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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유케하는 복음 (눅 4: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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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케하는 복음 (눅 4:18-21)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 4: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청바지 차림의 한 신사가 은행의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그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은행에 의논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마침 담당 직원이 외근 중이라서 만날 수가 없었고, 해당 부서에 상담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다음날 다시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하는 여직원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하지요. 내일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여직원에게 주차권 확인 도장을 좀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여직원은 정중하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금을 한 것도 아니고 예금을 인출 한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신 것이 없기 때문이 은행의 규정상 찍어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신사는 아주 불쾌해하며 통장에 있는 150만불을 모두 인출 해 갔습니다. 그 신사는 IBM회장이었던 존 에이커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융통성이 없는  은행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규정이 무엇입니까?  법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이 율법에 매여 살았습니다. 율법의 속박아래 눌려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자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삼고 진리를 깨우쳐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갈라디아 5장 1장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자유인입니다. 인간은 그가 누리는 자유만큼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자유를 느끼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나사렛에 들어가셔서 소문을 듣고 모여 온 사람들에게 이사야선지아의 예언의 말슴을 인용하시며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오심으로 중요한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새 시대가 시작되엇다는 말슴입니다. 불행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해방의 기쁨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사람들을 속박하는 마귀 사단이 패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원수 마귀의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사람들이 놓여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속에 오셨습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 그런 자유와 해방이 임하였습니까?  

  
1. 예수님은 포로됨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다섯 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 다스리고 정복하라.  그런데 사람이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께 죄를 짓고 쫓겨나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마귀, 사단에게 다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포로가 되어 끌려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의 포로가 되어 하루도 술이 없이는 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도박의 포로가 되어서 도박을 하지 않고는 하루도 못견딥니다. 어떤 사람은 마약에 포로가 되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음란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물욕에 포로된 자, 도벽의 포로가 된 자, 쇼핑중독자, 게임 중독자, 일중독자  수많은 이들이 이처럼 무언가의 포로가 되어 공중권세잡은 마귀의 조종을 받으며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자신도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있으나 어쩌지 못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 보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포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포로는 싫으나 좋으나 자신을 포로로 잡은 자에게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포로는 자유가 없습니다. 매여 있어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이 임하면 자유케 됩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 들어가시면 그를 자유케 해 주십니다. 그를 사로잡아 꼼짝 못하게 만들던 것들이 다 떠나갑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자유케 될 뿐 아니라 잃어버린 축복을 예수님께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며 다스리고 정복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유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살도록 만드셨고 우리들에게 자유를 누리며 살도록 에덴 동산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 때만이 행복이 있고, 삶의 풍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그 자유를 잃어버리고 죄의 종이 되었고 자기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는 완전히 타락한 존재로 전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자유의 회복이며, 이것은 바로 구원이고 인간의 행복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자유인으로 회복되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을 자유와 해방으로 설명합니다. 자유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며 최고의 은총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이 진리라고 하는 것은 복음인데 이 복음을 알면 자유인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게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예수안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까지 여러분을 포로로 삼은 모든 사단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세상을 정복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은 눌림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에 눌려 살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마귀에게 눌려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색 질병에 눌려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국가적 사회적인 제도와 차별로 눌려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눌린 자의 결박을 풀어 자유케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현대인중에는 심적으로 심한 스트레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로 쉽게 지치게 하고 피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소한 일에 짜증스런 반응이 나오도록 만듭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질병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심장병, 위장병, 불면증, 각종 암을 유발시키는 발병원인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스트레쓰는 기억력을 둔화시키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도 하고 우리로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송두리채 앗아가는 정신적으로 나쁜 바이러스같은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각종 레져활동 또는 문화활동을 합니다.  여행이나 인터넷 등으로 스트레쓰를 푸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유익함이 많이 있고 스트레쓰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만으로 사람들은 스트레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안식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있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은 스트레쓰로 인하여 눌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말슴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참된 안식을 주고 지치고 병든 너희를 온전히 치유하겠다."라고 말입니다.  
  
