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도의 올바른 헌금 생활과 축복 (고후 9:5-15)

첨부 1


성도의 올바른 헌금 생활과 축복 (고후 9:5-15)

고린도후서 8-9장은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를 위한 구제헌금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로마의 황제 그라우디오가 유대를 통치하고 있을 때 유대 땅 전역에 혹독한 기근이 들어서 예루살렘교회가 크게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일로 많은 사람이 굶어 죽게 되고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예루살렘 교회의 이 어려움을 전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많은 교회들 가운데 제일 먼저 이 운동을 전개한 교회가 바로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작고린도교회는 열심이 식어져서 헌금하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어려움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일 년 전에 행하기로 했던 헌금을 다시 시작하도록 디도와 믿음의 형제를 직접 보내어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들을 통하여 권면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이미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고 자랑하였습니다. 따라서 자랑한 것을 부끄럽지 않도록 그대로 시행하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8:24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중요한 것은 헌금을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여 기쁨으로 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올바른 헌금생활과 헌금생활을 잘 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헌금생활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헌금생활은 성도의 신앙생활에서 예배, 찬송, 기도, 봉사의 생활과 더불어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신앙과 물질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재물이라고 말씀하셨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에게 구속의 은총을 입은 자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는 헌금생활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헌금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면 신앙생활에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헌금 생활로 주어지는 성경에 약속된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주시는 말씀을 따라 헌금생활의 올바른 이해와 원리를 잘 이해하고 신앙생활 속에서 헌금생활을 잘 실천하여 축복받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올바른 헌금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올바른 헌금생활을 어떤 목사님은 결혼생활에 비유하여 설명했습니다. 처녀와 총각이 사랑한 끝에 결혼을 했습니다. 이들은 결혼 전에는 자기 것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한 후에는 네 것과 내 것의 구별이 없습니다. 서로가 주고받은 결혼예물이나 혼수감은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사용됩니다. 

결혼을 한 후에는 몸과 마음을 서로에게 다 내어 놓고, 그리고 자기의 인생 전부를 맡깁니다. 이것도 억지가 아니라 기쁘게 드립니다. 몸과 마음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면서 아까워서 눈물을 흘리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다 주면서도 평안하고 기쁩니다. 오히려 더 주지 못해 안타깝고 걱정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은 이런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은 신부된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음을 바치고 몸을 다 바친 희생입니다. 

그런데 신부된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신랑 되신 예수님만큼 바치고 있습니까? 갈수록 우리의 사랑이 커지고 더 많은 것을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바친 헌금에 매년 인상이 있었습니까? 

