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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탈출(7) : 유혹으로부터 (창 39: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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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7) : 유혹으로부터 (창 39:7-23)

오늘은 탈출 일곱 번째 시리즈로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해야 할 것인가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유혹만 탈출해도 공부 잘 할 수 있고, 인생에 성공할 수 있고, 성도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눈만 뜨면 “욕망을 채워줄터이니 나를 선택하라.”는 유혹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재산을 앗아가고, 생명을 앗아가고, 명예를 실추시키며, 권력의 자리에서 추락하게 하고, 신앙을 병들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을 황폐화고, 건강을 빼앗아가고, 삶의 활기를 제거시키고, 사명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요셉이 과감하게 유혹으로부터 탈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은 집요하게 유혹하는 아줌마의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하였습니까? 

1. 유혹으로부터 탈출하려면 먼저 어떤 유혹 앞에서도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해야 하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해야 합니다.

요셉이 17살에 바로의 친위대장 집에 형제들에 의해 은 20에 인신매매되었습니다. 그곳에서 10년 동안 성실히 일하여 그 집의 일과 재산을 관리하는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미인이었던 라헬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닮아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체통도 지위도, 체면도 없습니다. 눈이 멀어버리는 것입니다. 정조관념이 흐린 보디발의 아내가 27살 먹은 꽃미남 자기 집 종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유혹은 상식과 비상식을 초월합니다. 합리적, 논리성 초월합니다. 국경도, 인종도, 신분도, 성도, 종교도 없습니다. 이 아줌마가 노예를 보고 눈짓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도 다르고 신분도 다르고, 격이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몸뚱이만 보이는 것입니다. 욕망의 대상으로 보고 욕정을 품고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회사에 취업하였는데 2인자인 사장의 부인이 윙크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유혹은 보는 눈으로부터 다가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옷을 벗고 눈을 홀리는 음란한 그림을 보는 것입니다. 어느 날 호감 가는 이성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아줌마가 동침을 하자는 것입니다. 말로 노골적으로 유혹을 합니다. 사장이 해외 출장을 갔으니 여관에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유혹이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강력한 지속력이 있습니다. 포기할 줄 모릅니다. 사단을 우리를 유혹할 때 적당히 유혹하지 않습니다. 아주 집요하게 유혹합니다. 아담을 유혹할 때도 그랬고, 예수님을 유혹할 때도 그랬습니다. 

10절에 보십시오. 날마다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청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옷을 붙잡고 강권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만약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회사에서 추방하고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취업하니 음담패설만 하는 것이 아니라 퇴폐적인 술자리로 가자는 것입니다.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으로 가자고 하더니 3차를 또 가자는 것입니다. 우월적 지위를 가진 사장이, 부장이, 과장이 “부어라. 마셔라하면서 너만 교회 다니느냐? 나도 교회 다닌다. 다 그런 거야. 이번 한 번만 따라와 봐, 딱 한 번만이야. 만약 안 오면 재미없다”고 합니다. 회사 그만 둘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회사 경리로 취업을 했는데 이중장부를 쓰라고 합니다. 회사 돈을 사장 앞으로 빼돌리라고 합니다. 그것 못하면 회사 그만두라고 합니다. 이렇게 유혹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때 요셉은 어떻게 반응합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아줌마의 정부가 되면 아파트도 생기고 자가용도 생길 수 있습니다. 지배력도 더 확보하고, 더 좋은 조건의 미래가 보장될 수도 있습니다. 편하게 일하고 즐길 수 있고 해외에서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습니다. 생리적 구조로 우위에 있는 남자가 미친체하고 얼마든지 불장난을 할 수 있습니다. 안락과 쾌락이 보장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요셉은 이 유혹의 덫에서 어떻게 탈출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합니다. 의사를 분명히 밝힙니다. 유혹으로부터 탈출하려면 이 단계가 중요합니다. 결심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처음부터 하는 것입니다. 단호하게 결단하는 것입니다. 중간 지점, 회색 지점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보십시오. 

