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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무엇으로 기뻐해야 하는가? (요 16: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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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으로 기뻐해야 하는가?(요 16:16-24)

경영의 전문가인 베이스 씨가 세계에서 성공한 CEO 1,500명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공통분모는 두 가지였습니다. 그 중 하나는 자기 일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일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더 훌륭한 경영자가 되기 위해, 경영을 더 잘 하기 위해 시간을 아끼며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성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주님의 죽음을 앞두고 근심 중에 있는 제자들에게 기쁨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얻게 될 두 가지 기쁨을 말합니다.
   
첫째는 주님의 부활로 인한 기쁨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제자들이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또 조금 있으면 주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조금 있으면 주님을 보지 못한다는 말은 주님께서 잡히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장사되기 때문에 못 볼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조금 있으면 주님을 보리라는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실 것이기 때문에 다시 주님을 보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주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기쁨을 얻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이 얻게 될 두 번째 기쁨은 기도 응답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24절에 보면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시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응답 받으므로 누리게 될 충만한 기쁨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하고는 다른 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환경이 좋아야만 느끼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그런 기쁨이 아닙니다. 주변의 상황이나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입니다.
   
고후 8:2을 봅시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신앙생활은 역설적입니다. 환난과 시련이 많은데 기쁨이 넘칩니다. 가난이 극심한데 넘치는 헌금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세상 사람들의 기쁨하고는 다른 기쁨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우리는 무엇으로 기뻐해야 하는가?”입니다. 오늘 설교는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어떤 기쁨을 가져야 하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복음으로 인한 기쁨 
   
클레이 폴이라는 철학 교수가 친구 집에 가서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어서 몸뚱이만 갖고 사는 그 여동생이 너무나 쾌활하고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클레이 폴 교수가 그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내가 네 처지라면 나는 못 견딜 것 같다. 그런데 너는 그 몸으로 어찌 그리 기쁘게 사니?”, 

“아저씨, 내게 팔 다리는 없어도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입이 있고 좋은 명작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고 가족의 사랑이 있고 친구의 사랑이 있습니다. 더더구나 내게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계신데 내가 기뻐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소녀는 복음을 깨달았고 복음으로 인하여 기뻐했던 것입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입니다. 왜 복된 소식입니까? 복음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영혼의 문제와 영원의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눅 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말하면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불치병 환자에게는 불치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신약 개발이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빚을 갚지 못해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사람에게는 돈이 온다는 소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와 허물로 죽어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야 할 인간에게는 죄 문제가 해결되고 지옥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복음을 깨닫고 받아드리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복음을 깨닫고 받아드리게 되면 그 순간 죄사함을 받게 되고 영원한 천국에 대한 확신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최후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속량 때문입니다. 죄인된 우리를 대신해서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인데 죄인의 몸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죄 없으신 그분이 죄인으로 죽으신 것입니까?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죄 값을 대신 치러주시기 위해서 대신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죄문제가 해결되고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고 영원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깨닫게 되면 세상이 주지 못하는 영적인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기독교 신자에게는 이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인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2. 고난으로 인한 기쁨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독교에는 역설적 진리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고난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슬퍼야 하는데 성경은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마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주님 때문에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거짓참소를 당하고 온갖 악한 말을 듣는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진리 편에 섰기 때문에 온갖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고후 12:8-10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사도 바울이 가진 기도제목 중에 하나는 자기 육체의 질병을 치료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안질이 심해서 고통을 받았다는 견해도 있고 간질로 사역하기가 힘들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아무튼 무슨 병이 되었든 그가 복음 사역을 하는 데 육체의 질병은 치명적인 방해거리였습니다. 

바울은 그 질병이 자기에게서 떠나기를 위하여 3번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약할 때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주님을 의지하게 되므로 주님의 능력이 자신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깨닫고 나서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우리의 연약함은 육체적으로는 고난을 가져다주지만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방편이고 주님이 역사하시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연약함으로 인하여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난이 많습니다. 그 중에 우리를 연단하기 위한 시험이 있습니다. 벧전 4:12에서는 ‘불시험’이라고 했고 벧전 4:13에서는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불시험이나 고난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벧전 4:13에서는 그 불시험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왜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는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설적인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약할 때 주님의 역사로 강한 것이고 내가 핍박을 받으면 천국에서 상이 있는 것이고 훈련과 연단이 강하면 그만큼 나는 변화되어 더욱 주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3. 하늘 소망으로 인한 기쁨 
   
서부 개척 시대의 일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세 사람이 엄청난 금광맥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관계기관의 허락을 받아 금을 캐낼 때까지는 이 일을 비밀로 하자.”라고 결정하고 한 사람은 허가를 받으러 가고, 또 한 사람은 생필품을 사러 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장비를 준비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이 다시 모여 금을 캐러 가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다 따라왔습니다. 

