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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구별하시는 분이시다 (출 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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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구별하시는 분이시다 (출 8:20-24)

지난 주간, 런던에서 진행되는 올림픽의 경기들이 연일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한 밤중에 경기들이 있어서 직접 보기가 어려웠지만 TV에서 틈틈이 지난 경기들을 보여주는 하이라이트를 통해 보면서도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34살의 유도 선수 ‘송대남’이 운동선수로는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에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그의 유도 인생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 펜싱 선수 ‘김지연’의 금메달, 남자 펜싱 단체전, 양궁, 등 결승이 끝나고 금메달을 따게 되어 감격해 하는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며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는 축구가 영국을 이기고 4강에 올랐는데,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구기 종목 중에 특히 저를 감동시키는 종목은 ‘여자 핸드볼’ 팀이었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전통적으로 핸드볼 팀이 한 나라에 수 천개씩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팀도 별로 없어서 엷은 선수층을 형성하고 있고, 또 체격 조건도 불리한데 너무나도 잘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수년 전에 영화화 되었었죠? ‘우생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던, 여자 핸드볼팀의 이야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영화로도 알려져서 그런지 여자 핸드볼팀의 유럽 강호들과의 시합 모습은 한 순간, 한 순간이 감동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보고 있는 올림픽의 경기들이 계속해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며 감동을 주어서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무엇인지, 한 민족이 무엇인지, 이렇게 사랑스럽고, 특별한 사람들로 생각되게 합니까? 제가 우리나라 선수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당신들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도 경기들이 남았는데, 여러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나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 주,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 중, 세 번째 재앙인 ‘이’재앙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애굽의 전 국토의 3%를 차지하는 나일 강 주변의 비옥한 땅, 그 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농업국가인 이집트, 그래서 그 땅을 귀히 여기고, 땅을 숭배하고, 땅의 신들을 경배하는 애굽인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그 땅을 쳐서, 땅의 티끌들이 ‘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애굽인들의 절대행복의 근원이었던 기름진 땅을 재앙의 근원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 재앙은 무엇을 교훈합니까? 그 땅이 애굽에 행복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니고, 그 땅의 신이 애굽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땅의 주인임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땅의 주인이다”,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으면, 지금 내게 옥토(비옥한 땅, 좋은 환경과 여건)가 있고 없고 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이 오직 이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네 번째 재앙(파리 재앙)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2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 ‘아침 일찍이 바로가 나일 강변으로 나올 것이니 그 바로 앞에 가서 말하라’고 하십니다. 

바로가 왜 아침 일찍 나일 강변에 나옵니까? 나일 강 신에게 제사드리려고... 여러분, 나일 강이 피가 되는 심판을 보았으면 이제 하나님께 눈을 돌려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바로는 아직도 나일 강 신을 붙잡고 있습니다. 아직 항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제사를 지내고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기 위해 점을 치고, 사주팔자를 보러다니고, 옛 풍습에서 벗어나지 못해 어정쩡하게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루 빨리 그러한 것들과 단절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보호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21절) “... 내 백성을 보내라 ...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생활 속에서 우리를 귀찮게 하는 파리는 애굽 사람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구약에도 동일한 명칭이 있는데, 예수님이 마귀에게 사용했던 칭호 가운데 ‘바알세불’이란 말이 있습니다. 바알세불은 ‘파리의 왕’이란 말입니다. ‘세불’이 ‘파리’란 말이고, 바알세불은 ‘파리의 두목’, ‘파리의 왕’이란 뜻입니다. 

애굽 땅에는 이 바알세불 말고도 ‘우앗치트(Uatchit)\'란 신이 있었는데, 이것도 파리 신입니다. 파리 모양으로 된 신입니다. 애굽인들은 나일 강과 비옥한 옥토가 있는 애굽이 특별한 삶의 구역이 되길 바래서 이렇게 파리 모양으로 된 신들을 만들어놓고 숭배했는데, 그들이 숭배하던 파리가 오히려 그들을 공격하고 괴롭히게 되는 것입니다. 

