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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워말라 (사 4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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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말라 (사 41:8-10)


(사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사 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성경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하라?  사랑하라?  전도하라?  아닙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명령은 "두려워하지 말라!" 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두려움은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기 위해 파놓은 사단의 함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의 믿음을 뿌리채 흔들어 놓습니다.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쓰임받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범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무기력하게 만들고 비젼을 성취하지 못하게 하는 사단의 방해전략입니다. 
   
두려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데 나서면 그만  입이 열리지 않아서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해서  그렇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빛깔을 두려워합니다. 특히 검은 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붉은 색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소리를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큰 소리, 우뢰 소리 같은 것을  아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밖에도 상상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병이 나면 어떻게 하나?  퇴출당해서 실직하면 어떻게 하나?  빈궁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버림받으면 어떻게 사나?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을까봐 항상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오해로 인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밤중에 갈릴리바다 물위로 걸어 제자들에게 오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바람 부는 갈릴리바다에서 노를 젓느라고 고생하고 있는데 바다 위에 무엇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니까 무슨 귀신으로 생각하고 크게 무서워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복음서 가운데 나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려고 역사하는 중이지만,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미리 겁을 내어 크게 무서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두려운 생각 때문에 늘 마음 가운데 겁을 품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잠재의식 가운데  어떤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어렸을때 크게 놀랐다든지, 어렸을 때 어떤 무서운  사람에게 고생을 당했다든지 하게 되면 장성해서 이미 지나간 일은 잊어버지만 잠재의식 가운데 이런 두려운 생각이 있어서 항상 그 사람을 괴롭게 하는 심리적 현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소위 택일, 즉 날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결혼식을 할 때 날을 받습니까? 왜 이사가는 날을 받습니까? 그것도 일종의 두려워하는 심리 때문입니다. 길(吉)한 날도 있고 불길한 날도 있다고 믿으며 불길한 날 결혼식하거나 이사했다가  잘못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호텔에 13호실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소위 기독교적 미신입니다. '13'이라는 숫자는 가룟 유다의 숫자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호텔이나 병원 같은데 4호실이나 4층을 쓰지 않고 3층 다음에  5층, 혹은 F층이라고 씁니다. 왜요? 한국 사람은 '4'라는 숫자는 죽을 사(死)자와 통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것을 기분 나빠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미신에 사로 잡혀서  두려운 가운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단은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확산시켜서 자기를 섬기게 만듭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  있으니까 자연히 행복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고양이 앞의 쥐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쥐는  본래 뒷다리가 길어서 빨리 달려갈 수가 있습니다. 뒤따를 수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그런데 이 쥐가 고양이 소리를 들으면 빨리 달아납니까?  빨리 달아날 수 있는데,  그러면 고양이한테 잡혀 먹히지 않겠는데 달아나지 못해요. 고양이를 본 쥐는  부들부들 떨면서 맥을 못 쓰고 기어갑니다. 두려워서 그래요. 그래서 쥐는 고양이에게 잡혀 먹힙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쥐가 고양이를 보면 잡히기 전에  두려움에 싸여서 신경이 마비되고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으면 볼 것을 바로 못보고, 생각을 바로 못하고, 말도 바로 못하고, 신경이 마비되고 근육이 마비되어서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는 사람이 줄을  잘 타다가도 아래를 잠깐 내려다 보고 두려운 생각이 들게 되면 그순간  줄에서 떨어진다고 합니다. 군인이 전장에 나가서 전투를 잘 하다가도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 패전하고 맙니다 이처럼 두려운 마음이 주는 영향이 대단히 큽니다.
병이 나서 치료받는 사람도 그 병에 대해서 겁을 먹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 '내가 이 병 때문에 죽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다시 일어나기가 매우 어렵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병들어 죽지만 두려워서 죽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에 서반아 왕  가운데 페르디난드 5세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이 어떤 점쟁이에게 "왕께서는  마드리갈이라고 하는 곳에는 아예 가지 마십시오. 그 마드리갈에서 왕께서  장차 죽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왕의 별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두려워서  좋은 별궁을 지어 놓고도 21년 동안 거기에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서반아 지방을 여행하다가 어떤 조그마한 촌락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거기서 몸살을 앓게 되었습니다. 왕은 신하에게 "이 지방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옆에 있던 신하가 "네 폐하, 이 곳  이름은 마드갈레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드갈레'가 '마드리갈'과 발음이 비슷했습니다. 사실은 마드리갈은 아니고 비슷한 이름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왕은 '아이구,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더니 며칠 안 되어 정말 죽었다고 합니다. 병이 왕을 죽인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왕을 죽였습니다. 두려움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이 두려움을 온전히 이기고 든든한 믿음과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이 대지에서 활보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부르신 것은 두려움을 이기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평강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이런 지경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두려운 마음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을 보세요.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서 막아 줄 터이니 두려워하지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험한 곳에 서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게 될 때 천군과 천사가 우리 편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믿음으로 충만하면 두려움은 자연히 물러갑니다. 시편 27편 1절을 보세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기독교청년운동을 시작한 미국의  롤링 박사는  아침에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라고 세 번 반복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뜻은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하는 말입니다.  그 목적은 그의 마음속 잠재의식에까지 믿음으로 충만케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하고 외쳐보세요 용기와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외워 보세요. 시편 23편을 외워 보세요. 시편 27편을 외워 보세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솟아나고 마음속의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옛날 호랑이가 여우를 잡아 먹으려 했습니다. 여우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나를 뭇짐승의 어른으로 점지해 주셨는데 그대가 내 말을 못믿겠거든 나를 따라와 보라' 했습니다. 호랑이가 여우를 뒤따라 가 보았더니 뭇짐승들이 혼비백산 도망쳤습니다. 사실은 여우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뒤에 있는 호랑이가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호가호위'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시 27:1)라 했습니다. 우리의 뒷 배경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어떤 것도 두려워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 나가 모두 떨고 있었습니다.  적의 군대가 너무 강하고 숫자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적장은 체구도 몹시 크지만 그 전투경력과 명성이 주변의 모든 강대국에도 알려진 무시무시한 장수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싸울 생각도 못하고 구덩이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나이도 작고 체구도 작고 전투 경험도 없는 소년 다윗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왔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 광경을 보고 격분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싸우겠다고 자원했습니다.  다윗은 단숨에 물 맷돌로 적장 골리앗을 거꾸러 뜨렸습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군대가 힘이 솟아나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사실 다윗이 기술이 좋아 이긴 것입니까?  전술이 탁월했기 때문입니까? 힘이 강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의 뒤에서 함께 싸워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갔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꺼꾸러 뜨리신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환란이 밀려오지만 환란보다 더 큰 하나님이 너를 대신하여 싸우실테니 겁내지말고 하나님만 믿고 계속 전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환란을 만난 당시에는 다 끝장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환란이 너무 크고 절대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만 도무지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힘도 부족하고 지혜도 부족하고 끈기도 부족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깨가 내려갑니다.  슬금슬금 도망갈 길을 찾기에 바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슴하십니다."걱정할 것 없다. 내가 네 뒤에 버티고 있다.  너는 두려워말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거라"  

