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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1) (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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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게 마옵시고(1) (마 6:9-13)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지만, 현실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아직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상에 사는 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와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 사이의 긴장 속에서 우리는 매일 전투 같고 어디에서 실족할지 모르는 위기에서 살고 있습니다. 

본문의 예수님의 기도는 일용할 양식, 죄 사함, 그리고 시험에 관련된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신자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테스트이고, 또 하나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에 빠지도록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게 하고 단련시켜서 우리의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때때로 테스트하십니다. 그러나 유혹은 사탄이 우리의 신앙을 넘어뜨려 악에 빠지게 해서 신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게 미혹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옵고”에서 시험은 사탄의 시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은 사탄의 시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신자의 삶은 시험에서 실패하느냐 이기느냐의 싸움입니다. 시험에서 이기면 신자로서의 축복된 삶을 살 것이고, 시험에서 지면 신자로서의 축복과 특권을 놓쳐버리고, 신자이지만 신자답지 않은 삶을 살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영적인 부요함을 놓치고 살아가는 이유는 사탄의 시험에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시험에서 이기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영적인 충만함을 누리게 됩니다. 시험은 한순간에 빠질 수 있지만, 그 시험으로 인한 고통은 길고 후유증이 큽니다. 영적인 성장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만 믿으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저절로 천국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는 싸움을 통과해야 합니다. 

신앙은 중립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인가로 끌려가게 되어있고,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했습니다. 그는 항상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제 잘했다고 오늘 잘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과거에 신앙생활을 잘했다고 지금도 잘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넘어질 가능성이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험은 나이와 상관이 없고 영적수준과도 상관없습니다. 시험에 등급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시험은 계속됩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할수록 시험의 등급도 높아집니다. 사탄은 전략을 가지고 교묘하고 간교하게 우리를 시험합니다. 사탄은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40일 금식을 마친 후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을 때 공격을 했습니다. 

사탄은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습니다. 성전에서도 영적으로 충만한 예수님에게 시험을 걸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도 마귀는 활동할 수 있습니다. 아니 더 날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예배 안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다양한 형태로 유혹합니다. 부흥하는 교회 안에 사탄이 활동합니다. 시험은 가장 최선의 환경 속에서도 일어납니다.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가장 최적의 환경 속에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이 시험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어 놓습니다. 언제 끝이 날까요? 죽을 때까지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사탄은 활동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싸움이 치열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날마다 영적인 눈이 열려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험은 어느 것 하나도 만만치 않고 시험에 넘어갔을 때의 대가지불은 엄청납니다. 그러므로 영적 분별력과 영적 경계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시험이 옵니까?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는 원인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체 안에는 죄를 짓고자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에게서 죄의 뿌리는 너무 깊어서 잘 사라지지 않습니다. 착하게 살고 싶지만, 착하게 살고 싶지 않은 갈등이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원하는바 선은 행하지 않고 내가 원치 않는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7:19)”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기회만 되면 나의 욕심을 채우고, 원수 갚을 생각을 하고, 보복을 꿈꾸고, 미워하고, 비난을 입에 달고 삽니다. 철야기도하고 돌아서서 분노하고, 예배 마치고 가면서 부부가 싸울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육체의 정욕을 이겨낼 능력이 없습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 하였습니다. 모든 것들이 죄로부터 시작해서 죄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입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사탄의 속성과 전략을 기가 막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자가 C.S 루이스에게 마귀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죄악과 유혹만을 이해하고 이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죄악을 분석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안에 가장 냄새나는 죄들이 다 있습니다. 

시험은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 자기 욕심이 있으면 미혹 당하여 판단력을 잃고 죄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시험의 일차적인 요인은 누가 나에게 주어서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정욕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이 시험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죄짓는 일에 익숙해서 죄를 짓는데 도가 텄습니다. 우리 몸에 속속들이 죄가 베여있습니다. 죄성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기 쉬운 이유는 우리가 죄에 빠지기 쉬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의지와 실력으로는 시험을 이길 수 없다는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만하면 안 됩니다. 내 안에 있는 죄성이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부터 기도가 시작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에서 기도를 통해 제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시험에 노출되어 있는가를 잘 아시고 이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적으로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 환경적 요소입니다. 

