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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 (행 5: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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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 (행 5:25-42)

초대 교회의 첫 무렵, 사도들은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아직 정식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였으므로 사람들을 고치면 고친다고 잡아 가두고, 복음을 전하면 전한다고 가두니 참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지만 막상 재판을 해보아도 죄가 없으니 경고한 후에 석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들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잡혀가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기적으로 사도들을 석방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사도들은 또 잡혀갔습니다. 이번에도 재판에 회부했지만 별 죄가 없어서 때린 후에 풀어주었습니다. 이러면서 사도들에게 늘 경고하는 경고를 또 합니다. 예수를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둠은 꼭 이렇습니다. 잘 기억하고 계십시오. 

기독교인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냥 복음을 전하면 되지 꼭 예수님을 이야기해야하는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실 것은 초대 교회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요청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고, 기독교 모든 역사가운데 어둠이 기독교인들에게 요구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것은 다 해도 좋은데 예수 이름은 이야기하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들은 이렇게 맞고 터지고 감옥에 갇히고 온갖 소리를 다 들은 후 석방되었을 때 기뻐한 일입니다. 사실 그들은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옥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사도들이 석방 될 때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한 그 이유가 아닙니다. 그 고생스러운 감옥살이를 이제 그만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기뻐하는 이유로 41절 말씀에서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 라고 말씀합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셨고 기대하신 것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난 뒤에 그냥 편하게 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한 것 때문에 맞고 터지고 깨지고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기대에 부응했다, 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이것을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맞는 것, 터지는 것, 깨지는 것, 감옥에 갇히는 것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특권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사도들의 그 사도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네들이 받을 것은 영광이 아니라, 편안한 것이 아니라, 쉬운 것이 아니라 고난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고난 받아야 될 사람이다.. 고난 받아야 될 사람이 고난 받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 이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종들은 그렇습니다. 종노릇했다는 그 자체 때문에 스스로 자랑스러워 기뻐한 것이 아니라, 종노릇 조금 하고 상 받고 인사 받는 것이 아니라, 종노릇을 제대로 한 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이것을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시는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병자를 낫게 하고, 한 번도 배우지 아니한 외국어를 맘대로 말할 수 있게 하고, 심지어는 앉은뱅이도 일어서게 하였습니다. 15절에는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권세를 사도들에게 주셨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살았다고 하나님께서 그런 권세와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는 이름만 가졌다고 하나님께서 이런 권세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대하신바 그것,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 받고 어려움을 받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바에 부응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고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여러분들에게 첫 번째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 살면서 무엇을 기뻐합니까?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면,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주게 되면, 하나님께서 풀리지 않던 문제를 풀어주면 기뻐합니까? 그것도 좋습니다. 기뻐할만 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정말로 기뻐하는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필요를 채운 것, 내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 일부라도 감당하게 되는 것, 이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합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저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도와주는 것을 바라신다고 생각하고, ‘알았습니다.’ 하고 내 주머니를 여는 것,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주는 것. 내가 하고 싶고 큰소리 치고 야단 치고 싶은 것이 있지만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꾹꾹 삼키고 참는 것, 이런 것이 정말로 우리가 기뻐해야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질문을 하나 더 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무엇을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나님께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것을 여전히 좋아하고 그것을 우선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보다는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내가 하나님의 필요를 일부분이라도 채우는 것,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를 내가 채움으로 말미암아 나 대신 또는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평화하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힘든 일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이 나로 말미암아 멈출 수 있다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재물을 가지고 나를 위해서, 내 자녀를 위해서, 좁은 의미에서 우리를 위해서 쓰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면서 웃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는, 좁은 의미의 우리는 좀 덜 쓰고 좀 아쉬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보다 더 힘들고 더 불쌍하고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어주고 도와주고 내 아픔을 더 떼는 것 이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게 되면 그때에 하나님 또한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보시고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사람의 필요를 채워줄까 오히려 고민하고 걱정하고 여러분을 위해서 좋은 계획을 세우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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