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온유함을 잃어버린 모세 (민 20:1-13)

첨부 1


온유함을 잃어버린 모세  (민 20:1-13)

스승을 매우 존경하고 따르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스승이 연로해서 이제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제자는 안타깝게 스승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진맥진한 스승님을 향해서
“스승님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십쇼.”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스승은 힘겨운 듯 얼굴을 들어서 이 제자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내 얼굴 좀 보게나 지금 내게 아직도 이빨이 남아 있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는 스스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 보더니 
“스승님 이빨이 다 빠지셔서 이빨이 없습니다.”
“아 그런가? 그럼 내 얼굴을 다시 한 번 봐주게. 혹시 내게 아직 혀가 남아 있는가?”
“아! 그럼요 혀는 아직 건재 합니다.”
“바로 그걸세. 내가 자네에게 마지막 가르칠 교훈은 바로 그거야”

그랬더니 제자가
“스승님 참 감사합니다. 제 생애에 꼭 명심하고 살겠습니다.” 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자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무슨 얘기입니까?
날카롭고 강한 이빨은 세월 속에 다 빠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혀는 세월이 흘러도 결국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온유한 자가 승리한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것 같지만 부드러운 것은 살아남는다. 하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죠. 여러분 뒷동산에 올라가면 어디 맹수가 어디 있습디까? 강한 사자나 
호랑이들 없잖아요. 다 죽었어요. 어디 동물원에나 가야 있지 뒷동산에 가면 없어요. 
그러나 다람쥐는 많이 있어요. 집에서 키우는 토끼도 많이 있어요. 부드럽고 온유한 것들은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마태복음 5장 5절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아멘!!

강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온유라고 번역된 헬라어 프라우스(πραουσ)라는 말은 '짐승을 길들이다.' 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서커스단에서 보면 사나운 호랑이도 잘 길들여서 그 사육사가 조련사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거든요. 호랑이 등에 타기도 하고 같이 배고 자기도 하고 그래도 사람을 해치지 않아요. 왜? 그건 '잘 길들여졌기 때문이다.'하는 거죠. 이 짐승을 잘 길들이다 이런 의미가 바로 프라우스 온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존 칼빈 선생님은 온유를 이렇게 정의 했습니다. 
‘온유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며 노하기를 더디하며 절제할 수 있는 성품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온유하십니까?
옆에 분들에게 한 번 질문해 봅시다. “당신은 온유하십니까?”
본인이 제일 잘 알거에요. 내가 화를 잘 내는지 내가 조급한지 잘 알죠.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온유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 민수기 20장은 모세의 비극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때 모세는 아주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보니까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렇게 성경은 말합니다.

이 무슨 얘기냐? 이 모세가 첫 번째 부인이 죽고 두 번째 부인으로 구스 여자를 선택했어요. 그랬더니 이 누이인 미리암과 형 아론이 이 모세를 비난하고 비방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대꾸하지 않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왜 내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면서 미리암에게 무서운 문둥병을 내리셨어요. 

자 우리 같으면 ‘그것 참 잘 됐다. 좀 두고 봐야 겠다.’하고 즐길 수 있지만 모세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엎드려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 미리암에게서 저 문둥병을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모세가 성품이 온유하고 부드러운 거죠. 바로 이런 모세였는데 그 모세가 오늘 본문 속에서 넘어지게 됩니다. 온유함을 잃어버리고 분노와 혈기를 터트리게 됩니다. 

자 왜 이렇게 됐을까? 왜 모세가 이렇게 온유함을 잃어 버렸을까? 한 마디로 말하면
다시 도진 이스라엘 백성의 고질병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질병 하나씩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비가 오면 관절이 쑤신다. 어떤 분들은 추우면 또 문제가 생기고 늘 우리에게 연약함이 있어서 때가 되면 그 병이 드러나고 늘어나고 하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 그들은 때가 되면 잠잠하다가도 원망과 불평의 고질병이 도지기 시작했습니다.

