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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고향을 찾는 사람들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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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찾는 사람들 (히 11:13-16)

오늘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입니다. 추석은 예로부터 고향을 찾아 가족끼리, 혹은 친지끼리 모여 정담을 나누고, 햇곡식으로 떡을 빚어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며, 또한 풍년을 감사하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오늘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먼저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조상과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시며 귀한 사랑을 나누시는 복된 명절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특별히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고향과 모교회를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을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올 추석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떠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고향 가는 길이 그렇게 신나고 즐거운 일만은 아닙니다. 어제부터 고향을 찾아 귀향하는 차량의 물결이 대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평상시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너무나 피곤한 힘든 귀향길입니다. 

그리고 금년 추석은 나라의 경제뿐만 아니라 태풍으로 인해 가정경제까지 어려워 주부들의 마음이 예전처럼 편하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도로사정도, 경제도 고향 가는 길은 막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처럼 육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① 일반적인 설명은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입니다.

고향에는 자기 존재의 모습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어졌던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 지난날의 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고향이라고 말합니다. 

② 고향을 찾는 이유를 인간의 회귀본능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든 동물들에게는 ‘본능(本能)’이 있습니다. 이 ‘본능’의 사전적인 의미는 "경험이나 학습 등을 통하여 후천적으로 터득한 것이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이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능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본능이 ‘귀소본능’입니다. 

해가 지면 새들은 둥지로 돌아가고, 일을 마치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특히 연어나 꿀벌이나 비둘기 등은 수백,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정확히 돌아오는데, 그것은 귀소본능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이 귀소본능을 ‘회귀본능’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회귀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나고 자기가 자랐던 고향, 사랑하는 부모님들이 살고 있는 고향을 향해 귀성길에 오르는 것입니다. 

③ 그런데 성경에서는 고향을 찾는 이유가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13절 하반절에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외국인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크세노이’라고 하는데 이는 ‘낯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본국 사람들에게 언어, 풍속, 생활양식이 다른 이질적인 사람을 통틀어 외국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그네라는 말을 헬라어로 ‘파레피데모스’라고 하는데 이는 ‘임시로 거주하는 자’를 말합니다. 나그네는 고향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타향에 얼마 동안 머물러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생활은 항상 임시적입니다. 나그네란 의미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의 기간 동안 나그네는 늘 자신의 집과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들의 진정한 고향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토마스 울프의 작품 가운데 ‘다시 갈 수 없는 고향’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려서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면서 모진 고생 끝에 크게 성공을 했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향수를 달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열차를 타고 그의 고향을 방문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옛날 고향의 추억을 신이 나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하며 갔던 고향에 도착하는 순간, 실망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강물에 의해 멋진 모습으로 돌아가던 물레방앗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거기에는 매우 초라하고 조그마한 물레방아가 다 부서져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동네는 현대화가 되어 낯설고 어색한 집들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워했던 오솔길은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 그 위로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변해 있었고, 사람들의 인심이 변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변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은 돌아오는 도중에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이제 나는 고향으로 되돌아갈 순 없다. 길이 있다면 나는 앞으로 가야 한다. 뒤돌아가는 길은 영원히 사라졌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고향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곳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곳이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도 토마스 울프처럼, 막상 그리운 고향을 방문했지만, 그곳이 옛날 고향이 아닌 것을 발견하고 실망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정이 넘치고 추억이 깃든 고향을 기대하고 찾아갔는데,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 낮설어 실망만 하고 돌아온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가 사모하고 있는 진정한 고향은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이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의 진정한 고향은 어디입니까? 어디에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 16절에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이 땅에 있는 육신의 고향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천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늘에 있는 고향을 ‘더 나은 본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히브리서 기자는 왜 “더 나은 본향”이라고 표현한 것입니까? 

