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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환난을 예고하신 예수님 (막 13: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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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환난을 예고하신 예수님 (막 13:14-19)

예수님은 마가복음 13장의 감람 산 강화에서, 자신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미혹과 전쟁과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으며, 또한 모든 사람에게 미움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13:7~8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끝은 아닙니다. 이는 재난의 시작입니다. 이 때의 재난은 원래 산고, 곧 해산의 고통을 뜻합니다. 일단 산고가 시작되면, 갈수록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리고 갈수록 그 정도도 심해집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워지면, 미혹과 전쟁과 재앙과 박해와 미움은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일어날 것입니다. 또한 그 정도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섭고도 심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직전, 이 땅에는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역사상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큰 환난이 있은 후에,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 이하 19장을 보면, 장차 있을 큰 환난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먼저 일곱 인이 등장합니다. 마지막 일곱 째 인이 떼이면, 연이어 일곱 나팔이 등장합니다. 마지막 일곱 째 나팔이 울리면, 뒤따라 일곱 대접이 나타납니다. 

일곱 인이 각기 떼일 때마다, 일곱 나팔이 각기 울릴 때마다, 또한 일곱 대접이 각기 쏟길 때마다, 각종 환난이 일어납니다. 환난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환난의 정도도 갈수록 극심해집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다시 오시고, 이 세상은 끝이 납니다. 

요16:33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큰 환난이 있어도,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또한 눅21:18입니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을 만큼 우리는 안전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큰 환난 날의 발단입니다. 

막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오늘 본문 첫 절에서 예수님은 장차 있을 큰 환난의 발단이 될 하나의 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는 사건이 발생할 것입니다. 이 사건을 발단으로 하여, 이 땅에는 큰 환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24:15 말씀을 보면, 이 때 예수님은 선지자 다니엘이 예언한 말씀을 인용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이 사건을 세 곳에서 언급했습니다. 단9:27과 단11:31, 그리고 단12:11입니다. 

우선 마24:15 말씀을 보면, 오늘 본문의 “서지 못할 곳”이 “거룩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21:28 말씀과 같이, 거룩한 곳은 성전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진 성전이 마지막 때는 다시금 재건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거룩한 곳, 곧 성전에 서게 될 가증한 것은 우상을 뜻합니다. 성전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는 거룩한 곳인 성전에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우상이 서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맨 앞에 나오는 단어 “멸망”은 성전에 우상을 세우는 자가 뜻하는 목적을 가리킵니다. 그는 성전을 멸하고, 예루살렘을 멸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성전에 우상을 세울 것입니다. 

주전 168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의 예언이 있은 지, 대략 370년 가량이 흘렀을 때입니다. 수리아에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짓으로 유대인들과 한 이레 곧 7년 동안의 평화 언약을 굳게 맺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꾀한 대로, 그 이레의 절반에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그리고는 성전에 헬라의 신 제우스의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는 돼지를 잡아서 제우스에게 제사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돼지고기를 제사장들의 입에 억지로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자기 군대를 성전에 주둔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성전에 접근하는 유대인들을 모조리 살육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정하신 한 이레의 절반 곧 삼년 육 개월이 지났을 때, 그는 유다 마카비가 이끄는 유대인들에 의해 자기 나라로 쫓겨났습니다.  

다니엘이 쓴 책에서 북방 왕이라고 불리는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장차 마지막 때에 일어날 적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는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살후2:3~4 말씀처럼, 장차 적그리스도는 성전에 자기의 신상을 세울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자기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을 모조리 멸망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이 때로부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삼년 반 동안, 또는 마흔두 달 동안, 또는 천이백육십 일 동안 이 땅에 큰 환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괄호 안에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이 괄호 안에 들어가 있을까요? 이는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라면,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가 아니라 “듣는 자는 깨달을진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가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강조하기 위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우리가 깨닫지 못할 만큼 어렵고 신비스러운 말씀을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성전 파괴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장차 미혹과 전쟁과 재앙과 박해와 미움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도 다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역사이며, 사실이며,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마지막 때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설 것입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큰 환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때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읽으면 됩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모든 것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와 함께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큰 환난을 대처해 나가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읍시다. 그리하면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말씀이 우리 발의 등이요 우리 길의 빛이 되어, 우리가 가는 앞길을 환하게 비추어줄 것입니다. 

늘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깨닫고, 또한 깨달은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환하고 복될 것입니다. 날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둘째로, 큰 환난 때의 대응입니다. 

막13:14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막13: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막13: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직전,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설 것입니다. 그 때부터 큰 환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삼년 반 동안 미혹과 전쟁과 재앙과 박해와 미움은 엄청난 속도로 또한 무서울 정도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큰 환난에 대처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 가지의 행동 요령을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14절 하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지막 때는 많은 성도들이 유대 지방에 살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말씀과 같이, 마지막 때 이방인의 수가 차면 이스라엘 자손도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 자손은 각 지파마다 일만 이천 명씩 모두 십사만 사천 명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을 자신의 본거지로 삼을 것입니다. 그는 성전에 자기의 신상을 세우고, 그것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일 것입니다. 그 때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다 그것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인침을 받은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비롯한 인근 유대 지역에 많이 살 것입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가 세운 신상에 경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합니다. 아니면 죽임을 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4절 하반부 말씀을 다시 봅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유대 지방의 산들은 유난히도 크고 작은 동굴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산으로 도망을 가서, 동굴 속에 몸을 숨기고 큰 환난을 피하라는 뜻입니다. 

