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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요일 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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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요일 4:7-12)

한 구두 수선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외투 한 벌을 서로 돌려 입을 정도로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부에게는 아주 소박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시장에 가서 새 양피지를 사다가 외투 한 벌을 지어 입는 것입니다. 그들은 근근이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빌려준 사람들이 있어서 그분들에게 돈을 받으면 ‘양피를 살 수 있겠다.’ 생각하고 어느 날 시장에 나갑니다. 시장에 가는 길 내 몇 사람에게 들렸지만 그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돈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장에 가서도 결국은 헛수고를 하고 그리곤 술 한 잔을 걸치고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예배당 옆을 지나오는데 이 예배당 옆에 뭔가 벌거벗은 사람이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게 보여요. 저런 사람 건드렸다간 괜히 손해 보지 하고 그냥 지나가려는데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감동을 주셔요. 

저 추위에 떠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가면 어떻게 하나?! 그건 너답지 않지 않느냐. 그래서 가다가 그는 다시 돌이켜 옵니다. 그리곤 그를 그에게 자기 외투를 벗어 입히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이 길에서 주어온 이 젊은이는 참 일을 열심히 하고 아주 지혜로웠습니다. 그가 구두 수선일을 배웠는데 얼마나 잘했는지 구두방도 날마다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가 누군지 자신은 잘 말하지 않으니까 정체를 잘 몰라요. 

그런데 얼마 후에 이 젊은이는 몇 가지 사건을 겪은 후에 다시 돌아가겠다고 인사를 합니다. 알고 보니 그는 하나님에게서 벌을 받고 이 땅에 내 쫓겨짐을 당한 천사였습니다. 근데 이제 그 죄가 다 풀어져서 다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 젊은이는 이 구둣방 부부에게 마지막말을 남깁니다. “내가 지상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는 얘기를 합니다. 

그는 언제 사랑을 느꼈느냐? 벌거벗고 추위에 떠는 자신을 집도 갈 곳도 없는 자신을 맞아준 따뜻하게 맞아준 이 부부의 사랑을 자기는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또 구둣방을 찾아왔던 그 쌍둥이 아이 버려진 쌍둥이 아이를 키우는 한 아주머니 속에서 사랑을 그는 깨달았다고 얘기 합니다. 그러면서 이 단편소설의 결론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산다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의 줄거리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다. 돈으로 사는 것 같고 음식으로 사는 것 같고 권력과 명예로 사는 것 같지만 결국 인간은 사랑으로 산다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TV를 켜도 신문을 봐도 또 소설을 읽어도 온통 사랑의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목말라고 하고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경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을 5번이나 바꿔봤지만 그는 여전히 사랑에 목말라 하고 공허함과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 사랑의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때 그는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요한1서를 기록한 분은 바로 사도요한입니다. 우리는 그를 사랑의 사도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원래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사랑의 사도라고 우리에게 오늘날 그렇게 별명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오늘 7절 전반절에 보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라고 말합니다. 

또 11절에 동일한 말씀이 반복됩니다. 우리 11절 말씀 한번 읽어보시죠. 11절입니다. 시작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아멘 하나님이 우리를 이토록 사랑, 이처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지당하다, 마땅하다 그런 얘기지요. 여러분 정말 사랑은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추석명절을 보낼 때 우리는 사랑을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모처럼 가족들이 참 바쁘게 따로 살아가다가 적어도 이틀삼일동안 한 울타리 속에서 서로 비비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2박3일 동안 또 뭐 이렇게 1박2일 동안 같이 지내면서 참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고 축복하고 그럼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마음마다 그저 사랑을 한가득 안고 돌아간다면 얼마나 힘이 날까요? 