세 사람이 “누가 정보를 누설했지?”하며 서로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들, 어떻게 알았지요? 누가 당신들에게 말해 주었나요?”, 
“누구에게 들은 것이 아니요. 당신들의 얼굴에 기쁨과 희망과 웃음이 가득한 것을 보고 당신들이 금을 발견한 사실을 알았지요.” 

우리는 천국이라는 보물을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아니 발견한 정도가 천국을 이미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얼굴에서도 웃음과 소망과 행복이 넘쳐야 합니다.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전도를 나가서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니 병든 자도 고쳐지고 귀신들도 떠나갔습니다. 전도를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이 주님에게 자기들의 사역 가운데 나타났던 기적에 대해서 보고를 드리니 주님이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말은 천국백성으로 등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그 사실로 인하여 기뻐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늘 소망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의 삶이 긴 것처럼 느껴져도 사실은 잠시잠간인 것입니다.
   
약 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 세상은 잠간이고 저 세상은 영원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보다 저 세상에서 영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보다 저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한 것보다 저 세상에서 행복한 것이 중요합니다.
   
요 14장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 몇 가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첫째는 믿음이 있으니 근심하지 말 것이고, 둘째는 천국에 거할 집이 있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 것이고, 셋째는 보혜사 성령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 것이고, 넷째는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으니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섬기다가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보았고 주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의 체험 중에 하나가 천국체험입니다. 바울의 천국체험은 다른 어떤 체험보다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천국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입술로는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천국의 아름다움과 황홀함을 표현하기에는 바울의 언변은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보고도 14년간이나 말을 못하고 있다가 14년 후에 입을 열었는데 그의 천국 체험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여러분의 구주이십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님을 섬기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백성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4. 기도 응답으로 인한 기쁨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도하면 세 가지 기쁨이 주어집니다.
   
첫째는 기도의 기쁨입니다. 기도 자체가 기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그 시간 주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에 성령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둘째는 기도응답의 내용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물질문제를 놓고 기도했는데 물질문제가 풀리므로 인한 기쁨, 질병 때문에 기도했는데 병이 치료되므로 인한 기쁨, 문제해결을 위하여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신비하게 문제가 풀리므로 인하여 갖게 되는 기쁨이 있습니다. 기도 응답의 내용으로 인한 기쁨이 있습니다.
   
셋째는 기도가 응답 되었다는 사실로 인한 기쁨이 있습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주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고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있으며 내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사실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로 들어갔다가 홍해 바다를 만났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인들이 철병거를 타고 추격해오고 있는데 그들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으니 얼마나 진땀이 나는 상황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모세가 기도하니 기도가 응답 되어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라진 홍해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기도가 응답 된 것입니다. 백성들은 너무 기뻐서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이 누렸던 기쁨은 기도응답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문제를 허락하실 때는 그 문제를 푸느라고 골탕 먹이기 위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기도하여 응답을 받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체험하며 믿음은 성장하고 기도응답의 기쁨을 맛보라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한국교회의 별과 같은 한상동 목사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한상동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1941년 8월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한상동 목사님이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입니다. 심한 고문과 감옥의 나쁜 환경으로 한 목사님은 폐병이 도져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고 죽음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몸의 고달픔과 괴로움을 느끼며 몸부림치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잠결에 선명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 목사!”, 
“예” 
한 목사님은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기도하라” 
성령의 음성이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습니다. 가누기 힘든 몸으로 밤늦게 까지 기도했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3일째 밤에도 기도 후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잤습니다. 

