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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희망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시 3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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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희망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시 39:1-13)

아프리카 코스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7월 18일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94회 생일이었습니다. 
남아공 현지 교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결같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에 대한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한 죄로 27년 간의 옥살이 끝에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과거의 압제자 백인을 용서와 화합의 정신으로 포용했습니다. 
전임 백인 대통령이었던 데 클레이크도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흑인인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스스로 부통령이 되어 정권 이양이 순조롭게 되도록 진심으로 협조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남아공은 흑백이 서로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무지개나라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대통령이 뽑혔으면 좋겠습니다.

케이프타운의 유명한 관광지인 테이블 마운틴에 올라가 만델라 대통령이 투옥되었던 감옥으로 유명한 로번 섬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섬 교도소에서 27년이나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간수들은 만델라를 잔혹하게 학대했다. 매일 아침 채석장으로 끌고 나가 호미와 삽으로 석회석을 채굴하게 했습니다. 만델라는 중범죄자였기 때문에 세 명의 간수가 항상 그를 감시했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각종 구실로 인정사정없이 탄압했습니다. 

1991년, 만델라가 출옥하여 대통령이 된 후 취임식 때, 취임사를 한 후 세계 각국에서 온 중요 정치가들을 순서대로 소개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많은 귀빈을 모실 수 있게 되어 매우 큰 영광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은 로번 섬 교도소에서 그를 감시했던 세 명의 간수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만델라는 일으켜 세워 모두에게 소개했다. 연로한 만델라는 허리를 숙여 그 세 명의 간수에게 진심어린 경의를 표했다. 
취임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가 할 말을 잃는 순간이었다. 

만델라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정신이 고난의 학교를 통하여 고결하게 다듬어졌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만델라는 친한 친구에게 취임식 때 있었던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젊었을 때는 성격이 불같고 자주 화를 내지 않았나. 그러나 수감 생활을 하면서 자기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고 그 덕분에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옥에서의 모진 세월이 나에게는 오히려 약이 된 셈이지. 나는 더 강해졌고, 고통과 좌절을 극복하는 법을 깨달았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과 관용의 정신을 배운 거야. 고통과 시련, 강한 인내와 훈련이 없었다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일이지.”

성도 여러분, 고난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쉽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39편의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다윗은 고난을 통하여 자신이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하여졌는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시련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시 39:1 내가 속으로 다짐하였다. "나의 길을 내가 지켜서, 내 혀로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 악한 자가 내 앞에 있는 동안에는, 나의 입에 재갈을 물려야지.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이스턴 스테이트 감옥은 1829년에 건립돼 1971년까지 감옥으로 사용됐고 지금은 전시장이나 영화촬영장으로 쓰이는데, 그 지역이 퀘이커교의 영향력이 강해 죄수일지언정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참회의 감옥으로 지어졌습니다. 19세기 초반이면 백악관에도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안 돼 있던 시절이건만 이 감옥은 당시 이미 상수도와 중앙난방 시스템을 갖춘 호텔급 교도소였습니다. 그 감옥은 죄수들에게 어떤 물리적인 고통도 주지 않았고, 단 하나 침묵만 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죄수는 독방에 들어가서 식사도 독방에서 하고 간수들도 복도를 걸을 때 덧신을 신어 걸음 소리를 내지 않을 만큼 침묵만 강요되었습니다. 그런데 죄수들이 가장 가기를 꺼려하는 감옥이었다고 하니,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 보셨습니까?
때때로 하나님께서 말하지 못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저도 존경하는 목사님으로부터 공개 책망을 받아 보았고, 공적인 지방회 석상에서 공개 책망도 받아보았습니다, 중요한 연합 집회 때, 제가 다른 목사님의 조크거리가 되는 망신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마다 주님은 제게‘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말을 하지 않아서 지금 제가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을 하였으면 제 삶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옳은 말은 해도 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어떤 아이가 엄마와 선생님의 공통점은“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기분 나쁘게 할 거면 옳은 말도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김동호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이 기억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교회에도 그런 분이 있다. 그런 분은 대개 옳은 말과 바른 말을 한다. 나는 그런 분들이 교회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지나고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정의롭고 옳은 말을 하시는 분들이 이상하게도 교회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분열이 생기고 다툼이 생겼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옳은 말을 하는데 왜 어려워질까? 
나는 그 이유를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찾았다. 우리가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그냥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외과 의사는 어떤 면에서 참 잔인하다. 몸에 악성 종양이 발견되면 단호하게 칼로 잘라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양이 더욱 커져서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는 칼로 째기만 하는 게 아니다. 의사들은 짼 후에 반드시 그것을 꼬맨다. 째는 시간보다 꼬매고 아물도록 치료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그런 과정이 있기 때문에 환자는 치료가 되는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외과 의사와 같다.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칼을 들어 서슴없이 잘라내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의사와 같은데 그런데 다른 것은 쨀 줄만 알지 싸맬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꼬매고 치료할 줄을 모른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데, 그 다음에 싸맬 줄을 모르면 결과는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는 그것을 모르는 게 문제이다.‘내가 틀린 말을 했나?’이렇게 생각한다. 
틀린 말을 한 게 아니라 맞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싸매주지 않으면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큰 착각 중에 하나가 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말로는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을 다윗이 깨달은 것입니다.

