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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스러운 부흥의 조건 (슥 8:18-23)

첨부 1


본문 : 스가랴 8:18~23 
제목 : 영광스러운 부흥의 조건 

1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2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스가랴 7장과 8장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부흥사입니다. 어둡고 좌절되며 낙망하던 시대에 유다 백성들에게 부흥사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격려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전건축을 격려하고 미래의 영광스러운 비전을 제시한 것입니다. 스가랴 1장부터 6장까지 8개의 환상을 받았는데, 그때가 B.C. 520년이었습니다. 스가랴 7장과 8장은 그때로부터 2년 뒤인 B.C. 518년 페르시아 왕인 다리오가 즉위한지 4년 만에 스가랴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스가랴 7장과 8장은 하나의 연결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월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 (슥 7:2~3). 

여기 나오는 벧엘 사람들의 이름은 사례셀, 레겜멜렉 등 바벨론식 이름입니다. 이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태어나 바벨론식 이름을 받아서 살다가 스룹바벨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1차로 귀향한 이들은 벧엘이라는 도시에 정착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질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을 기억하며 금식하는 절기를 지켰는데 4월, 5월, 7월, 10월 이렇게 1년에 총 4번을 금식하였습니다. 4월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을 기억하며 금식하였고, 5월은 성전이 파괴된 것을 기억하며 금식하였고, 7월은 유대인의 학살을 기억하며 금식하였고, 10월은 예루살렘이 포위된 것을 기억하며 금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절기를 계속해서 지켜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질문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것은 참된 부흥의 징조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행해온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우리의 전통이 성경에 맞는 것입니까?’ 이런 질문은 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질문은 기뻐하시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1517년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와 1536년 종교개혁을 일으킨 존 칼빈과 같은 분들도 동일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하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질문은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성경을 읽으시다가 영적인 질문을 많이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이것을 똑바로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성경적인가?’ 이런 질문을 우리는 종종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대단히 중요하게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스가랴 7장과 8장 두 장에 걸쳐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그들에게만 하지 않으시고 유다 백성 전체에게 하십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가랴 7장과 8장에서 하나님의 대답이 네 번에 걸쳐 오는데 대답이 올 때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7장 4절, 8절; 8장 1절, 18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읽은 본문인 스가랴 8장 18~23까지는 네 번째 답변이며, 벧엘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입니다. 

금식하는 절기를 1년에 4번이나 지킬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첫째, 하나님의 대답은 과거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멸망을 기억하던 절기는 이제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금식하는 절기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하는 절기는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식하는 대신 오히려 먹고 즐기는 절기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루살렘은 사람들이 모여서 금식이나 하는 곳이 아닌 진실과 화평이 거하는 온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강대한 나라의 백성들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자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백성들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단지 금식하는 절기를 지켜야 하는 질문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부흥의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유다 백성뿐 아니라 온 세계 만민에게 미칠 큰 부흥을 약속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도 은혜를 받으러 따라와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심을 들었으니 우리도 너희와 함께 가겠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부흥의 모습입니다. 신약시대 오순절 성령의 부으심으로 인해서 실제로 실현된 부흥의 약속을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답변입니다. 

Ⅰ. 첫째 조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명령하신 것을 행할 때 기뻐하신다 

세 개의 답변은 네 번째 부흥의 약속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조건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영광스러운 부흥의 조건인 것입니다. 세 가지 조건 중 첫 번째 답변은 스가랴 7장 4~7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명령하신 것을 인간이 순종할 때 기뻐하십니다. 명령하는 것을 행해야 기뻐하시지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행한다고 기뻐하지는 않으십니다. 

스가랴 7장 5~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질문형태로 물어보십니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을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슥 7:5~6).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너희가 70년 동안 금식한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을 위하여 한 것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금식할 때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금식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명령한 적도 없는 금식을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이 명령하지 않은 일을 행했을 때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에게 슈퍼마켓에서 두부도 사오고 간장도 사오고 어묵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돈을 받아서 사오라고 했던 두부, 간장, 어묵은 사지 않고 아이스크림, 과자, 감자튀김을 사온다면 부모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잘했다고 하겠습니까? 혼을 내겠습니까? 부모가 시킨 것은 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사온 아이의 행동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것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사울에게 아각 왕과 아말렉 군대, 모든 짐승까지도 다 죽이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은 좋은 짐승을 죽이지 않고 남겼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와서 훈계하는데, 사울 왕은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제사를 드리려고 죽이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사람들이 아무리 자신의 뜻대로 착하게 살아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식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행해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역사를 보아도 순종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형통하게 하셨다고 증거해줍니다.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 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었느니라” (슥 7:7). 

성도들이 번창하고 번영하려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상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지상명령의 내용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분부한 것을 가르치고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전통과 신학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되돌아보고 우리 교회의 전통과 신학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인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점검해보고 하나님의 분부대로 순종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자신을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반성해야 할 첫 번째 주제입니다. 