한 목사님은 그 날 밤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보니 파란 잔디밭이 끝없이 펼쳐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잔디밭에 서 있었습니다. 웃옷을 벗은 몸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고 팔뚝에 힘이 솟았습니다. 한 목사님은 눈을 뜨고 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건강을 다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 후 몸에 피로가 없어지고 오후마다 오르던 미열도 없어졌습니다. 기도하라는 성령의 감동에 순종해서 사흘을 기도하다가 목사님의 병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깨끗이 치료된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이 문제를 만나고 문제에 눌려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를 만나거든 기도하여 문제를 기도로 풀고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를 가진 성도님들은 기도하십시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5. 복음전파와 영혼 구원으로 인한 기쁨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가면 꽃들이 많이 있는 [로스 알토힐]이라는 마을이 있답니다. 그 거리는 아주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있는데, 그 마을이 꽃마을이 된 데에는 한 우편배달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이 마을에는 ‘요한’이라는 우편 배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처럼 자전거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우편물을 배달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삶을 15년 동안 살면서 어느 날, 자신의 인생과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단순하고 단조로운 삶에 싫증이 난 것입니다. 그는 우편배달 일을 계속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 일을 그만 한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 일을 계속하라는 사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그 일이 너무나 지겹고 지루한데 어떻게 계속하느냐고 묻자 하나님께서 그 일을 계속하면서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계속 이 문제로 기도하던 그에게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우편배달부 일을 하였습니다. 매일 똑같이 자전거로 마을을 돌며 우편을 배달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편행랑 안에 꽃씨를 넣고 다니며 지나가는 집 마당에 꽃씨를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가 지나가는 길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지나가는 거리는 꽃의 거리가 되었고 그가 다닌 마을은 꽃마을이 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면 처음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이 보일 수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우리가 사는 곳이 복음의 꽃마을이 될 것입니다.
   
한 영혼이 주님 앞에 돌아오는 것은 주님에게 큰 기쁨이기 때문에 하늘에서는 그 영혼이 돌아온 것 때문에 잔치가 열립니다.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은 어떻게 되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으로 인하여 기뻐했습니다.
   
빌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니 감옥 밖에서는 이상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선생님이 감옥에 갇혔으니 우리라도 복음을 전하자라’고 생각하며 선한 뜻으로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바울이 감옥에 갇혔으니 우리가 바울이 하던 일을 해서 바울을 좀 괴롭게 하자라’는 못된 생각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에게는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바울과 같은 복음전파로 인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가 전도 때문이었고, 제자들은 성령 받고 전도에 힘을 썼다고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전도에 너무나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자라야 하고 자라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자녀를 봐야 합니다. 결혼을 했는데 자녀가 없다면 그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자녀를 낳지 못하면 병원도 가보고 좋다는 방법도 써보고 좋다는 약도 먹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시험관 아기라도 낳으려고 하고 심지어 대리모를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후손을 보는 것은 사람의 본능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본능은 영적인 후손을 보는 것입니다. 전도하여 영혼을 영적으로 출생시키는 것이 영적인 본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을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 교회의 부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교회의 부흥을 원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전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험에 들어서, 이사를 가서, 싸워서, 직장 때문에..등등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빠져나갑니다. 지난 금요일에 오신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엄청난 숫자가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사람이 빠져나가지 않는 교회는 없습니다.
   
부흥하는 교회와 그렇지 않는 교회의 차이점은 전도입니다. 사람이 빠져나가는 것은 어느 교회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순복음교회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영훈 목사님이 오신 후에 교인이 40만에서 48만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지교회를 분리시켜서 숫자가 줄어들었고 또 교인들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는데 성도들이 워낙 전도를 많이 해오니까 그렇게 많이 빠져나가도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의 비결은 전도입니다. 전도하지 않고 부흥할 수 없습니다.
   
어떤 성도는 “왜 우리교회는 이렇게 부흥이 안되지?”라고 말하는데 전도하지 않아서 부흥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그 중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 교인이 빠져나가기는 하는데 들어오지 않으니 교인이 줄어드는 것이고 당연히 교회성장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전도로 인한 기쁨, 영혼구원으로 인한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기쁨의 선물을 받으십시오. 주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셨던 것같이 우리에게도 위로부터 오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설교는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어떤 기쁨을 가져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1. 복음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2. 고난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3. 하늘 소망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4. 기도 응답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5. 복음전파와 영혼 구원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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