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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근심 (히 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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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근심 (히 3:12-19)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369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시험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누군가. 근심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걱정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에게 근심걱정이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 염려와 근심을 잘 대처하지 못하면 옥토의 가시떨기가 되어 영혼 농사를 그르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22에 사람의 마음 밭 네 가지를 말씀하시면서“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마음 밭을 피폐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염려라는 것입니다. 

이 염려의 실체에 대해 어느 분은 안개에 비유하여 말하기를 “광화문 일대를 30미터 두께로 짙게 덮을 수 있는 안개가 실은 한잔의 물이 600억 개의 아주 작은 물방울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염려가 처음에는 한 잔의 물처럼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나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의 내면세계 전체를 가릴 수 있는 안개로 돌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염려로 가득한 사람의 심령에는 하나님도, 그의 약속도, 응답의 손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듭 당부하신 말씀가운데 하나가“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 말씀에“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 25절~26절,33절에는“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해야 할 염려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염려하고 근심할수록 유익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본문 히브리서 3장 12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조심할 것이요.”라는 말씀이 이전 개혁성경에는“염려할 것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적인 육신의 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다 맡기라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염려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근심과 걱정, 염려는 육신과 영혼의 건강까지 해칩니다. 이는 마치 곡식의 성장을 해치는 가시떨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을 위한 염려와 근심은 영혼 건강에 큰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건강할 때 육신의 건강과 함께 범사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삼서 1장 2절에“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반면 고린도후서 7장 10절 말씀에는“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도 말씀하시기를“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브리서 3:1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는 것은“분리되다, 떠나다, 배신하다.”는 뜻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결합하는 것이며, 불신앙이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분리 분리되는 것은 마치 포도나무의 가지가 줄기에서 잘려 나간 것과 같습니다. 줄기에서 잘려나간 과일 나무 가지를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말라질 뿐 아니라 나중에는 불 태워버립니다. 이처럼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것은 실패요, 불행이요, 영원한 파멸입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에게서 떨어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과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가 그 사람입니다. 본문에서는 애굽에서 에서 해방되어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들의 주변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단에 미혹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믿음을 저버리고 낙심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히브리서 6장 4절~6절 말씀에는“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말씀하시기를“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고 하셨습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이 어느 날 환상을 보니“천국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갈래의 지옥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데 바로 천국 한 발자국 앞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의 영혼을 위해 염려하는 성도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피차 권면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3절에“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연약하여 부러지기 쉬운 상한 갈대와 같습니다. 쉬 깨어지는 질그릇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격려와 권면이 필요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 받는 이 시대에 최고의 부흥사입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어렸을 때에는 동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골치 덩어리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저 아이는 커서 뭐가 되겠는가?”하고 머리를 흔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구쟁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 끄는 재주가 있어. 개성을 잘 살리면 크게 될 거야”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할머니의 격려에 힘입은 빌리 그레이엄은 마침내 세계적인 대 부흥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도 자랄 때 사고뭉치였다고 합니다. 말썽을 부리며 아이들을 몰고 다니는 골목대장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의 장래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할머니는 손자에게 말하기를“너는 군인의 기질을 타고났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맥아더는 눈이 확 뜨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위대한 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권면하고 격려하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일생을 바꿔놓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집니다. 서로를 권면하며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약성경 전도서 4장 9절~12절 말씀에“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하셨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설교가 스펄전 목사에게 어떤 교인이 찾아와서“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 교회에 나오지 않고 혼자서 믿으려합니다. 그래도 구원을 받겠지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펄전 목사는 대답하기를“혼자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숯불이 모여서 타야 더 잘 타지, 잘 타는 숯불도 떼어놓으면 꺼지고 맙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도 혼자 있으면 그 불이 꺼지기 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말씀하시기를“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하셨습니다. 말세가 될수록 더욱 열심히 모이라는 것입니다.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며,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며, 서로 격려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권하여”모이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2.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3절에“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죄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순종이 거듭되면 그 사람의 심령은 점점 완고해져 더욱 무서운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체 가운데 특정 장기(臟器)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무서운 질병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간 경화’‘동맥 경화’‘뇌경색’‘심근경색’등의 병명이 그것입니다. 이때에 쓰이는‘경(硬)’자는‘굳을 경, 단단할 경, 딱딱할 경’자 입니다. 부드러워야할 장기가 딱딱하게 굳어져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끝내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처럼 육체의 장기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영혼에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3:8에“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완고”라는 단어가 한자의‘단단할 경(硬)’자와 같습니다. 완고란,‘굳어지다, 말라서 굳은, 딱딱한, 성미가 깔깔하고 고집이 셈, 괴팍하고 융통성이 없는 마음, 옹고집, 자기주장에 대한 양보가 없는 것’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기가 굳어지면 사망에 이르듯, 심령이 강퍅해지면“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11절)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여 꿈을 이루지 못하고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심령은 완고한 마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심령 즉 온유한 마음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 가운데 하나가 온유한 마음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23절에“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가운데 하나가‘온유’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부드러운 심령을 소유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말씀하시기를“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고 하셨습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마음이여!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에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하나 꽂을 자리가 없구나.”(달마대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우면 온 세상을 다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다 수용하게 됩니다. 여기에 사람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이 강퍅하게 되지 않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심령은 사랑하셔서 땅을 차지하도록 하시는 반면 강퍅한 심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 즉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3. 시작할 때의 확신을 끝까지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4절에“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를 상속할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입니까?“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는”사람입니다. 처음의 신앙을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신앙의 변절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변하면 버립니다. 물건도 그렇고,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하면 버립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셨으나 그는 도중에 변절했습니다. 변절했을 때 하나님은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기룟 유다도 마찬가집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습니다. 