Ⅱ. 둘째 조건 : 하나님께서는 종교의식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보다 하나님의 도덕적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두 번째 답변은 스가랴 7장 8-14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의식에만 치중하지 말고 도덕적인 명령들을 중요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도덕적인 명령과 윤리적인 명령을 중요시하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금식의 절기는 꼬박꼬박 지켰지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도덕적인 명령들은 무시했습니다. 기독교는 윤리를 무시할 때 망하는 것입니다. 비윤리적일 때 배교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도덕과 윤리는 기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윤리와 도덕을 우습게 여기고 마음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구원 받고 나면 술을 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습관적으로 간음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을 끊고 가정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바람피우는 사람이 교회에 나와서 헌금을 하고 바람을 잘 피우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그 기도가 응답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도적질했던 사람은 도적질을 그만두고 남을 도울 수 있도록 자신의 손으로 일해야 합니다. 도적질한 것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사기를 치는 사람은 바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윤리성이 회복되어야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성령을 부으시고 부흥을 주시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두 마리의 새를 보냅니다. 하나는 비둘기이고, 다른 하나는 까마귀입니다.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까마귀는 시체에 앉아 시체를 먹으며 살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성령의 비둘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윤리적으로 더러우면 앉지 못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도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무시하던 윤리적인 명령 네 가지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슥 7:9~10). 

첫째, 재판하는 사람은 진실한 재판을 하라는 것입니다. 뇌물을 받고 판결을 하며 전관예우 때문에 선배 판사가 내린 판결을 뒤집을 수 없어 진실한 재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판하는 사람은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둘째, 사람들은 피차 인애와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과부, 고아, 나그네, 궁핍한 자와 같이 사회적 약자들을 압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재산을 빼앗지 말고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남을 중상모략으로 해치지 말고 심중에 음모를 꾸미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당한 요구입니까? 이것은 정상적이며 정당한 요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은 매일 하면서 마음을 금강석처럼 강퍅하게 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불의한 재판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시기와 다툼이 있었고 약자를 압제하며 남을 해치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런 것들을 불신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윤리적인 행동들을 유다 백성들이 서슴지 않고 행하였습니다. 이런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고 금식을 한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덕적인 명령을 무시함으로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슥 7:13~14). 

금식을 1년에 4번이나 해도 비윤리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회리바람이 불어 유다 백성들을 열국으로 날려 보낸다고 했습니다. 열방이 쳐들어와 포로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황무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흥을 보려면 윤리적인 명령을 중요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윤리를 따라 자신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윤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5계명, 부모를 공경하라. 6계명, 살인하지 말라. 7계명, 간음하지 말라.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9계명, 거짓말하지 말라. 10계명, 탐심을 가지지 말라. 이렇게 간단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윤리적인 명령에 불순종하면 아무리 금식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입니다. 윤리적인 잘못을 회개해야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부흥의 축복을 보게 될 것입니다. 

Ⅲ. 셋째 조건: 과거의 영광이나 실패에 얽매이지 말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라 

세 번째 답변은 스가랴 8장 1~17절에 나와 있습니다. 과거의 영광이나 실패에 얽매이지 않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이 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유다 백성들 중에는 과거지향적인 사람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첫째, 노인들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스룹바벨 성전을 보더니 울며 탄식하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영광보다 스룹바벨의 영광이 더 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과거가 좋았다고 말하지 말고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아무리 영광스러웠어도 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미래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썩지 않을 영생할 몸을 입고 아름다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죽고 난 뒤에 영광스러운 육체로 변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 영생하는 부활의 몸을 입고 복을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사는 그런 비전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과거 영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미래의 영광보다는 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영광을 보며 그때가 좋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유다 백성들 가운데 과거에 느부갓네살에게 함락당한 실패를 탄식하며 과거에 지었던 죄에 얽매여서 탄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으면 그 피로 과거에 지었던 죄를 씻어 용서해주십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실패에 너무 얽매지 않아도 됩니다. 실패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8장에 유다 백성들에게 영광스러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슥 8:3).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슥 8:5).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슥 8:7).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슥 8:12).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슥 8:13). “이제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지니라” (슥 8:15). 예루살렘으로부터 진리가 나와서 이방 족속들까지 모두 축복받는 신약시대의 위대한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백성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유대인들이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는 그것들을 지키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한 가지 절기를 지킵니다. 그것은 주일입니다. 모든 절기를 주일에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주일을 지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로 그것을 기념하여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킨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이시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도 미래에는 영광스러운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항상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즐거움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우리는 영광스러운 부흥을 기도하면서 기대해야 합니다. 부흥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인데 우리는 세 가지로 준비해야 합니다. 첫째, 주님께서 분부하신 것을 행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 삶에 윤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셋째, 과거에 얽매여서 탄식하지 말고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켰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흥을 보내시고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동안 죄가 있지만 회개하지 않은 성도들은 꼭 회개하여 은혜 받고 능력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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