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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따르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엡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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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따르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엡 3:7) 

(엡 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두 소년이 포도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소년이 '포도 맛이 좋지?'하자, 또 다른 소년은 '그렇긴 한데 씨가 너무 많아'라고 신통치 않게 대답하였습니다. 꽃밭을 지나며 첫 번째 소년이 '저 크고 예쁜 빨간 장미 꽃송이 좀 봐!'하고 감탄하자, 같이 가던 다른 소년은 '가시만 잔뜩 있잖아!'하고 불평했습니다. 

그 날이 더운 날이어서 청량 음료수를 사려고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꿀꺽꿀꺽 몇 모금 마신 후 두 번째 소년이 불평하기를 '내 병은 벌써 반이 비었네'라고 불평을 하자, 첫 번째 소년은 '내 병은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군'하고 얼른 응수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 소년을 닮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언제나 검은 색 안경을 통해 삶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에도 불평하고 투덜댑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고 고백하는 삶을 살았고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밀레도로부터 항해를 계속하여 고스와 로도 섬을 거쳐 소아시아 남서부의 한 항구인 바다라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타고 온 배는 소아시아 남부 해안을 따라 계속 항해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들 일행은 배를 갈아타기 위해 바다라에 내린 것입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동지중해를 가로질러 곧장 베니게까지 가는 배로 갈아탔습니다.

이 배는 두로에서 정박했는데, 배의 짐을 내려야 했기 때문에 7일 간 머물렀습니다. 이 때문에 바울 일행은 두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타고 온 배의 종착지는 돌레마이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그 곳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가이사랴까지 여행했습니다. 유월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까지 아직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이사랴에서 여러 날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의 숙소는 전도자 빌립의 집이었습니다. 빌립은 예루살렘 과부들을 돕는 일곱 집사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가이사랴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로마적인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정착하여 거의 20년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결혼하지 않은 딸 넷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아가보는 예루살렘이 고향이었으며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묶일 것인지를 극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사용하여 자기의 손발을 묶으면서 바울이 결박당해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을 것을 각오했다고 말하면서 예루살렘 행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나손의 집에 머문 후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다음 날 야고보와 교회의 장로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기쁨과 감사로 바울 일행을 영접했습니다. 바울은 야고보와 교회 장로들에게 이방인들 가운데서의 복음 전도에 대한 긴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이 보고를 듣고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때문에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것을 예측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에게 모세의 율법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서원한 다른 네 사람과 함께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라고 권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권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기로 하고 바울은 다른 네 사람과 함께 서원하고 머리를 깎고 결례를 행하게 되었습니다. 결례의 기간은 7일이었습니다. 

그런데 7일째 되는 날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백성을 자극해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폭동은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갔다는 거짓 비난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었던 것을 본 것 외에는 다른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순식간에 유대인들은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습니다. 바울은 성난 군중에게 맞아 죽게 될 상황에서 때마침 출동한 로마 군에 의해 구출되었습니다. 군인들은 바울을 유대인들에게서 빼앗아 어깨 높이의 층계참으로 데려갔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3년 전에 반란을 일으켰던 애굽인이라 생각하고 결박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 사람임을 밝히고 군중에게 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폭도가 아닌 것을 확인하자 천부장은 바울에게 군중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층계 위에 서서 백성들을 조용하게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선지자들의 예언과 형제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결국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는 조작된 죄목으로 체포되어(행21: 27-36) 가이사랴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미결수의 신분으로 수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감옥 에서 옥중 서신 즉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었다고 합니다.
(엡 3: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하나님에 대한 바울의 황감한 마음이 듬뿍 묻어나는 말씀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의 소명은 바울 개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위해서 큰 은혜의 경륜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 복음 증거를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크신 뜻을 하나님의 계시로 깨달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3,4절; 행9:15).

또한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도 어떻게 전혀 동요하는 빛도 없고,담담하고,담대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사도 바울은 그렇게 옥에 갇혀서도 담담하고 담대한 것입니까? 옥에 갇히고서도 무엇이 그리도 황감한 것입니까?

이 놀라운 은혜의 경륜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만세 전에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하나님이 세우신 구속 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각 사람들에게 이것을 깨우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셨습니다. 그런데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사역 가운데서도 이방인들을 위한 사역에 바울을 불러 참여시키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경륜의 사실에 어찌 바울이 황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그 이전에‘사울’은 어떤 자였습니까?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릴 것도 없습니다. 그 자신의 고백을 직접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딤전1:13)으며“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훼방자요,핍박자였습니다. 포행자요”죄인 가운데서도 괴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무죄하고 거룩한 성도들이 그에 의해 죽음과 고초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그로 인해 신앙을 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세상 그 어떤 죄가 이보다 크다 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러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그것도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친히 찾아가 구원하셨습니다.
그 사실만도 얼마나 황감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셨다고요?
그러한 그에게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은혜의 경륜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로마 감옥에 갇힌 몸이 되어 있으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담담하고 담대한 아니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황감해하는 바울의 마음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몸이 갇혀 있으면서도 편지를 써서라도 복음 전파의 일을 계속하는 그의 불타는 심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이해할 때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 또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한 거룩한 도구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도구로 삼으신 것은 사도 바울만이 아닙니다. 또 목회자들만도 아닙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합니까?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성도를 통해 자신의 은혜의 경륜을 이루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를 통해 자신이 세우신 그 은혜의 경륜이 성취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운 경륜에 따라 도구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소명 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 찾아온다 한들 못 견뎌 할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큰 고난과 시련이 오고 억울한 일이 닥쳐온다 해도 분통을 터뜨리고 원망으로 날을 지샐 일이 없습니다.

