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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섬기라 (롬 1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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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섬기라 (롬 12:11-13)


존 밀턴 (John Milton)이 청년 시절에 중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정신 지체를 가진 마이런(Myron)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우울해 보였고 집 외에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이런은 어머니와 함께 특이한 일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식물을 키우는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잔디 깎기, 우거진 관목정리, 울타리 치는 일과 꽃을 키우는 일들을 자원하여 했습니다. 특히 마을의 과부나 스스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 집의 잔디를 깎아주고, 잎사귀를 긁어내며, 꽃을 심어주곤 하였습니다. 

마을은 그가 아니었더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장소가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그의 뒷주머니에는 조그마한 기름통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삐걱거리는 문이나 돌쩌귀, 대문을 발견하면 즉시 기름을 발라 주었습니다. 주일에는 반드시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갔으며 다른 곳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를 놀려대곤 하였지만 워낙 낙천적이며 침착했기에 누구도 마이런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밀턴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그 곳을 떠난 지 몇 년 후에 마이런이 죽고 말았습니다.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밀턴은 그의 장례식을 보러 그 곳에 갔습니다. 

장례식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했습니다. 밀턴처럼 먼 거리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마이런은 유명하지도, 부 하지도 그리고 존경을 받지도 않았지만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였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속에 있는 섬김의 정신 덕분에 마이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역(事役)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사역은 남에게 어떤 동작을 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런 행위는 유쾌하지 못할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역은 전혀 다릅니다.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성한 행위입니다. 헬라어로 ‘디아코노스’ 라고 하는데 ‘섬기다’ 라는 의미입니다. 섬김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바로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사역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필수적인 일입니다. 

로마서 1~11장이 구원에 대한 교리를 강조하였다면 12장부터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언급합니다. 특히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목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와 이웃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근거는 섬김의 정신입니다. 섬기는 일에 열정이 없다면 이미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를 섬겨야 합니까?
 
첫째로 소망에 즐거워하며

교황청으로부터 성자 칭호를 받은 한 사람이 북아프리카에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수도사가 그를 만나보고 싶어 북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마침내 성자가 살고 있는 곳에 도착한 수도사는 그를 만나자마자 놀라고 말았습니다. 성자가 기도나 금식을 하는 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두를 수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 온 수도사는 이상히 여기며 물었습니다. “성자가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성자는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내가 한 것이라곤 구두를 수선한 것밖에 없습니다. 나는 손님들이 구두를 맡기면 예수님의 구두라고 생각하면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구두를 즐거운 마음으로 수선합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를 성자라고 부르더군요.” 섬기는 일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삶의 방식이 결정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즐거움으로 섬겨야 합니다. 마지못해서, 환경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강요된 섬김이나 봉사는 하나님 앞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아무런 여지가 없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십니까? 즐거움의 근거는 소망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신령한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천국의 소망이기에 중요합니다. 날마다의 삶이 힘들더라도 소망이 있기에 즐거워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그 일이 귀한 일이든 천한 일이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누가 더 섬김을 받느냐로 경쟁하는 교회가 아니라 누가 더 잘 섬기느냐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즐겁게 섬기는 섬김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섬길 만한 것이 없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어진 것으로 섬기면 됩니다. 경제력이 있으신 분은 경제력으로 섬깁니다. 지식이 있는 분들은 지식으로 섬기면 됩니다. 권력이 있으면 권력으로, 건강이 있으신 분들은 건강으로 섬기면 됩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즐겁게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즐거워하며 주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환난을 참으며

평안북도 선천의 가물남 교회를 담임하셨던 이성주(李聖柱)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는 공산주의를 앞장서서 반대하다가 붙잡혀 아오지탄광으로 보내졌습니다. 공산당 간부들은 이목사의 마음을 돌이켜 이목사를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찾아와 말했습니다. “여기서 일 해보니까 어떻소? 당신은 바보요. 그까짓 목사 짓을 해서 무슨 소망이 있겠소? 그러지 말고 우리와 손잡고 공산주의나 합시다.” 그럴 때마다 이목사는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물론 소망은 있지요. 내 소망은 나팔통과 같다오. 오히려 당신들에게 소망이 없지요. 

