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가 아는 것은 (요일 5:18-21)

첨부 1


우리가 아는 것은 (요일 5:18-21)
 

1. 목사님들이 가장 기뻐하는 날이 두가지가 있다고 하는데요, 하나는, 불신자들이 교회를 오는 것과, 다른 한가지는, 그 사람이 세례를 받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1) 세례는 생일과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결혼식과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이 땅에 새생명이 태어나는 생일을 온 가족들이 박수치며 기뻐하듯이,, 또 많은 가족과 축하객들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하는 것처럼, 세례를 비유하지만, 세례는 그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예식입니다. 

2) 오늘 우리교회에 세례예식이 있는 날인데, 세례받으시는 분들을 격려하고 축하할 때에,  결혼잔치의 날과 같고, 생일잔치와 같은 그런 축하의 분위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2. 요한일서 5:18-20절의 각 절은 모두 “우리가 아는 것은(We know that)”으로 시작합니다.
 
1) 그렇지만 알아야 하는 내용은 각각 다릅니다. 18절에는, 하나님께로 난 자는 범죄하지 않는 줄을 아노라, 19절에는,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세상에 속하지 않은 줄을 아노라, 20절에는, 우리는 참된 자를 아는 지각을 가졌다는 사실을 아노라. 

2) 이것을 외우기 쉽게,, 영어의 P로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즉 Power (권위), Position (신분), and Perception (지각) 입니다.
 

<우리가 세례에 대해서 알아야 될 것은> 

I. 먼저, 권위 Power에 대해서 입니다. 우리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입니다. 

1. 한마디로, 우리는 세상속에 살지만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여기서 크리스챤이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영어성경에 보면, 잘 설명을 했는데요, "죄를 계속해서 짓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2) 세례받은 사람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짓지 않습니다. 죄에 빠져서 죄가 그 위에 왕노릇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18절에 있듯이,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2. 로마서에서는 이걸 “죄에 대하여 죽었다”라고 했습니다.

1) 여기서,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도, 죄가 유혹해도 아무렇지도 않고, 전혀 유혹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죄가 더 이상 우리에게 왕 노릇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더 이상 죄에 종 노릇하지 않는다 말입니다. 그래서 죄에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이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 죄를 거부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2) 여러분 아마 김현희씨에 대해서 알 것입니다. 북한의 간첩으로 KAL 기를 폭파해서 수백 명을 죽였는데, 붙잡혀서 한국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살아있다고 들었습니다. 사형을 선고 받았는데, 죽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정부에서 김현희씨를 살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특별사면을 해 준 것입니다.

사실 간첩으로서 김현희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김현희씨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제 김현희씨는 한국의 국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김현희씨가 다시 북한의 지령을 따를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더이상 북한의 공작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북한에 대해서는 죽었습니다. 남한에 대해서는 살아났습니다. 이제는 남한의 법을 따르며 살아야 합니다.

3) 죄에 대해서 죽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죄가 놀자고 하면 밥 먹다가도 쫓아 나가서 놀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죄가운데 더 살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3. 우리가 무엇에든지 순종하면, 그것에 의해서 권위가 형성이 됩니다.  

1) 그래서 계속 그 권위에 복종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면,  거짓이 우리에게 권위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 거짓을 하게 됩니다. 모래밭에 물이 한번 지나가면 거기에 물길이 만들어져서, 디음부터 물이 계속 그 길로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2) 이것은 반대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에 순종하면, 그 선한 일이 우리에게 권위를 형성하고, 앞으로 계속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거짓말을 하고 싶은 상황에서, 거짓의 권위를 거부하고, 진실을 말했다면, 진실이 우리에게 권위의 줄을 형성하게 됩니다. 

3) 그래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살아났다는 말은, 죄가 우리에게 권위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그 권위의 줄을 끊고, 예수님이 우리 삶에 권위를 행사하도록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4)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죄에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우리 삶에 권위를 행사하도록,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두번째로, 우리가 또 아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 하는 우리의 위치와 신분에 관해서입니다. 

1.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했습니다. 

1) 내가 누구인지, 나의 신분을 알면,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우리도 성도로서 (세례교인으로서) 우리의 신분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내가 거룩한 성도다"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세례받는 자다"는 사실을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가 넘어지기 너무나 쉽습니다. 

2) 오늘날 교회가 많은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성도가 우리의 신분에 대해서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고,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에, 식물 한 그릇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되지 말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피로 값 주고 얻은 이 성도라는 귀한 명분을, 세상의 썩어질 것을 얻는 것에 바꾸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항상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III. 세번째로,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는 지각(perception)이 있다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예수님을 안다는 말입니다. 20절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1) 요한은 “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요, 3장 1절에 보면,.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3장 6절에서도, "범죄하는 자는 .....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예수님)을 안다는 것에 대한 반대표현입니다. 

2) 그러므로, 여기서 “안다”는 말은.. 존재를 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은/마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존재를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자녀가 아니라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3) 반면에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자녀라는 말이요, 믿는다는, 그래서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요한이 즐겨 쓰는 "안다”라는 말은,, 바울이 자주 쓰는 “믿는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요한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라는 비유를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믿는다” 보다는 “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지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눈을 가진 것입니다.  

1) 그래서 이제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도 알고, 또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눈이 떠진 것입니다. 앞으로 그 눈을 가지고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그 비밀을 보고, 다르게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2) 1970년대 중반에 전남 대촌섬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느 여름에 바다에서 자꾸 밥그릇 같은 것이 밀려와 대촌섬 해변에 널려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파선된 배에서 죽은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이어서 재수없다고 다 깨부수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그중에 한 개를 가져와서 개밥그릇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육지에서 손님이 왔는데, 그 손님은 이런 그릇들을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개밥그릇을 보더니만 그게 보통 그릇이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육지로 가져가서 감정을 의뢰했는데, 그게 보물로 밝혀져서 당시에 3억원에 팔렸답니다.

그게 바로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보물선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해에 정식으로 보물선이 발견되어서 수많은 보물을 건져내었습니다. 당시에 수원의 아파트 한 채 값이 3백만원이었다고 하니까, 대촌섬 사람들은 그 해 여름에 아파트 백채값에 해당하는 보물을 수없이 깨부순 것입니다.  

3) 이 이야기는 수년전 대촌섬에서만 일어났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보물을 깨부수는 사람도 있고, 보물을 개 밥그릇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보물의 가치를 알고, 보물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있고,  아예 보물선을 들어올려 수천개의 보물을 가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3. 여러분,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각을 주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보는 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한다" 했지만, 우리는 그를 보는 눈을/지각을 가졌습니다. 주님이 주신 지각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려가고, 성경말씀을 보는 눈이 열려가고, 우리 인생과 사명을 보는 눈이 열려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