요셉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그처럼 억울하고 원망스런 일을 아주 많이 그것도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그가 원망합니까? 불평합니까? 아닙니다. 그가 사람을 향해서든지 하나님을 향해서든지 원망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난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선민의 조상인 야곱 가족을 비롯하여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심히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의 도구가 된 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는“하나님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었나이다”(창45:5)라고 한 요셉의 고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에 따라 세워진 도구라는 분명한 소명 의식을 지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에서 찬란히 빛나는 요셉이나 바울과 같이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에 따라 계시로 비밀을 알게 하시므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게 된 복음이 구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엡 3:3-4)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받은 복음은 사실상 깊고 오묘한 그리스도에 관한 비밀입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복음이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복음이 비밀이라고 하는 말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이 알려졌다고 해서 인간 스스로 복음의 진수를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인간의 지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성을 갖고 있고,또 거기에 더하여 종교적인 노력과 열심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 스스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복음의 진수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에 찾아온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요 3:10)하셨습니다.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아무리 예수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셔도 그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또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스스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무엇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선생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복음을 어린아이들이 깨닫는 역사가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아니 꼭 어린아이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렇게 지성이나 학식이 높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사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자체가‘학문 없는 범인’(행4:13)에 불과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복음의 진수를 깨달아 알았습니다.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이겠습니까? 복음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깨닫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진수를 깨닫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자신의 그 많은 학문을 통해 깨달았다고 합니까? 아니면 자신의 많은 기도를 통해 깨달았다고 합니까? 아닙니다.‘계시로’알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이 오시기 무려2천 년 전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관해 이렇게 증거 하셨습니다.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알았고,보았고,믿었고,환영했고,기뻐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일입니까? 지성이나 지능으로 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계시로만 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것은 동일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 수 있고,깨달을 수 있고,기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복음의 진수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마치 신비에 깊이 싸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내가 알고 싶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고,보게 하시기에 우리가 알고,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 가운데 깊이 들여다 보고,생각하고,묵상할 때 비로소 거기에 머리가 숙여지고,나의 죄가 보이고,겸손해 지지 않을 수 없고,나의 생을 주 앞에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증거 하기를“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딤전3:16)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비밀을 아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성령의 조명하심이 우리 가운데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엡 3:6)고 합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똑똑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복음을 듣고 보아도 그 진수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큰 은혜를 입은 것입니까?
물론 우리는 복음을 대하면 그것이 쉽게 이해되고 가슴에 와 닿기 때문에 그것이 은혜 중의 은혜인 줄을 잘 모르거나 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밀의 복음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복음을 듣고 볼 때 마다,그리고 그것을 이해할때마다 깨닫게 하시고 진리로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계시로 그리스도의 비밀인 복음이 구원임을 깨닫고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일꾼이 되었(엡 3:7)다고 합니다.
우리가 늘 주시하는 것은 언제나 나타난 결과가 많습니다. 바울이 복음의 대적자에서 사도가 된 것만을 보고 그러한 결단과 변모를 보여준 바울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에 대하여‘그의 능력이 역사하는 대로’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복음의 대적자에서 위대한 복음의 일꾼으로 변모하는 과정에는 자신의 지성이나 인격 따위가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신 은혜의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고 거짓이 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입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렘 이17:9). 

그렇습니다. 세상의 부패한 그 어떤 것보다 더 부패하고 가장 더러운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 15:15-20)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타락과 부패 상태를 인간 스스로 압니까? 모릅니다. 몰라도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누가 능히 알리요 마는.”
그렇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부패해 있으면서도 그 부패의 실상을 모릅니다.

현대의 가장 위대한 사회학자나 심리학자에게 가서 물어보면 그들 역시 인간의 부패상 자체를 모릅니다.  그러니 인간 세계 문제의 해결책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일진대 스스로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회개할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 사람을 살리는 이 거룩한 사역의 일꾼이라고 스스로 자처할 수 있습니까?  어림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대적자의 자리에서 복음의 일꾼이 된 것은 신적인 하나님의 사역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귀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귀한 직분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가 된 것은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일꾼 하나 길러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자신도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해야 하지만 사회와 국가적으로도 상당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투자와 역사로 길러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일꾼된 우리의 뒤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신적인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땀과 피와 눈물과 통곡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 된 이 고귀한 직분을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쉽게 유기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일꾼 됨의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알았기에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당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고 합니다.

이런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도리어 감사하며 여전히 그 직분을 고귀하게 여겼습니다. 가장 존귀하게 생각 했습니다. 그 직분을 위해 자신의 온 생애를 불살랐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일꾼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고귀하고 거룩하게 생각하며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에머슨 파스틱이라는 설교가는 미국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데는 4가지 동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생활 습성이나 관습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떤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그 설교를 듣기 위하여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란 좋은 곳이라 교회에 나가서 활동하면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기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일시적인 위안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기들은 교회에 나가는 주체적인 동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왜, 그 무엇 때문에 교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좋은 일꾼되되 은혜를 따르는 좋은 일꾼되는 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계시로 그리스도의 비밀인 복음이 구원임을 깨달아 알고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르는 좋은 일꾼 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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