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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흰 옷 입은 큰 무리 (계 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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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옷 입은 큰 무리 (계 7:9-17)  

인치는 역사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천사가 인침으로써 이루어진다. 인침을 받은 자들의 수는 십 사만 사 천명이다. 그 수는 실제의 수라고 이야기하는 의견도 있고 상징수라고 이야기하는 의견도 있지만 그 종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종들이고 하나님이 소유를 삼은 종들이며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증인된 종들이다. 

요한계시록 8장에서 일곱째 인을 떼기 전, 재앙이 시작되는 인이 다 떼어지기 전 요한계시록 7장에서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인치는 역사가 마무리되고 그 일 후에 나오는 장면이 계7:9~17에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경배하는 모습이다. 즉 인침 받은 자는 시대만의 사명자들인데 그 사명자들의 사역으로 인해 구원받은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14만 4천명이 곧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동일한 무리라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계7:1~8과 계7:9~17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면서 인침받은 자들의 사역의 결과들임을 보여준다. 특별히 문맥상으로 계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분명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인치는 일 이후에 나오는 것으로 14만 4천명이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면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라고 찬양하는 이 큰 무리는 누구인가? 계7:13을 보면 “큰 무리가 누구냐?”라는 질문이 있는데 계7:14에 기록된 그 대답은 이렇다.  

1.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계7:14中)

계7:14中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사람들은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기로 작정하고 나면 무슨 일이든지 잘 될 줄만 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무서운 환난이 따를 수 있다.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 아무런 환난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사도행전을 보라.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도들이 증인이 되어 각 나라와 족속으로 많은 백성들에게 수 천의 방언을 사용하는 종족들에게로 나아갔다. 

그 역동적인 복음 증인의 이야기와 함께 그림자처럼 실려있는 이야기가 복음을 가로막으려는 박해 이야기이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친 것이 문제가 되어 심문을 당하고 또 옥에 갇히고 스데반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한다. 사도행전으로 성령행전, 복음행전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 복음의 역사를 가로막으려는 환난의 행전이다. 예수를 믿으면 환난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이다. 예수를 믿으면 환난을 대면하게 되고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가르침이다. 

롬8: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고난이 안생긴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수용하라는 말씀이다. “고난아 올테면 오라. 나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는 크리스챤이다.”라고 맞서라는 것이다. 

롬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이 가져다 준 분명한 소망을 알기에 환난마저도 즐거워한다. 환난에 기죽지 않고 오히려 환난과 싸워서 연단을 받는 강한 성도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대환난은 이전의 환난과 다르다. 그러나 천상에서 예배하게 되는 이 큰 무리는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다. 환난에서 나왔다는 것은 환난을 통과했지만 환난을 이긴 자들이라는 말이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시대의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을 신이라고 하였고 전 제국의 구주라고 하여 황제 숭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크리스챤들은 예수님이 유일한 구주시고 주님이라고 하여 황제 숭배를 거절하였다. 그 때문에 갖은 환난이 다가왔지만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죽임을 당하는 환난까지도 이겨낸 것이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빼앗으려는 갖가지 도전 앞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큰 환난에서 당당하게 나오는 자가 되어야 한다.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는 무슨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서야 한다. 

아8: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죽음 같이 강한 사랑,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면 환난은 아무 것도 아니다.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천상의 셀 수 없는 사람들! 그 속에 포함되어 내가 있으려면 환난을 이기고 그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 되라.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나오듯, 베드로가 옥중에서 나오듯,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 되라.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가 되라는 책이다.
  

2. 옷을 씻어 회개한 자들이다. (계7:14下)

천상에서 이 셀 수 없는 무리들은 옷을 깨끗이 씻은 사람이다. 희게 되도록 씻은 이 옷은 잿물로 빨아서 희어진 것이 아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에 씻은 옷이다. 그리스도인은 환난을 당할 때 피를 흘린다. 그리스도인이기에 환난을 당하고 사명을 감당하기에 환난을 당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를 행하다 환난을 당하고 가지 가지 일로 환난의 피를 흘린다. 그러나 그 피가 나를 깨끗케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깨끗케 한 것은 어린 양의 보혈이다. 어린 양이 피 흘려주심으로 모든 죄에서 우리가 정결케 된 것이다.

본문에서 옷을 씻는다. 희게 한다는 것은 부정과거형이다. 그것은 사람이 죽은 후에 정결케 된 것이 아니고 지금 예수의 피가 나를 정결케 하셨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보혈의 능력이 나를 은혜 속에 머물게 한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속에 머물게 한다. 우리 죄를 용서하고 깨끗하게 하고 죄와 죽음에서 건져내어 흰 옷을 입혀주신 사랑 때문에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무리들 가운데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고(엡1:7) 그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신 것이고(엡1:5)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신 것이다.(엡1:13)

여기 천상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씻어주심의 보혈을 통과한 이들이다. 보혈의 피와 상관없이 천상에서 노래할 자가 없다. 당신도, 나도 보혈의 능력으로 옷을 씻어 희게 된 자인지 확인하라. 예수의 피가 나를 천국으로 들어가 서게 하였다. 
  