3.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심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은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고 덧붙이십니다. 나아가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아시고 굳세게, 강하게 무장시켜 주십니다. 우리 힘으로 부족할 때 친히 도와주십니다. 그래도 우리가 넘어질까봐 오른 손으로 꼭 붙들어 주십니다.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땅에서 나와 여러해 수고를 하면서 광야를 다  지나서 마지막으로 가데스라는 곳에 도달했습니다. 거기서 진격만 하면 가나안 땅입니다. 모세는 그 준비로 열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대표를 뽑아서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한 땅, 가나안 복지를 정탐하러 보냈습니다. 열두 사람이 40일  동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합니다. 열 명의 정탐군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가보니까 땅이 좋긴 합니다.  

그런데 거기 사는 아낙  자손은 키가 크고요, 모두 건장한 거인들인데 우리를 그들과 비교해 보니까 우리는 메뚜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땅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메뚜기 같은 우리가 어떻게 그 땅을 점령할 수 있겠습니까?" 두려움을 심는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두려움이 전염되어서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통곡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다가 두려워하던 사람들은 다 죽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심으로 정복할 수 있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하며 두려워하지 않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다음 세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지금 그들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두려워하며 포기하고 좌절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갈렙은 자신들은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택한 백성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며 대신 싸워 승리를 주실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겁이 없이 대적들을 몰아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취하자고 사람들을 설득했고 결국 그 땅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향하여도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두려움을 지금 주님앞에 다 내려 놓으시고 담대한 믿음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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