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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하리이까 (눅 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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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리이까 (눅 3:7-14)


R. A. 토레이 (Reuben Archer Torrey)가 청년시절 방황할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달래도 끝내 마지막 인사를 고하고 나그네 길을 떠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떠나는 아들을 불러 말합니다. “토레이, 이 말만 듣고 가거라. 가다가다 더 갈 수 없는 궁지에 몰릴 때 오늘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을 찾아라. 그러면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토레이는 들은 척도 않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런데 죄악의 길을 걷다가 궁지에 몰려 마지막에 자살 할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가 자살을 시도하려는데 문득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더 갈 수 없는 궁지에 몰릴 때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찾아라. 무슨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토레이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리이까” 그 순간 가슴 속에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제서야 토레이는 깨달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뉘우치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후에 세계적 부흥사가 되어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출발은 바로 ‘무엇을 하리이까’ 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회개가 하늘의 문을 열어줍니다. 회개의 고백 위에 말씀이 임합니다. 성령이 강하게 임합니다. ‘무엇을 하리이까’ 의 고백위에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러 나아온 무리들은 신앙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이라는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삶의 모습이 전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돈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의 선민이나 생활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유지하려면 자신을 정비하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새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회개하고서도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삶을 살기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여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회개를 제시했습니다. 또한 회개는 열매를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혹 열매 없는 회개만 반복하는 모습은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회개의 열매는 변화되는 것입니다. 현재 상태에서의 나의 변화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첫째로 나누라

마르키스 드 라파예트 (Marquis de Lafayette)는 프랑스 귀족이었지만 미국 혁명 당시 조지 워싱턴을 도와 마지막 승리에 있어 중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로 돌아가 방대한 영토의 농장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유럽에 흉년이 닥쳤습니다. 수확은 흉작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라파예트의 농장은 당시 휩쓸고 간 마름병에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작물들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친구 중 한 사람이 라파예트에게 충고를 했습니다. “지금 밀농사가 흉년이 들어 밀 값이 매우 뛰었네. 지금이 밀을 팔 때라네” 그러나 라파예트는 흉작으로 고통당하는 농부들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닐세. 지금은 팔 때가 아니라 나누어 줄 때이네” 

본문 11절입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와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누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나눔의 삶이 필요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작은 나눔이 있을 때 참된 이웃이 됩니다. 

어느 날 돼지가 젖소에게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소를 착한 것에 비유하고, 우리는 욕심쟁이에 비유하는지 화가 나서 못 견디겠소. 당신들은 우유와 버터를 주지만 우리도 햄과 베이컨을 주지 않는가?” 그러자 젖소가 눈을 껌벅이며 말했습니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우유와 버터를 주는데 당신들은 죽고 난 후에야 햄과 베이컨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들은 살아 있을 때 자신만을 위해 먹고 더 달라고만 하면서 무엇 하나 주는 것이 없지 않는가?” 살아 있을 때 소유를 이웃과 나누고 주님의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것이 세상에 유익을 주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것은 꼭 물질만이 아닙니다. 재능과 지식과 시간과 경험 모든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심지어 장기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디 나눔의 열매를 많이 맺어 심판주 하나님으로부터 찍힘을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정직하라

몇 년전에 3·1 독립 운동에 관한 일본 헌병대 일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무라카미(村上) 헌병대장과 부하 다나카의 대화 내용입니다. “이번 폭동은 조선 야소교인들이 주도해서 생긴 일이니 주동자를 색출해서 잡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예수를 믿는지 먼저 물어보고 믿는다고 하면 무조건 잡아들여라.” “믿으면서 안 믿는다고 거짓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조 야소교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초기 교인들을 한자음 그대로 야소교인(耶蘇敎人)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일본사람까지도 교인들의 정직한 삶을 인정했습니다. 일제시대 당시 기독교인들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 기독교인들의 부정직하고 실천적이지 못한 삶에 대해 사회의 비판이 매섭습니다. 칭찬보다 비난의 글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고위 공직자들과 저명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교인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는 전혀 개선되지 않습니다. 선교 초기 교인들이 보여준 선한 영향력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가로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부정과 불의를 자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위를 남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부정직한 방법으로 과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법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세금을 법에 따라 공정하고 정직하게 거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물리적 힘을 이용하여 남의 것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개역에는 ‘늑징치 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늑징’이란 단어는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것’, ‘억지로 거두어들이는 것’ 이라는 의미입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역대상 29장 17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며 또한 부정직함을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부정직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셋째로 자족하라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는 철따라 이동하는 오리에 인생을 비유한 적이 있었습니다. 혹한을 피해 오리는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이동 준비를 마친 오리들은 늦은 가을 저녁 큰 농장에 모여 곡식으로 배를 불리며 곧 펼쳐질 대이동을 위해 힘을 축적합니다. 출발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곡식에 맛이 들린 오리 한 마리가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말합니다. 

“아직 맛있는 곡식들이 많이 남았으니 조금 더 먹고 뒤따라 갈테야” 동료들이 떠나기 시작하였지만 살찐 오리는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지체하다가 어느 날 눈보라가 천지를 뒤덮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길을 떠나기 위해 비상을 시도해보지만 불행하게 날을 수 없었습니다. 음식을 너무 많이 섭취한 나머지 살이 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리는 한번 날아보지도 못하고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자족하지 못하고 ‘조금만 더’ 하며 욕심을 부리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치관을 지적한 것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사람에게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신분을 남용하여 부를 취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군인들의 보수가 적기에 힘없는 사람들을 강탈하거나 잘못도 없는데 거짓으로 윽박질러서 주머니를 채웠던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받는 급료로 족한 줄로 알라고 한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려 하거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기에 협박을 해서 빼앗거나 갚지 않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지나친 욕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은 단순히 예수 믿으면 죄사함 받고 천국에 간다는 정도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영접하여 죄사함 받은 사람이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는 삶이 따라야 합니다. 세례는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세리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세리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전혀 달라진 것이 없이 과도한 세금을 매겨 억지로 거두고 일부는 착복하는 일을 계속한다면 회개의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까? 그는 여전히 독사의 자식인 것입니다. 회개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일본의 학자 다카바다(高機)는 기독교로 귀의하고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런 중에 결핵에 걸려 끝내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죽을 때가 가까워오자 그는 성경과 찬송을 찾아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떠날 시간이 임박해 그의 얼굴은 눈에 띄게 환해졌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하나님께로 가네. 과거의 불신앙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부끄러움 없이 간다네.” 하나님 앞에 죄를 감추거나 변명하지 않고 고백하고 회개하면 용서받습니다. 그러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며 타당화시키는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마다 찍어버리시겠다고 하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곳간에 들어가는 알곡이 되려면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부디 나눔과 정직 그리고 자족으로 나타나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진정으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서 상급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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