자 오늘은 또 어떤 문제일까? 우리 오늘 우리 2, 3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아멘 

회중이 물이 없다고 사실 이 광야 40년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왔는데 지금 물이 좀 없다고 목이 마르다고 죽을 듯이 모세와 아론에게 달려들어서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다투어 말했습니다. 예전 성경에 보면 모세와 아론을 '공박했다.' '공격했다.' 고 소개 되고 있습니다. 아예 '우리 형제들이 광야에서 죽을 때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뻔하였도다.' 
이 절망 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들의 고질병원 원망과 불평이에요. 좀 수그러들다가 때가 되면 고개를 쳐드는 거예요.
사실 오늘 이 원망과 불평의 모습은 38년 전에 똑같이 있었던 일이에요. 바로 이 가데스바네아에서 민수기 13, 14장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2년 만에 바로 이곳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파송했는데 12명이 돌아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10명은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땅을 악평하면서 말했습니다. 그 땅은 사람을 삼키는 땅이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요. 그들은 키가 크고 아낙 자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들은 장대와 같고 우리는 메뚜기와 같습니다.

이 말에 온 백성들은 통곡하며 돌아가자고 그리고 후회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돌을 들어서 치려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 위에 영광으로 임하셔서 그들을 심판하시는데 너희의 원망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갚아 줄 것이다. 너희의 시신은 이 광야에서 다 시체가 될 것이다. 

38년 동안 그들은 광야를 뺑뺑이 돌았어요. 20대 이상의 성인들은 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2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 성장해서 38년 만에 다시 이 가데스바네아에 왔는데 그들 또한 똑같이 1세대의 전철, 부모세대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이 없다고 또 불평하면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참 놀라워요. 타락한 인간의 모습은요 꼭 배우라는 것은 안 배우고 배워서 안 될 것은 잘 배워요. 여러분 아이들 누가 욕을 가르쳐줘서 배웁니까? 자기가 알아서 배우거든요. 이 문제에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부모 세대의 그 잘못을 그대로 되풀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4살 된 아들을 두었습니다. 직장은 나가야겠고 아이들은 맡길 때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 시어머니가 많이 거칠어요. 늘 걱정이 돼요. 어느 날 직장에서 일하다가 아이가 궁금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4살짜리 아들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엄마는 반갑게 

‘우리 아들 맘마 묵읏나? 할머니는 뭐하노?’
그랬더니 이 4살짜리 아들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할머니는 디비잔다.’ 그러는거에요. 할머니의 말투를 똑같이 배우는거에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할머니께 뭐라고좀 말씀드리려고 
‘할머니좀 바꿔줘’ 그랬더니 이 아이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깨우면 지랄할낀데’ 그러는거예요. 이해하고 들으십쇼. 욕하려고 한 것은 아니니까? 

아이가 할머니의 말투를 그대로 배운거예요. 이 어쩌면 우리의 모습입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쁜 것은 잘 배워요. 이스라엘 백성이 38년 전에 그들의 부모 세대들이 했던 말을 똑같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 계속해서 그들의 불평을 들어보죠. 4, 5절을 같이 읽습니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그들은 너희가 어찌하여 모세와 아론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이곳에 인도하여 내서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드느냐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그들은 애굽을 미화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애굽이 좋은 곳입니까? 애굽은 절망의 땅이요. 죄악의 땅이요. 죽음의 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특별히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었는데 그들은 애굽을 미화 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을 나쁜 곳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없다고 부정하지요. 파종할 것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다 없어요. 그들은 주로 없는 것만 찾아서 이야기 합니다. 

정말 없는 것입니까? 있는 것은 왜 말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기적이 있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미래가 있고 가나안이 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왜 이것은 말하지 않아요? 부정적인 사람들일수록 없는 것만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다 품고 있는 한계죠. 밥상을 잘 차려 놓으면 생선도 있고 된장찌개도 있고 밥도 있고 국도 있고 그러면 훌륭하죠. 김치도 있고 그런데 꼭 없는 것만 찾아요. 돼지고기를 없느냐고 또 뭐는 없느냐고 왜 없는 것을 찾아요. 있는 것을 맛있게 먹으면 되죠. 인간의 성품은 꼭 없는 것만 찾거든요.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그래요.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서 죽게 되었다고 불평하거든요. 이 모세와 아론이 얼마나 답답할까요? 아마 심지어 그들은 마치 모세의 멱살을 잡을 듯이 달려들었던 것 같아요. 모세와 아론은 이제 어떻게 행동을 합니까? 오늘 6절 말씀입니다.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그 회중 앞에 있어봐야 대화가 되지 않는 거예요. 회중 앞을 떠났어요. 그리고 회막 앞에 이르렀어요. 회막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예요. 하나님을 만나는 텐트, 다시 말하면 오늘 예배드리는 이 성전과 같은 곳이에요. 불평이 있고 갈등이 있고 아픔이 있는 그 곳을 떠나서 이제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회막, 그 임재하시는 곳에 왔어요. 왜요? 거기 와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땅에 엎드렸습니다. 이 엎드린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의미이고 전적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의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회막에 나와서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럴 때 결국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죠. 오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영광중에 나타나셔 말씀하십니다. 오늘 7, 8절이죠. 함께 읽겠습니다.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하나님 앞에 오니까 결국 문제가 해결되잖아요. 모세와 아론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이 문제쯤은 해결할 수 있어요. 이들이 물을 잡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어요. 그러나 여호와 앞에 와서 엎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어요. 