2절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수들이 자신을 공격해 와도 벙어리 같이 잠잠할 뿐 그들과 맞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입을 굳게 다문 것은 자기에게도 잘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8절 내가 지은 그 모든 죄악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나로 어리석은 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다윗이 침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지만 말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2절 ...심지어 좋은 말도 하지 않았더니, 걱정 근심만 더욱더 깊어 갔다. 

속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3절 가슴 속 깊은 데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고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 때, 다윗은 하나님께 그 마음을 쏟아 놓습니다.
3절 “...주님께 아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우리는 이것을 조목하여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원수들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입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탄식이었습니다.

4절 "주님 알려 주십시오. 내 인생의 끝이 언제입니까?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나의 일생이 얼마나 덧없이 지나가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한 마디로 “하나님, 저 죽여주세요. 저 언제 데려가실 거예요? ” 이런 기도였습니다.

5-6절을 보면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도 말 한 마디 못하다 보니, 다윗에게 인생이 갑자기 허무해졌습니다. 열심히 산다는 것이 모두 헛수고임을 알았습니다.

5-6절 주님께서 나에게 한 뼘 길이밖에 안 되는 날을 주셨으니,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진실로 모든 것은 헛되고, 인생의 전성기조차도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습니다. (셀라)걸어다닌다고는 하지만, 그 한평생이 실로 한오라기 그림자일 뿐, 재산을 늘리는 일조차도 다 허사입니다. 장차 그것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속이 터질 것 같은 절망감으로 기도하다가 다윗이 은혜를 받습니다. 다윗의 마음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7절 그러므로 주님,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내 희망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안타까이 기도하는 중에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무엇이 가장 귀한 것인가? 사람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고 손가락질받고 세상 성공이 허무하게 여겨질 때, 변함없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새삼 눈이 뜨인 것입니다.
다윗에게 오직 한 가지 갈망이 생겼습니다. 주님을 알고 싶고 주님 안에 거하고 싶은 소원입니다. 진짜 소중한 것을 붙잡게 된 것입니다.

저는 목사가 될 때, 다 버려야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더 가지고 싶지 않습니다. 
다윗이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무엇이 정말 귀한지 잘 모릅니다. 다 잃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의외로 진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코스타에서 드라마 '허준'과 '이산'의 배경 음악을 연주하였던 천재 플룻리스트 송솔나무 집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가 은혜를 받았다가 너무나 아끼는 악기를 잃어버리고 교회를 떠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7년 만에 다시 교회로 나왔을 때, 주님은 물으시더랍니다.‘네가 진정 잃은 것이 무엇이냐?’그 질문에 울면서 고백하게 되더랍니다.“주님을 향한 첫 사랑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하여 눈이 뜨이고 나니 자신이 겪는 모든 것이 사람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허락하심 안에 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9절 내가 잠자코 있으면서 입을 열지 않음은, 이 모두가 주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패, 상처, 절망이 깨닫고 보면 자아가 죽지 않아서 된 일입니다.
그러니 쓸데없이 답답해하고 사람 원망하고, 억울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도 말 좀 합시다! 말 좀 하게 해 줘요!” 할 것도 없습니다.