16절 중반절을 보면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이란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거룩한 곳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고향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그 위치부터가 세상 고향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고향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기 때문에 세상 고향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본문 16절 끝부분을 보면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성경 다른 곳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많이 등장합니다. 마 25:34절을 보면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라고 했고, 계 21:2절에서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했습니다. 또 고후 5: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사모하는 하늘의 고향의 특성이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갈 영원한 본향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위하여 창조 때에 이미 예비하신 곳으로 이 세상의 고향과는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그곳은 영원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곳은 죄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질병도 없습니다. 시기와 질투도 없습니다. 영원한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변해가는 이 땅의 고향이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 아니라, 영원이 변하지 않는 천국이 우리의 진정한 고향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에 들어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더 나은 본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할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나그네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방랑시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삿갓에 대한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어느 한 동네에 도착했을 때, 해가 저물었습니다. 마침 그 동네에 대궐같이 큰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삿갓이 하룻밤 쉬어 가기를 요청했지만, 주인은 자기 집이 여관방이 아니기 때문에 건너편 객주, 요즘으로 말하면 여관으로 가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때 김삿갓은 그 주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이 큰집에 몇 대째 살고 있습니까?” “예, 16대째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김삿갓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 16대가 다 생존하신가요?” “무슨 말입니까? 16대인 저만 빼고 다 세상을 떠났지요.” 그러자 김삿갓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얼마 있다가는 떠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나그네요, 나도 나그네로서 같은 처지에 있는데, 하룻밤만 쉬었다 갑시다.” 결국 김삿갓은 그 대궐 같은 집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같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올라가기 전, 잠시 잠깐 이 땅에 머무르고 있는 나그네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전 최희준이라는 가수는 ‘하숙생’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의 가사를 보면 인생이 무엇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최희준이라는 분이 예수님을 믿는 분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인생은 잠시 머무르다가 떠나가는 나그네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집 떠나 하숙집에서 잠시 살고 있는 하숙생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든,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와 같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미국으로, 캐나다로, 브라질로 이민을 가야만 외국인이요, 나그네인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살고, 고향에 살아도 다 외국인요, 나그네인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다 나그네입니다. 이 땅에 천년만년 살 사람은 이 자리에 단 한 사람도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땅에 잠시 동안 머물러다가 떠날 나그네입니다’라는 나그네 의식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인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이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그 질문 가운데에 하나가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믿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몇 명이나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믿는다고 대답한 줄 아십니까? 80% 이상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하나님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천국이 있다고 알고 있고 있으면서도 천국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16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온바 본향을 사모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브라함에게는 갈대아 우르를 고향으로 삼지 않고, 오직 저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를 고향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지시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곳에서 떠나라고 하셨습니까? 갈대아 우르는 죄악의 땅이요, 우상 숭배의 땅입니다. 아무리 살기가 좋고 물질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도시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이 관영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한 도성이기에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향하여 방주를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의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 24:3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은 언제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고향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더 나은 본향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추구할 최후의 목표인 것을 분명하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소망 중에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축구 선수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땄습니다. 마지막 일본과 의 중요한 경기는 생중계로 보아야 흥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캄보디아 선교 때문에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선교 중에 선교팀 중에서 인터넷을 통해 한국이 2:0으로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중에 귀국해서 보니까 재방송을 했습니다. 재방송을 통해 보니까 당시 현장분위기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관중석에 앉아 응원하고 있는 교포들은 완전히 조마조마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위기 상황을 당하면 불안해가지고 조마조마 합니다. 그러다가 한 골을 넣으니까 완전히 잔치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방송을 보는 저는 하나도 조마조마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환호성도 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겼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이 하늘 본향에 가 있는 사람은 땅 위에서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삶이 내 뜻대로 안 돼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내가 비록 남보다도 가난하게 살아도 그 가난이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불행을 당해도 그것이 나를 절망에 빠트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사는 천국시민입니다. 그래서 그것만 생각하면 짜증스럽지도 않고, 절망스럽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주어진다 해도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인내하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위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주 천국을 생각하십시오. 천국에 대한 얘기도 자주 나누십시오. 천국에 관한 소망도 자주자주 서로 나누십시오. 천국에 관한 찬송도 자주 불러야 합니다. 

우리는 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어디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까?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는 우리의 진정한 본향입니다. 우리 모두는 고향 가는 길에 서 있습니다. 육신의 고향은 잠시입니다. 우리들이 사모해야 할 본향은 천국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영적 실향민이 되지 않도록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시기 바랍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날마다 입술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인내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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