“주인이 집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는 일이 없으니 이 집에는 나만한 권한을 가지 사람이 없습니다. 주인은 나에게 아무것도 금하지 않았지만 당신만은 금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그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성경의 어떤 말씀이 떠오릅니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유혹에 넘어간 내용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주시고 선악과만 따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그 ‘하나’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아무리 달콤하게 유혹해도 처음부터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는 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와처럼 하면 안 됩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더냐?”라고 유혹하자 하와는 “동산 나무의 열매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합니다. 죽을까한 것이 아닙니다. 정녕 죽는 것입니다. 그 길로 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유혹에 덫에 걸리면 결국 망합니다. 사명이 이루지 못합니다. 성공하지 못합니다. 가정이 파괴됩니다. 추하게 됩니다. 명예와 권력을 잃습니다. 가난해집니다. 질병에 걸립니다. 실력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인생 초라해집니다. 그러니 그 유혹에는 단호히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분명한 마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사탄이 유혹합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예수님께 먹는 것으로 시험을 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다니엘을 보십시오. 뜻을 정하여 단호하게 우상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다이어트를 하시려면 그것 먹으면 병든다고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오늘 한 번만 먹고 내일 먹지 말자라고 하면 그것 실패합니다. 차치도 덥지도 않으면 썩습니다. 유혹은 늪과 같아 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터넷을 하다가 유혹하는 눈길이 있으면 당장에 “아니요” 하고 페이지를 옮겨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클릭하고 들어가면 그 때부터 그 유혹의 늪으로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음란물은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부해 버려야 합니다. 모든 중독은 유혹에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중독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유부단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입니다. 유혹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려야 합니다. 죄는 논쟁거리가 압니다. 

왜 요셉이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의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에서 철저히 “아니요”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같이 귀중하게 여기는 선이 있는 것입니다. 그 선을 넘어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상전과 종의 관점에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 시대가 윤리 관념이 없는 타락한 문화 속에서 다들 그렇게 산다해도 유부녀와 간음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상대는 큰 죄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자신은 어마어마한 큰 악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유혹을 탈출하려면 먼저 마음의 결심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요즈음 연예계를 “강남 스타일”이 평정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며 나도 강남스타일이라는 신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스타일입니다. 신문에 계속 소개되어 유튜브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강남스타일”이 나왔습니다. 들어보았습니다. 유혹의 몸짓으로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보자는 노래였습니다.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 Eh- Se1xy Lady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사상이 울퉁불퉁해서는 안 됩니다. 사상은 정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갈 때까지 가는 것입니다. 갈 때까지 가면 뭐가 나오겠습니까? 유행가는 한 때 유행하다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70년대에는 여름철 대세를 이룬 유행가가 있었습니다. “해변으로 가요.”라는 노래였습니다. 키 보이스가 부른 노래인데 그 멤버 중 차도균 씨가 있습니다. 이 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복음성가 가수로 활동하고 간증을 하면서 주님의 은혜로 술을 완전히 끊었지만 기나긴 세월 술 때문에 아내 속을 지겹게도 뒤집어놓고 썩어 문드러지게 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주님! 술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믿음을 주시옵소서'하며 기도하고 있으면 그 분은 '주님! 술 마셔도 죄의식에 빠지지 않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러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윤항기 목사님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그룹사운드 '키보이스'를 결성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지라 결혼 후에도 여성팬들 때문에 아내의 심기가 편한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호텔 커피숍에서 예쁜 여자를 보고 있었답니다. 그 때 아내가 “당신! 여자들한테 관심 끊기로 했잖아요.”라고 했답니다. 차도균 집사가 “그랬지.”라고 말하자 아내가 “근데 지금도 당신은 딴 여자들만 쳐다보고 있잖아요.”라고 말했답니다. 그 때 차도균 집사는 “나 참! 금식중이라고 식당가서 메뉴판도 못보남?”이라고 말했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보더라도 뚫어지게 보면 안 됩니다. 

