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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 (삿 7: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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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 (삿 7:9-14)


인생을 즐기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에 심리학자인 [마틴 샐리그마] 라고 하는 사람이 삶을 우울하게 비판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이야기 합니다. 그 첫째가 뭐냐 하면 지나친 영구성향입니다. 변화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대로 머물 수밖에 없고, 내 인생은 이대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내 이 잘못, 또 이런 행위는 고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즉,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지나친 확산성향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이 모양이지. 이것도 못했으니 앞으로도 아무 것도 못할 것이다.” 라는 스스로 자기를 절망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지나친 개인성향입니다. “모든 것은 나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나 자신에 문제 있다.” 라는 자괴감에 빠져서 자기 스스로를 완전히 불가능한 존재로 평가해 버립니다. 이렇게 우울하고 비판적으로 살아가면서 변화를 두려워하고 용기 없이 생을 허비하면서 내가 변하지 못하니 다른 사람도 그랬으며 좋겠고, 세상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에 빠져 세상을 살아갑니다. 

한 여인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남편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부부싸움을 하는 통에 살지를 못하겠다는 하소연입니다. 이 여인의 불평을 다들은 의사가 처방을 내립니다. “병원 옆에 신비의 샘이 있습니다. 그 샘의 물을 담아가서 남편이 퇴근하면 얼른 한 모금 마시고 절대 삼키면 안 됩니다.” 그날 밤 부인은 변함없이 늦게 들어온 남편 앞에서 의사의 처방대로 신비의 물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부인은 남편이 들어와 불평을 할 때마다 신비의 물을 입에 머금었더니 남편은 점점 변해 가는 것입니다. 부인은 의사를 찾아가 “선생님, 신비의 샘물의 효능이 대단합니다. 그 처방전 이후 남편이 달라졌어요.” 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의사는 “그것은 신비의 샘물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침묵이 남편을 변화시킨 것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멈추면 됩니다. 내가 먼저 변하면 상대방도 변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이 변화를 이루려면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비전(Vision)을 말합니다. 무슨 일을 이루려할 때 “난 안돼!” 하고 지레 스스로를 포기하는 사람과 “난 할 수 있어!” 라며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비전(Vision)의 문제입니다. 곧 변화란 꿈이 있는 사람과 꿈이 없는 사람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특별히 우리조상들에게는 고향은 절대로 떠나서는 인 되는 것이라는 관념이 있었습니다. 고향 떠나는 것 자체를 굉장히 두려워했습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인생의 실패자가 되어서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을 때 떠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아버님께서 일제시대 징병을 갔다가 미군에 포로가 되었다가 해방되면서 돌아오신 그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일본군들이 패전 무렵에 오키나와에서 징병들을 다 죽이려고 나무에 묶어 두고 총살을 하다가 총알이 아깝다고 칼로 목을 베서 죽이는 행위를 자행할 때에 목숨을 걸고 탈출해서 미군 함대에 구조되어서 거기에서 예수를 믿고 나중에 돌아오셨습니다. 그때는 이미 일본에서는 전사 통지서를 보냈고 죽은 줄로 알았던 아버님은 5년 만에 부산항만청과 일명 하야리아부대라고 불렀던 미군 부대에 통역관으로 들어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향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죽었다가 돌아 온 아들을 또 다시 부산으로 보낼 수 없다고 눈물로 붙드는 바람에 결국 통역관을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때가 정주영씨나 이건희씨가 항만청에 떨어진 쇳조각들을 주워 모아서 돈을 벌던 때라고 하니 아마 저희 아버님이 그때 통역관으로 일했더라면 여러분들 저를 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저는 어디서 무엇을 할지 모를 일이고요. 지금도 형님들과 모이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러지 않았기에 7남매 중에 3명이나 목사가 되지 않았겠느냐고 말하곤 합니다. 하여간 고향을 떠난 다는 것은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여겼던 시대입니다. 이것이 변화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큰 장벽입니다. 변화란 그만한 의지와 적극성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보잘 것 없는 형편에서 성공 자가 되었던 위대한 사사 [기드온]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은 무려 400년 동안 지도자 없이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때마다 사사를 세워 이스라엘을 지도하고 적군의 손에서 건져내도록 하셨습니다. 그 중에 사사 [기드온] 은 이스라엘 민족을 침공하여 7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의 온갖 재산을 빼앗아 괴롭히고 고통을 주었던 미디안을 쳐부수어 승리를 이루었으며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한 사사입니다. 하지만 [기드온]이 처음부터 위대하여 이 일을 감당한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은 농부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약하고 작은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성격마저도 소심하여서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할 만큼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은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기드온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선택하여 위대한 인물로, 성공자로,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지도하는 사사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기드온이 이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던 배경 속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 준 것이 있습니다. 기드온에게는 이 미디안 이라는 적군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지시하시기를 미디안 진영에 몰래 내려가서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잘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부하를 데리고 미디안 진영에 내려가서 병사들끼리 주고받는 꿈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13-14절이 그 꿈 내용입니다. 

