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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웃에게 밝은 웃음을 (사 5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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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밝은 웃음을 (사 58:6-11)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사야 58장 6-11절】

우리가 누군가에게 밝은 웃음을 선사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밝은 웃음을 보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돈을 받으면 기쁩니다. 선물을 받아도 기쁩니다. 하지만 또 잊을 수 없는 기쁨이 있는데 따뜻한 표정과 미소를 보면 너무 큰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늘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 현대인에게 가장 큰 아픔은 고독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고독하지 않습니다”라는 말하는 분이 있다면 축복입니다. 부부가 함께 살아도 외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많아도 마음 한켠에 외로움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권사님들을 뵈면 옆에서 보기에는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마음에 외로움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사랑하고 기도해도 자녀들은 잘 모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에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제가 ‘사람이 왜 외로울까?’를 조사하다가 한 글을 발견했습니다. 칼 라너라는 분이 쓴 ‘만남’이라는 책에서 보면 현대인들이 이웃을 잃어버리고 산다고 합니다. 다음의 세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너무 공허한 소리가 강해서 정말 들어야 할 소리를 못듣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TV 소리며 버스 소리들이 얼마나 많이 들립니까? 이런 소리들이 많이 들리니까 그래서 정작 들어야 할 소리를 못듣는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는 마음 속에 분노가 있다고 합니다. 짜증, 불만, 불평, 스트레스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소리가 잘 안들리고 관심이 안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호기심이 엉뚱한데 쏠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 주위에 힘든 이웃이 많은데 내가 호기심이 많아 정작 그 사람에게 관심을 쏟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현대인들은 참 고독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일치됨

여러분, 저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아픈 마음과 실망스러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닌데”라고 말씀하시는데 엉뚱한 곳에 마음을 쏟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들이 느껴집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이라는 말의 뜻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식을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좋아하는 금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일치되면 행복하게 살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이 안 맞습니다. 너희들이 때를 따라 금식을 하기는 하지만 금식의 근본정신은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금식을 하라고 할 때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 육체의 욕망을 자제함으로서 오직 살아계신 여호와 한분만 바라보며 집중하는 것’ 또 한 가지는 ‘금식을 하면서 얻은 양식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 것’에 뜻이 있었습니다.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경건생활을 요구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금식은 했으나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금식을 통해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집중하고 “나는 이 세상 살아가며 하나님의 사랑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나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요, 내 삶의 부요도 하나님께 있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나의 능력입니다”라고 고백하며 나아가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백이 없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나누어주는 삶

7절을 보겠습니다. “또 주린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은 하는데 이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뜻을 어기며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내가 저 사람에게 무엇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무엇을 베풀 수 있을까? 내가 저 사람에게 무엇을 도와 줄까?’ 그런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부요한 삶을 사는 줄 믿습니다. 그런 마음 없이 내가 ‘저 사람에게 무엇을 얻을까? 

저 사람이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이러한 마음이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부요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내 가족, 내 교회, 나’ 이렇게 모든 것을 결정할 때 이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나에게 유익이 될지를 생각하면 여러분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나누어 주거나 만날 때,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되고 어떤 힘이 될지 마음에 있다면 이미 부요한 삶을 살며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동안교회에 가서 배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도 좋고 성도님들도 훌륭하지만 꼭 배웠으면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동안교회를 건축한지가 벌써 20년이 되어 가는데 교회를 새로 건축하기를 결정하고 선포하기를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 우리가 저축해 놓은 모든 것을 가지고 더 보태서 일산에 개척교회를 하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온 성도들이 힘을 모아 먼저 일산에 개척교회를 세우고 그 다음에 교회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음을 가진 개인이나 이런 마음을 가진 교회에 복을 쏟아 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에 우리 교회에 우리가 쓸 것만 가득 차 있다면 우리 교인들은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을 다 못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가 이웃교회를 어떻게 돕고, 어떻게 개척하고, 어떻게 이웃을 도울 수 있을까요?” 라는 마음을 가지고 섬기면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법입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가 무엇을 할 때 무언가를 베풀려고 할 때 손해보는 느낌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 시찰회 때에 섭섭하면서도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시찰 내에 도와주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찰회에서 결정하기를 그 동안 도와주던 것을 다른 방법으로 도와주게 되었으니까 그만 돕자는 결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장로님들은 결정난 것이 아니니까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들은 다 돈을 가져와서 낼까 말까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회의에서 그만하기로 결정을 하니까 안내고 다 그냥 가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교회들이 도움을 바라고 힘과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데 다 돈을 가져왔다가 그냥 가져가는 겁니다. 너무 마음이 슬펐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장로님들은 다 냈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돈이 그리 큰 액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 몸부림치는 교역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복 주실 줄 믿습니다. 신앙세계에 헨리 나우엔의 기도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베푸는 사랑의 기준이 내가 그에게 베푸는 사랑의 기준이 되지 않기를.”