그 분이 어느 날은 한쪽 팔에 깁스를 하고 방송국에 들어왔답니다. 모두들 놀라며 “어머! 어찌된 일입니까?”라고 하자 차도균 집사는 “교통사고야. 갑자기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가 확 나타나는 바람에….”라고 했답니다. “저런! 한 눈 팔다 교통사고를 냈나보네요.”라고 말하자 그는 “그게 아니라 조수석에 앉아 있던 마누라가 갑자기 두 눈을 손으로 확 가리잖아. 그래서….”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유혹을 당해 사고당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 말 사전에 보면 유혹은 두 가지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끎.”이고 둘째는 “성적인 목적을 갖고 이성(異性)을 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질의 유혹, 성적 유혹, 명예에 대한 유혹, 권력에 대한 유혹 등이 다가 올 때 단호하게 “아니요”라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유혹이 와도 그 유혹에 “아니요”라고 거절해야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결심의 순도를 높이시기 바랍니다. 세상 풍조가 어떻게 변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수준이 인생의 수준이 됩니다. 


2. 유혹에서 탈출하려면 홀로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신전의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요셉이 이렇게 철저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하며 유혹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우리는 근본적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요셉의 말을 보십시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감히 이런 악한 짓을 하여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신전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금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혼자 책상위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금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인터넷을 하는 것입니다. 둘만 있고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금 나를 cctv로 찍고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기부를 받을 때 컴퓨터 화면에 눈을 그려 놓으면 더 많이 사람들이 기부를 한다고 합니다. 대학 휴게실에 커피 자판기를 설치한 후 셀프서비스로 양심껏 돈을 지불하게 하고 첫 주에는 자판기 앞에 눈 사진을 붙여 놓았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눈 사진 대신 꽃 사진을 붙여 놓았답니다. 상당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바꾸며 실험을 했는데 눈 사진을 붙여 놓았을 때 더 많은 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누구를 의식하면 인간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악하기 때문에 스스로 놓아두면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같은 사람도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모세와 같은 사람도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다윗과 같은 사람도 밧세바를 범하는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아간을 보십시오. 그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 점령을 할 때 물질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보십시오. 물질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나는 늙었기 때문에 유혹에 안 넘어갈 것이고 장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혹은 죽을 때까지 수시로 다가옵니다. 성역 없이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늙었다고 다가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신문에 보니까 호주에서 첫 애인에게 버림받고 100세 동안 동정을 지킨 할아버지가 70세 할머니가 비아그라로 유혹하여 동정을 잃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명의가 있었답니다. 그 의사는 환자의 죽고 사는 것을 정확히 알아낸답니다. 그래서 그 비결을 물어보았답니다. 그 병원에 중환자가 실려 오면 그 병동에서 제일 예쁜 간호사를 들여보낸답니다. 그러면 다 죽어 가는 남자가 눈이 돌아간답니다. 그러면 그 인간은 산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쁜 간호사가 들어왔는데도 멍하고 있으면 가족들 보고 장례 준비를 하라고 한답니다. 

