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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물리라에 빛을 (마 5: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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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리라에 빛을 (마 5:14-16) 


미국에 잘 다녀왔습니다. 보름 정도 나녀왔으니 제법 긴 여행이었습니다. 몇 교회에서 집회도 하고 설교도 하였으나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은 시카고 위튼 칼리지에서 열린 코스타 집회 저녁설교 인도였습니다. 

이번 코스타의 주제는 ‘이웃, 또 다른 우리’였습니다. 우리 교회와 재단이 하고 있는 사역이 바로 ‘이웃 사역’이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하고 소개해 주면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도전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아마 저를 저녁 강사로 불러주신 것으로 이해하고 열심히 우리 학생들에게 사흘 저녁 설교를 하였습니다.

첫째 날은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13절의 말씀으로 ‘자녀의 권세’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습니다. 이 설교는 제가 지금까지 아마 500번도 더한 설교이고 어느 집회에 초청을 받거나 첫날 꼭 하는 설교입니다. 이웃과의 바른관계를 맺기 위하여 먼저하여야 할 일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인이시다’라고 하는 로드쉽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습니다. 

둘째 날은 창세기 12장 1-4절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의 복이 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인데 기독교의 축복의 개념은 우리가 그 복의 목적이 되지 않고 우리를 통하여 그 하나님의 축복을 세상에 흘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유학생들은 보다 나은 삶을 목적하고 유학길에 오릅니다. 남들은 유학을 한다니까 그냥 팔자 좋은 사람들이라고만 생각을 하지만 유학생들의 대부분은 정말 팔자 사나운 고통스러운 삶을 유학생활 기간 내내 하게 됩니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한계상황 속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그것을 다 알고 무릅쓰면서 유학을 하는 목적은 그 후에 누리게 될 보다 높고 넉넉하고 아름다운 삶 때문입니다. 그냥 쉽게 말해서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됩니다. 이런 저런 포장을 근사하게 할 수 있겠지만 그냥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개인적인 야망이 그 목적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그 목적을 이루되 거기서 머물지 말고 그 복을 세상에 흘리는 사람이 되라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야망을 소명으로 바꾸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야망을 소명으로 바꾸라는 말에 반응을 하였습니다.

셋째 날은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16절의 말씀으로 ‘천국의 사고방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와 재단이 벌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 프로잭트를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쪽방 탈출운동’, ‘밑천 나눔 운동’, ‘메자닌 아이팩과 메자닌 에코원 그리고 고마운 손과 블리스 앤 블래스’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보니꼴스키와 인도 그리고 베트남 사역도 소개하였고 요즘 작심하고 가는 곳마다 설교하고 있는 아프리카 말라위 그물리라 사역도 소개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특히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들은 교회가 하여야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순수한 복음만을 전해야 하고 목사는 그것만 설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와 우리 교회의 사역에 대하여 염려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첫째 날 설교를 요한복음 1장 12절과 13절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첫날부터 우리 사역부터 설교를 하였다면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사역의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입니다. ‘왜 이웃을 섬기는 이런 사역을 구체적으로 열심히 올인 하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냥 간단히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을 복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사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의 마을 장터에서 애타게 하루 하루의 품삯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품삯을 주고 싶어서 포도원을 경영하는 그 마음과 삶과 행동이 복음이며 그런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와 재단이 그와 같은 사역을 예배당 건축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앞서 하는 것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우리는 사역을 할 때 복음을 말로 전하지도 않고, 공장에서 예배도 잘 드리지 않고, 예수님, 하나님, 복음, 십자가, 교회 이야기 거의 전혀 하지 않지만 사역의 결과 정말 그 어떤 선교사역보다 선교효율이 높다는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꼭 목사가 되어 신학을 전공하고 선교지에 가서 교회를 세우는 것만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학생들이 전공하는 모든 것이 아주 좋은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전공한 그 모든 것을 들고, 뿐만 아니라 유학의 결과로 얻게 될 모든 성공과 축복과 권세를 개인을 위한 야망 성취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강도만난 것과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오후 5시 장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게 된다면, 예를 들어 그와 같은 지식과 경험과 힘들을 아프리카 말라위 그물리라에 들어가 저들을 위하여 그것들을 사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선교라고 설교하였습니다.