‘파리’하면 떠오르는 기억 중에 역시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의 외갓집에서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 외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작은 외할머니(어머니의 작은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외할아버지 댁에서 논 하나 건너에 사셨습니다. 제가 외갓댁에 가면, 작은 외할머니가 조카 손자라고 저를 데리고 가셔서 밥을 차려 주셨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귀여움을 받았습니다(인물을 보면 알잖아요?). 그 할머니는 제 이름, ‘정균’이가 발음이 잘 안되시는지, 항상 ‘정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정근이 이 할머니가 맛있는 밥 해 주마’... 작은 외할머니 댁에 사립문을 들어서면 오른 쪽에 외양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당을 지나 툇마루가 있었는데, 그 툇마루에 저를 앉혀놓으시고 밥상을 차려서 갖고 오십니다. 

그 밥상에는 잡곡이 섞여있는 밥이 큰 주발에 넘치게 담겨 있었고, 된장찌개에 호박잎, 된장, 그리고 김치와 나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양간이 가까워서 그런지 밥상주위에 파리들이 많았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깔끔하게 생긴(?) 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쫓아도 몇 마리는 밥과 반찬에 번갈아가며 앉는 것입니다. 밥 먹는 것이 곤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제 기억으로는 제가 불평 한마디 안하고, 그 밥을 먹었습니다. 왜요? 작은 외할머니가 저를 귀여워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외할머니가 100세가 다 되셨는데, 지금도 정정하게 살아계십니다. 

(21절) “...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 

‘가득하다’, 이 말은 ‘충만히 채우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파리 떼로 애굽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채운다는 것입니다. (24절)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 

이 네 번째 재앙인 파리 재앙으로 인해 바로의 궁과 애굽 온 땅, 즉 애굽 사람들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땅이 황페하였더라’, 땅이 황폐하게 될 정도이니 파리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여러분, 파리가 몇 마리 안 될 때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엄청 많아지면 재앙입니다. 파리가 수가 많아지면 겁이 없어집니다. 도망도 안 갑니다. 막 얼굴과 몸에도 달라붙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음식에 새까맣게 붙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식생활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괴롭힙니다.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아프리카의 굶은 기아의 어린이들을 소개하는 영상이 TV에 가끔 나오는데, 그 어린이들 눈가에, 입에 파리가 꼬여있는 것을 봅니다. - 이 파리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온 땅에, 집집에 가득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삶의 질이 저하되고, 최악이 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특별하고 놀라운 말씀을 보게 됩니다. (22~23절) “그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여기에서 ‘구별하다’는 말은 ‘차이를 두다, 분리하다, 나누다, 절단하다’의 의미입니다.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하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에게 똑같이 해 주는 것이 공의가 아닙니다. 내 가족과 내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똑같이 해 주는 것이 꼭 잘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앞의 3가지 재앙은 애굽과 이스라엘이 똑같이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 견딜 만 했습니다. 지금부터는 다릅니다. 견딜 수 없습니다. 치명적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똑같이 재앙을 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구별하시겠다고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양과 염소(마25:32)’를 구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알곡과 쭉정이(마3:12,눅3:17)’를 구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와 그렇지 않는 처녀(마25장)’를 구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 왜 하나님은 파리를 사용하셨을까요? 

애굽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영역이 파리 떼가 없는 특별 영역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파리의 신을 숭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파리 떼를 조종하심으로 파리 신을 섬기는 애굽은 파리 때문에 망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은 파리가 근접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파리 신을 파괴함으로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22절)‘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때 바로와 이스라엘이 느끼는 것이 달랐을 것입니다. 

1) 바로가 느끼는 것. 

이 구별하는 사건을 통해 바로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파리 떼의 공격 없이 애굽이 행복, 번영하는 국가로 구분해 지켜주는 것은 파리 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구나, 이대로 있다가는 비옥한 나라가 완전히 황폐하여 망하게 되겠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이 느끼는 것. 

