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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도성 4 : 길갈, 굴러가는 곳 (수 5:1-9) 
 
 
❚기복신앙의 특징

무당이 푸닥거리 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푸닥거리’가 뭔지 아시지요? 사전에 보면 “무당이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부정, 살 따위를 푸는 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살풀이’라고도 하지요. 무당이 부정을 타거나 살이 낀 집에 가서 돈 받고 한 바탕 푸닥거리를 하는 것입니다. ‘살’이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요? ‘역마살’이라는 말처럼 무슨 살이 낀다고 하지 않습니까? 본디 이 말은 나쁜 귀신이 들어와서 사람을 해치거나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 무당종교의 특징은 전형적인 ‘기복신앙’입니다. 기복신앙이란 오직 복을 비는 데만 목적이 있는 종교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무당종교가 하는 일이 딱 두 가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는 부정 타거나 살이 낀 집에 가서 푸닥거리를 하여 부정과 살이 물러가도록 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그 집에 복이 굴러들어오도록 하는 일입니다. 

기독교처럼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당종교(=샤머니즘)에 있을 수 없습니다. 무당종교는 오직 복은 굴러들어오고 화는 몰아내는 데만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당은 푸닥거리를 하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훠이 훠이, 잡신은 물러가라, 액운은 물러가라!” 어떻게 비슷합니까? 그럴 때 그 집 식구들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저 우리 집안에 모든 액운은 물러가고 복만 굴러 들어오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이게 바로 무당종교의 특징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얼핏 보면 이와 비슷해 보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건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출애굽 후 광야40년 방황을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바뀌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영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데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여호수아 3장과 4장에 보면 넘실거리는 요단 강물을 하나님이 말려버리셔서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갑니다. 마치 출애굽 때 하나님이 홍해바다를 가르신 사건을 연상케 하는 감격적인 장면이지요. 그런데 여호수아 4:19~22에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같이 읽지요.

19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하나님은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물이 마른 요단 강 한 가운데서 돌 열두 개를 가져다가 길갈이라는 성읍에 세워두어라. 그 돌들은 기념물이 되어 나중에 후손들이 ‘할아버지, 아버지, 이 돌 열두 개가 왜 여기 서있어요?’ 하고 물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요단 강물을 마르게 하시고 우리 민족이 마른 땅을 건너 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사실을 말해주라”고 말입니다. 이 위대한 기념물,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과 역사를 기념하는 열두 개의 돌이 서 있는 곳이 바로 길갈이라는 성읍입니다. 

이 길갈은 여리고 동편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라고만 알려져 있지 오늘날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 때 길갈에 세운 기념물인 열두 개의 돌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말입니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는 성지순례를 가더라도 길갈에 가볼 수가 없습니다. 예루살렘도 가볼 수 있고, 벧엘도, 여리고도 가볼 수 있는데 길갈이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니 가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길갈이 갖고 있는 영적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 길갈이 갖고 있는 영적 의미에 대해 말씀을 나누도록 합시다.

❚길갈, 굴러가는 곳

이제 오늘 본문인 여호수아 5:1을 다시 봅니다.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면 요단강 동쪽 편에서 요단강을 건너 서쪽 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요단 서쪽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왕과 해변에 사는 가나안 원주민들의 왕은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습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간담이 서늘해졌다는 뜻입니다. 정신 줄을 놓았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실거리는 요단 강물을 배타고 건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강물이 다 말라 마른 땅으로 건너왔다는 말을 들으니 간담이 서늘해지고 무서워서 정신 줄을 놓을 수밖에요. 혹시 모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역사로 홍해 바다도 가르고 그 무서운 애굽 군대도 다 전멸시키고 이곳에 왔다는 소식도 들었을지 말입니다. 더 무섭고 두려웠겠지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2절). 부싯돌을 칼처럼 날카롭게 만들어 그것으로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신 것인데 ‘할례’란 남자의 포피(包皮)를 잘라내는 예식, 오늘날로 치면 포경수술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할례가 중요한 것은 창세기 17:10에서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 상징으로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데서 시작됩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오늘날의 포경수술은 단순히 위생적인 이유에서 받지만 성경에 나오는 할례는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을 상징하는 아주 중요한 신앙적 예식인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할례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한 것처럼 남자아기가 태어나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반드시 행합니다. 자,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에서 열두 개의 기념 돌을 세우게 한 뒤 할례를 베풀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 까닭이 바로 4절부터 나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출애굽을 할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은 다 할례를 받은 상태였겠지요? 그런데 광야에서 죄와 불순종 때문에 40년 동안이나 방랑하는 동안 모두 죽고 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제외하고 말이지요. 헌데 광야에서는 도저히 아기들에게 할례를 베풀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현재 이스라엘 남자들 중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단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뿐인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할례를 베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유뿐 아니라 더 중요한 영적인 이유가 나옵니다. 8~9절을 보세요.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할례를 받으면 아무래도 꼼짝 못하고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까? 직접 받아보신 분들이나 아들을 두신 부모들은 다 아시지요? 헌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낫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겪은 온갖 수모와 고통을 이제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온 순간 다 떠나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 한글 성경에는 안 나타나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겠다고 하실 때 ‘떠나간다’고 번역된 말이 히브리어 원어에 보면 ‘갈랄’이라는 동사입니다. ‘갈랄’은 ‘구르다, 굴러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 장소를 ‘갈랄’이라는 낱말과 발음이 비슷한 ‘길갈’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길갈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됩니다.

