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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마 2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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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마 22:34-40)  

< 사랑의 힘 >

요새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합니다.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개인 자산이 줄고 있습니다. 미국도 경제가 어려우니까 경기 부양을 위해 엄청나게 돈을 찍어냅니다. 그러면 자연히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원화 가치가 한참 올라가야 하는데 무슨 영문인지 원화 가치는 잘 오르지 않습니다. 결국 풀린 달러로 원자재 가격이 올라가고 물가가 올라가면서 자산은 주는데 물가는 오르는 기현상으로 중산층의 고통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고령화 문제나 실직 문제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얼마 전 50대 전후에 실직된 가장들의 삶을 다룬 얘기가 TV에 나왔습니다. 새로운 일자리도 얻기 힘들고, 일자리를 얻어도 수입이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습니다. 할 수 없이 자영업이나 몸으로 때우는 일에 나서지만 몸만 축나고 생각만큼 돈을 못 법니다. 그래서 절망이 깃든 그들의 삶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집 한 채만 가지면 어느 정도 위안이 되고 노후가 대비되었습니다. 물가가 올라도 집값은 더 올라주니까 걱정이 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집값이 떨어지면서 집 한 채 가진 사람도 노후 걱정이 큽니다. 그리고 집값이 떨어지니까 집을 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전세나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세와 월세는 크게 올랐습니다. 그래서 집 있는 사람도 힘들지만 집 없는 사람은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2년 만에 이번에 또 이사 가야 되니까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분당에서만 6번째 이사입니다. 어제 아내가 이사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그래도 목회자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일반인들은 집 없는 설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상황이 그러니까 더욱 ‘인물 한 사람’이 그립습니다. 한 사람의 인물이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집니다. 카네기가 억만장자가 되자 그를 통해 지인과 동료 등 40여 명이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가수 싸이(Psy)가 뜨자 소속사도 뜨고, 아버지 회사도 뜨고, 케이팝도 뜨고, 한국도 뜨고, 그의 노래를 패러디한 수많은 패러디도 떴습니다. 심지어는 그 이름을 이용해 나쁜 의도로 자신을 띄우는 사람들도 무수히 생겼습니다. 어떤 비밀결사체는 자기 존재가 희미해질 때쯤 되면 항상 해왔던 방식대로 유명인들을 엮어서 “싸이는 그 결사체 회원이다! 아무개는 그 결사체 회원이다!”란 역정보와 음모론을 흘려 자기 존재와 힘을 교묘하게 홍보하고, 또한 그런 음모론을 이용해 영혼을 불안하게 만들고 미혹하는 종말론 장사꾼도 여지없이 등장했습니다.  

문제는 일부 교인들까지 그런 음모론에 휘둘려 믿음이 ‘약속 위에 건축된 믿음’이 아닌 ‘공포 위에 건축된 믿음’으로 영혼이 침탈되면서 또 초보신앙으로 향한다는 사실입니다. 1992년 시한부 종말론 장사꾼들에게 그렇게 심하게 당해서 한국교회의 신뢰추락 및 조롱거리 되는 일에 큰 일조를 하고도 또 미혹되는 모습을 보면 누군가의 종말계시나 공포적인 추리에 입각한 믿음이 아닌 말씀 중심적인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이런 혼란한 때이기에 예수 믿고 인물이 되는 역사의 주인공이 더욱 그립습니다. 누가 인물이 됩니까? 남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우리도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여기고 그런 인물을 꿈꾸십시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인물의 소명을 가지면 사랑도 잘하게 됩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충족되고 만족을 느끼면 관대해지고 비판과 불평이 줄어듭니다. 그러므로 늘 인물의 꿈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큰마음과 큰 꿈을 품으십시오.  

군대에서 위관급 장교는 직접 총을 쏘며 병사들을 이끄는 용장이 되어야 합니다. 영관급 장교는 작전을 지혜롭게 잘 세우는 지장이 되어야 합니다. 장군은 큰마음으로 전 군대를 품는 덕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덕장 교인을 꿈꾸십시오.  