당신들의 소망이야말로 보습 끝과 같소.” 보습은 밭을 갈 때 사용하는 쟁기를 의미하는데 모양이 위는 넓지만 내려갈수록 좁아지고 끝은 뾰족합니다. 그러나 나팔 통은 처음에는 가늘지만 갈수록 굵어지고 넓어집니다. 이성주 목사는 공산당 간부들 앞에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당신들의 소망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소. 

그러다 죽으면 그 소망마저도 사라져 버리고 말지요. 그러나 내 소망은 다르오. 내 소망은 예수 믿는 소망인데 나이가 들수록 더욱 더 커지고 넓어진다오. 따라서 당신들의 소망은 보습 끝과 같고, 내 소망은 나팔통과 같으니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나와 더불어 예수 믿읍시다.” 공산당은 이목사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고 총살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성주 목사의 눈앞에는 소망이 분명했기에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환난을 참으며 끝까지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환난 중에 참으며” 살다보면 힘든 일이 왜 없겠습니까? 때론 가족과 사별하기도하고 사업에 위기를 만나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도 환난 중에 참으며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바른 성도의 모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환난으로 인해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닙니까? 환난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환난 중에도 참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믿음을 버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예수 때문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해도 환난을 참으며 끝까지 주를 섬겨야 합니다.
 
셋째로 기도에 힘쓰며 

미국의 교회학교 예배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헌금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헌금을 하는데 한 아이는 헌금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습니다. 헌금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교사가 아이를 불러 사정을 물어보았더니 집이 너무 가난하여 헌금할 돈이 없어 대신 그 시간에 기도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기도를 하느냐’ 물어 보았더니 “하나님께 내 몸과 생명과 내 일생을 바치겠다고 기도드려요” 라고 합니다. 그 말에 감동한 교사는 아이를 격려하면서 큰 돈을 주면서 잔돈으로 바꿔 매주일 1달러씩 헌금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아이는 헌금시간에 눈을 감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몇 주일이 지나자 다시 소년이 눈을 감고 헌금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말합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잔돈으로 바꾸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헌금을 했는데 사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요. 사먹으면 죄를 지을 것 같고... 그래서 지난 주일에 모두 다 바치고 다시 기도만 하기로 했어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하리라 다짐하고 기도하던 이 소년은 바로 1884년 부활절에 한국에 온 언더우드 (Underwood. Horace Grant) 교사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 기도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특별한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울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일상적인 일이어야 합니다. 항상 힘쓰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요,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으뜸이 되는 것이 어렵습니다. 힘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에게만 으뜸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으뜸이 되는 것이 너무도 쉽습니다. 모두가 으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으뜸이십니다. 그분은 힘으로 으뜸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섬기는 종으로 오셨고, 섬기며 살았고, 죽으시면서 섬김을 완성하셨습니다. 섬기는 자가 으뜸이 됩니다. 종으로 살면 최고가 됩니다. 섬기는 데는 학위가 필요 없습니다. 종이 되는데 지위가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으뜸이 될 수 있습니다. 모두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섬김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섬김은 신앙의 완성입니다. 섬김 속에 사랑이 있고, 섬김 속에 겸손이 있고, 섬김 속에 온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디 (D. L. Moody) 목사는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종을 데리고 있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가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 말합니다. 주님 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주님 때문에 헐벗고 주님 때문에 고난 받아도 주님 때문에 섬기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섬기면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 자가 크게 되고, 종이 되는 자가 오히려 으뜸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디 주를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소망으로 즐거워하며 섬기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참으며 끝까지 섬기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 주를 섬기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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