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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십시오 (벧전 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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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덕을 선포하십시오 (벧전 2:9-10)


: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누리며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부활하심으로 살아계신 돌이 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또한 그 자신도 산 돌입니다. 예수님은 그 분을 믿는 사람들을 영생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디딤돌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걸림돌이 되십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미련해 보이고, 껄끄럽게 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오직 은혜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였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보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월요일 새벽에 교회를 출발하였습니다. 비행기로 서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로 갔습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승합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강가이 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강가이 마을은 7년 전부터 김병욱선교사가 들어가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이곳에는 40가정이 넘는 셍오이족들이 살고 있고, 그 중에서 39가정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곳은 말레이시아 감리교 원주민 연회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 감리교 원주민 목회자와 김병욱선교사가 함께 사역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 모두가 정부의 시책에 따라 산 아래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여 예배당 건축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주민을 이주시키면서 정부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회교도로 개종시키려는 시도가 있기에 더욱 그리스도인의 센터가 될 예배당이 꼭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40주년기념 해외교회로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12월에 부지를 선정하고, 올 1월에 건축을 시작하여 완공하여 이번에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정말로 뜨거운 신앙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뜨겁게 찬양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착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곳에 우리 교회의 이름으로 예배당이 세워진 것을 감사하고 이를 위하여 기도해주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곳에 새로운 예배당을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말레이시아에 있는 무푸라는 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이곳은 쿠알라룸푸르에서 비행기로 1시간 50분여를 가서, 승합차로 5시간이 족히 걸리는 곳입니다. 

이 지역은 작년에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단기선교를 다녀왔고, 올 여름에 청년들이 다녀온 곳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수요일 저녁예배를 함께 드리며, 예배당을 짓기 원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곳은 원주민 그리스도인이 예배당 부지를 기증하였습니다. 예배당 건축을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해 온 곳입니다. 예배당을 건축하면 여러 마을에서 함께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선교지역이 넓은 곳이어서 많은 전도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앞으로 우리교회에서 함께 사역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예배당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이 예배당은 우리교회의 어느 성도의 가정이 건축비 전액을 헌금해주셨습니다. 그 가정에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참고로 이곳에 예배당을 건축하는 데는 대략 2천 2백만 원 내외의 비용이 듭니다.

저는 이번 말레이시아 방문을 통하여 영생강가이교회 예배당을 봉헌하였고, 무푸교회 예배당 건축을 결정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예배당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기도하는 집을 짓는 것입니다. 건물을 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을 예배하도록 전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저는 봉헌예배 설교에서도 이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배당은 짓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당을 위해서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배당을 짓는 일을 소중히 여깁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495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95개 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성(城) 교회 대문에 내걸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로마교회가 성베드로 대성당 건립자금 마련을 위해 대사부(大赦符·일명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리던 것에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건물을 짓기 위하여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에 대항하였던 것을 중교개혁의 기점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들도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건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건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가르치고 기도하기 위하여 모이는 집으로써 예배당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우리의 예배당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곳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람인가 하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I. 신분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운 사람들인가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적으로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제대로만 안다면 우리는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9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9a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오늘 말씀은 사도 베드로의 음성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하는 네 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첫 번째로 어떤 족속인가 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족속[gevno"/게노스]’은 민족, 자손, 가족, 나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 민족이고 유대인들은 유대 민족입니다. 그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족속이든 ‘택하신[ejklektov"/에클렉토스]’ 족속입니다. 택하였다는 것은 뽑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 하셔서 선택하셨습니다. 

1. 우리는 택하신 족속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만을 선택하셨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족적 우월주의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민족적 우월주의에 빠져서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박해할 권리를 가진 민족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위하여 선택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은혜는 은혜를 주신 분을 드러내는 것이지 받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말씀은 두 번째로 우리가 어떤 제사장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우리가 제사장임을 선포하셨습니다. 5절 말씀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거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성령님을 모신 거룩한 사람들은 이미 제사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왕같은[basivleio"/바실레이오스]’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보통 제사장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2.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왕의 특징은 당당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쩔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어둠의 세력이 넘어뜨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살리는 힘입니다. 