우리 교회 점심에 가끔 도루묵 반찬이 나옵니다. 우리 효자교회 별미라고도 할 도루묵 이름의 유래를 아십니까? 도루묵을 옛날에는 ‘묵’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먹을 만은 하지만 별로 맛있는 생선이 아니라 인기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선조(宣祖) 임금이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가다가 함경도에서 너무 시장할 때 이 ‘묵’이라는 생선을 먹어 보니 맛이 천하일미거든요. 그래서 “이 생선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묵’이라고 한답니다. 

선조는 이런 맛있는 생선 이름이 ‘묵’이라니 당치 않다고 하며 앞으로 은어(銀魚)라고 부르도록 명령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궁중으로 돌아온 선조가 이 생선 생각이 나서 다시 먹어 보니 옛 맛이 아닙니다. 그래서 은어라는 이름을 취소하고 옛날대로 도로 ‘묵’이라고 부르게 하라는 어명이 내려서 ‘도로묵’ 또는 ‘도루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명이나 동물, 생선 이름의 유래 중에 발음을 따서 지은 것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길갈’이라는 지명도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 떠나갔다는 뜻에서 ‘갈랄’이라는 동사의 발음을 따 지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재미있지요?

❚굴러가는 곳, 굴러오는 곳

그러므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길갈’이라는 지명은 어떤 영적 교훈을 가지고 있는가? 길갈이라는 지명의 뜻이 구르다, 굴러가다는 의미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길갈은 그야말로 굴러가는 곳이며, 동시에 굴러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첫째, 길갈은 ‘굴러가는’ 곳입니다. 수치가, 고통이, 실패가 굴러가는 곳입니다. 길갈의 유래가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의 수치가 무엇입니까?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당한 온갖 설움과 수치입니다. 압제와 고통입니다. 그런데 이 400년 종살이의 수치와 설움이 길갈에서 한 순간 굴러가 버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수치와 설움은 찾아옵니다. 그 누가 수치를 당하고 싶겠습니까? 어떤 집사님이 교회를 안 나오셔서 심방을 갔습니다. “집사님, 교회 그렇게 열심히 나오시더니 요새 왜 교회 안 오세요?” 그러자 집사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저 부끄러워서 교회 못 가겠어요. 제법 잘 되던 사업이 한 순간에 망하고 나니 교회 가면 사람들이 다 알 텐데 부끄러워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교회 갑니까?” 물론 저는 “집사님 교회에서 아무도 집사님 손가락질 하거나 수군거릴 사람 없어요. 성도들이 다 집사님 위해 기도할 테니 이럴수록 교회 나오셔야지요” 하고 권면했습니다만 우리에게도 이런 일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 누가 이런 부끄러움을 당하고 싶어 당하겠습니까? 하지만 갑자기 닥쳐오는 실패와 수치, 설움과 고통은 정말 우리 힘으로 견디기 힘듭니다. 이겨 내기는 더욱 힘듭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이 바로 이곳에서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너의 모든 수치가 지금 이 순간 모두 굴러갈 것이다. 지금 네가 당하는 모든 부끄러움, 설움, 실패와 고통이 이 순간 떠나갈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길갈에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이 장소가 여러분의 길갈이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하는 모든 수치와 설움과 고통이 한 순간 떠나가고 굴러가는 장소가 되기 바랍니다. 

이것은 무당종교 같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단순히 액운이 물러가고 살이 물러가는 푸닥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설움 당하고 수치를 당할 때 나와 함께 울어주시고, 내 모든 아픔을 아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인격적인 하나님이 내 모든 수치가 굴러가고 내 모든 아픔과 시련이 떠나가길 바라시는 줄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 길갈은 또한 ‘굴러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축복이 굴러들어오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라는 말이 있지요? ‘넝쿨당’, 얼마 전 끝난 드라마(많은 이들이 같이 울고 웃으며 본)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아니라 ‘넝쿨째 굴러온 호박’은 뜻하지 않게 좋은 일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고 나니 이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베푸시는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곳이 바로 길갈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바로 이 순간, 이곳 길갈에서 우리의 모든 수치가 굴러가고, 우리의 모든 고난과 실패와 근심걱정이 떠나가고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오듯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굴러들어오게 될 줄 믿습니다! 물론 무조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할례를 받았습니다. 7절에 ‘할례 없는 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언약 없는 자는 복도 없습니다. 언약은 계약이요 약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복을 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상호 계약을 맺는 것이 언약입니다. 그러니 오늘날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길 약속하는 성도들에게 이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마음의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언약 백성 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베풀어주시는 복과 은혜가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바로 이곳이 여러분과 저의 길갈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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