잘못한 것이 깨달아지면 주님 앞에 회개할 뿐이고, 주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12절 주님,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내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 눈물을 보시고, 잠잠히 계시지 말아 주십시오. 나 또한 나의 모든 조상처럼 떠돌면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손과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은혜의 눈이 뜨인 사람에게 오직 소원이 있다면 늦기 전에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친밀히 교제하는 축복을 누려보는 것입니다.
13절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다시 미소지을 수 있도록 나에게서 눈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돌려주십시오.

이번 코스타에서 운동선수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믿음이 별로 없어서 코스타에도 억지로 왔었는데 저녁 집회 때 성령님이 마음에 들어오시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너는 나의 아들이고 너는 왕이다.”너무나 흥분되어 울고 또 울었답니다, 마음이 너무 뜨거워서, 이 기쁨을 찬양으로 올려드리고 싶어 찬양 축제에 나갔답니다. '불을 내려주소서' 찬양을 하였는데, 30초 밖에 노래하지 못하고 사회자가“땡”하고 내려가 주세요. 하였다는 것입니다. 
내려오면서 너무 부끄럽고 마음이 무너지더랍니다.‘이게 뭐야? ’

마음 한편에서는 ‘이럴 수도 있지, 다른 팀들을 응원하면 되지.’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도무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집회장을 뛰쳐 나왔답니다.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답니다. 그렇게 충만하던 것은 다 사라지고 그저 멀리 멀리 가고 싶었답니다. 
저녁집회 장소에 돌아왔지만 들어올 수 없었답니다. 그 때 제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다짜고짜 저에게 상담을 한 것입니다.“은혜도 받았지만, 시험이 다가올 것이 겁이 나요. 제가 과연 시험을 이길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청년에게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하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걸음마를 생각해 봐. 아기의 걸음마 때 넘어진다고 누구도 낙심, 실망 포기하지 않잖아. 너도 마찬가지야! 어떤 시험도 이길 수 있어!
주님만 주목해. 시험에 들어 도망도 갔고 방황도 했고 낙심 분노도 했지만 '시험이다!' '다른 팀을 축복해 주자' '이러면 안되는데' 이 모든 생각들이 다 주님이셔!
물론 시험이 올 거야. 넘어질 수 있어. 그러나 어린 아이가 걸음마 중 넘어졌다고 뭐가 심각한 문제겠니. 그 중에도 주님은 분명히 역사하고 계셔. 그 주님을 주목해야 해. 그러면 어느덧 너무나 잘 걷고 있는 자신을 알게 될 거야.
운동도 처음은 어설프지만 점점 달라지는 거잖아! 

“야, 집으로 돌아가면 주일에 목사님께 부탁하여 예배 때 간증해. 이번 코스타에서 은혜받은 것, 성령님이 임하신 것, 그리고 시험될 일이 생긴 것, 그래서 강당에서 뛰쳐 나간 것 , 좌절 분노가 생긴 것. 그러나 그런 중에도 주님은 말씀하시고 이끄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신 모든 일이 주님이 역사하신 것이었다고 간증하라.”

이 청년이 폐회 예배 때 간증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중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너무 허무하여 죽고 싶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이 예수님을 만날 기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 때문에 오히려 진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다 달라집니다!

이번 아프리카 코스타는 유스코스타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이 2/3가 되었습니다. 저는 청소년들에게 설교할 때 마다 제가 청소년 강사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설교하려면 청소년들과 소통할 특별한 달란트, 춤이나 노래나 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청소년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재능이나 끼가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의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청소년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아는 자, 그들에게 하시려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 항상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일을 행하는 자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시험을 만났을 때, 주 예수님을 더욱 바라보는 기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희망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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