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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랑할 것이 없느니라! (롬 3: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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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할 것이 없느니라! (롬 3:21-28)


사도 바울이 자신이 직접 로마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치 유서처럼 써서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그리고 16세기 종교 개혁의 중심이 되었던 귀한 말씀이 담겨 있는 것도 바로 이 로마서입니다. 이 로마서를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면 그 옛날 사도 바울이 비장한 각오로 로마 교회에 전하려고 했던 것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주로 유대인과 율법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율법으로 남을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유대인들, 자신들은 율법대로 살지 않으면서 그 율법으로 남을 판단하는 유대인들은 결코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책망했던 대상은 그냥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교회의 성도들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에 그의 책망은 오늘 한국 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무서운 책망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로마서는 마치 한 편의 논문처럼 잘 구성되어 있는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전도 여행을 마치고 그 동안 모금한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썼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번 로마에 가려고 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그들을 견고하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쓸 때까지 그는 로마에 갈 수 없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당시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스페인 전도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먼저 로마 교회를 방문해서 성도들의 후원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방문을 앞둔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로마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는 편지로 로마 교회에 복음을 전해 주고 그가 스페인에 가지 못할 경우에 로마 교회가 스페인 전도를 대신 맡아 주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마치 유언을 하듯이 편지를 써 보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 서두에 인사를 마치자마자 그가 전하려고 하는 핵심 주제를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복음, 믿는 자, 구원, 유대인과 헬라인, 하나님의 의, 믿음과 같은 주제는 이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매우 중요한 핵심 주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차별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유대인들을 겨냥하여 그들의 잘못을 심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율법을 신봉하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고 꾸짖은 그는 율법의 행위가 결코 사람을 바르게 세울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율법과는 상관없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가 이미 선포한 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의라는 말을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범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동일하게 은혜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이방인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에 관한 한 유대인들이 특권 의식을 가질 그 어떤 근거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죄인이었으며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다만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그 무엇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롬 3:27)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 교회 안에도 율법주의적인 신앙 행태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 혈통적인 유대인은 없지만 유대인의 율법주의적인 요소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외적인 행위에 집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워 놓은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자신들이 세워 놓은 표준에 도달하는 삶을 살 때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그 결과 그릇된 자기 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반면에 그 표준에 미달하는 삶을 살게 되면 스스로 심한 죄책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복음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율법주의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한편 믿음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도 문제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편의상 극단적인 믿음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실천해야 할 행위를 도외시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하심을 얻는다는 교리를 단순히 자신들의 구원을 확인시켜 주는 장치 정도로 이해하며 그런 교리를 근거로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하며 또 자랑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유대인들이 선민으로서 자신들의 우월적인 지위를 자랑한 것과 뭐가 다릅니까? 

오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자랑하려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만을 자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 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성화란 우리가 평생을 통해서 이루어야 할 긴 여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쉬지 않고 계속 자신을 성찰하며 성장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의롭다 칭하심을 얻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성화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다만 구원의 확신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최후의 상급을 염두에 두고 살아서 마침내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5장의 기사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이 과연 복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받은 바 그 무엇인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에 들어선 사람은 그 관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 주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것은 그 자체를 자랑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또한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마지막에 있을 것이며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산 삶의 모습에 따라서 우리를 평가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대로는 결코 아니 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개혁의 대상인 한국 교회는 과연 무엇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 한국 교회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먼저 우리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개혁하고 갱신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대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자랑할 것은 오직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과 주님의 은혜뿐입니다. 받은 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늘 실천하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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