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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평생에 (시 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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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생에 (시 146:1-5)


권길중 박사는 세계 100대 조형건축가로 선정이 된 인물입니다. 그런데 한참 인정받을 시기에 식도암에 걸렸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섭취할 수 없다보니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야위어 갔습니다. 겨우 코에 호스를 끼워 죽을 공급받으며 생명을 유지하였습니다. 의사는 살 소망이 없으니 장례를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죽어 가는 자신이 비참했습니다. 병상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평생에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산 것이 무엇인가? 과연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는가? 박사학위까지 주셨는데 하나님 앞에 보답하는 삶을 살았는가?” 돌이켜 보니 자신의 예술과 명예만을 위해 살았으며 하나님 앞에 죄만 지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연변 과학기술대학 총장 김진경 박사의 간증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압니까?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구심점에 두고 인생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다면 연변 과학기 대학으로 오십시오. 중국의 젊은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장래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될 수 있습니다.” 도전과 초청의 설교였습니다. 

그는 설교를 들으며 가슴을 후벼 내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진작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병든 몸이 되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갑고 메말랐던 손이 따뜻해졌습니다. 몸에 온기가 돌고 무언가 자신을 감싸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호스를 빼어버리고 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의사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다며 연구해보자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해지자 그는 부인과 함께 연변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연변 과학기술대학 건축과 교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남은 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할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날마다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평생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리라 결단하였더니 하나님이 책임져주신 것입니다. 

시편 146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노래하라’는 뜻입니다. 본시는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이 유대인들을 돌려보내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고 하였다가 중도에 이웃나라들의 반발로 인해 중단을 명한 정황 속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이 일로 유대 백성들은 낙심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맞서 싸울 수 없던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때 시인이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인간의 권력이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하라. 하나님께서 구하시리라.” 결국 하나님은 훗날 느헤미야를 통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나의 평생에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찬송하리라

테너 배재철 집사는 유럽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던 성악계 기대주였습니다. 독일 자르란트 주립극장에 주역가수로 발탁된 2005년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갑상선암을 선고받은 것입니다. 갑상선암 적출 수술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넓게 펴져있어 결국 성대신경까지 절단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목소리를 잃은 것입니다. 식구들의 걱정과 근심이 컸지만 그는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면서 신앙이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얼마 후 일본에서 성대복원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2008년 12월 도쿄에서 재기 콘서트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중요한 무대로 부르셨습니다. 전도 목적으로 열린 ‘요코하마 러브 소나타’ 집회였습니다. 6천명이 참석한 무대에 섰을 때 그는 전율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집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간절히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가 부른 곡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이었습니다. 그는 찬양을 하면서 스스로 ‘장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노래할 수 있다니 힘을 내자!’ 라며 목소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통해 나의 목소리를 바꾸신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이전까지는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목표였고 열심히 했기에 재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를 잃은 후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어느 무대에서든 설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시 노래할 이유를 찾은 것입니다.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 것입니다. 목소리가 언제 완전히 회복될지 모르지만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명성과 찬사로 인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나님이 주신 평안으로 인한 것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절과 2절에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구절이 세 번 나옵니다. 시인은 이중적으로 찬양을 강조합니다. 자기 속사람, 자기 영혼에게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스스로에게 찬양하리라고 결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채울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 “나의 생전에”, “나의 평생에”라는 말은 나의 계속되는 존재 속에,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을 때까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일생 다하도록 하나님을 높여 찬양해야 합니다. 남은 생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십니다. 

찬송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모든 것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고백할 때 비로소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만 의지하리라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 (Karl Theodor Jaspers)는 ‘인간은 이성만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고 주장합니다. 그는 인간의 능력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어떻게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어떻게 불안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전쟁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그는 마침내 인간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빠져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셔야 비로소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야스퍼스는 말년에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 인생을 마쳤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시인은 인간의 유한성을 언급하며 인간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무한성과 전능성을 부각시키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권면합니다. 귀인 즉 능력이 많은 통치자라 할지라도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무능한 존재이며 도울 힘도 없고 구원해 줄 수 없는 대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권력을 의지하고, 인간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는 일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만물의 창조주시고,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며,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그네를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을 굽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능력이신 하나님 한 분만으로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평생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만족한 삶이 되리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소망두리라 

영국 런던 케이 미술관에 프레드릭 왓츠 (G. Frederic Watts)의 명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이름은 소망(Hope)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둥그런 지구 위에 약하게 보이는 소녀가 남루한 옷을 입고 앉아 있습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눈을 수건으로 싸매고 있는 소경입니다. 그리고 소녀의 손에는 낡은 하프가 들려져 있는데 여섯 줄은 끊어지고 단 한 줄만 남아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는 남은 한 줄에 소망을 가지고 하프를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줄 밖에 없으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소녀의 뒤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별 하나가 희미하게 비취고 있는데 소망의 빛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남북전쟁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던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물질의 줄도 끊어지고, 믿었던 사람과의 줄도 끊어짐으로 소망이 끊어진 것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도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줄이 있다면 남은 인생을 얼마든지 노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줄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5절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의 ‘야곱의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보호를 베푸시며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일컫는 호칭입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인간을 바라보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일을 평생에 해야 할 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생각과 계획이 소멸되지 않고 이루어지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소망의 근원이시고, 예수님은 소망의 채널이시며, 성령은 소망의 능력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덤에서 묘비를 바라봅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픽하고 웃었습니다. 두 번째 줄에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곳에 서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진지해져서 세 번째 줄을 읽었습니다.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나 하시오!” 할 일은 많은데 세월이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삶의 목적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허락받은 시간인 평생에 무엇을 위해 살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음 받은 목적입니다. 

탈무드에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장소는 사람의 가슴”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슴에 하나님을 모시고 평생에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의 평생에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입니까?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평생에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평생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평생에 후회될 일들을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만 감당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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