“야, 내가 어제 밤에 희한한 꿈을 꾸었어. 글쎄 보리떡 한 덩어리가 데굴데굴 굴러 오더니 장막에 부딪혔는데 그 하찮은 떡 덩어리 하나에 장막이 폭삭 무너지는 게 아니겠어!” 그런데 말이죠. 하나님께서 그 꿈을 해몽하는 친구의 입을 통해서 당신의 계획을 기드온으로 하여금 듣게 합니다. “야. 그 꿈은 이스라엘 사람 기드온이 우리 미디안과 모든 군대를 박살낸다는 꿈인데” 얼마나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입니까?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무모한 일을 시키실까’ 했던 의문이 확 풀렸습니다. 잠시나마 불만했을 자신을 돌이켜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감사와 용기가 솟아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알지 못할 때는 불안하고 두렵기가 그지없습니다. 또한 불만스럽고 한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바라본다면 엄청난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계획 없이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괜히 이 사람 불안하게 하고 저 사람 두렵게 하는 실없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실 때는 불안도 은혜요, 두려움도 은혜라는 분명한 사실만큼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꿈을 통해 기드온에게 보여 주신 중요한 교훈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보잘것없는 보리떡 한 덩어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의 보리떡이 의미하는 바는 보잘것없는 평범한 것을 의미합니다. 짐승들이나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 보리떡이었습니다. 어디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평범하고 천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의 기드온이 이 보리떡에 비유 되고 있습니다. 

별나지도 않고, 특출한 것도 없는 평범한 기드온은 오늘 우리들 개개인을 대표합니다. 
형편이 어렵다고 주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지 못했다고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물리치시는 적은 없습니다. 건강이 약하다고 하나님이 거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리떡을 쓰시는 분이십니다. 내 처지가 보리떡 같을지라도 최선을 다하여 섬기고 순종하는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이 거대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보리떡 같은 제 인생을 쌀떡으로 바꾸어서 드리겠습니다. 보리떡인 내 처지가 입에 살살 녹는 케이크 같은 인생이 되면 그때 드리겠습니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굴러가는 보리떡이 되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봉사로 구르고, 사랑으로 구르고, 희생으로 구르고, 용서로 구를 때, 전도로 세상 속을 굴러다닐 때 비로소 이 세상은 변화 되는 것입니다. 

외람 된 말씀이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교회 안에는 꼭 불평과 불만을 즐기는 그룹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대부분이 움직여 일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불만하지 않습니다. 봉사도, 청소도, 전도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뒤에서 다른 사람 험담이나 하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주둥아리형교인> 이라고 부른답니다. 제 말이 아니라 [정기호]라는 집사님이 쓴 <배꼽 잡고 훔쳐 본 교인 풍속도> 라는 책을 보면 그랬습니다. 이 책에 보면 또 <먹 거리형교인> 도 있는데 일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먹을 일이 생기면 득달같이 나타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처럼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간 떡이 진을 무너뜨렸습니다. 구르는 떡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다 보리떡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굴러가는 보리떡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하자” 하면 “네” 하고 굴러가고 “성경공부하자”, “기도하자” 하면 얼른 굴러가야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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