즐겁고 평안하게 하는 날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날이 맥추절입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랑의 근본은 자기 사랑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온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맥추절, 오순절, 칠칠절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할 때 그 날이 바로 맥추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날 성령님이 이 땅에 임하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랑이 가득한 사람에게 주님은 성령을 주셔서 성령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힘을 할 수 없는 것을 성령님은 가능하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철 스님은 온 국민이 성자처럼 생각하는 분입니다.
더구나 불교계에서는 성자중에 성자입니다. 20년 가량을 산속에 살면서 세상으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10년 동안을 앉아서 잤습니다. 30년 동안 옷 한 벌로 살았습니다. 수천번 기워서 입었습니다. 고행과 검소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죽기 직전 54년만에 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잘못 살았다. 나는 지옥으로 간다. 내가 지은 죄가 수미산보다 높다. 이렇게 많은 죄를 해결하지 못 하여 아비규환 지옥으로 간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전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산입니다. 130만 km입니다. 지구 한 바퀴가 4만 km입니다. 그렇게 평생 고행을 한 분이 지옥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불교에서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가요?

구원이 없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피가 없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진실로 은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기에 우리는 수미산의 100배가 되는 죄를 지었다고 할 지라도 죄사함받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달 나라에 도저히 갈 수 없습니다.
수영으로 미국까지 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전거도 일본까지 갈 수 없습니다.
로케트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 오직 십자가로 갈 수 있습니다.
맥추절은 짐승피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화목제로 이웃과 친교를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하루를 자신이 자신에게 안식을 주는 날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음 주일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우리는 보리 농사를 짓지 않아도 맥추감사절은 일년에 한번씩 지키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고 자기를 사랑하는 다짐을 반복하여 나가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드와이드 무디가 자주 사용하기를 좋아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냥꾼이 사냥을 하러 산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냇가에 오리 세 마리가 나란히 앉아 먹이를 쪼고 있었습니다. 총을 쏘았습니다. 한 마리는 정통으로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한 마리는 총을 맞지 않고 쏜살같이 도망을 쳤습니다. 한 마리를 살짝 맞았는 데 비틀거리며 천천히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무디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사냥군은 세 마리중에 어떤 오리를 따라갈 가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살짝 맞고 비실비실 도망가는 오리가 사냥군의 표적 대상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자기들이 완전히 잡아 놓은 세상 사람을 따라 다니지 않습니다. 사탄에게서 멀리 도망친 사람도 쫓아가지 않고 포기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비실거리는 성도는 사탄의 표적 대상입니다.

우리는 맥추절을 맞아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고 더 자기를 사랑하는 절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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