하나님께서 자신들만을 특별히 구별해서 지켜주는 뜨거운 사랑을 체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는 더욱 더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시는 분이십니다”, 


2.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세계에서, 특히 거대한 애굽에서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은 작은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왜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안 쳐다보는 노예들, 무시해버리는 노예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연민을 가지신 분이 아버지 하나님이셨습니다. 노예로 살고 있는 그들을 위해 더 일찍 오고 싶으셨지만, 아브라함과 언약한 400년의 세월이 지나가야 했기에 참고 또 참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오시자 그들을 철저히 구별하셔서 특별 보호를 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청와대를 가면 경호원들이 있는데, 그 경호원들은 소속이 다른 두 부류가 있습니다. 군 부대인 경호부대에 속한 경호원들이 있고, 경찰에 속한 경호원들이 있습니다. 소속은 다르지만 대통령과 VIP를 경호하는 임무는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떴다 하면 미리 그 동선에 나가서 주변의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경호원들이 있고, 근접 경호로 VIP를 보호하는 경호원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심하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VIP의 안전을 살핍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친히 경호원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막는 자를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바로가 그토록 믿고 자랑하는 우상들을 완전히 짓밟으십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집념과 같으십니다. 집념은 마음과 생각이 한 가지 일에 끝까지 매달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바로 그러합니다. 구별하면서까지 그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강력한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로 향하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광야를 지나갑니다. 그때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들을 특별한 은혜로 구별하셔서 보호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런던 올림픽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난 목요일(2일)자 국민일보 1면에 큰 제목으로 “하나님 아니면 금메달 없었다”라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남자 유도 81kg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재범 선수의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금메달을 딴 것은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어깨, 팔꿈치, 손가락, 무릎, 허리, 등 정말 부상이 많은 몸이어서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이런 몸으로 경기를 할 수 있느냐’고 물을 정도로 의학적으로는 중환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재범 선수는 기도를 굉장히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태릉 선수촌 시절부터 새벽 5시 30분에 훈련을 시작해 오전 훈련, 오후 훈련, 야간 훈련을 소화해 내며 남들은 정말 ‘지옥 같은 훈련’이라고 하는데, 그는 ‘천국 훈련’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올림픽에서 1등 할 것을 꿈꾸며 매일 밤 11시 11분에 기도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훈련량이 늘어나니까 충분한 수면을 위해 밤 10시 04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기도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1004(천사)’를 연상케 하는 나름대로의 신앙의 표현이었다는 것입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꼭 예배를 드렸고, 수요예배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고 합니다.

결승 경기 직전부터 시상식까지 그가 드린 기도만 9번이나 되었습니다. 처음 경기를 앞두고 대기석에서 기다리면서는 “초조해 하지 않고 제 기량만 펼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드리다가, “다리가 부러져도 좋으니 꼭 승리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네 번째 손가락은 인대가 끊어져서 고통스러웠는데, 세 번째 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결승에서 4년 전,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선수 비쇼프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승리한 후, 매트에 꿇어앉아 두 손을 모아 감사와 감격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시상대에 오르기 전, 시상대 앞에서, 그리고 금메달을 목에 건 뒤에도 감사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의 간증이 담긴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 선수야말로 하나님이 구별하신 사람이구나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이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시는 분이십니다”, 

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단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아멘. 

여러분,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깨달아 그 사실에 감격해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애굽의 바로가 파리의 신을 의지해서 애굽을 부국강병 영역을 만들려 하는 것처럼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 행복, 성공, 희망, 부자의 영역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모든 행복, 승리, 성공의 영역은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노예가 살고 있는 고센 땅에 파리 떼를 막으시고 특별한 영역으로 만드셨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된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만 의지하셔서 애굽 세상의 가난, 질병, 실패 가운데서 구별되어지는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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