중세 로마교회는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며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꾼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누구도 이런 사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에 반해 루터의 종교개혁 핵심 원리 중 하나인 ‘만인제사장주의’는 영적인 지위에서 사제와 평신도가 대등하다는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시인 존 밀턴은 각 개인이 제사장임을 깨닫지 못한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만도 못한 자들’이라고 신랄하게 규탄했습니다. 

만인제사장설(萬人祭司長說)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께 직접 예배하고 교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성직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누구나 직접,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며 교제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왕과 같은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당당히 향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이름으로 세상에서 승리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 번째로 우리가 어떤 나라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라[e[qno"/에드노스]’는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 집단, 무리, 떼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어떤 습관을 가진 나라입니까? 거룩한 나라입니다. 여기에서 ‘거룩한[a{gio"/하기오스]’은 ‘두려운 것’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두려워하여야 할 분입니다.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거룩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고 하였습니다. 

3. 우리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요즘 세상은 예수 믿는 사람을 함부로 대우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자신들에게 책임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 그 분을 함부로 대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함부로 대우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연하게 당신의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의연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누가 함께 계시는가 하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거룩한 사람입니다. 

세상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네 번째로 우리가 어떤 백성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백성[laov"/라오스]’은 군중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군중이 아니라 ‘그의 소유[peripoivhsi"/페리포이에시스]’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사셔서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 사람들입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의 소유인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은 자신이 누구의 ‘소유’가 되었다는 표현을 싫어합니다. 모두가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적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7)고 물으셨습니다. 우리 스스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이 주인인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이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이룬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주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하면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족하고 연약해도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면 그렇게 믿고 제사장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신의 신분이 본래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예수님 때문에 변화된 것입니다.
  

II. 변화  

우리는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된 것입니까?

10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0a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1. 아니더니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어둠의 백성이었습니다. 마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를 값 주고 사신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또, 우리는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10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0b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긍휼을 입은 사람입니다. 

2. 못하였더니 긍휼을 얻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긍휼[ejleevw/엘레에오]’은 ‘불쌍히 여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불쌍히 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을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인데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찬송가에 마르틴 루터의 작시 찬송가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585장 ‘내주는 강한 성이요’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입니다. 

(1절) 내가 깊은 곳에서 주를 불러 아뢰니 주여 나의 간구를 들어주심 바라고 보좌 앞에 나가니 은혜 내려 주소서

(4절) 주의 크신 은혜와 그의 능력 바라라 주의 깊은 은총에 우리 구원 있으니 변함없는 주님만 믿고 기다릴지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이 시간 분명히 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변화시켜 놀라운 신분을 가지게 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III. 목적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던 사람들을 불러서 이제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게 긍휼을 베푸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9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9b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삼으시는 긍휼을 베푸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그런 일을 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선포하다[ejxaggevllw/엑상겔로]’는 말은 ‘발표하다’, 즉 ‘축하하다’, ‘선전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1.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들의 제사장적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행 2:47a)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일꾼을 뽑는 기준이었습니다. 일꾼을 세우기 위하여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 6:3)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칭찬 든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포하여야 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은 무엇입니까?

다시 9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9b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유의 기쁨과 해방의 감격을 누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고 선포하여야 합니다.

또 우리가 선포하여야 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은 우리를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냈다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찬양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는 우리에게 간곡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라고 하였습니다. 절망의 세상에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삶이 세상 사람들이 궁금히 여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찬송하는 것이 원망할 일을 쌓아두고 사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길 것이 없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오늘 교회의 비극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서 왕과 같은 제사장입니다. 영적 권위를 회복하여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왕이심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독일 비텐베르크에 있는 루터 박물관에 전시 중인 ‘공동 기금함(gemeinen kasten)’입니다. 헌금함과 별도로 마련된 이 나무궤짝엔 사람들이 익명으로 돈이나 채소, 곡식 등을 담았고, 교회와 시 당국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나눴습니다. 

“화려한 건물을 짓고 성상(聖像)에 금박을 입힌 뒤 남는 돈으로 생색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과 정성을 다해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마티아스 셰르 목사)

하나님께서 원하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교회의 사명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은사를 따라서 다양한 제사장적인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세상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 제사장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말과 삶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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