대부분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서로 오랜 시간 같이 보내면서 할 말 안 할 말로 서로 상처를 줄때도 있어요. 안했으면 좋을 말인데 바쁘면 안했을 텐데 이거 서로 얼굴 마주보며 할 얘기도 별로 없고 한다는 게 남의 아픈 곳을 긁을 때도 있고 남의 약점을 들춰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분 좋게 왔다가 서로 기분상해서 헤어지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제 인터넷 뉴스에 보니까 추석명절에 30대 미혼남녀들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너 결혼 언제할거냐?” 그 얘기 제일 싫어한답니다. 제발 결혼언제하냐고 묻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인하나 만들어야지” 이런 말도 싫어한다고 합니다. 아니면 “돈 많이 벌어야지” “야 너 살 좀 빼라.” 이거 싫어한다는 것이지요. 이왕이면 좋은 말도 많은데 이런 말로 서로를 마음 아프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기혼여성들이 듣기 싫은 말도 있답니다. “시댁에 용돈 얼마나 드리냐” 하는 말, “살림이 아직도 그 모양이냐.” 아직도 살림이 그 모양이냐. “친정에 얼마나 지출했느냐” 이런 질문도 싫어한다고 그래요. “애들은 공부 잘 하냐” “직장은 잘 다니냐” 

이런 말은 유익한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인터넷 누리꾼들이 재미있는 얘길 해요. 하도 어르신들이 어린 조카나 또 아랫사람을 보면 “너 지금 몇 살이냐” 라고 묻는 거죠. 그래서 몇 살이다 그러면 혼기를 늦었다. 혼기를 놓쳤다 뭐 그런 말을 하죠. 그러니까 누리꾼들이 그런 말을 해요. 대처법들이 있다는거예요. 누군가 “너 지금 몇 살이냐” 물으면 “몇 살이게요?”하고 도망가라는거예요. 대답하지 말고 도망가라고 그렇게 대처법을 써 놨더라구요. 

또 시댁식구들은 며느리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많이 하는 경우가 있어요. 명절마다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어떤 며느리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합니다. 또 동서지간에 그냥 아이들을 성적비교 하느냐고 스트레스 받는다는 거예요. “우리아이는 1등 했다. 그 집 아이는 몇 등 했느냐” 이것 때문에 또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자녀들은 부모 앞에서 이런저런 불평을 해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거죠. 명절 때마다 부모 앞에 와서 생활이 힘들다는 둥, 전세살이가 지겨워 죽겠다는 둥 이런 불평을 하는 자식을 보면 부모의 마음은 내가 저들에게 뭘 못해줘서 저런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남몰래 눈물 흘릴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결혼할 때 집하나 못해줘서 저렇게 고생을 하나. 이 다 뭐든 것이 자기 죄처럼 느껴져서 명절이 즐겁지 않게 느껴진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명절에 가족 간에 사랑을 나누는 것이 뭐 큰 사랑 아닙니다. 무슨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그런 사랑 아닙니다.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하나하나가 중요한 거예요. 그 작은 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될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오늘 성경 7절과 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7절과 8절입니다. 시작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아멘 

성경에 결론은 하나님은 바로 사랑이시다. 아니 하나님은 사랑의 본질이 시고 사랑의 주체가 되시고 사랑의 발언자가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에 근원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의 이야기지요. 러브스토리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기록해놓은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사랑의 출발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미움과 증오와 살인은 마귀로부터 시작됐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의근원이시기에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당연히 사랑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로 알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시기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자 두 번째로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해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오늘 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9절입니다. 시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아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그걸 굳이 저 오늘 성경은 어떻게 표현할까요? 10절을 한번 읽어보세요. 10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아멘 

9절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10절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셨어요.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서 화목제물로 내어주심으로 그 사랑을 보여주셨고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살림을 받았습니다. 왜 우리는 이미 과거에 죄로 인해서 죽었던 자들이었지만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 흘리시고 새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를 살리심을 입었다.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살리는 것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면 살릴 수 있어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있어요. 뭐 복음을 증거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정말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을 그를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신문에도 보니까 명절 전에 참 끔찍한 일이 있었더군요. 강남에 한 유명한 초등학교에 이 고교를 중퇴한 한 170cm이상의 키 큰 남학생이 뛰어들어서 야전삽과 또 모의권총을 가지고 아이들을 협박하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야전삽을 휘둘러서 6명이나 중경상을 입는 그런 사태가 있어요. 뭐 갑자기 그냥 수업시간이 아비규환이 돼버렸다는 거예요. 