코스타는 전통적으로 첫째 날에는 복음을 제시하고 구원의 초청을 하고 마지막 날에는 그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선교의 초청을 합니다. 코스타는 꼭 선교지에 나가서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활동을 하는 것만을 선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헌신도 있어야 하지만 자기 전공영역에서 일상적인 삶을 살지만 그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선교적인 삶을 사는 것도 선교의 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선교초청을 할 때 두 가지로 초청을 합니다. 하나는 최소한 2년 이상 선교지에 나가서 풀타임 선교사역을 할 사람과 풀타임 선교사로 헌신은 못하지만 있는 곳에서 저들을 지원하며 선교적인 삶을 살아 자기가 있는 곳을 복음적인 문화로 바꾸어 가는 사역을 할 사람으로 초청을 합니다.

올해 코스타는 약 1,200명 가까운 청년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설교를 마친 후 선교초청을 기도로 준비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십일조를 주십시오. 1,200명의 학생 중 120명 정도의 풀타임 선교 헌신자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적절할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다 풀타임 선교 헌신을 해도 선교는 비효율적이 되고, 모두가 다 삶의 현장에서 삶으로 그리고 선교후원으로 헌신하겠다고 해도 선교는 비효율적인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9 정도가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10%의 풀타임 선교헌신자는 쉽지 않았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열심히 설교하고 초청하였습니다. 먼저 최소한 2년 이상 풀타임 선교 사역을 할 사람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런 헌신을 할 사람들은 일어서서 강대 앞으로 나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울면서 일어나 강대 앞으로 나왔습니다. 여러분 믿어 주시겠지요? 꼭 기도대로 되었습니다. 거의 정확히 10%의 헌신자들이 강대 앞에 나와 무릅을 꿇었습니다. 그 중의 한 청년은 우리 큰 아들 대학 동기생이었습니다. 바이오엔지니어링 박사를 마치고 어느 대학교에서 2년 동안 포스트닥터를 할 예정이었는데 그것을 그 자리에서 포기하고 그 2년 동안 말라위를 가겠다고 헌신하였습니다.

나머지 90%의 학생들에게 도전하였습니다. 너희들이 이 앞에서 나와 헌신한 친구들의 생활과 선교와 사역을 담당하라고 도전하였습니다. 앞에 풀타임 선교사로 헌신한 너희 친구들이 밥을 먹어야 너희들도 먹고, 너희 친구들의 아이들이 학교 가야만 너희 아이들도 학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라고 도전하였습니다. 그것은 풀 타임 선교사로 현지에 나가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고 똑 같은 헌신이라고 도전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다 울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헌신하였습니다.

오전 세 번의 설교를 숭실대학교 교목실장이신 김회권 목사님이 해 주셨습니다. 첫째날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가지고 설교를 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그 말씀을 기록한 코이네라고 하는 헬라어의 특징을 가지고 설명을 해 주셨는데 코이네 헬라어로만 표현이 되는 개념으로 성경을 보면 대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냥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지나간 것이 우발적이고 단회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누적된 반복행위를 통하여 습관적으로 일어난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날 우연히 그런 착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소에도 늘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누적된 반복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 은혜가 되었습니다.

저는 운동을 참 좋아하였습니다. 학생 때 탁구를 많이 쳤었습니다. 야구도 좋아하여 많이 했었습니다. 탁구를 어느 정도 치는 사람들끼리 탁구를 할 때 그 공의 스피드는 엄청납니다. 공의 방향과 속도와 성질이 그때 그때마다 다 다릅니다. 그것을 눈으로 보고 뇌로 판단하고 계산하고 그것을 팔과 근육에 명령을 내려 대응을 한다면 공을 벌써 땅에 떨어진지 오랠 겁니다. 그것은 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운동은 근육이 기억을 하게끔 하는 무한반복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탁구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고 모든 운동은 다 수도 없는 반.복을 통해서 모든 상황을 뇌가 아닌 근육이 기억하고 반응을 해야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복음과 신앙을 뇌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냥 입으로만 실천합니다. 어쩌다 행동하기도 하지만 정말 어쩌다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근육이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이웃을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대제사장과 레위인처럼 그냥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공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기 전에 제 페이스 북에 그물리라에 전기를 끌어들이는 사업을 소개하고 3억 원을 목표로 모금에 들어갔습니다. 제 페이스 북은 제법 뜨거운 페이스 북 중에 하나입니다. 보통 글을 올리면 댓글이 100개 정도 안팎으로 달리고 어떤 예민한 주제가 올라오면 수백개의 댓글도 달리는 아주 활발하고 뜨거운 페이스 북입니다.