중국에 부하를 끔찍이 사랑하는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말단병사가 발에 종기가 나자 그 장군은 친히 고름을 짜며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그 병사의 어머니가 땅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사연을 알아보니 그 어머니의 남편도 그 장군의 부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남편도 발에 종기가 생겼을 때 그 장군이 친히 고름을 짜서 치료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에 감격해 그녀의 남편은 그 장군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그 남편처럼 아들도 그 장군을 위해 목숨을 걸 운명임을 짐작하고 통곡한 것입니다.

사랑과 덕을 가지고 누군가를 최선의 삶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지도력입니다. 그래서 큰 인물이 되려면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의를 증오와 폭력으로 세우려고 하면 참된 정의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미움의 힘이 아닌 사랑의 힘입니다. 이제 미운 것을 잘 보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예쁜 것을 잘 보는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무력하지 않습니다. 사랑할 때 최상의 능력도 나타납니다.  

어느 날, 13세기에 살았던 사랑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굽비오란 마을이 늑대로 인해 피해가 많다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프랜시스는 제자 한 명과 함께 무장도 없이 늑대 굴로 갔습니다. 그들을 보자 늑대는 으르렁거렸지만 프랜시스는 태연했습니다. 그리고 곧 조용히 늑대에게 사랑을 설교한 후 두 손을 부드럽게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늑대가 다가오더니 프랜시스의 손 위에 앞발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때 프랜시스가 늑대의 목을 껴안자 늑대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가끔 흉악한 사형수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도소에서 사랑을 실천하다가 장기를 기증하고 평화롭게 죽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것도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간의 힘든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교회와 교인의 최대 존재 이유이고 자신의 최대 존재 이유입니다.
  

< 무엇을 사랑해야 할까요? >  

본문은 사람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사랑과 관련한 2가지 교훈을 줍니다. 성도는 무엇을 사랑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많은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제일 큰 계명입니까?” 그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본문 37-38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초점이 ‘하나님 사랑’에 맞춰지지 않으면 인생은 방향을 잃고 허무해지지만 그 초점이 잘 맞춰지면 인생은 가장 성공적인 모습이 됩니다. 결국 인생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좌우됩니다. 저급한 것을 사랑하면 저급한 인생이 되고 고귀한 것을 사랑하면 고귀한 인생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보통 소중한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까요? 본문 37절은 간단하지만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3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1) 마음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무엇이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까?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의 자녀 사랑입니다. 부모들은 온통 자녀 생각뿐입니다. 조금 늦게 오면 길을 잃지 않았는지, 누가 납치한 것은 아닌지 염려합니다. 그리고 어떤 희생을 무릅써서라도 최선을 다해 자녀의 길을 열어주려고 합니다. 그 이상으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예배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모릅니다. 또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면 기도내용도 달라집니다.   

사람들의 기도를 보면 대개 이런 기도가 많습니다. “하나님! 물질 주세요! 명예 주세요!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그렇게 달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협박까지 합니다. “하나님! 안 주면 안 믿을래요.” 그렇게 협박조로 기도하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반면에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면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 제가 뭘 하기를 원하시나요? 항상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가게 하소서! 어떤 시련을 만나도 아멘을 잃지 않게 하소서!” 그처럼 철저히 하나님 중심주의로 사는 것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 목숨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배우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당신은 나만 사랑해야 돼!”라고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목숨을 다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에게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지 않았다면 사랑을 쉽게 말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목숨 걸고 우리를 사랑했던 것처럼 우리도 목숨 걸고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속상할 때도 많습니다. 그처럼 자녀가 힘들게 하고 못나 보여도 부모의 자녀 사랑은 변함없고 자녀를 위해서라면 이런 기도도 합니다. “하나님! 필요하다면 자녀의 목숨 대신 제 목숨을 가져가시고 자녀에게 길을 활짝 열어주소서!” 그처럼 부모는 본능적으로 자녀를 위해 목숨까지 겁니다. 그 이상으로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늘 그런 마음으로 살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마음을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3) 뜻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자신이 가진 것, 즉 시간, 물질, 재능, 정열 등의 모든 것을 가지고 힘써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찬송할 때는 힘껏 찬송하고 말씀 들을 때는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 말씀으로 들으십시오. 기도할 때도 간절히 기도하고 예배드릴 때는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최상의 존재이신 하나님께 최상의 것을 드리십시오.

