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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를 고쳐 주리라 (렘 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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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고쳐 주리라 (렘 30:17) 
 
 
근래에 들어서 갑작스럽게 여기 저기서 힐링 힐링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이 힐링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지금 매일 쏱아져 나오는 각종 얼론매체의 광고나 기사 중에 '힐링'이란 단어를 홍수처럼 만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대적인 아이콘이고 시대적인 유행입니다. 힐링이 대세인 샘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어 하나인데 그 열풍이 대단합니다. 사실 힐링이란 용어가 몇년 전만 해도 전문가 몇사람들의 용어였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 낮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방송사들도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끌고 고정시키려면 힐릴을 붙여야 하고 대통령후보가 되려면 '힐링켐프'라는 프로그램에 나가야 한다고 까지 말합니다. 광고도 힐링 일색입니다. 웰빙바람이 지나가고 이제는 한마디로 '힐링 열풍'이 불고 있는 것입니다. 곧 이것을 뒤집어보면 그만큼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 힘들고 어렵고 많이 상처받고 병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을 확실하게 정의해야 필요가 있습니다. 힐링은 우리 말로 "몸이나 마음의 치유" 즉 "전인적 치유"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힐링은 누가 뭐래도 좋은 것입니다. 당연히 힐링해야 합니다. 힐링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습겠습니까? 현대인들은 자신도 알게 모르게 가까운 타인들로부터, 그리고 세상의 여러 환경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상처와 벗하며 살아갑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습니다. 현대인들은 막힌 담이 많습니다. 주거 공간도 그렇지 않습니까? 열려 있으면 불안합니다. 오히려 꽉꽉 막혀있어야 안심이 됩니다. 그러니 그 상처들이 정신적 아픔으로 깊어지고 그것들이 육체적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저기가 막혀서 통증이 되고 질병이 되고 곰고 터집니다. 

현대인들은 옛사람들에 비해서 돈도 많아졌고 인본적인 지위나 사회적 지위도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괜찮아지고 나름 많은 것을 갖추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 마음에 평안없습니다. 그러니 결코 행복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상처와 아픔들이 얼마나 치유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레서 치유문제가 대두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힐링에 대해 잘 못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그리고 복음적으로 믿음으로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산 속 옹달샘에서 좋은 물을 마시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면 힐링이 되는 것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골라 먿는다고 힐링이 되는 줄 압니다.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면 힐링이 되는 줄 압니다. 그래서 돈부터 생각합니다. 돈이 있어야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들이면 할 수 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즉 돈이 되기 때문에 힐링 사업에 투자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물을 마시고 좋은 공기를 마셔도 사나운 늑대처럼 되는 사람도 있고, 스트레스를 푼다고 아무리 노래방 가서 소리를 질러봐도, 술먹고 방탕한다 해도, 하루종일 운동한다 해도 뿌리까지 해결되지는 않는습니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 여러가지 서비스를 받아본다고 진정 힐링이 되는 것이겠습니까? 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만으로는 힐링 효과가 극히 일시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잠시잠깐의 휴식을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어디까지나 표피적인 힐링이지 근본까지 치유되는 그런 힐링은 아닙니다. 잠시잠깐의 힐링일 뿐이지 하루만 지나도 다시 어깨가 무거워지고 피곤하다는 느낌이 밀려올 뿐입니다. 그런 일시적인 힐링이  길게 가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것은 껍데기 뿐인 힐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껍데가 뿐인 힐링이 아니라 근본을 치유하는 힐링이 있어야만합니다.
     
내 안에 내재된 막힌 담과 쓴뿌리 들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만 진정한 힐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영혼을 치유하는 힐링이어야 진정한 힐링이요, 지속가능한 힐링이라는 것이다. 결국 뿌리까지 치유되는 힐링, 날마다 지속되는 힐링, 힐링의 차원을 넘어 결국 영혼이 평화로운 평강의 차원으로 나아가야만 진정한 힐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우리가 어찌해야 합니까? 어떤 방법으로 힐링에 접근하고 힐링을 해야 합니까?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치료자이십니다. 여호와 라파입니다. 그는 치료자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하셨습니다. 영육간에 상처가 나서 깊게 패인 곳을 새 살이 돋게 하여주시고, 고쳐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줄로 믿습니다. 힐링은 돈이 있고 여유가 있고 시간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강한 결단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적인 문제나 정신적인 문제 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치유가 이루어져야 진정한 힐링의 세계, 영혼이 평화로운 행복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떠한 명상법도 어떠한 치유법도 상처의 근본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과 영혼에 하나님의 손이 임재하셔서 만지심이 새 살을 돋게 하고 치유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싸매시고, 성하게 하시며, 고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물 근원도 고치시고(왕하2:21), 나아만의 나병도 고치시고(왕하5:),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다(대하30:20)고 했습니다. 복음서에도 보면 성자 하나님께서 나다나엘과 삭개오의 마음도 고치시고 앉은뱅이도 고치시고 사나운 귀신들린 사람도 고치시고 모든 병든자들을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도, 땅도, 물도, 사람도, 백성도, 나라도 고치십니다. 

사람이 이런저런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편안하고 당당한 인생을 살아가려면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모든 것은 다 흔들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붙잡고 사는 것은 어지럽습니다. 흔들거리고 비틀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런 것을 의지하고 사는 것은 상처를 깊게 패이게 할 뿐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영원하십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그동안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형통하지 못하고 불통되었던 근원적인 요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의 상처와 병듬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주님과 불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을 도외시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끝까지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불신앙과 불순종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들을 고치실 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그 병든 자들의 믿음의 소원을 충족시키는 축복을 내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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