처음의 신앙을 끝까지 잡지 못해 버림당한 사람에 대해 본문인 히브리서 3장 15절~16절에 말씀하시기를“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60만명 가운데 끝까지 확신을 가지고 믿음을 지킨 사람은 극 소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소유할 수가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확신과 인내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승리와 영광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서양 속담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귀가 쓰던 도구를 다 경매 처분하는데“이것은 팔지 않음”이라고 붙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낙심과 포기”라는 도구였다고 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실패하도록 미혹하는데, 낙심케 하므로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낙심하여 포기하므로 실패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참지 못하는 조급함입니다. 서양 격언에“참는 것은 아픈 곳에 바르는 고약이다.” 라고 했습니다. 상처에 바른 고약이 그 상처를 치료하듯, 인내는 우리들의 소망을 이루는 양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생활환경은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것들로 가득 한 것 같습니다. 문명의 발달이라는 것이 대게는 사람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것들인 것 같습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한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서양 격언에“하늘은 기다릴 수 있는 자에게 모든 것을 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편 37편 7절에“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때무에 불평하지 말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어떠한 때에 참고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때로는 한 사람이 회개하여 주님께로 돌아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명한 선교사 윌리암 케리는 인도에서 힌두교인 한 명을 전도해서 세례를 주는데 7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한 명을 전도하는데 14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뉴질랜드에서는 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데 9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또한 인도에 Ongole 선교회라는 기관이 있었는데 15년 동안 10명밖에 구원을 시키지 못해 문을 닫으려고 하다가 좀 더 기다린 결과 30년 후에는 15,000명을 전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도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죠지 뮬러 목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한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삶을 나누었던 다섯 명의 친구들의 구원 문제를 위해서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죠지 뮬러는 다섯 명의 친구를 위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믿지 않는 친구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죠지 뮬러는 이 두 친구를 위해서 무려 52년 간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죠지 뮬러는 이제 노년이 되어서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워 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죠지 물러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간절하게 최후의 설교를 했습니다. 

마지막 설교를 하던 그 날 그의 한 친구가 거기에 참석했다가 뮬러 목사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죠지 뮬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까지 믿지 않았던 한 친구가 뮬러의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죠지 물러가 자기를 위해서 52년간이나 기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죠지 뮬러가 죽은 그 해 이 친구는 결국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 그는 전 영국을 순회하면서 간증하기를“죠지 뮬러 목사의 기도는 다 응답되었습니다. 

저는 그 기도의 최후 응답입니다. 당신의 모든 기도도 다 응답됩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확신에 찬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인 히브리서 3장 14절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탄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죄악의 사람, 불순종의 사람이 되게 하고자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첫째, 서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둘째, 심령의 완고함을 이기기 위해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셋째, 처음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이 험한 세상이기고 승리하게 됩니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보람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장차 올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우리 모두위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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