불행히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드려지는 헌금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 이년만 봉급이 인상되지 않는다면 당장 노조운동이 일어나서 소란을 피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축복된 삶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바르게 헌금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통하여 올바른 헌금의 자세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7절을 보시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헌금의 올바른 3가지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헌금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각각”이라는 말은 “각자가”라는 뜻입니다. 헌금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금액을 정해서 일률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에 정한 대로”라는 말은 우리가 드릴 헌금을 미리 마음에 정하며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헌금에 우리의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혀 준비가 없이 드려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5절 말씀 후반 절에 보시면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예물은 각각 그 마음에 미리 준비하며 정함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끌리지 않고 마음에 정한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일시적인 흥분에 지배되지 않고, 성령의 감동으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2. 헌금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겁게 하라고 했습니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라는 것은 헌금 바치는 자의 정성의 여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헌금 액수와 비교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 헌금에 들어간 본인의 정성의 정도와 그 헌금 드릴 때 마음의 즐거움의 정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인색함’이 내적 요인이라면 ‘억지로 함’은 외적 요인입니다. 인색함은 드리기 싫어서 얼마를 드릴까를 갈등하는 마음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주변에서 쳐다보는 눈들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에 인색하고 억지로 드리게 됩니까? 그것은 헌금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헌금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헌금을 드리고 나서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헌금은 축복을 거두기 위해서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색한 마음이나 억지로 심지 말고 추수의 기쁨을 생각하며 심는 농부처럼 즐겁게 심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8:12절에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시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부부가 나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자기들의 땅을 팔아서 하나님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억지로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속인 죄로 축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저주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 누리고 있는 은혜와 복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역량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즐겨서 정성스럽게 바치는지, 아니면 억지로 마지못하여 바치는지도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즐겨 내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즐겁게 드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즐겨내는 자”란 기쁨으로 헌금을 드리는 자를 말합니다. 기쁨으로 할 수 있 이유는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아 감사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모든 생활은 받은바 은혜의 감격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헌금생활도 받은바 은혜의 감격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4-15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를 말씀하며,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지극하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며,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입니다. 성도는 정죄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은 사람입니다. 성도는 마귀의 자녀가 변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우리들 성도들이 이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가 지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오신 것, 수모와 수난의 생애를 사신 것, 십자가 위에서 그토록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저주스러운 죽음을 당하신 것은 이 모든 대가를 지불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이전에 마땅히 받았어야 할 정죄와 저주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과 축복, 그리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격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물질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 116:12절에서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은혜를 입었고, 그 은혜를 깨달아 아는 사람은 그 은혜를 베푸신 분에게 보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입었으며, 그 은혜를 깨닫고, 무한한 감격을 가진다면 하나님께 보답하는 심정으로 무엇인가 바치기를 원하는 뜨거운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심정으로 바치는 물질이라야 하나님께 바치는 진정한 헌금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의 삶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드리는 삶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올바른 헌금 생활을 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헌금은 반드시 복으로 거두게 됩니다. 성경에 연보라고 기록된 헌금은 원어로 보면 ‘율로기아’라는 단어로 축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헌금을 한다" 하는 것은 "복을 심는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헌금은 축복의 씨앗입니다. 다시 말해서 헌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거두기 위해서 심는 씨앗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농부에게는 두 종류의 씨앗 있습니다. 하나는 봄에 뿌릴 것에 대하여 잘 보관하고 있는 종자인 씨앗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양식입니다. 농부는 씨앗이나 양식을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씨앗을 먹는다면 봄에 밭에 뿌릴 것이 없어서 가을에 거둘 것도 없습니다. 반면에 먹고 싶은 유혹이 있어도 봄에 뿌릴 것을 생각하고 양식만 먹습니다. 그리하면 그는 봄에 씨를 뿌리고 많은 수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헌금이란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아니라 복을 뿌리는 씨앗입니다. 반드시 복으로 거두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게 바치는 헌금을 자연의 법칙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심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에게 드리는 헌금입니다. 또한 여기서 거두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헌금에도 자연의 법칙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헌금을 적게 심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그만큼 적게 거둘 것입니다. 반대로 헌금을 많이 심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그만큼 많이 거둘 것입니다. 그러기에 헌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 됩니다. 

6절을 다시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 하였습니다. 바른 헌금은 결코 가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뿌린 것의 이상으로 많이 받습니다. 

7절 하반절 에서는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여러분, 누가 저주를 받고 누가 징계를 당했습니까?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하나님은 구원과 보호의 은혜, 그리고 친히 인도하심과 부요케 하심이 있습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한 절에 ‘모든’이란 단어가 무려 4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넉넉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에게 베풀기 위하여 헌금을 드리면 오히려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실 뿐 아니라, 더 많은 재산을 더 풍성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더 많은 것으로 선한 사업을 계속하게 하시려고 그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모든 삶에 풍성함으로 갚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헌금은 예배의 중요한 요소로 우리 전체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물질 만능의 사회에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은 이 시대를 지배하는 돈의 지배에 대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황금만능 시대에 돈의 악령에 사로잡히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믿음은 사실 아무도 알 길 없고 물론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주일 성수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기본 신앙은 갖춘 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금생활은 더 나아가서 그 신앙이 얼마나 진실하고 열심 있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헌금생활은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갈 만큼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대표적인 증거인 것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에 앞서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며 경건하고 진실된 마음과 넘치는 기쁨으로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