우리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그 분은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 앞에는 못 할 일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면 안돼요. 하나님도 이것은 어쩔 수 없을 거야. 그런 말은 안돼요.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뭐든 하시고자 하시면 다 하실 수 있어요. 인간이 믿음이 없기 때문이지 그 분 앞에 나아와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팡이를 들고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그리고 그 솟아나는 물을 백성과 짐승에게 먹도록 하라.

이제 모세는 그대로 순종합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죠. 9, 10절입니다.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요. 하나님이 시키지 않는 것 까지 모세는 행합니다. 여러분 모세는 하나님의 예언자에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 이외에는 행하거나 말하면 안돼요. 그런데 모세의 마음속에 자기 생각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는 백성을 모아 놓고 이야기 합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반역한 너희여 이 말은 패역한 자들이여 그런 꾸지람과 책망, 저주의 말이에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런 말을 허락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모세는 감히 그 백성들을 향해서 자기의 혈기를 드러냅니다. 패역한 자들이여 반역한 자들이여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마치 모세와 아론이 이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처럼 자기를 과시하고 드러냅니다. 

그는 분노 속에 자기의 교만을 드러낸다는 것이죠. 이것이 모세의 큰 잘못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세가 버림받는 이유가 됩니다. 자 이렇게 해서 모세는 분노를 폭발시키고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죠? 11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반석을 지팡이를 들어서 몇 번 쳤어요? 두 번쳤어요. 물론 출애굽기 11장 르비딤에서는 이와 똑같은 상황에서 반석을 한 번 쳤어요. 그리고 물이 터졌어요. 그런데 오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지팡이를 그냥 들고 있으라고 했지 반석을 내려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네가 오늘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향하여 명하여 물을 내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냥 명령만 하면 되는 것이지 반석을 미리 칠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분노한 모세는 온유함을 잃은 모세는 마치 반석을 이스라엘 백성의 물이라 생각하고 그는 화난 김에 두 번 반석을 향해서 지팡이를 내리쳤어요. 이것은 하나님 앞에 불순종입니다. 하나님 앞에 혈기를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너무 싫어하십니다. 그가 아무리 모세일지라도 하나님은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TV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요리를 하다가 급해서 ‘얘야 슈퍼에 가서 뭘 좀 사와 미원을 사와라 설탕을 사와라.’ 애가 안 간다고 하니까 엄마가 사정을 하면서 부탁을 해서 가게 되는데 그냥 잘 다녀오면 얼마나 좋아요? 나가면서 현관문을 쾅! 닫았다. 이것이 순종입니까? 모세는 지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혈기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석을 두 번 쳤어요. 이것이 문제인거예요.

아빠가 아이에게 아빠 약 좀 먹게 물 좀 떠와라. 아이가 물을 떠오긴 하는데 하기 싫은 것을 하니까 책상 위에 물을 탕 하고 놔서 물이 쏟아졌다. 이것은 순종이 아니라 거역이에요. 
여러분 오늘 모세가 이런 실수를 범했다 하는거예요. 
하나님은 이 모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드러내지 아니함으로 너는 이제 이 회중과 함께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 12절 말씀 모세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선고를 한번 읽어보죠.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에게 너무나 가슴 아픈 선고예요. 여러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그 가나안 땅에 얼마나 들어가길 원했는데 정작 모세는 가나안을 앞에 놓고 그 땅을 들어가지 못했어요. 요르단에 느보산이라고 있는데 그 산 정상을 비스가산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모세가 섰던 곳, 그 가나안 땅을 바라보던 그곳이 지금도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모세는 거기서 가나안 땅을 바라볼 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거죠. 왜 그랬을까요? 모세는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 안 듣는 백성들에게 한 칼에 베 버리든지 큰 징계를 내리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그 불평을 다 들으시고 그들에게 물을 내시거든요. 모세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 보니까 참던 모세가 혈기를 드러내고 분노를 폭발해서 결국 하나님 앞에 불순종의 삶을 살게 된 것이죠.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실수를 행한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지요. 요나입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 그랬더니 요나가 하기 싫어요. 저 원수 대체 내 저 사람들에게 내가 왜 가느냐? 불구대천의 원수거든요. 안 가려고 이리 빼고 저리 빼다가 결국은 할 수 없이 풍랑을 만나서 고래 뱃 속에 들어가고 가게 됩니다. 그런데 가서도 대충대충 했을거예요. 그런데 니느웨 백성들이 복음을 듣고는 회개하면서 베옷을 입고 금식하는데 이게 참 너무너무 놀라워요.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지 않고 그들을 완전히 용서하셨어요. 그것을 바라보는 요나는 아주 불만이 꽉 찼어요. 저놈들 좀 하나님 심판을 받아서 없어져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왜 저들을 용서하시지? 이것이 요나의 불만이었어요.