아비규환이. 그 젊은이를 체포해서 그의 성장환경을 조사해보니 아버지는 매일 술 드시는 술주정꾼이야. 매일 술 먹고 와서 가족들을 괴롭히고 그리고 잔소리하고 그래서 이 김 군은 이 아버지한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성장했다. 결국 그것이 그로 하여금 이상한 행동을 하는 문제아가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살리지만 사랑을 받지 못할 때 그는 결국 사회의 문제아가 될 확률이 많다하는 것입니다. 이거 참 안타까운 거지요. 그래서 이렇게 이런저런 일로 좋지 못한 일로 신문뉴스에 나는 많은 사람들을 조사해보니까 그의 그들의 70%는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다하는거예요.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그리고 부모로부터 거절당한 그런 경험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 참 안타까운 것이지요. 오직 사랑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주환 교수가 쓴 회복탄력성이란 책이 있습니다. 기회가 돼서 그 김주환 교수로부터 강의도 듣고 책도 좀 읽어봤습니다만은 이 회복탄력성이라는 것이 뭐냐? 한마디로 말하면 크고 작은 역경과 어려움을 딛고 승리할 수 있는 마음, 마음의 근력 그것을 바로 회복탄력성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어려움을 당해도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그것을 능히 극복하고 나갈 수 있어요.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요. 똑같이 어려움을 당해도 그것에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좌절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축구공에다가 하나에는 바람을 단단하게 넣었어요. 하나는 그냥 바람을 다 뺏어요. 그 바람을 단단하게 넣은 축구공을 시궁창에 던져버리면 어떻습니까? 그 축구공은 다시 튀어 오릅니다. 반사작용으로. 어떤 사람들은 누가 시궁창에 던져버려도 그는 다시 튀어 오른다는 겁니다. 오히려 실패를 딛고 성공으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나 바람이 다 빠진 축구공은 어떻습니까? 던져버리면, 땅바닥에 내쳐버리면 그냥 주저앉아버립니다. 튀어 오르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RQ라고 하는 회복탄력성이라고 김주환 교수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떤 사람이 회복탄력성이 높으냐? 그는 한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국 하와이에 가면 카오와이에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어요. 그리고 거기에는 전쟁인 와중에 필리핀계 사람들, 일본계 사람들, 미국 사람들 막 어울려 사는 그래서 가정이 아주 복잡한 그런데였다고 합니다. 그 어려움가운데 태어난 800명의 신생아들을 20년 동안 추적 조사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얼마나 잘 자라는가 그랬더니 대게 평균치 수였습니다. 아무래도 가정환경이 어려운 사람들은 대게 그들이 성장하면서 문제도 노출되고 어려움 당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한 200명 가장 어려운 사람들, 자기 부모한테 성장하지 못하고 또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성장하고 그런 아이들, 아주 가장 어려운 아이들 200명을 다시 거기서 뽑아가지고 그들은 집중적으로 연구해봤어요. 그랬더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중에 2/3는 빗나가기도 하고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는데 1/3은 아주 곧고 아주 아름답게 성장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이유가 뭐냐. 아니 저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훌륭하게 성장 할 수 있느냐 그런 이유를 조사해봤데요. 그중에 대표적인 아이들 보면은 한 마이클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는 태어날 때 어머니가 16세, 필리핀계 소녀예요. 그리고 아버지는 19세의 일본계 소년이었다. 자 그런 이런 가운데 태어난 아이이고 또 태어날 때는 미숙아였어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또 본국으로 돌아가버리고 또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가고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합니다. 

