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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망에서 소망으로 (룻 3:1-5,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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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소망으로 (룻 3:1-5, 4:13-17)


그 옛날 이스라엘에서 여자들은 철저히 약자였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자들이 스스로 삶을 개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자들은 늘 남자들에게 매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나오미와 룻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약자인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나 남편, 또는 아들이 보호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가까운 친척이 혼자된 여자를 보호하도록 하는 제도였습니다. 레위기 25장의 말씀을 보면 희년과 관련해서 토지를 무르는 법이 있었습니다. 다만 토지뿐 아니고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난하게 되어 종으로 팔렸을 경우 희년이 되기 전이라도 가까운 친척이 무를 수 있었습니다. 

종으로 팔린 형제나 팔린 토지를 무르는 제도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보아스를 통해서 나오미가 전에 가지고 있었던 땅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없었더라면 나오미의 형편으로는 땅을 다시 찾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며느리인 룻이 보아스와 결혼함으로써 대를 이을 아들도 얻게 되었고 또한 조상의 땅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사사 시대입니다. 지금부터 약 3천년 전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사사 시대의 특징이 과연 무엇입니까?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물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기 전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그 율법이 지시하는 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사회적 약자, 특히 여자들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특히 혼자된 과부들의 삶은 매우 처절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과부들은 생존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겪었던 삶의 어려움은 오늘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한 것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눈부신 경제 발전 덕분에 꽤나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양극화 현상이 극에 달한 것 같지 않습니까? 때문에 사람들은 전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별로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사람도 꽤나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일찍이 주님도 말씀하셨듯이 가난, 그리고 그에 따른 고통은 어느 시대에나 있게 마련입니다. 다만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 당시 혼자된 여자들처럼 오늘 생존 자체가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사회적 약자들이 절망에서 벗어나 삶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두 여인의 연대와 결속에 주목해야 합니다. 며느리 룻은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시어머니 나오미의 짐을 덜어 주는 것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를 끝까지 따르기로 했습니다. 끝까지 함께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지만 두 여인은 함께함으로써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시어머니 곁에 며느리가, 며느리 곁에 시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전도서 기자도 함께하는 것의 유익을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얼마 전까지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먹을 것은 별로 없는데 입은 왜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지독한 가난 때문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외롭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파도 함께 고파했습니다. 슬퍼도 함께 슬퍼했습니다. 그렇게 어둡고 힘든 시절을 함께하면서 오늘의 번영과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풍성한 지금 마음은 더 가난해졌고 더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다시금 기억을 되살려야 합니다. 그 지독한 가난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우리가 함께함으로써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그 옛날 나오미와 룻도 함께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실제로 그 소망이 현실이 되지 않았습니까?

아울러 우리는 두 여인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물론 오늘 이 이야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등장하시거나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룻이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하반절) 나오미도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룻 1:21) 나오미의 고백은 하나님을 원망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오미는 인간의 삶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나오미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룻기 2장 20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는도다 하고.” 나오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 것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나오미의 뜻은 룻에게 분명히 전해졌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결코 자신의 상황을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 같으면 얼마든지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오미는 굳게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욥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욥이 고난 가운데서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 2:10)

나오미와 룻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둘이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두 여인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놀라운 반전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으로 하여금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자손이 없으면 끝입니다. 토지를 되찾은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보아스와의 만남을 통해서 대를 이을 아들 오벧까지 얻게 해 주셨습니다. 여인들이 뭐라고 나오미에게 축하하며 말했습니까? “찬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룻 4:14~15)

오벳으로 말미암아 나오미는 더 이상 염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복된 삶이 보장되었습니다. 종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오벳이 어머니 룻과 할머니 나오미를 정성껏 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크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오벳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임금 다윗이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온 인류를 십자가로 구원하실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와 룻은 절망하지 않고 함께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 절망에서 벗어나 소망을 찾지 않았습니까?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그래서 외롭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과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 옛날 나오미와 룻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하늘의 평화를 지금 여기서부터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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