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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믿음의 사람, 김영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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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국회의원 김영진 장로님의 간증의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김영진 장로님은 전남 강진의 아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오남매중 장남입니다. 
그가 중학교를 마쳤을때 엄마, 아빠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게 됩니다. 

아버지가 그러는데 우리 집 장남인데 고등학교는 보내야지. 
어머니가 그럽니다. 동생들은 어떻게 하고요. 
걔를 고등학교에 보내면 동생들은 초등학교도 못갑니다. 
그건 안된다고, 다투시는 겁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내가 벌어서 고등학교 가야지, 내가 벌어서 동생들 뒷바라지 해야지 생각이 들어서 
중학교 3학년 졸업하자마자 교복을 입은 채로 동네 우체국을 찾아갔습니다. 

우체국장님을 만나자고 했더니 왜 나를 찾아왔느냐고 
그래서 내가 사정이 이런데 우체국에 취직을 좀 시켜달라고 하니까
우체국장이 웃으시면서 니가 조그마한데 뭘할 줄아느냐? 
너가 할 수 있는게 뭐냐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옆에 보니까 우체국에 아저씨가 우편을 발송하기 전에 도장(소인)을 찍었습니다. 
그 많은 것을 쌓아놓고 한 장씩 찍는데 순식간에 끝납니다. 
그걸보고 나도 저걸 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우체국장님이 웃으면서 그럼 한번 해보라고 하면서 맡겨주었습니다. 
그 순간 어린마음에도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하나님 저좀 도와주세요 제가 스탬프를 잘 찍어야지 제가 취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일을 받아서 찍는데 자기가 보더라도 그렇게 잘 찍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우체국장이 보더니 너 합격이라고 우체국에 와서 일하라고 
그래서 전보배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이런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장로님은 그럽니다. 
자기가 그때 얼마나 스탬프를 잘 찍었는지 지금도 대회하면 자기가 1등할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소질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기독 청년운동을 해서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농촌을 살릴수 있을까를 연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농민들이 밤에 자다가도 태풍이 오면 비닐하우스를 씌우러 가야하는데 
통행금지에 걸려서 농사를 지으러 못가는 것입니다. 
그걸보고 이분이 통행금지 반대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통행금지 해지해 달라. 
이래서 몇 년동안 감옥에가서 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과정속에서 이분이 교회에 충성을 다하고 아주 젊은 장로님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를 부르더니 목사님들 몇분이 
우리가 당신을 강진군의 국회의원으로 내보내기로 했다고 지금부터 운동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들이 말씀하시니 얼떨결에 순종해서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는 투스타 출신익고 전두환 대통령의 육사 동기동창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막강한 지원을 받는 사람하고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선거에 나갔는데 놀랍게도 아주 압도적인 표차로 그가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입니다. 
그것도 고졸출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는 겁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국회에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고졸 출신인데 뭐 아는게 있어서 의정활동을 하죠. 
다른 국회의원들을 보니까 미국의 프린스턴을 나오고 하버드를 나오고 
박사학위가 두 개씩 되는데 내가 이 사람들하고 견줄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너가 선거운동 할 때 돕던 대학 졸업자들 있지 않느냐 
그 사람들을 너의 비서관으로 세우면 되지 않느냐. 

국회의원은 비서관을 5명 둘수 있습니다. 
대졸자들로 실력있는 사람들을 비서관으로 세워서 자기를 돕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발로뛰는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곳곳을 다니며 상황을 살피고 그것을 모아서 국회에 내니까 안건이 통과되고 
일년이 지났는데 모니터 시민 감시단이 투표를 배보니까 
제일 의정활동을 잘한 국회의원이 전남 강진의 김영진 국회의원이라는 겁니다. 
몇 년째 일등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정활동을 잘하고 결석도 안하고 국회가 열리면 끝까지 참석하는 국회의원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한일 화해를 위해 사실 자기아버지는 일제시대때 지용을 당해서 끌려가서 
3년동안 고통을 당하고 고문받고 돌아왔는데 
그는 화해시키기 위해서 일본의 국회의원들하고 자매결연을 맺어 한일연맹을 만들어서 
한국과 일본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일본측에 대표되는 국회의원은 자기 아버지가 총독부에서 한국사람을 압제하던 
그런 사람의 아들입니다. 
그와 손잡고 화해하고 우리가 기도하자 이렇게 해서 한일 의원연명을 결성했습니다. 

또 자기를 국회의원에 당선되서 국회로 보낼때 지역의 모든 목사님들이 모여서 파송예배를 드렸는데 
두가지 요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김영진 장로를 국회로 보냅니다. 국회의회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또 농어민을 대표하는 일꾼으로 파송합니다. 
그 사명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르과이 라운드를 몸으로 막기 위해서 스위스의 제네바에 가서 단식투쟁을 하기도 하고 
좋은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서 그는 애썼고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또 국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니까 여당은 여당끼리 따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야당도 따로 모입니다. 

예배는 함께 드리는 거지 여당따로 야당따로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이야기를 해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제안헤서 
국회에 조찬기도회를 만들어서 초대 회장을 지냈습니다. 
또 그것이 발전해서 국가 조찬기도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역구에 가서 얘기를 들어보면 하도 국회의원들이 싸움만 해서 
우리는 9시 뉴스보다가 국회의원만 나오면 TV를 끄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럽니다. 
그래도 끄지는 말고 끝까지 봐달라고 국회의원 중에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지도 너무 힘들때는 국회 기도실에가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는데 
앞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분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두분의 국회의원이 기도하는데 한분은 한나라당의 황우여 장로, 지금 원내대표입니다. 
그분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국회에도 기도하는 장로가 있구나, 
지금도 소망을 가지고 국회가 잘되도록 자기가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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