아니 큰 환난이 일어나더라도, 성도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계14:6 말씀과 같이, 그 때에는 천사가 공중을 날면서 복음을 전파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산으로 도망해서, 불필요한 죽음을 피해야 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한 곳에 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유대에 있는 성도들이 취해야 할 두 번째 행동 요령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유대에 있는 집들은 지붕이 평평합니다.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집안으로 나 있기도 하지만 집 바깥으로 나 있기도 합니다. 저녁이 되어 날씨가 선선해지면, 지붕에 올라가 쉬기도 하며 또는 그 곳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유대에 사는 성도가 지붕 위에 있을 때입니다. 그 때 그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때 그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그는 집안으로 통하는 계단으로는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그는 집 바깥으로 나 있는 계단을 통하여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는 집 바깥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내려가, 바로 그 길로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큰 환난은 쓰나미처럼 순식간에 몰아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이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한 곳에 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유대에 있는 성도들이 취해야 할 마지막 세 번째 행동 지침입니다. 

밭에서 일을 할 때는 겉옷을 벗어두기 마련입니다. 그래야 일을 하는데 거치적거리지도 않고, 땀도 덜 나기 때문입니다. 유대에 사는 성도가 밭에서 겉옷을 벗고 일을 하던 중입니다. 그 때 그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때 그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겉옷을 버려 둔 채, 바로 그 길로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큰 환난은 요원의 불길처럼 신속하게 불어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산으로 도망하면, 큰 환난이 있을 삼년 반 동안 무엇을 먹으며 또한 무엇을 입으며 삽니까? 그 때에는 하나님이 친히 돌보십니다.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성도들을 친히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광야 길을 걸었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니까, 그 사십 년 동안에 그들의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큰 환난이 있을 삼년 반 동안, 하나님은 산으로 도망한 성도들을 친히 돌보십니다. 계12:5 말씀입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이 때의 여자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때의 아들은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여자 곧 이스라엘을 멸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를 피해 광야로 도망할 것입니다. 

계12:6 말씀입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큰 환난 때 이스라엘 곧 성도들은 산으로 도망하여, 그 곳에서 천이백육십일 곧 삼년 반 동안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게 됩니다. 

계속해서 계12:7 말씀입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하나님은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셔서,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해하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성도들을 지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전10:13 말씀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환난을 당하고 계십니까? 미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 피할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환난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날마다 믿음으로 모든 환난을 극복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큰 환난 때의 참상입니다. 

막13: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본래는 여자가 아이를 배는 것과 또한 뱃속에 있는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그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큰 환난 때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그런 여자들에게 오히려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면, 유대에 있는 자들은 신속하게 산으로 도망가야 합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 밴 여자는 아무래도 몸이 굼뜰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남자는 집안의 물건이나 겉옷을 버리고 도망할 수 있지만, 여자는 아이를 버리고 도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젖먹이는 여자는 적그리스도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기 쉽습니다. 

호13:16 말씀과 같이, 그 때에 잔인한 적그리스도는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를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땅에 내동댕이쳐, 어린 아이의 몸을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릴 것입니다. 이렇듯 큰 환난 때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막13: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24:20 말씀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여기서 “이 일”은 도망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면, 유대에 있는 자들은 재빠르게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겨울에는 산으로 도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대 지방은 겨울에 비가 옵니다. 때로는 눈이 내릴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날씨가 춥거나 비가 내리면, 집밖으로 나가기가 싫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내린 비로 시냇물이 넘치면 산으로 도망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5:16~17 말씀처럼,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가 오지 않게도 하시고 비가 오게도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에 따라 겨울을 피하게 하실 것입니다. 

막13: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이는”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유를 뜻합니다. 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면,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까? 왜 그 때에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아야 합니까? 

또한 왜 그 때에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아야 합니까? 왜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습니까? 아울러 왜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까? 이제 예수님은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24:21 말씀은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어느 정도로 큰 환난입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해가 뜨기 바로 직전인 새벽녘이 가장 어두운 법입니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기 바로 직전에 산고가 가장 심한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오시기 바로 직전에 역사상 전무후무한 큰 환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기록된 바와 같이, 그 때에 일곱 인이 떼일 것입니다. 곧이어 일곱 나팔이 울릴 것입니다. 곧이어 일곱 대접이 쏟길 것입니다. 갈수록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집니다. 그리고 갈수록 환난의 정도도 점점 더 심해집니다. 

그 때에는 미혹과 전쟁과 재앙과 박해와 미움이 최고에 달할 것입니다. 그 때의 참상이 얼마나 극심한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그 때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아의 홍수 때보다도 더 극심한 참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성도들은 끝까지 견디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성도들이 환난을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시며, 친히 성도들을 보살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 큰 환난 가운데서도 안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장차 있을 큰 환난 가운데서도 안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안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살전5:16~18 말씀과 같이, 이번 한 주간도 또한 앞으로도 변함 없이 항상 기뻐하십시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십시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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