근데 이 마이클이라는 청년이 말이예요.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몰라요. 이 상위권 미국에서 10%안에 들어가요. 그 대인관계가 그렇게 좋고 아주 매력적이고 아주 뭐 모든 것에 흠 잡을데가 없어요. 참 이상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이런 아이가 나올 수 있느냐 말이예요. 또 몇 명의 아이들을 또 조사해봤어요. 메리라는 아이, 케인이라는 아이를 조사해봤는데 그들도 가정환경이 완전히 엉망이야. 그런데 그들은 정말 때 묻지 않게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배경에서 자란 것처럼 훌륭하게 성장을 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 중심으로 도대체 어떤 요인이 이들을 훌륭하게 성장시키나 조사해봤더니 딱 한 가지 였다는 겁니다. 그건 어릴 때부터 사랑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든, 어머니든,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이모든, 삼촌이든, 이웃사람이든, 누군가로부터 아니면 교회선생님이든, 누군가로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그들을 이해해 주고 받아주고 용납해주고 그들을 격려해주는 한사람이 다 있다는 겁니다. 그 한사람의 사랑 때문에 그들은 빗나가지 않고 훌륭한 인물들로 성장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려움이 와도 그걸 극복해 내는거예요. 긍정적인 마음을 갖습니다. 그게 회복탄력성이예요. 

다시 말하면 사랑을 받으면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자기를 받아주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는 한사람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어머니들은 조건부사랑을 합니다. “얘야 니가 영어점수를 잘 받으면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그래 영어를 20점 맞아오면 엄마는 너를 미워해 수학을 100점 맞아오면 옷도 사주고 용돈도 주고 사랑해. 그런데 엄마는 니가 영어를 30점 맞아오면 너를 꼴도 보기 싫단다.” 

이래가지고 아주 아이들이 그것 때문에 공부를 하기는 하지만 공부가 점점 싫어진다는거예요. 왜? 그러면 영어,수학이 웬수야. 그거 때문에 엄마가 나를 미워해. 이래가지고 점점 공부와 멀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빗나간다는 거죠. 이거 조건부 사랑이예요.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 너가 실수해도, 너가 성적이 안 나와도, 빵점을 맞아도 엄마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해. 이거예요. 나는 무조건 너를 지지하고 나는 너를 사랑해. 그것이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그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추석명절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 또 우리 조카, 뭐 우리 이웃들, 친척들 만나면 자녀들 보면 많이 축복해 주세요. 격려해 주세요. 그것이 바로 그들을 살리는 길이고 그들의 인생을 밝게 하는 길이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자 마지막으로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될까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 속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자 우리 12절 말씀 한번 읽어봅시다. 12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 속에 거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니예요.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자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가 들어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제자 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3장 35절에 보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아 저 사람들은 성경찬송 안 들고 다녀도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안다는 거죠. 사랑하는 자 속에 하나님은 거하십니다. 이 중요해요. 그래서 프랑스의 대제 공동체에서 많이 부르는 찬송이 있죠.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위로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그랬어요. 사랑의 나눔, 위로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은 임재 해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곳에 주님은 임재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지요. 이제 예 프리미드 영거라는 한 영주는 로마황제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어요. “크리스찬들은 참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형제도 아니면서 형제보다 더 서로를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그랬어요. 

우리는 가족끼리 서로 피를 섞은 관계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러는데 크리스찬들은 서로 피도 안 섞었는데 서로 사랑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한 가족, 한 형제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에도 그런 거 있죠. 사랑하는 주님 앞에 한 몸 받아, 한 피 받은 그랬습니다. 우린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된, 한 몸된 형제요, 자매인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성도 간에 사랑하고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그 옷이 바로 사랑이다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서두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톨스토이의 소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이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넘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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