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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상황 속에서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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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 속에서 (살전 5:16-18)

지난주에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어떤 모임에서 강의를 해야 하는데 웃음 치료사가 실컷 웃게 하니까 얼굴의 근육이 풀어지고 마음에 기쁨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음이 기쁘면 엔돌핀이 뇌하수체에서 형성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됩니다. 엔돌핀은 일종의 마약류의 진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겪을 때 엔돌핀이 형성되면 고통이 감소됩니다. 

웃을 때 엔돌핀이 형성되고 엔돌핀은 면역력을 높여줍니다. 반면에 스트레스로 인한 아드레날린과 같은 호르몬은 인체에 치명적입니다. 몸에 독소를 만들고 암과 같은 질병을 유발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항상 기뻐할 수는 없지만 억지로라도 기뻐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항상 기뻐하라 (Always Smile) 

바울, 디모데, 실라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항상 웃으라는 말이 말입니다. 심지어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의지적으로라도 웃으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가장 사랑하는 교회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의 교회는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공동체 안에 죽은 사람들에 대한 염려가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분명한 목회적 대답을 하였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3-14)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역설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부활 때문에 기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장례식의 자리에서도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기뻐합니다. 십자가의 무게 때문에 넘어지는 자리에서도 지금 당한 일이 장차 진보를 가져올 것으로 기뻐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바울은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살전2:8)

그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을 주는 것도 기쁘다고 말합니다. 자신들에게 목숨까지 주면서 사랑하신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도 목숨까지도 줄 정도로 기뻐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영어 단어 happy가 어떤 조건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라면, 기쁨이라는 joy는 상황과 상관없이 기뻐한다는 의미입니다. 외적인 조건이 아닌 내적인 태도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긍정의 삶은 말은 쉽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자칫 힘든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은 오히려 상처가 되기 싶습니다. 그냥 털어 버리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깊은 상처가 됩니다. 하지만 세 명의 동역자의 말은 욥의 세 친구의 말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복음의 능력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그는 환난 중에도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

여기서 연단은 character인데 이것은 성품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말합니다. 환난을 인내하면서 성품이 형성되고, 그런 성품이 되면 소망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함박웃음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함박웃음을 통해서 자신이 인정받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건강한 자존감이 생겨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웃음을 주고 싶어서 편지를 쓴 것입니다. 힘들어하는 자녀에게 마치 부모가 하듯이 말입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편지에는 그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주야로 심히 간구하니”(2:13) 
  
억지로라도 웃으면 좋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웃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다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았을 때 (마2:10)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천문학을 연구하는 그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하는 별을 보고 기뻐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삶의 별이 되시는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 쉬지 말고 기도하라 (Don't stop praying)

항상 기뻐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두 번째 권면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도대체 이것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기도란 무엇일까요? 기도란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하나님을 듣고,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쉬지 않고 소통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기도의 태도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두 손을 모으는 기도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두 손을 모으는 기도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어차피 다 아시는데 왜 기도해야 합니까? 제가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상대방을 알고 나면 더 이상 소통하지 않습니까? 한 번 소통하면 되는 것입니까? 

이런 관계는 사업 관계(business relationship)입니다. 사업 관계가 끝나면 더 이상 소통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업이 아닌 영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소통과 관계가 필요합니다. 소통이 없으면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소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도 오랜만에 만나면 서먹서먹해진다고 합니다. 기러기 부부가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너무 조심하게 된다고 합니다. 대화 중에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생긴다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색해집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에 열정이 생기지 않습니다. 
  
당신과 가장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를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소통되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마음이 연결된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적용시켜 보십시오. 하나님과의 소통은 어떻습니까? 가슴이 따뜻해집니까? 마음이 평안해지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소통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올리는데 아무런 감정의 소통이 없습니까? 영혼의 미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소통이 막혀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소통은 축복입니다. 소통은 선물입니다. 답답하던 마음도 소통하면 뚫리게 됩니다. 소통하고 나면 따뜻해집니다. 영혼이 활력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소통할 때 사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축복입니다.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면 답답하던 마음이 뚫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 제목이 응답 받는 것만이 아니라 기도 자체가 선물입니다. 

하나님과의 소통 자체가 선물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요즘은 SNS시대입니다. 소설 네트워크(social network)가 발달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 네트워크(spiritual network)는 형편없습니다. 세상과의 소통만큼이나 하나님과의 소통을 제대하고 계십니까?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에게 기도는 숨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매순간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 시절 배운 찬양이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온전하게 힘을 다하여.” 다시 기도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 범사에 감사하라 (Thank God in all circumstances!)

마지막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라는 말은 모든 상황 속에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사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긍정심리학자들은 일단 “가짜로라도 감사하라고”(fake it) 말합니다. 마음이 온전히 실리지 않아도 감사하는 말을 할 때, 감사의 편지를 보낼 때 사람들은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상황이 좋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상황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매일 감사의 리스트를 적는 사람은 실제로 육체적으로도 더욱 건강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매일 감사의 기도를 하는 사람은 얼마나 크신 축복을 경험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셨습니다. 그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도 감사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성만찬은 “감사”라는 말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만찬을 영어로는 유카리스트(Eucharist), 즉 “감사”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뜻하는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눅22:19) 자신을 파는 유다에게도 떡을 떼어주셨습니다.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도 감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로 “감사의 식탁”을 차려주셨습니다. 그분의 살과 피를 받는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려면 지금 내 삶이 당연하지 않다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삶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기적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도 당연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분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잿빛이 아니라 찬란한 빛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세상과 자신을 새로운 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에게 단풍, 바람, 햇살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동일하게 보입니다. 작년과 올해 똑같은 가을 단풍입니다. 하지만 나의 시각이 바뀌면 작년과 올해의 가을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적은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바뀌는 것입니다. 

최근에 발견한 인체 호르몬 중에 다이돌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엔돌핀보다  4천배 가량 더 효과가 있는 성분입니다. 그런데 언제 다이돌핀이 생성되는지 아십니까? 감동을 받을 때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감동할 때,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할 때, 새로운 진리에 감동할 때, 사랑에 빠질 때가 다이돌핀이 생기는 상황입니다. 저희의 예배가 다이돌핀이 솟아나는 예배가 되면 좋겠습니다. 찬양의 감동,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감동, 말씀의 진리를 통한 감동, 가슴 벅차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의 감동이 넘치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는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십시오. 
지금 현재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그래도 감사 기도를 드려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롬8:28)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항상 기뻐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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