환경 자체가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의 죄성과 환경의 만남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환경에 약합니다. 죄를 지을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만나면 위험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유혹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정욕적이고, 얼마나 육감적입니까? 내 안에 있는 죄성과 죄짓기 알맞은 환경이 만나면 사고가 터집니다. 이 세상의 문화 안에는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 것들이 많습니다. 눈 둘 곳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편히 쉴 곳이 없습니다. 

세상의 유혹은 강력합니다. 마치 지뢰밭과 같습니다. 어린 자녀들과 청년들을 보면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한국의 발달된 인터넷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뒷면으로는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포르노에 노출되어 이 사회가 얼마나 음란한 문화가 뒤덮고 있는지 심각한 지경입니다. 곳곳에 시험이 널려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교회에서는 비 오는 날 빌딩과 빌딩 사이를 오가는데도 이성끼리 우산을 씌워주는 일을 금하는 룰을 정해놓았다고 합니다. 너무 한 것 같지만 그렇게 해야 할 정도로 이 세상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죄의 유혹을 받을 만한 소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결혼한 남자와 여자는 자기 아내 혹은 남편이 아닌 사람을 너무 오래 쳐다보면 안 됩니다. 남의 남편과 혹은 아내와 눈을 너무 오래 맞추고 있으면 큰일 납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욥은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노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 31:1)」라고 서약했습니다. 그가 경건한 사람이었음에도 그 내면에 어떤 일에 주목함으로 음란의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잠 6:27~28)」

여러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죄를 지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에서 일을 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도박심리가 있는 사람이 라스베가스로 이민을 간다면 죽으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 파는 가게에서 일을 하거나 양조장을 한다면 어떻습니까? 세상의 문화는 신자로 하여금 시험에 들도록 기가 막히게 유혹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듣는 소리는 “돈”입니다.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가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기에 완벽한 문화라는 것을 인식하고 경계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늘 만나는 사람을 주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 환경으로부터 시험이 밀고 옵니다. 죄짓기 쉬운 환경 안으로 들어가면 사탄은 자기 세상처럼 펄펄 뛰면서 공격합니다. 신자는 가야 할 자리를 선택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거부할 자유를 행사하지 않으면 자유를 잃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기 전에 선택이 중요합니다. 시험에 들고 난 다음에 후회하면 늦습니다. 죄를 지을 환경 안에 있으면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죄는 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환경을 선별적으로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분별력이고, 그 분별력이 곧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믿음이 떨어지게 하는 것을 우리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그 위험이 얼마나 큰가를 인식하고 믿음의 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셋째, 사탄이 우리를 시험에 들도록 유도합니다. 

신자가 되기 전에는 전쟁이 없습니다. 사탄의 영역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전쟁이 일어납니다. 대적자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험에 들게 하는 사탄의 존재와 싸워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인류의 종말이 오는 순간까지 사탄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21세기에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할지 모르나, 어두움 가운데서 역사하는 악한 영적 실체를 부인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보이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식별하기 어렵고 무시하기 쉬워서 당하는 줄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이런 영적 싸움에 무관심한 신자들이 많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활동합니다. 마귀가 장난을 칠 때 그 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차 하는 순간에 당합니다. 적을 알아야 합니다. 시험을 거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 해도 반은 이겼습니다. 