오늘 모세의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이해하시면 안되요. 그저 하나님의 도구된 모세는 하나님의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면 되는 거예요. 마치 내 생각대로 하나님을 조종하려 해요. 여기에 내 생각대로 안하면 불만이 있어요. 이것이 문제죠. 그것은 신앙이 아니에요. 불순종이에요. 교만이에요. 월권이에요. 거역이에요. 

오늘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에게 어떤 죄명을 말씀하시는지 아십니까? 
우리 건너뛰어서 23, 24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3 여호와께서 에돔 땅 변경 호르 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니라 이르시되 
24 아론은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까닭이니라 

이 백성이 거역한 것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을 거역한 거예요. 혈기를 드러냈고 온유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되는 법은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좀 지루할까봐 교인들에게 이런 퀴즈를 냈어요.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성도님들이
"예 그것은 썰렁해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무엇일까요?" 한 성도가 말합니다.
"예 그것은 사랑해입니다." 바다 해 자이니까 사랑해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어떤 여자 성도님이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나도 우리 남편에게 가서 물어봐야 겠다. 왜? 사랑해 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요.

그래서 
"우리 목사님이 퀴즈를 냈는데 당신도 한 번 대답해봐."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뭐지요?" 남편이 그것을 모르죠.
"내가 그것을 가르쳐 줄게. 그것은 썰렁해야. 썰렁해"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뭘까?" 하고 물었어요. 
남편이 잘 몰라요.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바다야 열바다."

내 기대대로 안 됐죠. 원하는 답이 안 나왔어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불평을 해서는 안돼요. 왜? 내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니까
모든 지구가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녜요. 하나님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우리는 거기에 항상 순종할 뿐이에요.

내 마음에 안 들어도 내 생각과 달라도 그냥 순종하고 따라가요.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그것이 중요하죠. 오늘 모세는 그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아론도 여호와를 거역한 죄 때문에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운명하고 그 아들 엘르아살이 제사장의 직임을 이어 받습니다. 

민수기 20장을 보면 1절에는 미리암의 죽음이 나옵니다. 모세와 모세를 비방했던 미리암이 먼저 죽고 20장 마지막에 보면 아론이 죽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제 얼마 안돼서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죠. 참 어찌보면 비극의 이야기 인데 이 모두가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 대가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순종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온유하기 원합니다. 성경은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하고 있습니다. 강한 것 이 최고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약한 사람이 더 오래 살더라구요. 

일본의 한 회장은 크게 자수성가 했는데 죽기 전에 임종이 다해서 기자가 와서 묻습니다. 이렇게 큰 사업체를 이룬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회장이 얘기합니다. 제게는 3가지 혜택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주어져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가난이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어요.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나는 오늘 이런 회사를 이루었어요. 가난했기 때문에 그는 성공했다는 것이에요.

두 번째 혜택은 뭡니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병치례를 많이 했어요. 병이 있기 때문에 건강하려고 노력했어요. 나는 지금 94세 이 나이에도 겨울에 냉수마찰을 하고 있어요. 약하기 때문에 그는 강해질 수 있었다는 거예요.

세 번째 혜택은 뭡니까? 나는 배우지를 못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내 학력의 전부요. 나는 계속 공부했어요. 부하에게도 배웠어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회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강한 것만이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약한 것 오히려 온유하고 부드러운 것 진정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거에요. 오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나아가 온유함으로 주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