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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시온의 영광 (시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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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영광 (시 126:1-6)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킨 자취니/ 길이 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

요즘 광복절 노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노인들이나 적어도 50대들이나 알 것입니다. 광복이란 말은 빛 광光 자와 회복할 복復자로된 말로 잃었던 빛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국권을 빼앗겨 어둠에 잠겼던 땅에 빛이 들어왔다는 의미입니다. 
36년간의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국권을 다시 찾은 기쁨을 기념하는 광복절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126편에는 꿈, 웃음, 찬양, 큰 일, 기쁨 같은 말이 나옵니다. 이런 단어들은 70여년을 포로 되어 살던 시온의 백성들에게 찾아온 해방과 자유, 시온의 영광을 노래한 것입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 생활 고달파 메시야 기다립니다”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던 해방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꿈 같은 현실이 온 것입니다.
시온의 영광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1절)
  
  
󰊱 이야기

시온이란 원래 예루살렘에 위치한 언덕의 명칭입니다. 시온산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산입니다. 시온에 사는 백성은 시온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다”는 말은 시온에서 잡혀간 포로를 시온으로 돌려보내실 때 꿈을 꾸는 것 같았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해방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해방은 한마디로 “황홀한 기쁨”입니다.
 
포로처럼 치욕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더부룩한 수염, 여윈 얼굴들 그게 바로 포로들입니다. 죽지도 못하고, 달아나지도 못합니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같은 신세가 포로입니다. 그 지긋지긋한 포로에서 벗어났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습니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만일 꿈이라면 깨우지 말라! 계속 잠을 자고 싶다! 
  
흙 다시 만져보자! 해방된 땅을 다시 만져보자는 것입니다. 바닷물도 춤을 춘다! 해방의 기쁨을 민족의 춤으로 표현합니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2절)
  
입에 가득찬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감사와 기쁨의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의 백성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시14:7)
  
구원이 시온에서 나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막을 말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언약궤가 있습니다. 구원이 시온에서 나온다는 말은 구원이 하나님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렘30:18) 

희망이 전혀 없는 포로, 버려진 자라는 말을 듣던 시온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폐허가 된 시온 언덕에 성읍을 건축하여 왕궁이 세워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다윗왕은 시온에 수도를 정하고 성을 쌓고 왕궁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달리 일걷는 말이 시온입니다.   
  
시온의 영광은 시온에서 나옵니다. 시온의 영광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의 노래를 부르게 되고 웃음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시온이 번영하고 성공하고 행복하게 하는 곳입니다.  

 
󰊲 큰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3절)
  
사람이 하는 작은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큰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일은 하나님이 하신 큰일입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시71:19)
  
하나님만이 창조자이시고,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십니다. 창조나 구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시35:10) 

약한 이스라엘을 강한 바벨론에서 건지신 이가 하나님이라는 것이 다윗의 뼛속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포로 된 결박에서 풀어주신 일만큼 큰 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70년의 긴 포로생활에서, 우리나라는 36년간 일제의 억눌림에서 해방되었으니 이 보다 더 큰 구원이 어디 있습니까? 
  
해방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죄의 종을, 불의와 부정에 갇혀 있던 자를,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1910년 8월 23일 일본의 강압으로 한일합병에 조인함으로 그때부터 나라 잃은 백성이 되어 36년간 주권 없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땀 흘려 지은 농사는 공출로 착취당하고, 아버지는 보국대로, 아들들은 징용으로 끌려  나가 전쟁터에서 총알받이가 되었습니다. 딸들은 정신대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습니다. 이름도 성도 빼앗기고 말도 글도 빼앗아 민족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애국자는 감옥으로 가고, 지식인들은 망명하고, 힘없는 백성들은  학대와 빈곤으로 죽어갔습니다. 교회는 신사참배를 강요당했고 복종하지 않으면 고문하고 살해했습니다.   
  
제암리 교회는 일본순사들이 신자들을 모두 교회로 모이라 하여 영문도 모르고 예배당에 모였는데 밖에서 문을 걸고 예배당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이나 대한민국의 해방은 하나님이 하신 큰 일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시온의 영광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여호와는 우리를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너무 기쁩니다.”
  
  
󰊳 약속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5절)
  
그동안 날씨가 몹시 더웠습니다. 하지만 주말로 가면서 더위가 수그러집니다. 더위도 지나가고 괴로움도 지나갑니다. 고난도 괴로움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괴로움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눈물은 씨를 뿌리는 일이고 기쁨은 열매를 거두는 일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않으면 기쁨의 수확도 없습니다. 
  
지금은 입에 웃음이 가득 하지만 전에는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지금의 혀는 노래하고 있지만 그때의 혀는 탄식했습니다. 우리의 입이 먼저 슬픔과 비통함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면 거룩한 웃음과 신나는 노래가 터져 나올 수 없습니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kg에서 우승한 김현우선수는 너무 기뻐서 태극기를 들고 뛰고 뛰었습니다.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린 선수가 있다면 내 금메달을 가져가라”고 했습니다.손가락 뼛조각이 떨어져 나갔어도 오른쪽 눈이 부어 올라 앞이 안보여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땀으로 금맥을 캐냈습니다.   
  
우리 말 중에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는데 “내일”이 없는 것을 아십니까? 
내일(來日)은 우리말이 아니라 한자입니다. 그러나 내일이란 말이 없다하더라도 우리에게 내일은 꼭 있어야 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6절)     

이 말은 꿈이 있고 내일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는가? 우리 정치에 내일이 있는가? 우리 교육에 내일이 있는가? 
기대를 걸어야할 곳이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다면 우리는 종교에서 내일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대를 걸만한 종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믿음도 우리말이고 사랑도 우리말인데 소망(所望)은 우리말이 아닌 한자입니다.
  
기독교가 소망이 없다면 어찌합니까?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이 땅은 내일이 없었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교회가 내일이 되고, 교회가 소망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세상의 빛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망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을 통하면 아버지께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광복(光復)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빛을 찾는 것입니다. 불 꺼진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기도의 불이 꺼지면 교회가 아닙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약1:2-3).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둡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반드시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추수합니다.  

런던올림픽 축구에서 일본을 2대 빵으로 이겼습니다. 일본을 이긴 것을 브라질을 이긴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조만식 장로님은 “내가 죽거들랑 내 무덤 비석에 두 눈만 새겨다오. 한눈으로는 일본이 망하는 것을 보리라. 한 눈으로는 조국이 독립하는 것을 보리라” 어린이 대공원에 가면 조만식 장로님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한복차림으로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 손으로는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염원하며 하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일본의 총칼도 그의 애국의 지조를 꺾지 못했습니다. 강요하는 신사참배도 끝까지 거절했습니다. 
  
시온의 영광은 시온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셔야 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결박에서 벗어납니다. 원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영광은 시온이 원점입니다. 
  
여러분이 영광에 이르고 싶다면 시온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주님의 도를 배우고 주님의 길로 행하리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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