그물리라에 전기를 끌어들이려는 것은 가정 가정마다 불을 밝혀주려는 뜻이 아닙니다. 저희 재단의 목표는 구제가 아니라 자활입니다. 그래서 투자를 해도 4년 후 우리가 그물리라를 떠났을 때 저들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는데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돈이 좀 들지만 우선적으로 마을에 전기를 끌어 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조그마한 공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고, 이런 저런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가 없으면 우리가 계획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3억 원 정도의 목표를 가지고 모금을 시작한 것입니다.

갑자기 페이스 북이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반응도 싸늘했습니다. 제 페이스 북은 두 개의 페이지가 있습니다. 본래 페이스 북은 친구 5천 명까지가 제한입니다. 그래서 5천 명 이상과는 소통이 안 됩니다. 그래서 개인페이지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친구제한이 없는가 봅니다. 두 개의 페이지 친구와 친구는 아니지만 제 글을 받아보겠다고 신청을 하여 제가 글을 올리면 자동적으로 글이 올라가는 친구의 수가 2만 명 정도 됩니다.

혹시 중복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제가 글을 올린다고 그 3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다 열심히 제 글을 읽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 글을 읽겠다고 신청한 사람의 수가 어쨌든 3만 명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저와 같은 생각일 수는 없습니다. 생각은 같아도 이미 이곳 저곳 후원곳이 있어서 더 이상 후원에 참여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니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 모든 상황을 다 감안해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페이스 북을 통해서 모금에 참여한 숫자는 3만 명 중에 약 1%가 조금 넘습니다. 7월 6일 현재 381명이 5,800만 원 정도 모금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이번 미국 집회 때 설교를 통하여 모금한 돈과 아직 입금을 되지 않았지만 약정을 해 주신 분까지 포함하면 한 1억 2천 만 원정도 모금이 된 것 같습니다.

3억 원 모금은 결국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모금만큼이나, 아니 모금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참여입니다. 3만 명 중에 1%정만이 응답했다는 것은 참 비참합니다.

그런 제 마음을 페이스 북에 올렸습니다. 그 글에 또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제법 공격적으로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그럼 모든 요청에 응답하시고 돈을 내십니까?>

당연히 아닐꺼라고 생각하고 한 질문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잘 믿으시겠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거의 그렇게 합니다. 그런 이야기와 요청을 들으면 무조건 합니다. 최소한 한 번은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어떤 이유였든지 간에 그 이야기와 요청을 듣고도 돈을 보내지 않으면 돈을 보내지 않는 것을 근육이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조금 힘들어도 다만 얼마라도 보내면, 거의 매번 그렇게 하면 그것을 근육이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 중에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이 좋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벌리고 그 일을 위하여 모금을 하고 그 모금에 참여하는 일이 저는 구체적인 착한행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착한 행실을 머리로 기억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머리로 착한 행실을 기억하는 크리스천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 착한 행실을 근육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가 맞는 것 같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을 칠 때 미디안의 말을 듣고 나선 사람들의 수가 약 3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기드온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한 숫자는 300명 이었습니다. 1% 였습니다.

저는 제 설교를 들으시는 여러분들이 그 상위 1%였으면 좋겠습니다. 착한 행실을 머리가 아닌 근육이 기억하여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고 제사장과 레위인 처럼 이 핑계 저 핑계대면 지나가지 않고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머지 2억 원은 여러분들이 채워 주십시오. 그래서 강도만난 그물리라 마을을 살려주십시오.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그냥 지나가지 말아주십시오. 그물리라 전기모금 후원계좌는 외환은행 630-007746-818 (열매나눔 인터내셔널)입니다.

해외에서 송금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자세한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외환은행 영문명칭 KOREA EXchange bank
본점주소: 181,2-ka, Eulji-Ro, Chung-Ku, Seoul, Korea.
외환은행 국제통신 Code (SWIFT BIC): KOEXKRSE
외환은행계좌번호 630-007746-818
예금주 : merryyear international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14절의 말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는 말씀이 ‘너희는 그물리라의 빛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너희가 그물리라의 빛이 되어주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제가 너무 집요하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을 제 말로 듣지 마시고 하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시고 일어나 빛을 발하는 행동하는 크리스천들이 되어 주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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