시간이 남아서 예배에 나오지 말고 시간을 구별해서 예배에 나오고, 물질이 남아서 헌금하지 말고 물질을 구별해서 헌금하십시오. 우주를 창조하신 영광의 하나님께 쓰다 남은 찌꺼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처럼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겸손하게 은혜 받을만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무엇이든지 드릴 때는 정성스럽게 먼저 좋은 것을 구별해서 드리십시오. 사랑하지 않으면 작은 헌신도 아깝지만 사랑하면 큰 헌신도 아깝지 않습니다.  

어떤 분에게 30만 원짜리 애완견이 있었습니다. 그 애완견이 병들었습니다. 수의사가 수술비가 3백만 원이 드니까 수술하지 말고 다시 애완견을 사서 키우라고 친절하게 권유했습니다. 그때 애완견 주인이 말했습니다. “수의사님! 3천만 원 들어도 수술해주십시오!” 사랑은 헌신을 낳고 헌신은 사랑을 낳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헌신하면서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처럼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2.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본문 39절 말씀을 보십시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하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 받은 자만이 할 수 있기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비례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이웃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 사랑은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소중한 추억을 남깁니다. ‘나만 사랑하는 것’은 불행의 시초이고 ‘남도 사랑하는 것’은 행복의 시초입니다. 교회생활을 잘한다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주일성수, 십일조, 헌신적인 봉사, 그리고 새벽기도를 하는 것도 교회생활을 잘하는 표시이지만 역시 교회생활을 잘하는 가장 뚜렷한 표시는 교회와 교우를 사랑하고 선교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라!”고 했지만 이웃을 사랑할 때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본능적으로 얼마나 사랑합니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자기만 사랑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며 이웃 사랑에 나서십시오. 희생이 없는 사랑은 감상주의입니다. 감상적인 사랑이 아닌 호주머니를 실제로 비우는 사랑이 세상을 이기는 놀라운 능력과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을 보면 육십갑자로 육갑을 떨어 결혼날짜를 잡고, 개업날짜를 잡고, 이사날짜를 잡습니다. 시신을 보면 부정 탄다고 그의 마지막 얼굴을 보는 것까지 막아서 평생을 아쉬움 속에 살게 합니다. 가끔 이상하게 생긴 바위나 나무가 보이면 여지없이 그 앞에 촛불이 켜지고 시루떡이 놓이면서 고사를 드립니다. 어떤 분은 연초에 점쟁이가 “물을 멀리하라!”고 하니까 여름휴가도 안 갑니다. 

시골의 어떤 집에서는 집에 뱀이 들어오면 터줏대감이라고 여기고 잡지도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해합니다. 그처럼 미신에 사로잡히면 영혼이 속박됩니다. 어떤 사람은 중요한 날 수염을 깎으면 안 된다고 믿고 지저분한 얼굴로 면접시험에 갑니다. 당연히 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동물이나 사람 인형이 자기를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마스코트로 삼습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행운을 주고, 길을 열어주고, 자기 앞날을 지켜줍니까?   

점쟁이에게 가면 종말론 장사꾼들처럼 반드시 하는 말이 “살이 끼었다! 마가 끼었다! 40대에 큰일 치르겠다!”라는 종류의 말입니다. 그래야 장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그 순간 그 영혼은 두려움의 영에 속박됩니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묏자리를 바꾸고, 멀쩡한 집에서 이사를 갑니다. 그처럼 미신은 영혼을 불안하게 만들고, 문제가 생기면 자기의 부덕을 탓하지 않고 집터나 묏자리나 이름을 탓하게 해서 자기 성찰의 길까지 막습니다.   

이제 ‘운명에 좌우되는 사람’이 아니라 ‘운명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축복의 원리는 신기하고 신비하고 괴상한 신앙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축복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랑할 때 참된 평안이 생기고 그 평안 위에 행복의 열매들이 맺힙니다. 이제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나누십시오. 그러면 행복과 축복의 길에서 결코 뒤쳐진 인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고, 43세에 미국 최대 부자가 되고, 53세에는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돈 버는 일에만 매달려 악덕기업주란 말을 들었던 그에게는 결코 행복이 없었습니다. 55세가 되었을 때 그는 머리와 눈썹이 빠지고 몸이 마르는 병에 들어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기자들은 그의 사망기사를 미리 써 놓고 타전 날만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그가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들어서는데 병원 로비에 걸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도다.” 그 글을 보자 갑자기 어렸을 때 하신 어머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3가지를 꼭 당부했습니다. “첫째, 교회를 네 몸처럼 사랑해라. 둘째,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드려라. 셋째,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바치고 십분의 일은 이웃을 위해 써라.” 