유혹은 숨 멈추는 순간까지 다가옵니다. 유혹이라는 것은 그것에 넘어가면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매혹적이고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늘 그렇게 속삭이는 것입니다. 먹어보라 산다는 것입니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돈을 벌게 하고 출세하게 하고 기쁨과 쾌락을 줄 것이라고 속삭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것은 요셉은 그런 체험이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각종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인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노예로 팔려왔지만 이만큼 출세한 원인이 무엇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인도 여호와께서 함께 그가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여서 하는 일 마다 잘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이 왜 복을 받았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요셉을 위해 복을 내려 그의 집안 일이 잘되고 재산이 날로 늘어난 것입니다. 좋은 것은 사탄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에 빠지면 좋은 것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쾌락을 줄 것이라고 인터넷에 들어가 포르노를 탐닉하고 사이버 섹스, 통신을 이용한 원조 교제를 한다고 진정한 성적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자 제임스 맥가우(James L. McGaugh)는 인간이 감정적인 자극을 받게 되면 그 인상이 아드레날린 호르몬과 에피네프린에 의해 '두뇌에 각인되면서' 기억이 형성되는데 그렇게 형성된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는 연구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면 점점 빠져들어 중독의 길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중독이 되면 그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 확대된다고 합니다. 게임중독에서 포르로 중독으로 도박중독으로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더 강렬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감각해진다는 것입니다. 점점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양심과 도덕적 신념이 마비되어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단이 유혹으로 주는 것은 결국 불행과 파멸, 죽음입니다. 

유혹에 넘어간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 아간 가족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참하게 온 가족이 죽었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능력의 사람 삼손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눈이 뽑혀 연자 맷돌을 돌리다 죽었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아브라함이 첩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고 끝없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임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절박성을 가지고 실행해야 합니다.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다짐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사건 사건마다 미루지 말고 즉시 시행하는 것입니다. 

1930년 프로펠러 하나 달린 단발기를 몰고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린드버그 대위입니다. 생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일에 도전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린드버그 대위는 조그만 비행기를 타고 서른 몇 시간 동안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일약 세계가 주목하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가 영웅이 된 다음에 파리를 한 번 방문했는데, 그가 온다는 말을 듣고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어느 큰 담배 회사 사장이 이 기회를 이용해 자기 회사의 담배를 광고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린드버그에게 다가가 담배 한 개비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것을 손에 끼어도 좋고 입에 물어도 좋습니다. 포즈 한 번만 취해 주십시오. 그러면 사진 한 장을 찍는 대가로 5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90년 전에 5만 달러라면 대단한 액수입니다. 그러나 엄격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린드버그는 이런 말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세례 받은 교인입니다.” 이 말은 파리 신문에 기사로 나왔고, 그의 말을 듣고 그 당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성금 10만 달러를 모아서 린드버그에게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3. 유혹으로부터 탈출하려면 마음의 결심을 끝까지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요셉이 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날마다 요셉에게 치근거립니다. 유혹이란 집요한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계속 치근거리니까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요셉은 거절하며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도 않고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유혹의 자리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피해버리는 것입니다.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요셉이 자기 업무를 수행하려고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그 집의 종들은 거기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아줌마에게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요셉을 유혹할 기회이고 요셉은 유혹당할 수 있는 위기였습니다. 이 아줌마가 요셉의 옷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자” 강요를 합니다. 그러자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못 이긴체하고 잠자리에 들어갑니까? 이 때 요셉은 총각이었을 것입니다. 정력이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버려 둔 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도망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유혹을 피하는 것입니다. 

한 번만 넘어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유혹은 한 번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피하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딴 생각을 가질 수 없도록 퇴로를 차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설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협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파란 물속에 들어가면 파란 색이 들고 빨강 물속에 들어가면 빨간색으로 물들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인이 당면한 과제는 세상의 박해가 아니라 세상의 유혹입니다. 유혹은 현장에서 피해야 합니다. 현장에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피하여 도망가는 것입니다. 머물러 있으면 범죄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잠 6:27)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잠 6:28)”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