많은 비극적인 사건과 타락의 참상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 속에는 악한 정체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악한 생각과 악한 일을 행할 수 있는가를 돌아보면 내가 아닌 어떤 악의 실체가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스승을 배반하고 파는 사건 속에서 성경은 사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따르고, 가까이에서 기적을 체험하고 동거동락했음에도 마귀가 준 생각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가룟 유다의 책임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생각을 마귀가 집어넣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로 거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주는 생각이 지배하여 행동으로 옮기게 되고 그것이 인생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게 하는 영적인 세력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순간부터 영적인 세계에 눈을 떠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눈이 열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또 우리를 실패하게 만드는 사탄의 세력에 대해서도 눈을 떠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일상에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잔인하고 교활합니다. 사탄은 속이는 데 명수입니다. 거짓된 진리를 속삭입니다. 망하게 하는 메시지로 미혹하여 참된 진리를 의심하여 멀어지게 만듭니다. 사람들을 죄에 빠지도록 충동질을 하고 때로는 격동시킵니다. 때로는 달콤하고 기분 좋게, 아주 그럴듯하게 합리화하면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과 세상의 환경, 사탄의 역사. 이 삼박자가 맞으면 꼼짝없이 당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죄성과 환경을 기가 막히게 이용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성경은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합니다. 대적한다는 것은 수세에 몰리지 말고 기선을 제압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선제공격을 해야 합니다. 중립상태에서 애매하게 있으면 당합니다.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이미 마귀의 수중 안에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 급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공백기를 만들면 마귀가 달려듭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하루를 살아간다면 영적 선제공격을 하고, 사탄을 대적하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것 없이 살아간다면 사탄의 영역 안에 내 삶을 맡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여름휴가를 갈 때에도 성경을 가지고 가서 어떤 일들 속에서도 영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사탄의 시험은 강력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시험으로부터 보호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나의 약점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람들마다 약점이 있습니다. 돈에 약한 사람은 사탄이 돈 문제를 걸고 들어옵니다. 이성에 약한 사람은 늘 이성의 문제로 반복해서 넘어갑니다. 명예욕에 약한 사람은 사탄이 약점을 알고 공격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늘 그것으로 넘어집니다. 늘 넘어졌던 것에 넘어집니다.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급소를 때립니다. 또한, 사탄은 나의 강점을 이용합니다. 

성경에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삼손은 힘이 강점이지만, 그것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치고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기도합니다. 자신의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시험을 이길 수 없다는 겸손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할 때 이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넘어진 전 후를 보면 기도한 흔적이 없습니다. 기도가 사라진 공백기에 사탄이 밀고 들어온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깨어있는 기도는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민감한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상태에서는 사탄의 역사와 활동이 보이고, 기도할 때를 압니다. 그러나 깨어있지 않으면 영적으로 둔감해지고, 영적 집중력이 사라져 결국은 사탄의 공격에 무방비상태가 되어 당합니다. 분별력이 없으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깨어있는 기도를 이 여름에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탄에게 지고 빼앗긴 것을 다시 탈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넘어지고 시험에 들어서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고통입니다. 베드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고 있을 때 주님은 생사를 건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와서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고,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부인하다가 결국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도망자와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깨어있지 않은 삶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주일에도 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에서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깨어있는 상태라면 충만한 은혜를 받지만, 깨어있지 않다면 죄에 스며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공격하는 루트를 이해하고 예의주시하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무시하면 마귀가 나를 무시해서 가지고 놉니다. 그러므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는 자리에서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지금은 사탄이 극도로 발악을 하는 마지막 때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쉬지 않고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모든 요소로부터 방패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스스로 기도하고 이겨낼 힘이 없는데 사탄과 세상의 문화는 집요합니다. 학교와 청소년의 문화를 쥐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릅니다. 

한국의 다음세대들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어린 아이들이 극심한 공격을 받고 있고, 타락한 문화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 안에 지배하고 있는 어둠의 권세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실패하게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탄은 무차별 공격으로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어 죽게 하고, 음란하게 만들어 가슴을 깨뜨리고, 감정을 격동시켜 서로 헐뜯고 싸우게 합니다.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어 기도하지 못하게 만들고, 생활을 분주하게 해서 영적인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정욕을 부추겨 한순간도 쉬지 못하게 합니다. 초신자들이 구원의 진리에 흔들리도록 미혹하고, 헌신된 사람들이 헌신의 자리를 포기하게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깨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시험은 위험한 것이지만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음 안에서, 말씀의 기초 속에 승리한다면 영적성장과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특권을 누리는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시험에서 승리하신 모범을 보여주셨고,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시고,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면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시험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유업을 마음껏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규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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