그 어머니의 음성이 생각나면서 마음속에 전율이 흐르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처럼 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자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예수님을 묵상했습니다. 한참 눈을 감고 묵상하는데 옆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병원 사무원과 환자의 보호자가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습니다. 병원에서는 병원비가 없으니까 입원이 안 된다고 하는데 환자의 어머니는 제발 입원시켜 달라고 울고불고 사정했습니다. 

그때 록펠러의 마음에 선한 마음이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비서를 시켜 그 소녀의 병원비를 대신 지불하게 하고 누가 지불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입원 후에 기적적으로 죽을병이 나았습니다. 옆에서 그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보니까 자기도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자서전에서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그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때 그는 베풀면서 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키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신기하게 잘 자고 잘 먹게 되었습니다. 그 후 98세까지 장수하면서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임종할 때 말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늦게나마 이 행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처럼 교회를 사랑하며 남을 은밀하게 돕는 삶은 행복의 최대 원천입니다. 그런 나눔이 없으면 행복은 결코 그를 찾아와주지 않습니다.   

사람이 임종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말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좀 더 감사하며 살 걸!”이란 말입니다. 둘째는 “좀 더 참고 살 걸!”이란 말입니다. 셋째는 “좀 더 베풀며 살 걸!”이런 말입니다. 그런 후회가 없도록 이제 좀 더 감사하며 살고, 좀 더 참고 살고, 좀 더 베풀면서 사십시오. 

지금 선교사님 중에 어려운 선교사님들도 많고 도와야 할 곳도 많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어렵고 우리도 여유가 없으니까 안타깝게도 많이 돕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때 전방 선교사를 꿈꿨다가 후방에서 사역하게 되면서 항상 전방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해드리고 힘써 나누면서 나중에 “좀 더 나누며 살 걸!”이란 후회가 없게 하십시오.   

우리 교회는 열심히 선교하고 나눌 줄 아는 나눔의 모델 교회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와 교인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는 이때 우리는 “교회와 교인이 이렇게 멋지게 나누며 사는구나?” 하는 칭찬을 듣는 교회를 꿈꿔야 합니다. 그 꿈을 이루도록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고 또한 우리 중에 인물이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십시오.  

네트영어를 위해서도 계속 기도해주십시오. 2019년까지 5000페이지를 목표로 틈틈이 집필하고 있는 <네트영어 사전>은 어제까지 A4용지로 539장(대략 1350페이지)을 완성했습니다. 현재까지 완성된 워크북이 약 20여권이 있고, 조만간 800-1000페이지 정도 되는 네트영어 입문 단행본도 계획하고 있고 네트영어 동영상들도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 시설, 장비, 인력(교수인력, 연구인력, 행정인력) 확보 등에 초기 재정이 필요합니다. 이 사역을 통해 국제적인 일꾼을 배출하고 더 많은 재정을 창출해 나눔의 꿈을 멋지게 이루려고 합니다. 이 비전을 후원할 거룩한 커넥션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해주십시오.  

나중에 성도가 하나님 앞에 상급 심판을 받을 때 상급을 좌우하는 2가지 최대 기준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 두 가지 사랑의 계명이 너무 중요해서 본문 4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랑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의 핵심 내용이고, 인간 존재의 최대 이유이며,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행동강령입니다. 그래서 힘써 사랑하면 하나님은 그로부터 최고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어느 날, 캐나다에 사는 한 자매가 설암에 걸려 혀를 자르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 전에 자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말을 한 마디 했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지금 힘든 일이 있어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을 자신도 여전히 사랑한다고 고백하십시오. 그런 사랑의 고백이 입술에 넘치고 실제 삶에서도 넘침으로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을 돌리고 자신의 존재 목적을 온전히 이루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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