3. 그러면 이 큰 무리가 누리는 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귀하게 대우하신다. 계7:9 “흰 옷을 입고...” 흰 옷은 존귀한 신분의 옷이다. 여자와 하류의 남성은 검은 옷을 입었다. 이는 하나님이 대접해 주시는 모습이다.  

1)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게 되었다. (계7:15上)

우리의 영광은 하나님의 보좌다. 그 보좌 앞에 있게 되었다면 그 자리가 특별한 것이다. 나를 창세 전부터 사랑하도록 그 분 곁에 있다면 영광이요 영광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믿고 가까이 가까이 가려던 신앙 생활 - 천상에서 보좌 앞에 있다. 행복이다.   

2)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게 되었다. (계7:15中)

구약의 성전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에서 밤낮으로 섬긴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고 기쁨이다. 천상에서는 나를 섬기지 않는다. 나를 섬기기 위해 자신을 다 내어주신 하나님의 섬기는 낮과 밤, 사랑에 있어서 최고의 기쁨은 섬김이다. 섬김은 무게가 아니다. 시84:10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도 좋사오니...”라고 하였다. 기쁨이요 기쁨이다.  

3) 하나님이 장막을 쳐주시는 사랑을 받는다. (계7:15下)

하나님이 장막을 저들 위에 친다는 것은 함께 동거하며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내가 동행하고 동거하는 것은 나를 지으신 본래의 의도다. 영원하신 분의 사랑으로 쉬고 취하는 것이다. 장막을 쳐주면 광야의 길에서 보호를 받고 안전을 얻었다. 더워도, 추워도, 외로워도 상관없다. 하나님이 나를 덮으시는 장막을 쳐주시면 만족하게 된다. 이것이 계7:9 “종려 가지를 들고”의 이유다. 초막절에 종려나무 가지를 든다.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승리의 뜻이다. 
  
① 주림도 목마름도 없는 풍성함의 생활이다. (계7:16上)

계7:16上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광야 같은 이 땅에서 주리고 목말랐으나 그 배고픔과 갈증의 삶은 다시 되풀이 되지 않는다. 넉넉하신 하늘 창고를 열고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② 자연 재난도 받지 않는 생활이다. (계7:16下)

계7:16下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돌보심은 세밀하시다. 광야 이스라엘에게도 구름 기둥, 불 기둥으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견디게 하셨는데 재난은 더 이상 손대지 못한다. 태양도, 쓰나미도, 지진도 손대지 못한다.  

③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계7:17上)

계7:17上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인도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인도이다. 생명수 샘으로 마시게 하시는 주님의 인도 때문에 파고나 죽음이 손대지 못한다. 이 자세한 천상의 거울은 계22:1~2에 기록되어 있다. 생명수 강, 생명나무 열매가 있는 곳이어서 참 생명을 누린다.  

④ 모든 눈물을 닦아주신다. (계7:17下)

계7:17下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눈물 없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눈물을 닦지 않고 걸어온 발자취가 어디 있는가? 괴로워서 슬퍼서 쓸쓸해서 분해서 마음대로 안되어 울던 눈물을 이젠 흘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21:4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다.  

이것이 구원 얻은 자, 천상에 들어온 자가 누리는 보이다. 이런 복을 누리는 것은 흰 옷 입은 성도, 예수의 피로 씻긴 자여야 되며 큰 환난에서 이기고 나오는 자여야 한다.

이제부터 인내의 힘을 기르자. 십자가 보혈을 믿는 감격의 힘으로 견디고 싸우는 힘을 기르자. 환난의 어려움을 이기고 견디는 생활로 거저 주신 은혜와 사랑을 더럽히지 말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라. 거저 받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상실하지 말라. 아무리 세상이 좋아 보이고 세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도 싸워 이겨라. 

요한계시록은 중간 중간 천국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도 천국을 보여준다.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혼이 천국에 서는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고 믿음을 배반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짐승의 표를 받아 파멸의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다. 미리 맛보기로 보여주는 천국의 구원받은 사람들의 장면을 강조한다. 

이는 뒤에 가서 다시 나온다. 생명수 샘이 흐르는 곳에서 생명수 강이 흐르는 영원한 나라를 보여준다. 종말이나 지금이나 천국에 나아가려는 것이 신앙의 최종 목적지여야 한다. 지금 나의 삶이 어떠하더라도 이 길을 잃지 말라.(딤후4:18) 

왜 이 땅에서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가? 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명령에 충성하는가? 모든 것을 투자하고 모든 것을 단념하고 모든 것을 헌신하는 것은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박수와 갈채를 받고 모든 것에 우뚝 서서 잘 나가고 인기를 얻더라도, 메달리스트가 되더라도 좋은 것에 교만하지 말고 더 분명히 천국으로 나가려고 하라.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 거룩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도록 오늘도 성령 충만하도록 자신을 관리하고 자신을 지켜라. 이 길을 잃으면 실패할 것이다. 

오늘도 이 길을 확인하고 가면 성공할 것이다. 나는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선다. 하나님 앞에 서기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려 이 길을 간다. 확인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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