어느 날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산책을 하고 있었다. 오솔길을 돌아 막 동네 어귀에 이르렀을 때 미켈란젤로는 못생긴 대리석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돌은 어느 저택이 정원 한 모퉁이에 버려져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후 나온 저택의 주인에게 정원 모퉁이의 대리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돌을 나에게 줄 수 없습니까?"  주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 흠집 많은 돌을 가져 가셔서 무얼 하시렵니까?"  "저 안에는 천사가 갇혀 있군요. 제가 그 천사를 자유롭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럽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안에 갇혀 있는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려고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그 천사보다 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해방시킵니다. 어둠에 갇혀 잇는 이를 해방시켜 마음에 꽃을 활짝 피워 주십니다.  


3. 예수님은 눈먼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구경하던 이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그러자 어떤 바리새인이 "그럼 우리도 소경인가?"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을 받아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육안은 멀쩡하지만 정말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사는 영적인 소경이 많이 있다는 말슴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많은 능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말씀하시며 구약의 예언을 온 몸으로 성취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시대에 바로 그들의 삶의 자리 한 복판에서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 행하신 놀라운 역사를 두 눈을 크게 뜨고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저들이야말로 진정한 소경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그와 같은 영적 소경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지금도 행하시는 굉장한 사건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사단의 결박에서 풀려나며 복음을 믿어 사람들이 변화되고 가정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불행한 영적 소경입니다. 
  
이런 영적 소경을 다시 보게하려고 예수님게서 오셨습니다. 눈 먼 자를 흑암의 세력에서 해방시키려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실제로 눈먼 자를 많이 고치신 예수님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은 율법의 지식이 해박했고 유대교에 열심인 사람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이라는 대학자에게 배웠기에 누구와 겨루어도 논쟁에서 이긴다는 자신감으로 가득찼습니다.  뿐만아니라 행위로도 완벽하여 자기의로 충만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영적인 소경임을 깨닫지도 못한 채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빛으로 임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보낸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안수해주자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떨어졌습니다.

비로소 눈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껏 보지 못하던 세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핍박하던 그리스도인들이 참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살았는지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눈이 열리자 한 영혼의 소중함과 영원한 천국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구원받으면 눈이 열리게 됩니다. 눈을 가리우는 비늘같은 것이 떨어지고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열립니다. 비젼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며 이 땅의 고난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한 영혼의 소중함이 보입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허물이 보여 겸손해집니다. 보다 멀리 내다보며 보다 중요한 본질을 바라보며 넓어진 시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여러분,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경험을 통하여 눈이 활짝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빠삐용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수차례 탈출을 시도한 끝에 악마의 섬에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주인공이 조류의 흐름을 이용하여 악마의 섬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하여 자유를 얻었다고 외칠 때 남아 있던 친구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네가 아무리 탈출에 성공해도 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너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실화입니다.  1930년 앙리 샤리에르가 스무살 때 파리 시내에서 술을 먹고 있었습니다.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앙리는 그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실적에 눈이 먼 검사가 현장 근처에 있던 앙리를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그리고 거짓 증인을 내세워 살인자로 누명을 쒸워 감옥에 넣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검사에게 복수하려고 탈출을 시도합니다. 
  
결국 아홉 번의 시도 끝에 14년만에 탈출한 샤리에르는 남미 곳곳을 다니면서 온갖 일을 하여 돈을 모았습니다. 30년이 지나 형법상 공소시효가 지난 1967년에 그 검사를 죽이기 위해 파리로 돌아갑니다. 자기가 젊었을 때 다니던 거리, 부모님과 함께 다녔던 장소, 어릴 때 꿈꾸던 미래를 떠 올리면서 마음을 바꿉니다. 샤리에르는 살인범으로 억울하게 체포된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가 복수를 포기한 댓가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게 해 달라고. '너는 이겼다. 친구여.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네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이상 알려고 하지마라.  그들은 과거의 한 부분일 분이다. 너는 여기에 있다. 마치 기적처럼 그리고 나는 지금 확인하고 있다. 이 일에 관계된 사람중에 네가 가장 행복한 자임을.."
  
앙리는 복수와 증오로 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37년동안 스스로를 가두어 두었던 '자기'라는 감옥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정말 행복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믿습니까?  여러분에게 임한 복음으로 인해 포로됨과 눌림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맛보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또한 눈이 열리고 새롭고 놀라운 세계가 여러분을 향해 환하게 다가오고 있음이 보입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의 복음으로 인해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충동에 견딜 수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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