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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1) (히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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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1) (히 11:4-6) 

지난 주일은 믿음의 정의에 대해서 1~3절의 말씀 강론을 듣고,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였습니다. 믿음은 현재에 속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속한 것이고,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실상처럼, 증거물처럼 느끼고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이렇게 믿음으로 산 신앙선배들의 믿음의 역사와 증거들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해 놓은 것을 강론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첫째는 아벨의 믿음의 역사와 그 증거들에 대한 말씀입니다(4, 6절).

창세기4:1~4절의 이야기입니다. 아담이 하와와 동침하여 가인을 낳고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습니다. 성장해서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양을 쳤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4:1~4절에서는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4절에서는 그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신 것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의로운 자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증거를 보여 준 것입니다. 아벨의 제사가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나은 것은 믿음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믿었을까요? 

① 6절의 말씀이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해서 믿었습니다.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확실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 분이라고 믿고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찾는 자 곧 제사하는 자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한 것입니다. 

②히브리서9:22절에 나와 있는‘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를 믿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창세기4장에는 아벨의 제사가 왜 더 나은 제사였는지 이유를 밝혀 놓은 것이 없습니다. 단순히 가인은 농사지은 것으로, 아벨은 자기 양의 첫 새끼로 드렸다고만 밝히고 있습니다. 

창세기3:21절에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고 하셨습니다. 피를 흘림으로 저들의 부끄러운 것을 가리는 옷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피의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아담과 하와가 이 사실을 그 자녀에게 교육을 하지 않았을까를 추론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좌우간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피흘린 제사로 죄사함 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벨을 의로운 자라고 하셨습니다. 피의 제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믿음으로 예배를 드린 사람이 의로운 자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립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립시다(10:19). 

믿음 없이 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는 예배 행위, 믿음으로 하는 찬송, 믿음으로 하는 기도, 믿음으로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의로운 자라 하시고, 기뻐하시고, 상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며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으리라”고 하실 때 이 말씀을 믿으니 아브라함을 의인이라고 하셨습니다(창세기15:4~6).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의인이라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채워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에녹에 대한 믿음의 역사와 그 증거들에 대한 말씀입니다(5~6). 

창세기5:18~24의 이야기입니다. 야벳이 백 육십 이세에 에녹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구백 육십 이세를 살고 죽었습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지구촌에서 최고로 장수하다 죽은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살았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께서 삼백 육십 오세에 에녹을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죽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첫 휴거자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에녹에 대한 기록입니다. 

히브리서에는‘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11:5)’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녹의 믿음은 단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만 믿은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한 것입니다. 언제나 함께 한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동행을 느끼고 하나님과 동행하느냐 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누가복음24:13~35에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나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사람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동행하셨으나 그들이 믿음이 없어 눈이 가려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24:15~16). 동행하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선지자들의 예언을 가르쳐 주시면서 선지자들의 말한 것을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동행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요한복음15:10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먹었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믿음의 증거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왜 지킬까요? 믿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설교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계기가 되어서 아벨처럼 더 나은 예배를 드려 의로운 자라 인정 받으시고, 죽어서도 살아서 교훈을 주는 신앙의 조상이 됩시다. 그리고 에녹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동행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넘치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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