유혹의 현장에서 바동거리며 무모한 짓을 하며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미련을 두지 말고 아쉬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주 단호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5:30)”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정한 장소에 가게 해서도 안 되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도록 우리를 유혹하려는 사람들과 같이 있게 해서도 안 됩니다. 유혹으로부터 피하지 않으면 그 유혹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유혹을 도망치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것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위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노련한 항해사라도 암초가 깔려있는 해역을 시험 삼아 지나지는 않습니다. 유혹에 넘어질 때 어떤 환경 하에 놓여있습니까? 그 환경을 피하여야 합니다. 계속 유혹에 넘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유혹에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를 멀리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가난한 목사님 가정이 있었는데 사모님이 너무 옷 사 입기를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사모님께 아예 백화점에 가지 말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사모님이 시내 백화점에 또 가서 아름다운 새 옷을 입고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그 때 목사님이 “그렇게 부탁했는데 왜 또 옷을 사 입었소. 내가 부탁한 말 기억나지 않았소.”라고 말했답니다. 그 때 사모님이 "기억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아름다운 옷을 보는 순간 사탄이 저를 유혹하지 뭐예요." "아니, 여보,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소. 성경 말씀대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소리쳤어야지." 그 때 사모님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사탄이 내 뒤로 가더니 '뒤에서 봐도 아름다운걸!' 그러지 뭐예요." 

이 목사님 아들이 하나있는데 참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이 아이에게 그 유혹을 이겨야 한다고 늘 말했는데 그날 저녁 아이 방으로 가는데 아이가 기도를 하고 있었답니다. 기도하는 내용을 들어 보니 잠자기 전에 "하나님, 내일 아이스크림 장수가 올 때 제발 제가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리더라는 것입니다. 유혹을 피하는 것은 도망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진정 유혹을 피하는 방법을 잘 알 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혹을 쉽게 피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서입니다. 이 아줌마를 보십시오. 14절을 보시시오. 집안 종들을 불러 말합니다. “이것 좀 보아라. 주인이 데리고 온 이 히브리 사람이 우리를 희롱하였다. 그가 나를 겁탈하려고 내 방에 들어왔으나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의 옷을 내 곁에 벗어 둔 채 달아나고 말았다.” 남편에게 화살을 돌리고 요셉에게 화살을 돌립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동일하게 말합니다. “당신이 데리고 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 방으로 들어왔으나 내가 소리를 지르자 자기 옷을 내 곁에 벗어 두고 달아났습니다.”

주인은 분노하고 요셉을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그러나 불이익을 받았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누가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간수장의 사랑을 받습니다. 감옥 안에서 제반 업무를 맡습니다. 전혀 간섭하지 않을 정도로 신뢰를 얻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그가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가서 왕의 신하를 만나게 되고 그 일로 결국 바로에게 발탁되어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언약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창 15:13)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 15:14)” 

요셉은 모든 유혹으로부터 탈출하여 이 사명은 완수했습니다. 국무총리가 되었고 형제들을 애굽으로 오개 하여 출애굽할 때 까지 살게 만들며 출애굽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만들었습니다. 

유혹으로부터 탈출만 잘해도 우리 인생은 성공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유혹 이기지 못하여 롯의 아내, 게하시, 아간, 유다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재물의 유혹을 이겨 성공했습니다.(창13:8,창14:19-20,창14:22) 성에 대한 유혹 이기지 못하여 다윗(삼하11:2,삼하11:6-13), 암논과 하몰의 아들 세겜(창34), 야곱의 아들 르우벤(창35:22), 삼손이 망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창39:9) 성에 대한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명예에 대한 유혹에 발람(민22:12), 야고보와 요한(막10:37)은 실패했지만 기드온(삿8:23)은 성공했습니다. 음식에 대한 유혹을 에서는(창25:27-34) 실패했지만 다니엘(단1:8)은 성공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사업하는 사람도, 가정 생활하는 부부도, 직장인도, 목회자도 유혹을 이겨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유혹으로부터 탈출하려면 먼저 어떤 유혹 앞에서도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해야 하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결심하고 “아니요”라고 거절해야 합니다. 
유혹에서 탈출하려면 홀로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신전의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매사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신전으로 행동하여야 합니다. 

유혹으로부터 탈출하려면 마음의 결심을 끝까지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한 번 피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피하여 유혹으로부터 탈출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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