마지막 말이 제 가슴에 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당신이 100원 주면, 나도 100원 주겠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의 마음에는 부요도 행복도 없습니다. 더 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베푸는 것이 손해일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부유한 사람이 됩니다. 이웃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밝은 얼굴로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얼굴에 빛이 남

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무슨 말입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어렵고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베풀기만 하면 내 빛이 아침 같이 비추리라는 것입니다. 빛은 얼굴 빛을 말합니다. 옆자리를 보시면 얼굴이 환한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는 이미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채워 주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인상파들도 계십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항상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얼굴빛이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처럼 찬란하게 빛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도 우리 성도들이 복이 많구나 생각합니다. 지난 장로임직식 때 여러 목사님들이 말씀하셨습니다. “홍광교회에는 미남, 미녀만 있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역동하면 얼굴이 빛난다는 것입니다. 잠언 말씀을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얼굴이 빛난다는 말입니다. 이어서 “내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는 무엇입니까? 너희들이 질병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속히 치료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러나지 않아도 다 병이 있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은 “질병에 걸릴지라도 이웃에게 베풀고 사랑하면 질병을 속히 치료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건강의 비결이 약 먹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베풀고 살면 강건하게 살아갈 줄 믿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내가 몸이 너무 아팠는데 구역장으로 섬기다 보니 건강해 졌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사회봉사팀에서 일하는 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강건케 하실 줄 믿습니다. 몸이 연약한 분들이 계신데 몸이 약하면 위축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활동을 절제합니다. 그러나 병원에 가보면 치료 받으면 걸으라고 합니다. 수술하고서도 아프다고 가만히 두지 않고 걸으라고 합니다. 걸으면 치료됩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면 강건케 하실 줄 믿습니다.

슈바이처가 남긴 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분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는데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합니다. “선생님은 박사에다가 천재적인 음악가인데 왜 오지에서 일하십니까?” 그랬더니 슈바이처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여기에 와서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사랑을 베풀었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시고 행복을 주셨다. 일하다 보니 더 건강하게 되었다. 이 사람들을 섬기면서 내가 세상이 알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그런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또 하나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말씀은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를 호위할 것이다”입니다. 왕이 걸을 때 신하의 행렬처럼 이어집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아끼시는, 이웃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와 축복과 영광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런 축복이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십니다. 너희는 물댄 동산 같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하철 선교하시는 분들을 볼 때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봉사하는 분들이 너무 즐겁다고 합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너무 힘들어하다가 잠시 쉬면서 차 한잔을 마시고 즐거워 합니다. 녹차 한잔이 큰것은 아니지만, 녹차 한잔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가니까 그 마음을 녹이는 것입니다. 사회봉사팀도 열심히 일합니다. 장로님들과 어려운 집 수리를 계획하고 수리하는 중에 한 집은 가보니 지붕이 다 낡았습니다. 노인이 지붕에 올라가서 작업하다가 부상을 당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 집에 찾아가서 지붕 수리를 하고 천정과 벽지, 장판과 수도를 고쳐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가니까 완전히 새 집이 된 것입니다. 집이 완전히 바뀌어서 집에 들어가서 환히 빛나는 그 얼굴을 보고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는 그 밝은 얼굴 밝은 미소를 보면서 무한한 행복을 느낍니다. 봉사하는 사람도 같이 즐겁고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저에게 지난 주 화요일은 정말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신현중학교에서 족구대회가 있어서 갔습니다. 원래 24팀을 초청하기로 해서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보니 28팀이나 왔습니다. 우리교회에서 2-300명이 모였고, 지역 주민이 2-300명이 왔습니다. 그래서 5-600명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제 마음속이 행복했습니다. 교회 안다니는 분들도 다 예배드렸고 남선교회도 다 모이셨고, 여전도회 분들도 오셔서 서빙을 했습니다. 시원한 물과 맛있는 떡과 수박과 반찬에다 빵까지 나누는 그 모습을 보니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제자들이 떡을 나누어 주는 장면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예수 안믿는 사람이 오면 무엇을 달라고 못합니다. 

그런데 점심때도 줄 서면 주는 줄 알았더니, 앉아있게 하고 인원만 알려주면 다 차려서 주는 것을 봤습니다. 시원한 물, 수박, 선물도 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 온 분들이 돌아가면서 제게 찾아와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교회가 좋은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수없이 족구대회를 가봤지만 이렇게 행복한 날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제 마음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기니까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 사람들도 즐거웠지만 봉사하는 분들도 다 행복했습니다. 여전도회 분들도 더 예뻐졌습니다. 정말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봉사하는 손길들을 하나님께서 높이 세우실 줄 믿습니다. 온 땅에 행복을 심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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