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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이름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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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환 (동화작가)

지구별은 평화로웠다. 지구별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함께 먹었다. 더 먹는 사람도 없었고 덜 먹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먹을 것 때문에 싸우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을 사랑했고, 꽃을 사랑했고, 저녁노을을 사랑했다. 사람들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했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을 추었다.

천둥 치는 밤이었다. 그로테스크한 악어가 지구별에 나타났다. 악어의 푸른 눈빛은 매혹적이었다. 악어는 몸집이 크지 않았다. 악어 얼굴에 사람 문신이 있었다. 사람들은 악어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악어의 감추어진 이빨을 볼 수 없었다.

악어는 새끼를 낳았다. 새끼는 새끼를 낳고, 새끼는 새끼를 낳고, 새끼는 새끼를 낳고, 새끼는 새끼를 낳았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악어를 기르기 시작했다. 악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악어는 이빨을 감추려고 노래를 불렀다. 악어의 노랫소리는 달콤했다. 악어 노랫소리에 맞춰 사람들은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악어 때문에 슬퍼했고 악어 때문에 기뻐했다. 손바닥만한 악어가 사람을 울리고 웃겼다. 사람들은 악어 똘마니가 되었다. 악어는 사람을 삼키려고 어둠 속에서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악어를 사랑했다. 사람보다 악어를 더 사랑했다. 결혼식장에 갈 때도 악어를 데리고 갔다. 장례식장에 갈 때도 악어를 데리고 갔다. 술집에 갈 때도 악어를 데리고 갔다. 악어를 잃어버렸다고 경찰을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예전처럼 기쁨을 함께 나누지 않았다. 예전처럼 슬픔을 함께 나누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은밀한 방에서 오직 악어만을 생각했다. 알몸뚱이로 악어와 뒹굴며 운우지정을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화롭던 지구별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악어를 많이 가지려고 사람들은 서로 싸웠다. 사람들은 대포와 미사일을 만들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 했지만, 악어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악어는 전지전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악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악어 때문에 사람을 속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악어 때문에 청춘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악어는 힘이 셌다. 악어는 총칼 없이 지구별을 정복했다. 악어만 있으면 안 되는 일 없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악어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고 사람들은 소리쳤다. 사람들은 악어가 삼켜버린 자유를 몰랐다. 악어가 삼켜버린 인간의 사랑을 몰랐다. 악어는 악어 편이라는 것을 몰랐고, 악어는 악어 때문에 쓰러진다는 것을 몰랐다. 사람은 울어도 악어는 울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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